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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나>와 함께 본 여성중심의 복수영화들

용서는 없다. 차가운 복수는 나의 것 남자보다 더 치밀하고 잔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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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는 고대 셰익스피어의 극에서도 나타나듯 주인공을 움직이게 하고,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아주 매혹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복수의 사전적 의미는 ‘원수를 갚음’이다. 풀어서 설명하자면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 있으며, 그 원한을 떨치기 위해 가해자를 응징하고자 하는 것이 복수일 것이다. ‘용서가 최고의 복수’라는 격언처럼 종교와 선조들은 용서를 말하고, 인내를 권한다. 하지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도 있다.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잔다, 라는 소박한 믿음도 있지만, 그건 분노와 기억을 염두에 두지 않은 말이다. 분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게 사람이다. 게다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어이없이 잃어버린 사람들에게 ‘용서’를 권하는 것은 잔인한 일이다.

가슴 속 한이 맺힌 사람들에게 용서란, 복수의 의식이 끝난 이후에나 가능하지 않을까? 복수는 또 다른 복수를 낳는다고 하지만, 우선은 나의 복수가 우선인 것이 인지상정이다. 또한 복수를 하는 사람은 현재는 가해자일 수 있지만, 과거에는 명백한 피해자였다. 이런 관점에서 ‘복수’는 고대 셰익스피어의 극에서도 나타나듯 주인공을 움직이게 하고, 관객의 마음을 흔들어놓을 수 있는 아주 매혹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여러 가지 법과 사회적 제도, 주위 사람들의 눈 때문에 꾹꾹 누르고 참아야 하는 현실을 벗어나 영화에서 대신 잔인하고도 후련하게 칼과 총을 휘둘러주는 주인공을 통해 대리만족을 경험하게 하는 효과도 있다.


새로운 여전사의 탄생, <콜롬비아나>


복수를 소재로 다룬 영화는 흔히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사회적 약자였던 피해자가 잔인한 복수의 화신이 될 수밖에 없는 과정과 그 한을 담아내면서 사회문제를 드러내는 심각한 드라마이거나, 복수가 주는 은밀하고 짜릿한 쾌감을 주기 위해 보다 잔인하고 보다 경쾌한 액션물의 장르를 차용하거나……. 9월 개봉을 앞둔 <콜롬비아나>는 건드리면 부서질 것만 같은 여린 여자가 잔인한 여전사가 될 수밖에 없는 과정과 그 복수극을 그려낸다. 여리고 아름답지만 잔인한 킬러의 모습은 얼핏 뤽 베송의 <니키타>를 떠올리게 만드는데, 영화는 지나치게 심각한 드라마와 경쾌하고 호탕한 복수극 사이를 유연하게 오가면서 자칫 단순한 히어로 영화처럼 가벼워지는 순간을 경계한다. <아바타>의 주인공 조 샐다나가 주연을 맡고 뤽 베송이 제작, <테이큰>의 작가 로버트 마크 케이븐이 각본을 담당하는 등 제작 초기부터 큰 화제를 낳았다. 유연하고 섬세하면서도 강인한 조 샐다나의 모습은 21세기 형 새로운 여전사의 탄생이라며 극찬 받은 바 있다.


영화는 콜롬비아 거대 갱조직에 의해 살해당한 부모님을 대신해 복수를 꿈꾸며 킬러로 성장한 카탈리아의 이야기를 그린다. 복수할 대상 앞에서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 킬러지만, 적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들켜서는 안 되기 때문에 세상에 살아있다는 흔적을 남겨서는 안 되는 외로운 여자다. 철저한 복수극 자체에 집중하기 위해 감독은 에피소드를 배제하고 주인공 카탈리아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꾸려간다. 영화의 편집은 경쾌하지만, 카메라는 줄곧 카탈리아라는 주인공의 외로움과 분노를 끈질기게 따라간다.

