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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재료 배달하는 재벌 청년과의 첫만남

특별한 날의 특별한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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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사장님 아니 작가님, 글 쓰면 돈 벌 수 있어요?”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돈을 벌려고 작가가 되겠다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다고 작가라고 해서 돈을 벌지 못하면 살 수가 없으니까. “돈은 벌 수는 있어요.”

특별한 날이 아닌데, 특별한 날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은 공기에서 어떤 냄새가 느껴진다. 평소와는 다른 서늘하면서도 차분한 느낌의 냄새다. 오늘은 거리에 오가는 사람들이 많다. 식당 앞 큰길에는 자동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길이 많이 막히는 모양이다. 가로수 위에서 까치 몇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깍깍 운다. 라디오에서 냇 킹 콜이 프렌치 키스를 부른다.

이런저런 풍경이 눈과 귀와 코로 동시에 감지되며, 나는 오늘이 특별한 날은 아니었나 생각하게 된다. 세상 모든 사람은 알고 있지만, 나만 모르는 특별한 날 말이다. 특별한 날을 맞아 사람들은 목적을 갖고 바삐 움직인다. 그런데 나만 그걸 모르고 있다. 나만 세상 밖에 서 있다.

‘착각이야.’하고 나는 일상 속으로 고개를 돌려 버린다. 도마 위에 놓인 하얀 파를 썬다. ‘어차피 특별한 날 같은 건 없잖아.’하고 나는 중얼거린다. 평범한 날이라도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특별해지는 것이다. 왜냐하면 똑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으니까. 영원히 돌아오지 않는 그 순간만큼 특별한 날은 없으니까. 여기에서 내 생각은 멈출 줄 알았다. 그런데…….

딸랑딸랑.
현관에 매달아놓은 종이 울렸다.
“아직 문 안 열었는데요.”
내가 말했다. 무지개 창작 식당의 오픈 시간은 11시 50분이다. 지금은 10시 20분밖에 되지 않았다.
“안녕하세요.”
손님이 아닌 것 같았다. 파란 점퍼를 걸친 청년이 주머니에 손을 넣고 서서 눈웃음을 지었다. 나이는 삼십대 중반 정도 돼 보였다.
“어떻게 오셨어요?”
“식재료 어디서 받으세요?”
청년이 물었다. 청년 뒤에는 하얀 다마스가 서 있다. 청년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내민다. 노란색 스티커다.


청년은 의자에 앉으라는 말도 안 했는데 의자에 앉았다. 그리고 마치 구청에서 식품위생 검사를 나온 것처럼 가게를 둘러봤다.
“인테리어 공사한 지 한 달이나 됐는데 아직도 어수선하네요.”
청년은 한 달 전부터 가게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나 보다.
“메뉴가 무지개 맛 국수와 무지개 맛 비빔밥? 두 가지밖에 안 돼요? 그것 갖고 장사가 되려나?”
난 한번 힐끔 눈길을 주고는 대답 없이 여전히 파를 썰었다. 콧등이 시큰거리고 눈물이 나려고 했다.
“이 동네 식당들은 거의 다 저한테 식재료를 받아요. 그만큼 제가 싸고 좋은 식재료를 드린다는 말씀입니다.”

청년의 말투에는 자신감이 넘쳐났다. 저 자신감이 어쩌면 마케팅 전략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청년은 예의 바르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분 나쁘게 군 건 아니었다. 처음 만났지만,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처럼 친근하게 접근했다. 그게 마케팅 전략인지 원래 성격인지 잠시 헷갈렸다.

“아직 장사를 본격적으로 안 해서 식재료가 많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아요. 손님도 거의 없고요.”
나는 앞치마에 손을 닦고 흐르는 콧물을 훌쩍거리면서 주방에서 나왔다. 청년이 가만히 벽에 걸린 안내문을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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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지개 창작 식당 주인 서지원 -

