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와 대부 대모, 더 나아가 왕과 여왕까지, 대중음악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음악가들은 대부분 이런 묵직한 별명 하나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인간을 넘어 ‘신’의 영역을 탐하는 당돌한 존재들도 몇몇은 있다. 메탈 갓(Metal God),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도 그들 가운데 하나다.
생각해보면 재미있는 일이다. 엘비스 프레슬리는 왕인데(King of Rock n Roll) 주다스 프리스트는 신이라니. (심지어 이들은 팀 이름에서부터 신과 대치되는 어둠의 기운을 뿜어내고 있지 않은가!) 이 암흑의 군주들이 메탈의 신이라 불리게 된 것은 이들의 명반
< British Steel >에 수록된 「Metal god」이라는 노래 때문에도 그렇겠지만, 아마 이 음악계열(헤비메탈) 청취자들의 특성인 ‘밴드의 신화화(내지는 전설화)’가 그대로 별명에 반영된 탓도 있어 보인다. 대중음악의 어떤 장르들보다 클래식에 대한 절대적인 숭배가 관행처럼 이뤄지는 것이 헤비메탈이라는 장르 아니던가.
그 별명이 말해주듯, 주다스 프리스트는 헤비메탈 팬들은 물론 많은 뮤지션들에게도 무조건적인 경외를 받는 거대한 존재다. 대중음악사적 의의를 떠나 음악 자체로만 보더라도 넘어설 수 없는 절대적인 무엇(신)인 것이다. 일단 고막을 위협하는 악마적인 보컬부터 범접 불가의 영역이 아닌가. 헤비메탈을 위해 태어난 듯한 서슬 퍼런 목소리에, 초 저음부터 초 고음을 완벽하게 넘나드는 극한의 표현력이란! 보통 고음을 주 무기로 하는 록 보컬리스트들에게는 저음과 고음을 오르내리는 사이 중음이 비어버리는 현상을 자주 목격할 수 있지만, 이 밴드의 프론트맨 롭 핼포드(Rob Halford)에게 그런 것은 남의 이야기일 뿐이다. (의심스럽다면 「Ram it down」을 들어보라.)
1990년 발표한 「Painkiller」는 그의 보컬 능력이 120%가 담긴 명곡이었다. 동시에, 극한치를 모두 끌어내서인지 혹은 활동 당시 이미 마흔을 넘어섰기 때문인지, 천하의 핼포드 조차 라이브에서 유독 약한 모습을 보이는 곡이기도 하다. 그러니 다른 이들은 어떻겠는가. 「Painkiller」는 헤비메탈의 클래식 반열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함부로 커버할 수 없는 ‘그들만의 노래’가 되어버렸다. 물론 미국의 블랙메탈밴드 데스(Death)가 커버한 버전이 있지만, 그것은 주다스 프리스트가 왜 헤비메탈의 ‘끝판 왕’인가를 역설적으로 드러내는 역할밖에는 하지 못했다. 클래스의 차이는 어쩔 수가 없던 것이다.
왜 주다스 프리스트가 헤비메탈의 상징적인 이름으로 남아있는지는 보컬 뿐 아니라 밴드 편성에서도 나타난다. 헤비메탈의 가장 정석적인 편성으로 여겨지는 트윈기타 시스템이 바로 주다스 프리스트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이후 많은 밴드들이 그 형식미를 계승했기에 지금은 익숙한 포맷이 되었지만, 당시를 생각해본다면 헤비메탈의 정립이라고 할 만한 새로운 형식미의 구현이었다. 이들을 헤비메탈의 교과서라 칭하는 가장 큰 이유다.
주다스 프리스트는 또한, 이 금속성 장르의 특정 이미지 구현에도 혁혁한 공을 세운 바 있다. 징 박힌 가죽 재킷과 가죽바지, 그 위로 검은 부츠를 덧신은 모습은 여러 메탈 밴드들에게 의상 콘셉트에 대한 모티브를 제공해주었고, 결국 이것이 지금 우리가 떠올리는 메탈에 대한 대부분의 이미지를 만들어놓았으니 말이다. 배반의 사제들은 음악 뿐 아니라 패션의 영역에도 한 획을 그었다. (이렇게 말하고 다시 이들의 의상을 보니 그리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만 한 것도 아닌 것 같다.)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위엄 있게 등장하는 헤비메탈교(敎)의 교주에게 많은 음악팬들은 충성을 맹약했다. 과거에 딥 퍼플(Deep Purple)이냐, 레드 제플린(Led Zeppelin)이냐를 두고 많은 음악팬들이 설전을 벌였던 것처럼, 우리는 또 다시 주다스 프리스트인가, 아이언 메이든인가를 두고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설전은 물론이고, 누군가 노래방에서 아이언 메이든의 「Run to the hills」를 부르면 옆방에서는 주다스 프리스트의 「Between the hammer & the anvil」로 응수하는 식의 주고받기도 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모두 쓸데없는 소모전이었고 치기어린 추억이지만, 다수의 메탈 팬들에게는 한때의 즐거운 기억으로 남아있으리라.
