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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한 그림책 데보라 언더우드 글/레나타 리우스카 그림/홍연미 역 | 미세기 |
유아들을 위한 이 동화책은 2010년 뉴욕타임즈가 선정한 베스트셀러 그림책입니다. 미국에서 출간 직후부터 화제를 일으킨 사랑스러운 그림책이에요. 어른은 쉽게 지나칠 수 있는 아이들만의 조용한 순간들을 담고 있어 신선합니다. 주변이 고요한 순간, 자신도 모르게 조용해지는 순간, 말이 필요 없는 순간, 조용해야만 하는 순간, 난처해서 할말을 잃은 순간이 있지요. 이러한 순간들을 아이들의 상황과 꼭 어울려 각 장면에 흠뻑 빠져들게 만들었어요.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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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시끄러워.’
하루에도 문득문득 저런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세상은 참 시끄럽다. 이런 저런 일들로 늘 어지럽고 복잡한 세상이라지만 그런 문제들 다 내려놓고 물리적으로만 따져봐도 이 세상은 너무 시끄럽다. 요즘에는 거리를 나가봐도, 커피 한 잔을 마시고 싶어도 한적하고 조용한 곳을 쉽게 찾을 수가 없다. 그저 북적거리는 사람들 틈에 비집고 들어가 어떻게 지나가는지도 모르게 정신 없이 시간을 흘려 보내는 경우가 태반인 듯 하다. 누군지도 모르는 이들의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들어야 하고, 마주 앉은 일행에게 내 얘기를 전달하기 위해서는 목소리를 높여야 하는 (그래서 그 시끄러운 소음에 내 목소리까지 더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하루는 아무 한 일도 없이 사람을 지치게 만들기도 한다.
TV, 자동차, 컴퓨터, 그리고 사람들까지. 소리를 듣는 이들보다 소리를 내는 것들이 더 많은 세상이라 때로는 아무 소리도 나지 않는 순간의 정적이 더 특별하고 소중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이 책,
『조용한 그림책』을 처음 접했을 때 어느 책을 읽을 때보다 신선하고 반가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 은은한 색채의 표지에는 책을 읽다 스르륵 잠든 듯한 토끼가 얌전히 엎드려 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 자신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럽게 책장을 넘기게 된다.
이 책은 갑자기 주변이 고요해지는 순간, 숨바꼭질 할 때 술래를 피해 숨어있는 시간, 하늘에서 소리 없이 첫 눈이 내리는 순간 등 우리가 살면서 만나는 조용한 순간들과 그 특별함에 대해 잔잔하게 그리고 있다. 너무 무서워서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 순간, 난처해서 할 말을 잃은 순간, 또 가장 친한 친구와 함께 있기에 아무 말도 필요 없는 순간까지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순간들을 재치 있게 포착해냈다. 글작가 데보라 언더우드의 섬세한 감각은 그림작가 레나타 리우스카의 따뜻하면서도 간결한 그림 속에서 은은하게 빛을 발한다.
이 책에서는 수많은 조용한 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막상 우리 생활에서 그 조용한 순간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주변에서는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 목소리, 복도를 지나는 이의 발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으니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쉽게 만날 수 없는 그 조용한 순간들과 우연히 만나게 되면, 굳이 그 조용함을 깨뜨리려고 하거나 무심히 넘겨 버리지 말고 가만히 그 고요함을 느껴보자고 말하고 싶다. 외부의 자극과 머리를 복잡하게 만드는 여러 일들을 모두 멈추고 가만히 자신의 마음에, 그 순간의 감정에 집중해 보면 어떨까.
서로가 시끄럽게 자기 목소리를 내야만 세상이 잘 돌아가는 것일까? 소리를 내는 이가 있다면 그 소리를 가만히 들어주는 이도 필요하다. 또 밖으로 소리를 내기 전에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자기 안에서 다듬고 견고하게 만드는 시간도 필요한 법이다. 빠른 속도에 길들여진 탓인지 오늘을 사는 우리들은 생각을 품기 보다는 매 순간의 감정까지 모두 말로 쏟아내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는 듯하다.
때로는 입을 여는 것보다 주변의 소리에 먼저 귀를 기울여 보자. 내가 사랑하는 주변 사람들의 목소리에 집중하고, 상처받고 지친 우리 자신의 마음이 어떤 소리를 내는지 가만히 들어보자. 그러면 세상이 조금은 더 조용하고 깊어지지 않을까. 살얼음판 같이 얇고 위태로운 세상 위에서 매일 종종 걸음을 걷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그림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