“여기는 단순한 식당이 아닌가 봐요? 작가 학원 같은 거예요?”
“작가 학원?”
내 목소리가 커졌다. 나도 모르게 놀란 모양이다. 작가 학원이라니……. 이 낯설고 어색한 느낌! 나는 내 멋진 꿈이 청년의 입을 통해 여과되는 순간, 평범한 사교육 학원이 전락해 버리는 것 같았다.
“학원은 아니에요. 학원은 돈 내고 다니는 거고……. 여긴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들의 고민을 상담해 드리는 겁니다. 무료로!”
난 무료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러자 내 마음이 조금은 편해졌다.
으흠, 하면서 청년은 주머니에 손을 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제스처는 ‘다 알겠네. 다 알겠어. 뻔하군.’하는 듯이 보였다.
“그런데 몇 살이에요?”
내가 물었다. 그때 나는 왜 갑자기 청년의 나이가 궁금해졌을까?
“스물일곱이요. 왜요?”
생각보다 젊었다. 그러니까 나보다 열일곱 살이나 어렸다.
“사업을 일찍 시작했네요. 몇 년이나 됐어요?”
“오래됐어요. 휴, 벌써 팔 년이나 된 걸요.”
청년이 또 한 번 나를 놀라게 했다.
“고등학교 중퇴하고 바로 시작했어요. 돈은 좀 모았는데 요즘 슬슬 지겨워지려고 해요. 가게를 하나 내볼까 하다가 불경기라서. 3억 투자해서 월 천 수익 내기가 어려우니까요.”
스물일곱 청년의 입에서 쉰 먹은 사업가의 말투가 술술 이어졌다.
“얼마나 벌었는데요?”
“아파트 하나 사놨고 결혼 자금, 사업 자금은 마련해 놨는데요. 지금은 사업을 벌일 때가 아니에요. 참는 게 돈 버는 거지.”
나는 또 놀랐다. 88만 원 세대의 다른 청년들은 꿈도 못 꿀 수준에 오른 거였다. 이 정도면 내가 보기에 청년 재벌의 수준이었다. 문득 청년의 분위기가 달라보였다. 식재료 배달이 그렇게 수익성이 높은 사업인가 하는 부러움도 잠시 들었다.
“여기에 식당이 들어온다고 해서 특별한 식당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불황에도 살아남으려면 보통 특별한 가게가 아니어야 하잖아요. 완전 차별화된 메뉴나 서비스가 있어야 할 텐데, 사장님 가게는 뭐 그냥……. 작가 고민 상담이 서비스? 그런데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이 그렇게 많아요? 여기 가게를 꽉 채울 정도로?”
“그…… 그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소문이 나면 찾아오겠죠.”
재벌 청년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지만, 내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 재벌 청년은 마치 창업 전문가가 되어 이 가게가 언제쯤 망할까 따져보는 표정이었다. 라디오에서 윈터플레이의 섬머 블루스가 울린다. 이 분위기와는 정말 어울리지 않는 곡이었다.
“그런데 사장님이 작가예요?”
“그럼요. 작가예요.”
“이름이 서지원? 못 들어봤는데…….”
재벌 청년은 벽에 걸린 안내문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유명한 작가는 아니고요.”
나는 마음속으로 ‘이래 뵈도 책을 백 권도 더 쓴 작가거든!’이라는 말이 목구멍으로 나오려는 걸 꾹 참았다. 스물일곱의 돈 냄새 잘 맡는 재벌 청년한테 내가 무슨 말을 할 게 있을까 싶었다.
“돈이 되려면 음식에 손맛이 있어야 하는데……. 무지개 맛 국수와 무지개 맛 비빔밥은 무슨 맛이에요?”
“나중에 한 번 오세요. 아직 오픈 전이라…….”
나는 100:1로 들어가야 할 대기업의 입사 면접을 보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걸어갔다. 그런데 그때 등 뒤로 뜻밖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런데 사장님 아니 작가님, 글 쓰면 돈 벌 수 있어요?”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잠시 망설였다. 돈을 벌려고 작가가 되겠다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다고 작가라고 해서 돈을 벌지 못하면 살 수가 없으니까. “돈은 벌 수는 있어요.”
내가 말했다.
“그럼 작가될래요. 작가 되는 법 가르쳐주는 거 공짜라고 하셨죠? 저도 가르쳐주세요.”
“네?”
재벌 청년이 나를 또 놀라게 했다. ‘뭐지? 이것도 식재료 배달의 마케팅 전략인가?’하는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다음에 올게요. 오늘은 배달 가야 해서 안 되고요. 필요한 식재료 있으면 전화주시고요. 24시간 신속 배달입니다.”
청년의 낡은 다마스에서 하얀 연기가 났다. 난 멍해진 얼굴로 거리를 바라봤다.

특별한 날이 아닌데, 특별한 날처럼 느껴지는 날이 있다. 그런 날 만나는 사람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고 해도, 특별하게 만나는 게 좋다. 세상 모든 사람은 평범한 날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내게는 특별한 날인 것이다. 똑같은 날은 단 하루도 없으며, 지금 이 순간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테니까. 나는 다시 도마에서 하얀 파를 썬다. 콧등이 시큰거리고, 눈물이 찔끔 거린다. 평범한 날이라도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특별해진다. 그대가 평범한 사람이라고,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그대는 특별한 사람이다.
‘그렇군.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어.’

앞으로 재벌 청년에게 식재료를 받아야겠다. 그런데 첫 손님은 언제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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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지원

스토리텔링은 무조건 재미있어야 하며, 재미없는 글을 쓰는 건 죄악이라 생각한다. 지금까지 250여 종의 스토리텔링 책을 집필을 했으나, 재능이 있어서 쓴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그래서 스토리텔링은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누구나 배우고 익히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서지원 작가의 특징은, 지식과 교양을 유쾌한 입담과 기발한 상상력, 엉뚱한 소재로 스토리텔링 하는 방법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난 바다 소년으로, 한양대학교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989년 《문학과 비평》에 소설로 등단했다. 신문사에서 기자로 일하며 이상한 사람과 놀라운 사건을 취재했고, 출판사에서 요란한 어린이 책을 만들다가, 지금은 어린 시절 꿈인 작가가 되어 하루도 빠짐없이 글을 쓰며, 예스24와 네이버에 스토리텔링 방법론에 대해, 빅이슈에 인간의 행복과 삶의 양식에 대한 깊은 성찰의 글을 연재한다. 스토리텔링으로 쓴 책은 수학, 과학, 철학, 인문, 역사, 환경, 예술 등 다양한 방면에 걸쳐 있으며, 무려 300종에 가까운 책을 썼다. 중국, 대만 등 외국 여러 나라에 수십 종의 스토리텔링 책이 수출이 됐으며, 외국에서도 인기 작가로 인정받고 있다.
쓴 책으로는 『어느 날 우리 반에 공룡이 전학왔다』, 『몹시도 수상쩍은 과학 교실』, 『국제무대에서 꿈을 펼치고 싶어요』, 『빨간 내복의 초능력자 1, 2』, 『훈민정음 구출 작전』, 『원더랜드 전쟁과 법의 심판』, 『세상 모든 철학자의 철학 이야기』, 『원리를 잡아라! 수학왕이 보인다』, 『다짐 대장』, 『토종 민물고기 이야기』, 『귀신들의 지리공부』, 『무대 위의 별 뮤지컬 배우』 『어린이를 위한 리더십』 등 많은 책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도서관협회가 뽑은 2012 우수문학도서로 선정되는 등 스토리텔링으로 지식 탐구 능력과 창의적인 문제 해결능력을 담아주는 집필을 계속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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