그렇게 대단한 밴드, 많은 추억을 안겨준 밴드인 주다스 프리스트가 지금 진행 중인 18개월간의 월드투어를 마지막으로 해산을 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통탄스러운 일이다. 과거 우리네 세계를 지배했던 영웅들이 이제 하나 둘 우리의 곁을 떠나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시간이 흐르면 떨어지는 것이 세상의 이치라지만, 판테라(Pantera) 이후 근 이십년 째 굵직한 밴드를 만나지 못하고 있는 메탈신이기에 그 아쉬움은 각별하다.
남은 것은 함께 늙어가면서도 꿋꿋이 버티고 있는(그러나 언제 질지 모르는) 아이언 메이든(Iron Maiden)과, 과거의 영광으로 어떻게든 근근이 버틴다는 인상의 에이시디시(AC/DC) 정도일까. 없다. 이 메탈 신에는 남은 영웅들이 정말 너무나도 부족하다.
최근, 그동안 이들의 여정을 시디 한 장에 담아낸
< Single Cuts >가 발매되었다. 열아홉 곡 모두 롭 핼포드가 보컬을 맡았던 전성기 시절의 곡들이며, 싱글로 발표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던 노래들이다. 존 바에즈(Joan Baez)의 곡을 헤비메탈로 뒤바꾼 초기 명곡 「Diamonds and rust」, 정통 헤비메탈이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대표곡 「Breaking the law」, 미국시장 공략의 초석이 되었던 「Living after midnight」, 상업적 감각을 자랑한 「Turbo lover」, 그런지에 공습을 받기 직전 마지막 명작 「Painkiller」와 「Night crawler」 등을 수록, 밴드의 역사를 한 데 집대성했다.
그 중에서도「Before the dawn」은 이들의 디스코그래피에서 좀처럼 만날 수 없는 서정적인 발라드로, 한동안 국내 전파를 독점한 바 있어 비(非)메탈 청취자들에게도 추억으로 남아있는 곡이다. 항상 달리는 이들의 곡들 중 가장 이질적인 넘버라고 할 수도 있지만, 발라드를 좋아하는 국내 팬들의 정서에는 가장 부합할 수 있던 음악이라고나 할까. 만약 헤비메탈도 처음 접하고 주다스 프리스트도 처음 접하는 이들이라면 이 곡부터 들어보는 것이 순서에 부담이 없을 것이다.
주다스 프리스트의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음반이다. 한 장의 시디로 애정 어린 밴드를 잃은 아쉬움을 어찌 달랠 수 있으랴마는, 이마저도 없다면 또 얼마만큼의 허탈감을 감당해야 할까. 남아있는 다른 영웅들마저 차례로 떠난다면 그 상실감은 더욱 심해질 텐데 말이다.
글을 써놓고 보니 앞서 달았던 제목이 부끄럽다. 신이라 불리던 사내들이라고? 아니다. 적어도 헤비메탈에 추억을 갖고 있는 팬들에게, 주다스 프리스트라는 이름은 신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아닌 언제까지고 신이라 ‘불리는’ 사람들이다. 과거에도 그랬고, 은퇴를 앞둔 2011년에도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메탈 갓이라 칭송한다. 아마 은퇴 후 수십 년이 지난대도 똑같지 않을까. 모 광고의 카피처럼, 클래스는 영원한 것이니까.
< Single Cuts > 수록곡
1. Diamonds and rust (1977)
2. Better by you, better than me (1978)
3. Before the dawn (1978)
4. Take on the world (1979)
5. Evening star (1979)
6. Living after midnight (1980)
7. Breaking the law (1980)
8. United (1980)
9. Don't go (1981)
10. Hot rockin' (1981)
11. You've got another thing comin' (1982)
12. (Take these) Chains (1982)
13. Freewheel burning (1984)
14. Some heads are gonna roll (1984)
15. Turbo lover (1986)
16. Locked in (1986)
17. Painkiller (1990)
18. A touch of evil (1991)
19. Night crawler (1992)
글 / 여인협(lunarianih@naver.com)
제공: IZ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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