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아이와 꼭 함께하고 싶은 45가지 명로진 저 | 북스토리 |
저자 명로진은 앞서 아이를 키워온 어르신들과 선배들에게, 또는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을 통해 ‘아이에게 꼭 해주고 싶은 것이나 아이에게 해주었더니 좋았던 것’에 대해 조사했고, 그 결과 『아이와 꼭 함께하고 싶은 45가지』로 엮어낼 수 있었다. 많은 이들이 부딪히고 수도 없이 시행착오를 거치며 깨달은 살아 있는 기록으로, 일상생활에서 벌어지는 생생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 | |
|
“자, 아빠한테 서운한 거 있으면 말해봐.”그날은 우리 가족이 외식을 하고 들어온 날이었다. 냉장고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꺼내서 함께 먹고 있었다. 아내는
“요즘 당신이 아이에게 신경을 덜 쓰는 것 같다”는 말을 했다. 나는 결코 동의할 수 없었다.
‘신경을 덜 쓴다고? 지난 한 달 동안 애한테 들어간 돈이 얼만데? 학원비에, 개인 레슨비에, 새로 맞춘 공연복에, 오디션 향상 발표회장 대여비에……. 애가 먹고 입고 쓰는 게 다 누가 벌어온 건데? 그리고 나는 아이 친구 이름도 세 개 이상 댈 수 있고, 담임선생님 이름도 알아. 일주일에 한 번은 한 시간 동안 아이랑 놀아주기도 하고, 가끔 사우나도 같이 가잖아? 거기다 어떨 때는 수학 공부도 가르쳐주고…….’
내 나름대로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는 충격이었다.
“제가 요즘 학교 공부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신경 좀 써주세요. 시험 본 날에는 점수 잘 나왔는지 물어봐 주시고요. 또 피아노 레슨 곡은 뭔지, 무슨 요일에 레슨을 가는지, 언제 콩쿠르에 나가는지 기억해두었다가 ‘잘하라’고 격려해주세요.” 나는 깜짝 놀랐다. 똑같은 시간을 보내고서도 나와 아이가 기억하는 것이 달랐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에게 해준 것만 기억하고 있었고, 아이는 내가 해주지 않은 것만 생각하고 있었다.
어떤 유명한 정신과 의사도 비슷한 말을 했다.
한 집에 사는 자신과 아들이 서로 다른 기억을 갖고 있다고. 자신은 아들에게 해준 것만 기억하고 있는데, 아들은 엄마가 안 해준 것만 기억하고 있더라고. 엄마인 그녀는 그렇게 많은 걸 해줬는데도 고마운 줄 모르고 여전히 바라는 게 많은 아들이 불만이었다. 반면 아들은 그동안 해준 건 부모로서 당연히 해줘야 할 것들이고, 아직 안 해준 것들이 더 많다고 서운해했다니.
『논어』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다.
맹무백이 효에 대해서 묻자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부모는 오직 자식이 아플까 걱정한다 孟武伯 問孝 子曰 父母唯其疾之憂.”그게 부모의 심정이다. 하지만 자식들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이것도 해주었으면 하고, 저것도 사주었으면 하고, 이런 것도 신경써주길 바라고, 저런 것도 생각해주길 바란다. 아이는 아빠인 나에 대해 서운했던 것들을 그동안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그날 그런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면 아이의 속마음은 내게 전달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이후, 나는 더 바빠졌다. 내 달력에는 아이의 시험 날짜, 레슨 요일, 오디션과 콩쿠르 시간이 빼곡히 적혀 있다. 오늘도 아빠는 아이에게 묻는다.
“학교에서 재미있게 지냈니?”
♠ 가장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에 가족이라면 서로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꼭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도 가슴에 담아두는 말이 늘 있지요. 한 마디 말 때문에 오해를 하기도 합니다. 아이는 부모를 무시하는 말을 내뱉고, 부모는 아이의 마음에 상처가 되는 말을 하지요. 상처받은 관계를 다시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좀 걸립니다. 몸에 생긴 멍은 곧 없어지지만 마음에 생긴 멍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서로에게 말하지 못하는 것들이 늘어나면서 마음의 거리 또한 점점 더 벌어집니다. 가끔은 서운했던 점을 말하는 시간을 가져봅시다. 막상 말을 해버리고 나면 서운한 감정은 한순간에 허물어지기도 합니다. 부모에게, 형제에게 스스럼없이 서운했던 점을 이야기할 수 있는 아이는 어른이 되어서도 자기 마음속에 담을 쌓지 않고 건강하게 살아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