카탈리아는 복수를 위해 오래 기다린 것처럼 서두르지 않는다. 카탈리아는 뛰어난 격투실력과 비현실적인 힘으로 자신보다 몇 배는 거대한 남자들을 쓰러뜨리는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몸과 머리를 동시에 쓰면서, 나비처럼 가벼운 몸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적들을 제압한다. 제목 <콜롬비아나>는 원래 콜롬비아의 여성들을 일컫는 단어다. 또한, 화끈한 성격을 가진 여자를 뜻하는 말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이는 영화 <콜롬비아나>의 여주인공 ‘카탈리아’의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하고 있다. 올 추석시즌 유일한 액션 블록버스터가 될 <콜롬비아나>가 3년 전 <테이큰>의 흥행기록을 계속 이어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


모성의 이름으로 처단하는 한국형 여성복수영화들

<킬 빌1>

여성 복수극이라고 하면 타란티노의 <킬 빌> 시리즈가 떠오른다. 잔혹한 순간에도 우아함을 잃지 않는 이 잔인하면서도 매혹적인 복수극은 사무라이 영화와 일본영화의 장면들을 오마쥬하면서 하나의 트렌드가 되었다. 복수의 근거는 충분하지만, 복수에 서린 한 자체에 집중한다기 보다는 복수의 방법과 복수를 위해 피 터지는 싸움을 해야 하는 여성의 몸이 망가져가는 과정에 집중한다고 할 수 있다. 범죄에 무방비로 노출되어 있고, 사회구조적으로 피해자일 수밖에 없는 한국여성에게 있어서, 복수는 권장사항이 아니라, 금기시되는 것이었기에 한국 영화에서 여성의 복수는 죽어 귀신이 되어서야 가능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한국영화 속 여성의 복수는 조금 더 사회적인 문제와 여성의 한에 조금 더 깊이 닿아있다고 할 수 있다.

<에미>

한국형 여성 복수영화의 원형은 1985년 박철수 감독의 <에미>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현존 최고의 드라마 작가인 김수현이 대본을 쓰고, 윤여정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잔혹 복수극이다. 인신매매 당한 딸을 극적으로 구출했지만, 당시의 충격으로 자살에 이르자 어머니는 잔인한 복수를 준비한다. 자신의 티 없이 맑은 딸을 유린하고 죽음으로 몰아간 범죄자들을 찾아서 하나하나 비정하게 살해한다.

어머니는 딸의 복수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스릴러의 장르 속에 어머니의 모성과 인신매매라는 당시 최고의 사회문제를 녹여낸 <에미>는 지금 봐도 충격적일 정도로 잔인하고 짜임새 있다. 어머니의 이미지를 망친다는 이유로 원래 제목인 ‘어미’를 사용하지 못하고 ‘에미’라고 바뀐 건 시대착오적인 에피소드로 기억된다. <물 위를 걷는 여자>, <봉자>, <녹색의자>등 섬세한 여성중심의 영화와 <301, 302>. <산부인과> 등 저예산 독립영화 등 섬세한 연출력과 다양한 실험을 해 온 박철수 감독의 최근작이 없다는 것이 아쉬운 관객이라면, 올해 제작 중인 스릴러 영화 <익스트림>을 기대해봄직 하다.

<친절한 금자씨>

<올드 보이>로 깐느 영화제 수상 이후 복수 3부작의 완결 편으로 제작된 박찬욱 감독의 <친절한 금자씨>는 타란티노 식의 키치적 감수성과 인공적 공간이 주는 판타지적인 볼거리가 넘쳐나는 영화였다. 박찬욱 감독은 복수의 주체에 대해서 얘기한다. 금자는 복수를 위해 치밀한 계산을 하지만, 복수의 대상을 감금하고 자식들을 잃은 부모들에게 복수의 행위를 양도한다. 이 지점에서 여성의 복수극이라는 공통분모 때문에 자주 비교되는 <킬 빌>과는 궤를 달리한다. 무조건 찾아가 죽이고 보는 남성적인 복수와 달리 금자는 아주 천천히 음식을 만들 듯이 정성을 다해 복수를 준비한다.

죽은 아이의 부모를 찾아가 용서를 구하며 손가락도 잘라야 하고, 취직도 해야 하고, 그 사이 케이크도 만들고, 호주까지 날아가 입양된 딸까지 만나야 한다. 게다가 자신을 예쁘게 치장하고, 권총의 장식까지도 직접 디자인을 하면서 스타일리시한 여전사의 이미지로 변신한다. 그리고 13년 동안 준비한 복수는 직접적인 피해자들에게 양보한다. 참으로 ‘친절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박찬욱 감독은 앞선 두 작품의 주연배우들을 카메오로 곳곳에 배치하면서 관객들에게 <복수는 나의 것>과 <올드보이>를 계속 환기시킨다. 그리고 여성의 복수는 남성의 복수와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앞선 영화에서 복수심에 허덕거리다 끝내 자멸하고 마는 남자들과 달리 자신의 죄가 자신의 영혼에 먹칠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속죄의 과정을 겪는 여성의 모습을 통해 감독은 아름다운 복수란 어떤 것인지, 진정한 속죄란 어떤 것인지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세상에는 착한 살인과 ?쁜 살인, 어쩔 수 없는 살인이 있다고 가르쳐 주는 <복수는 나의 것>처럼 세상에는 착한 복수도 있다고 설파하는 것이다.

