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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스물한 살에 딸을 낳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옳다고 생각되는 쉬운 일부터 시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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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내 삶은 우리가 어릴 때 자주 하던 얼음땡 놀이 같았다. 술래에게 잡히려는 순간 ‘얼음’이라고 외치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돌처럼 굳어버렸다.

한때 내 삶은 우리가 어릴 때 자주 하던 얼음땡 놀이 같았다. 술래에게 잡히려는 순간 ‘얼음’이라고 외치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움직이지 말아야 한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어떤 일이 생길 때마다 돌처럼 굳어버렸다. 잘못된 길로 갈까 봐, 그릇된 결정을 할까 봐 너무나 두려웠다. 문제는, 그렇게 서 있는 동안 그것이 결국 내 자신의 결정이 된다는 점이다.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어김없이 방영하는 텔레비전 애니메이션 <찰리 브라운의 크리스마스>. 그중에서 기억나는 일화가 있다. 찰리 브라운이 5센트 심리치료사 루시를 찾아간다. 루시는 최선을 다해 찰리를 진찰한다.

“네가 책임지기를 두려워한다면 책임공포증이 틀림없어.”

찰리는 자기가 그걸 가장 두려워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대답한다.
루시는 찰리의 병을 알아내려고 노력한다.

“네가 층계를 두려워한다면 층계공포증일 수도 있어. 만약 바다를 두려워한다면 바다공포증이야. 어쩌면 다리 건너기를 두려워하는 다리공포증일 수도 있지.”

마침내 루시가 정확한 진단을 내린다. ‘만사공포증.’
그게 뭐냐고 묻는 찰리는 루시의 대답을 듣고 놀라면서 동시에 안도한다.

“만사공포증이 뭐냐고? 모든 것을 두려워하는 증상이야.”

빙고! 그게 바로 찰리 브라운의 병이었다.
나도 그랬다.
나는 술을 나침반 삼아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졸업 후에는 집 근처의 대학에 들어갔다. 입학 지원서를 내고 입학 허가를 받아야 하는 모든 절차가 두려웠고, 집을 떠나 오하이오 주 라베나 너머의 대학 기숙사에서 사는 게 두려웠다.

내가 매일같이 버스를 타고 내가 살고 있는 라베나에서 켄트까지 10킬로미터를 오간 것은 켄트 주립 대학에 홀딱 반했기 때문이 아니다. 물론 아름답고 훌륭한 학교이긴 하지만, 그곳을 선택한 진짜 이유는 내 언니 두 명과 오빠처럼 먼 대학에 다닐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미국에서 가장 큰 대학 중 하나인 오하이오 주립 대학에 다녔다. 켄트에서 나의 세상은 작고 안전했다. 거기서 나는 고등학교 동창들과 함께 점심을 먹었다.

대학에 들어간 지 2년 만에 화학을 포기했다. 너무 힘들어서 툭하면 수업을 빼먹었다. 그때부터 전공을 세 번이나 바꿨다. 그리고 스물한 살에 임신을 하고 대학을 중퇴했다. 술은 완전히 끊었지만 나한테 맞지 않는 직업을 전전했다. 물류 센터 사무원, 변호사 사무실 비서, 사무실 관리인, 심지어 장의사 보조로 일하며 시신을 옮기는 일까지 했다.

남은 인생을 무얼 하며 살아야 할까? 미래에 대한 불안이 나를 짓눌렀다. 그러던 어느 날, 요양 중이던 친구가 내게 충고했다.


“옳다고 생각되는 쉬운 일부터 시작해.”

그거면 돼?
나도 그건 할 수 있었다.
대개 우리는 다음 단계가 뭔지 알지만, 그게 너무 작아서 보지 못한다. 우리의 눈길이 너무 먼 곳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작고 쉬운 걸음 대신 크고 두려운 큰 도약만 생각한다. 그래서 기다린다. 또 기다린다. 계속 기다린다. 마치 붉은 카펫이 발 앞에 깔리듯 인생계획표가 거대한 청사진처럼 눈앞에 펼쳐지길 바란다.

하지만 설령 그렇게 된다 해도 너무 두려워서 한 발짝도 내딛지 못한다.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싶었고, 억지로 해야 하는 일이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하지만 뭘 전공하지? 학비는 어떻게 마련하지? 그 전공을 살려서 무슨 일을 하지? 답이 없는 질문이 너무나 많았다.

