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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말해도 그녀는 여전히 그를 사랑해줄까?

개봉 예정작 <릴라 릴라>와 함께 살펴본 거짓말에 관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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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보고 싶은 거짓과 진심 사이, 인간은 누구나 5분에 한 번씩 거짓말을 한다? -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단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라는 말도 있다. 여기서 고래에게 하는 칭찬이 진심이냐, 춤추게 하기 위한 거짓말이냐는 다음 문제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단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 라는 말도 있다. 여기서 고래에게 하는 칭찬이 진심이냐, 춤추게 하기 위한 거짓말이냐는 다음 문제다. 침 못 뱉을 웃는 얼굴이 진심이냐, 거짓이냐 역시 다음 문제다. 결국 나의 웃음과 상대방을 웃게 만드는 기술 사이에 필요한 칭찬은 어느 정도의 허풍과 때로는 심각한 거짓말을 포함한다. 그러한 거짓말이 상대방을 기쁘게 만드는 ‘성의’라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하루 종일 자신의 감정을 속이고, 타인을 기쁘게 하고, 결국은 나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상황을 만들기 위한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새롭게 헤어스타일을 바꾼 동료에게, 우쭐거리며 새 가방을 들고 선 친구에게, 자식 자랑질에 여념이 없는 직장 상사에게 우리는 예쁘지 않은 머리와, 맘에 들지 않는 가방과 예쁜 구석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아이를 칭찬해야 한다. 실제로 외국의 한 연구결과는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는데, 사람은 깨어있는 동안 4.8분에 한 번씩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나는 거짓을 모르는 정직한 사람이라고 자신하는 사람이라면, 종일 감사하지도 않은 사람에게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시작하는 전화와 관심 없는 동료에게 전한 안부 인사를 떠올려보자.


개봉을 앞둔 <릴라 릴라>는 거짓말이 촉발시키는 소동을 다룬 유쾌한 로맨틱 코미디인데, 유난히 영화의 제목이나 소재로 ‘거짓말’을 다룬 영화가 많다는 것은 이미 거짓말이 우리의 삶 속에 늘 함께 하는 당연한 일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럴 듯하게 꾸미지만 모두가 허구인 영화는 ‘믿음’을 전제로 한 하나의 커다란 거짓말인 셈이다. 그렇다면 거짓말의 전제 조건은 무엇일까? 우선 거짓말이 유효하려면 “상대방이 거짓말이라는 것을 몰라야” 한다는 것, 즉 상대방의 전적인 신뢰가 필요하다. <릴라 릴라>에서 거짓말은 사랑을 얻기 위한 작은 바람에서 시작된다. 베스트셀러 작가 마르틴 주터의 동명소설을 영화화한 <릴라 릴라>는 상당히 대중적인 독일영화이다.

존재감 없는 웨이터인 다비드는 우연히 구입한 서랍장에서 출간되지 않은 소설을 발견하게 된다. 그가 짝사랑하는 여자 마리는 문학을 사랑하는 여자였기에, 다비드는 자기가 쓴 소설이라고 그녀에게 소설을 보여준다. 마리는 그 책에 푹 빠지고 동시에 관심 없었던 다비드까지 사랑하게 된다. 설상가상 소설을 출간하라며 출판사에 보내게 되고, 급기야 출간된 소설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한 여자의 관심을 끌기 위해 시작한 거짓말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하면서, 자기가 쓰지도 않은 소설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다비드의 생활은 늘 살얼음판이다. 거짓말을 유지하기 위한 다비드의 거짓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는데, 설상가상 소설의 원작자라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다비드는 소동의 한복판에서 우왕좌왕한다. 다비드의 거짓말을 아는 사람은 다비드와 관객밖에 없다는 규칙에 소설의 원작자라는 사람이 다비드의 주위를 맴돌기 시작하면서 규칙은 깨어지고, 영화는 점점 더 흥미로운 파국을 향해 치닫는다.

영화는 거짓말을 중심으로 전개되지만, 영화가 얘기하는 것은 결국 ‘진실한 사랑’이다. 다비드가 사실은 자신이 소설가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래도 마리는 그를 여전히 사랑해줄까? <릴라 릴라>의 근본적인 질문은 여기에 있다. 마리의 사랑을 얻기 위해 다비드는 거짓말을 했고, 거짓말이 사라진 이후의 다비드는 마리에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 마리의 사랑은 진실한가, 여러 가지 질문들이 <릴라 릴라>에는 담겨 있다. <굿바이 레닌>에서도 거짓말로 한바탕 소동을 치렀던 다니엘 브륄과 <포 미니츠>의 한나 헤르츠스프룽는 지나치게 심각하지 않은 로맨틱한 거짓말 <릴라 릴라>를 통해 귀여운 커플연기를 선보인다.