<오로라공주>

<고백>

2005년 방은진 감독의 <오로라 공주>는 자식을 잃은 모성의 피눈물이 영화의 중심이다. 6살짜리 딸이 성폭행을 당한 뒤 살해되어 쓰레기 매립장에 버려진 사건 이후 펼쳐지는 초강 복수극이다. 딸아이를 죽음으로 몰고 간 것은 어른들은 순간적인 이기심이었다. 누구 하나 따뜻한 어른의 마음으로 아이를 대하지 않았다. 연쇄살인의 대상은 마땅히 죽어야 할 대상이 아닐 수도 있다. 그저 그들은 무심하고 무신경했을 뿐이다. 하지만, 방은진 감독은 심각한 사회적 함의를 영화에 담아내면서 혼자 아이를 키우며 일하는 싱글 마더가 처한 곤궁 그리고 엄마가 일하는 사이 아이가 부딪쳐야 하는 일상의 위험들. 싱글 마더가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사회적 공공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 돌보아줄 친지도 돈도 없는 모녀의 위태로운 일상을 담아내면서, 정순정의 처지를 안타까워한다.

방은진 감독은 이 영화를 통해 잔인하면서도 슬픈 모성과 미래의 목사를 꿈꾸는 형사 아버지의 허약과 무책임을 대비시키면서 실패한 가부장을 비판한다. 자식을 잃은 어미이기에 가능한 잔혹한 복수는 통쾌하게 끝날 수가 없다. 이미 자식을 가슴에 묻은 어미에게 행복한 미래는 없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들의 복수극은 어떤 법적인 옹호나 변호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그 결말은 꽤나 쓸쓸한 것이다. 이외에도 여성의 복수를 다룬 영화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성공적인 한국형 스릴러 <세븐 데이즈>의 사건의 이면에는 딸의 복수를 감행하는 모성이 숨어있었고, 큰 화제를 낳진 못했지만 왕따 문제를 전면에 내세웠던 <6월의 일기> 역시 아들을 잃은 어미의 복수와 자해를 담고 있다.

나카시마 테츠야 감독의 일본영화 <고백> 역시 자식을 잃은 한 선생의 치밀한 복수극을 담아낸다. 뱃속 아이를 잃은 하녀의 마지막 복수, 임상수 감독의 <하녀>는 사회적 약자인 여성의 복수 자체가 얼마나 허무하고 힘이 없는지를 보여준다. 여성의 한이 얼마나 깊고 절망적인지는 강우석 감독의 <이끼>에서 드러난다. 영화의 마지막 반전을 보면, 그 치밀하고 계획된 복수의 주체가 누구인지 알 수 있다.

<밀양>

상처 입은 개인에게 사회적 함의를 담은, 용서와 인내를 강요하는 것은 더욱 잔인한 일이다. <밀양>의 여주인공은 아들을 잃은 먹먹하고 끝을 알 수 없는 슬픔을 종교로 달래다가 살인자를 ‘용서’하기 위해 그를 찾는다. 살인자는 뻔뻔스럽게 자기는 이미 하나님께 죄 사함 받았다고 말한다. 그녀는 순간 신을 거부하고 자멸의 길에 빠져들게 된다. 용서를 해야 할 주체인 자신이 용서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용서받을 수가 있냐는 그녀의 절규는 절절한 공감과 울림이 있다. 복수해야 할 대상은 오히려 감옥이라는 곳에서 보호받고, 이미 버림받은 그녀의 분노와 한은 표출되지 못하고 안으로 쌓여가기만 한다.

사회적 약자가 점점 더 약해질 수밖에 없는 이 사회적 모순의 고리가 끊어지지 않는다면 그들의 원한도 해소될 일은 없을 것이다. 대리만족이라는 입장에서 보면 복수영화는 꽤나 유용한 하나의 장르영화로 쓰일 수 있다. 복수영화여! 여전히 억울한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해 후련하게 복수의 칼날을 휘둘러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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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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