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폴 매카트니가 세 번째 결혼을 해서 화제를 모으고 있습니다. 비틀즈가 해산한지 4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비틀즈와 관련된 모든 일은 전세계인들의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비틀즈가 이 세상에 쌓아놓은 음악 유적이 대단하다는 반증이겠죠. 오늘은 십대 지향적인 그룹에서 벗어나, 전세계를 관통하는 그룹으로 거듭나게 만든 비틀즈의 1965년 명반 < Rubber Soul >을 소개합니다.
비틀스(Beatles) < Rubber Soul >(1965)
록 평론가 그렉 쇼(Greg Shaw)는 비틀스 음악의 우수성을 논하면서 그 원천으로 기존의 모든 음악을 수용해 자기 스타일화한 ‘스폰지 같은 흡수력’을 지적했다. 그는 비틀스가 버디 할리, 척 베리, 엘비스 프레슬리의 50년대 초기 로큰롤뿐만 아니라 60년대에 서구 사회에 존재했던 모타운 레코드사의 리듬 앤드 블루스, 서프 음악, 필 스펙터의 월 오브 사운드 그리고 라틴 음악, 유럽 음악을 포괄하여 독창적인 ‘비틀 사운드’를 창조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그렉 쇼가 하나 빠트린 것이 하나 있다. 64년 미국정복으로 천하통일을 이룩한 비틀스는 모든 것을 안다고 자부했으나 막상 미국에 상륙해보니 전혀 자신들이 모르고 있던 음악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바로 밥 딜런의 포크 음악이었다.
비틀스는 이런 깊이 있는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에 일종의 경외를 느꼈다. 그리고 이 음악이 미국 청년들을 사로잡고 있는 것에 또 놀랐다. 특히 자의식(自意識)이 강했던 존 레논에게 메시지가 두드러진 포크는 일대 충격을 안겨주었다. 딜런이 비틀스에 영향받아 록의 문법을 받아들였듯이 이번에는 비틀스가 스스로 딜런의 지구촌에 뒤늦게 빨려 들어가게 된 것이다 (대중음악에는 이 같은 교차 영향의 사례가 적지 않다).
이전까지 비틀스의 음악은 로큰롤의 형식에 충실하긴 했지만 가사는 남녀간 애정을 소재로 한 ‘소년이 소녀를 만나다’식의 시시콜콜한 얘기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비틀스는 밥 딜런의 충격 이후 10대 팬들에게 거리감을 줄지 모를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뭔가 무게 있는 노랫말의 음악을 하고자 했다. 사랑을 노래하더라도 드러내놓는 내용보다 애매모호하고 감추어진 측면을 묘사하고 싶었다. 그들은 변화를 원했다.
이런 배경 속에서 비틀스의 초기 걸작
< 러버 소울 >이 탄생했다. 폴 매카트니는 제목에 별다른 뜻이 없다고 했지만 ‘고무 정신’이라는 의미부터가 이전의 음반들과는 달랐다. 수록곡의 가사를 초기작과 비교해보면 금방 차이가 확인된다.
난 무언가 얘기할 거야. 너도 이해하겠지. 그럼 그것을 말할 테야. 난 네 손을 잡고싶어. -
「네 손을 잡고싶어」(I want to hold your hand)지나간 사람들과 일에 애정을 잃지 않고 난 가끔 멈추어 그들을 생각할 거야. 내 인생의 길목에서 난 너희를 더욱 사랑할 거야. -
「내 인생의 길목에서」(In my life) 앞 곡은 64년 2월 미국 데뷔 곡이고 뒷 곡은 65년 12월에 나온 이 앨범의 수록 곡이다. 평론가 그레일 마커스의 표현대로
< 러버 소울 >에 나타난 사랑은 초기 곡에서는 제거되었던 ‘살아 있는 사랑’이었다. 거친 에너지는 표면 아래로 숨었다. 가사는 다의(多意)적이어서 그 의미를 자꾸 되새기게끔 하고 있다.