거짓말과 진실, 진심과 흑심 사이

<유주얼 서스펙트>

패트리샤 스미스의 세계적인 소설 <재능있는 리플리씨>는 알랭 들롱 주연의 <태양은 가득히>와 맷 데이먼의 <리플리>로 2번이나 영화로 만들어졌다. 소설과 영화 속 리플리는 신분 상승 욕구에 사로잡혀 거짓말을 일삼다 결국은 자기 자신마저 속이고 환상 속에서 살게 된다. 이런 유형의 인격 장애를 리플리 증후군이라고 부르게 될 만큼 소설과 영화의 영향력은 아주 컸다. <식스 센스> 이전 가장 충격적인 반전이라 불리던 <유주얼 서스펙트>의 반전은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증언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많은 스릴러, 호러 영화의 반전과 재미를 위해 관객을 속이기 위해 감독과 주인공은 ‘거짓말’을 한다. <범죄의 재구성>이나 <인사동 스캔들> 같은 영화들 역시 엎치락뒤치락하는 재미를 위해 관객과의 두뇌싸움을 벌인다. 스티븐 소더버그 감독의 <오션스 일레븐> 등, 대부분의 범죄 스릴러 영화 속 거짓말은 자신의 이익 혹은 복수를 위한 이기적인 거짓말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인생은 아름다워>

<굿바이 레닌>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달콤하고 진실한’ 거짓말도 있다. 로베르토 베니니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영화 <인생은 아름다워>는 유태인 말살 정책에 따라 강제로 수용소에 끌려간 가족의 이야기다. 주인공 귀도는 수용소에 도착한 순간부터, 아들 조슈아에게 자신들이 처한 현실이 실은 하나의 신나는 놀이이자 게임이라고 속인다. 짐 캐리 주연의 <라이어 라이어>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질 변호사 플레처가 거짓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서 벌어지는 소동을 다룬 영화였다. 지극히 미국적인 유머 속에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낯간지러운 영화이긴 하지만, 거짓말쟁이에서 거짓말을 전혀 할 수 없는 사람이 된 순간의 짐 캐리의 연기는 믿어주고 싶게 진실하다.

<릴라 릴라>의 주인공 다니엘 브륄이 이끌어가는 감동적인 거짓말 <굿바이 레닌>도 추천할만한 영화다. 어머니의 건강을 위해 통일된 사실을 숨기기 위한 아들의 처절하고 황당한 거짓말은 끝을 모르는 소동을 벌이는데, 그 결과는 아주 감동적이다. 믿어주고 싶고, 믿어보고 싶은 감동적인 거짓말 사이에 정말 중요한 것은 거짓과 진실이 아니라 그 거짓말에 담긴 ‘진심’임을 설파하는 감동적인 드라마이다.

<동안미녀>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

얼마 전 여주인공의 거짓말이 중심이었던 드라마 세 편이 공교롭게도 비슷한 시기에 방송된 적이 있다. 윤은혜의 <내게 거짓말을 해봐>, 이다해의 <미스 리플리>, 장나라의 <동안미녀>다.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가장 호응을 얻은 것은 <동안미녀>였다. 미녀들의 거짓말이 낳은 소동극의 가운데 대중들이 호감을 보이는 순간은 주인공이 거짓말을 하게 된 계기와 그 절실함에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릴라 릴라>에서는 남자 주인공의 거짓말로 전개되지만, 다수의 로맨틱 코미디는 여주인공의 거짓말로 소동에 휩싸이는데, 여주인공의 거짓말이 비난받지 않고 오히려 동조받기 위해서는 주인공 삶의 애절함과 사랑과 사람에 대한 진심이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외모와 내면의 아름다움을 얘기하는 <고양이와 개에 관한 진실>은 즐거운 로맨틱 코미디 영화였다. 목소리와 내면이 아름다운 여주인공은 전화통화로 알게 된 남자와 사랑에 빠지지만, 만나자는 연락에 늘씬하고 아름다운 친구를 대신 내보낸다. 외모에 자신이 없는 여자는 계속 숨지만, 결국 진심은 사랑으로 이어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아름답지만 머리는 다소 멍청해 보이는 우마 서먼 역시 악녀가 아니라 아름다운 내면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제니퍼 로페즈의 <러브 인 맨하탄>은 하우스메이드인 여주인공이 손님으로 오인 받으면서 벌어지는 소동극인데, 변형된 신데렐라 스토리이다. 요즘은 좀 뜸해졌지만 크리스마스 시즌만 되면 방영되는 산드라 블록의 <당신이 잠든 사이에>는 거짓말로 시작된 인연이 또 하나의 가족과 사랑으로 이어지는 소동극이었다.


이외에도 ‘거짓말’이라는 키워드만 넣으면 거짓말이 제목에 들어가는 영화부터, 거짓말이 소재인 영화까지 사랑만큼이나 흔한 소재가 거짓말인 것을 알 수 있다. 결국 거짓말은 ‘진실과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인데, 대체 진실이라는 것이 존재하느냐에 대한 철학적 사유에서부터, 거짓말을 할 수 밖에 없는 주인공이 처한 현실에 얼마나 깊이 동의할 수 있냐에 따라 거짓말을 소재로 한 영화는 코미디, 스릴러, 그리고 심각한 드라마로 나눌 수 있다.

애초에 서사 구조를 가진 소설, 드라마,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긴 하지만 현실 그 자체가 아니라는 점에서 잘 꾸며진 하나의 허구, 즉 거짓말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믿어야 하는 것은 이야기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거짓말 속에 담긴 ‘진심’이라 하겠다.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충격적인 현실을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에게 진실보다는 믿어보고 싶은 ‘거짓말’이 보다 위안이 된다는 점에서 어쩌면 ‘진실’이라는 것이 절대적인 가치는 아닐 수 있다. 수많은 영화들이 주목하는 것은 거짓과 진실 그 자체가 아니라, 거짓과 진실을 오가는 가운데 한 가지 변하지 않았던 주인공의 ‘진심’ 그 자체이다. 오랜만에 만나는 따뜻한 로맨틱 코미디 <릴라 릴라>에는 그 진심이 담겨있다. 당연히 억지스럽지 않고 충분히 공감 가능한 엔딩을 기대 해봐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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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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