폭탄주는 맥주잔 속에 양주잔을 넣어 섞어 마시는 것으로, 흔히 한국산 혼합 독주로 아는 이가 많지만 그 원조는 서양이다. 19세기경 탄광과 부두 노동자들이 빨리 취하려고 술을 섞어 마신 게 시작이다.
미국에서는 맥주를 섞은 위스키를 ‘보일러메이커(boilermaker)’라고 부르는데, ‘온몸을 취기로 달아오르게 하는 술’이란 뜻이다. 비교적 싼값에 빨리 취한다는 장점 때문에, 19세기 말 벌목장이나 제철 공장 노동자들이 즐겨 마시면서 가난한 일꾼들의 생활고와 시름을 달래주는 술로 애용되었다. 그 무렵 보일러메이커는 두 가지 방식이 있었는데, 먼저 맥주를 마시고 이어 양주를 잇달아 마시는 방법과 큰 맥주잔에 작은 위스키 잔을 넣어 섞어 마시는 방법이었다. 지금 우리의 폭탄주 제조법이 어디에서 왔는지 보여준다.
러시아에도 맥주잔 속에 보드카 잔을 넣어 마시는 ‘요르쉬’라는 전통 주법이 있다. 요르쉬는 볼가 강에 사는 독성 강한 물고기의 이름으로, 요르쉬의 술맛이 어떤지 대충 짐작이 갈 것이다.
우리나라는 조선 시대 말 막걸리에 소주를 섞어 마시는 폭탄주 문화가 있었다. 1837년 문헌 《양주방》에 따르면, 따뜻한 막걸리 한 사발에 (증류식) 소주 한 잔을 부은 다음 소주가 맑게 위로 떠오르면 마셨다. 이를 ‘혼돈주(混沌酒)’라고 했으며, 이때 넣는 소주가 붉은색이면 ‘자중홍(自中紅)’이라 했다. 근대 들어서는 소주에 맥주나 막걸리를 섞어 마시는 일이 가끔 있었으나 대체로 한 가지 술을 마셨다.
그러다 군인 정치가 득세한 1980년대에 폭탄주 문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자, 우리 화끈하게 마셔 봅시다!”1983년에 당시 박희태 춘천지검 검사장이 춘천 지역 검찰, 경찰, 안기부, 군인, 언론사 관계자와 술자리를 가졌는데, 그때 맥주잔에 위스키 잔을 떨어뜨려 마셨다. 그리고 그 술 이름을 ‘폭탄주’라 이름 붙였고 이후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고 한다.
이후 음주 사회 전반에 걸쳐 폭탄주 문화가 퍼졌고, ‘원자폭탄주’, ‘수소폭탄주’, ‘회오리주’ 등 갖가지 이름의 변형 폭탄주가 연이어 등장해 술자리 분위기를 띄웠다. 게다가 1984년 국내 위스키 3사가 원액 함량 100% 위스키를 개발하여 폭탄주 문화에 불을 지폈다. 위스키로 대표되는 양주가 흔해지자, 양주를 대량으로 마시거나 맥주와 섞어 폭탄주를 마시게 된 것이다.
폭탄주는 제조하고 마시는 과정에서 시각적 즐거움을 주는 까닭에 여전히 주류 사회에서 사랑받고 있다. 하지만 돌아가며 마시거나 모두 한꺼번에 마셔야 한다는 불문율 때문에 체질적으로 술에 약한 사람에게는 여간 고역이 아니다. 그러나 상대에게 잔을 받으면 돌려주는 게 예의인 한국 특유의 음주 문화를 생각하면, 회식 자리에서 폭탄주를 동시에 마실 경우 일일이 상대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술을 적게 마시는 장점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