하루는 엄마가 내게 다음 단계를 알려주었다.

“일단 모집 요강부터 받아오렴.”

그거면 돼?
나도 그건 할 수 있었다. 당장 모집 요강을 받아왔다. 그리고 펼쳤다. 한 장 한 장 훑어보면서 맘에 드는 강좌를 펜으로 표시했다. 그것들을 배워 학위를 따겠다는 생각이 아니라 그저 재미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거실 바닥에 앉아 모집 요강을 차례차례 훑어보았다. 처음에는 노는 시간만 좋아하는 아이처럼 레크리에이션, 승마, 하이킹에 표시했다. 이어서 심리학과 미술 강좌도 한두 개 표시했다. 그런 다음 영어 강좌 몇 개. 그렇게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강좌 소개를 꼼꼼히 읽다가 보물을 발견했다. 기사 작성법. 잡지 기고. 신문 사설 쓰기. 우와. 그 밖에도 인류학에서부터 동물학까지 여러 관심 분야에 표시를 했다. 다 읽고 나서는 모집 요강을 처음부터 다시 훑어보면서 어떤 강좌에 가장 많이 표시했는지 확인했다.

글쓰기.

결국 글쓰기 강좌 하나를 선택했다. 그리고 하나 더. 또 하나 더. 자신이 없을 때는 옳다고 생각되는 일부터 하면 된다. 그런 일은 대개 아주 작고 쉬운 일이다. 미국 소설가 에드거 로렌스 닥터로는 글쓰기가 야간 운전과 같다고 말했다.

깜깜한 밤에는 전조등 불빛 너머가 안 보이지만, 그것만으로도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이 신조는 삶에도 적용된다. 내 차의 전조등은 고작 100여 미터 앞을 밝혀주지만, 그 정도 불빛만으로도 캘리포니아까지 갈 수 있다. 차를 모는 데 필요한 불빛만 있으면 된다.

나는 서른 살에 켄트 주립 대학에서 저널리즘으로 학위를 받았다. 그로부터 10년 뒤에는 존 캐럴 대학에서 종교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처음부터 석사 학위를 딸 생각은 없었다. 만약 내가 그 세월(5년)과 학비(수천 달러), 빡빡한 수업과 힘든 과제, 논문 준비(밤에도, 점심시간에도, 주말에도)를 고려했다면 아마 첫 수업료를 송금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저 수업 하나를 듣고, 다시 하나 더, 또 하나 더 들었을 뿐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덧 졸업까지 하게 되었다.

이건 마치 내 딸을 키우는 것과 같았다. 나는 내 딸이 열여덟 살 아가씨로 성장할 때까지 내가 싱글맘으로 살아갈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내 딸이 고등학교를 졸업한 달에 나도 석사 학위를 받았다. 스물한 살에 딸을 낳은 나는 그 애가 졸업하는 날까지 얼마나 많은 돈과 시간, 희생이 필요할지 전혀 몰랐다.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알았다면 겁부터 집어먹었을 테니까.

이따금 교육 전문가들은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을 계산해낸다. 그 결과는 수십만 달러에 이른다. 물론 돈 문제를 걱정하지 않는 예비 부모들도 있겠지만,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돈 이외에 드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누군가가 계산해낸다면 인류는 멸종할지도 모른다.

성공적인 삶과 자녀 양육의 열쇠는 비용 계산이 아니다. 성공에 필요한 모든 단계를 지레 겁내서는 안 된다. 한 번에 도약하려고 서둘러서는 안 된다. 먼 곳만 바라보다가는 작은 첫걸음을 내디딜 수 없다.

살을 빼고 싶다면 감자튀김 대신 샐러드를 주문해라. 더 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면 문자 대신 전화를 걸어라. 소설을 쓰고 싶다면 책상 앞에 앉아 첫 문장을 써라.

삶에 큰 변화를 주는 건 두렵지만, 옳다고 생각되는 한 걸음을 내디딜 용기는 누구나 갖고 있다. 작은 한 걸음을 내딛고 또 한 걸음을 내디디면 된다. 아이를 키우고, 학점을 받고, 책을 쓰고, 내 마음이 바라는 것을 하는 데 필요한 건 그뿐이다.

당신의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그게 무엇이든 쉬운 첫걸음부터 내디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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