비틀스는 이 앨범에서 어떠한 싱글도 발표하지 않았다. 팬들에게 앨범 전체를 하나의 음악으로 받아들여 달라는 요구였다. 사실 이 작품은 처음부터 상업적 싱글의 개념을 거부하고 온전한 하나의 앨범을 만들겠다는 존과 폴의 구상에 따라 구체화되었다. 이 때문에
< 러버 소울 >은 비틀스 네 사람의 그룹 결속력이 최고로 발휘된 음반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내 인생의 길목에서」와 함께 존 레논이 쓴 곡 「여자」(Girl)는 이 앨범의 백미로 본인은 사랑의 가변성에 대한 사려 깊은 반성을 담았다.
그녀는 젊었을 때 명성이 쾌락을 가져온다는 얘기를 들었을까. 남자가 여가 시간을 갖기 위해 등이 부숴지게 일해야 한다고 할 때 그 말을 이해했을까. 그가 죽었을 때도 여전히 그 얘길 믿을까
이 곡에서 여자가 종교일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존 레논의 종교를 보는 시각이 담겨진 노래라는 것이다. ‘여자=종교’로 대입하여 가사를 다시 음미할 경우 내용은 꽤나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만약 그렇다면 종교란 괴로움의 바다에서 우리를 건져주지만 그 효과는 순간적이며 인격의 파탄과 황폐화라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해석이 도출된다.
이 무렵 존은 기독교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이 음반이 발표되고 얼마 후 그는 런던「이브닝 스탠더드」지 모린 클리브기자와의 인터뷰에서
“기독교는 사라질 것이다. 그것은 종적을 감추고 움츠러들 것이다. 더 이상 논쟁할 필요조차 없다. 우리는 지금 예수보다 더 인기가 있다(We are more popular than Jesus)”라는 충격 발언을 터트려 일대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폴 매카트니는 여전히 선율에 관한 한 발군이었다. 「난 방금 얼굴을 봤지」(I've just seen a face)나 이듬해 그래미상에서 ‘올해의 곡’ 부문을 수상한 「미셸」(Michelle)을 들으면 대부분은 그의 멜로디 제조 능력에 즉시 포박되고 만다. 경쾌하면서도 매력이 넘치는 「난 널 뚫어지게 보고 있지」(I'm looking through you) 「넌 ? 보지 못할 거야」(You won't see me)도 역시 폴이 쓴 곡들이다. 뒷 곡은 74년 캐나다 여가수 앤 머레이가 다시 불러 히트시켰다.
「스스로 생각해」(Think for yourself)는 레논 매카트니 콤비의 벽을 뚫고 이 앨범에서 조지 해리슨이 작곡해 부른 유일한 곡이다. CD에 있는 「어떻게 된거지」(What goes on)는 링고가 노래하고 있지만 곡은 존과 폴이 썼다.
조지 해리슨은 이 앨범의 또 하나 명곡 「노르웨이의 숲」(Norwegian wood)에서 기타와 비슷한 인도의 전통 악기 시타(sitar)를 도입하여 연주했다. 다소 실험적인 이 곡은 시타 연주에 담긴 탈(脫) 서구 이데올로기뿐 아니라 종전과는 판이한, 약간은 음산하며 전위적인 분위기로 많은 록 뮤지션들에게 영향을 미쳤다. 한국에까지도 현상을 일으킨 일본 무라카미 하루끼의 소설이 바로 이 곡의 제목을 빌리고 있다.
이 앨범은 비틀스 4인의 특별한 결합을 통한 ‘우수 곡들의 모음집’이다. 싱글도 없으면서 다수의 애청곡이 나온 것이 좋은 곡이 많기 때문이다. 평론가나 아티스트 가운데 일부가 예를 들면 빌리 조엘이 딴 것을 제쳐두고 이 앨범을 최고의 음반으로 꼽는 이유다.
이 앨범을 계기로 비틀스는 틴에이저 지향의 그룹에서 탈피하여 전무후무한 ‘전 세대 관통’의 그룹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이러한 약진은 곧바로 66년 또 하나의 명반
< Revolver >를 주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후대는 물론 출반 당시에도 사람들에게 엄청난 놀라움을 준 앨범이다. 비틀스의 라이벌 비치 보이스와 롤링 스톤스도 놀랐다. 그들은 이 앨범을 접하고 쇼크를 받아 이 작품을 넘어서는 걸작을 만들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되었다. 비틀스는 수요자들에게만 충격을 준 게 아니라 동료 음악인들에게도 충격을 주었다.
글 / 임진모(jjinmoo@izm.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