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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에게 헌신하는 영어 교사가 사이코패스?

소설이 묘사하는 연쇄살인범, 그들은 어떤 존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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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중에서 가장 중하게 다루는 것은 살인이다. 인간이 행하는 많은 죄악 중에서,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가장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흉악한 범죄인 살인을 저지르는 것일까? 보통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조사하는 것은 돈과 이성 문제이다. 즉 돈과 질투 혹은 색욕에 눈이 멀어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눈이 멀어’라는 점이다.

범죄 중에서 가장 중하게 다루는 것은 살인이다. 인간이 행하는 많은 죄악 중에서,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가장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들이, 어떤 이유로 흉악한 범죄인 살인을 저지르는 것일까? 보통 살인사건이 벌어지면 가장 먼저 조사하는 것은 돈과 이성 문제이다. 즉 돈과 질투 혹은 색욕에 눈이 멀어 살인을 저지르는 경우가 태반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눈이 멀어’라는 점이다. 대개의 경우는 돈 문제에 얽히거나 이성 관계에 휘둘려도 살인을 하는 지경까지는 이르지 않는다. 하지만 어떤 순간, 어떤 계기로 눈이 멀면, 다른 말로 하자면 광기에 휘말리는 순간 순식간에 범죄를 저지르고 만다. 이성적인 논리와 해결보다는, 뭔가에 휩쓸리듯 살인이라는 행위로 모든 것을 해결하고픈 마음에 사로잡히는 것이다.


죄는 미워하되 인간은 미워하지 말라, 는 말은 그런 연유에서 나온 것이다. 누구든 광기에 휘말리면 살인을 할 수 있다. 성장 과정에서 끔찍한 트라우마를 갖고 있었다거나, 지속적인 폭력과 억압에 시달리다가 복수를 했다거나, 정신이상 같은 경우가 정상참작을 받는 이유도 그것이다. 우리 누구나 범죄자가 될 가능성은 있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어도, 궁지에 궁지로 몰리다 보면 한순간 미쳐버릴 수도 있다. 그것이 보편적인 상식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런 선입견이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많아졌다. 흔히 말하는 연쇄 살인범이 그렇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면 보통은 피해자 주변을 탐문하면서 용의자를 찾아간다. 그가 살인을 당했던 이유가 무엇인지를 캐고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연쇄 살인범은 피해자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 주변을 아무리 캐봐야, 사건 당일의 현장 목격 말고는 단서를 찾기가 힘들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프로파일링이다. 피해자들의 유사성, 연관성 등을 통해서 범인의 형상을 추정해나가는 기법.

그런데 막상 연쇄 살인범들을 잡고 보니, 강박에 사로잡히거나 정신적인 문제로 연쇄살인을 하 경우도 있긴 하지만 많은 경우가 사이코패스였다. 오로지 자신의 이익이나 즐거움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고, 희생시키는 존재들. 그렇다면 왜 사이코패스들은 연쇄살인을 저지르곤 하는 것일까? 사이코패스가 흔히 연쇄살인범이 되는 이유에 대해, 기시 유스케가 쓴 『악의 교전』의 주인공 하스미는 이렇게 말한다.

살다 보면 누구나 여러 가지 문제에 직면하잖아? 문제가 있다면 해결해야 하지. 나는 너희들과 비교해서 그런 순간에 선택의 폭이 훨씬 넓은 거야. 가령 살인이 가장 명쾌한 해결방법임을 알아도 보통 사람은 주저하지…그러나 나는 달라. X-sports 애호가들처럼 할 수 있다는 확신만 생긴다면 끝까지 해내거든.

물론 사이코패스 중에도 단지 즐기기 위해 살인을 하는 경우도 있다. 드라마로도 큰 인기를 끈 제프 린제이의 『음흉하게 꿈꾸는 덱스터』의 주인공 덱스터의 본성도 그렇다. 어둠 속의 충동을 견딜 수 없을 때, 덱스터는 범죄자 사냥을 나간다. 다만 무고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대신에, 범죄자가 분명하지만 비열하게 법망을 피해나간 이들을 찾아 죽인다. 덱스터는 대단히 잘 교육된, 자신의 충동을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끌어가는 사이코패스다. 그러나 사이코패스라고 해서 반드시 살인의 충동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들에게는 살인이 너무나 쉬운, 그냥 버스를 탈까, 지하철을 탈까 정도의 선택지에 불과한 행동일 따름이다.

우리가 흔히 사이코패스라고 할 때는, 미국 범죄 드라마의 연쇄살인범들만을 떠올리지만 사이코패스 성향을 가진 이들은 우리 주변에도 무수하게 많다. 오죽하면 사회에서 큰 성공을 거두는 사람들 일부는 의심의 여지없는 사이코패스라는 말도 있겠는가. 타인을 짓밟고, 약자에 대한 어떤 연민과 동정도 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챙겨온 이들. 그들에게 타인에 대한 공감의 능력이 없는 것은 분명하다.

기시 유스케는 1997년 『검은 집』을 발표하면서 이미 사이코패스의 문제를 제기했다. 『검은 집』을 통해 기시 유스케는 사이코패스가 인간과 다른 존재라고 말한다. 인간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지만 사고 자체가 다른 포식자. 그들은 인간을 양식으로, 자신의 이익을 위한 재료로 쓸 뿐이다. 사이코패스를 인간과 다른 존재로 보는 것에 동의하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이를테면 한국에서 영화로 각색된 『검은 집』은 죄가 밉지 인간이 밉냐, 는 논리를 그대로 사이코패스에게 적용했다. 하지만 그것은 사이코패스에 대한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사이코패스를 인간과 동일하게 바라보고, 설득하려 한다면 『악의 교전』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우리의 현실 곳곳에서 벌어질 수 있다. 사이코패스는 반성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자동차가 지나가면 벌레가 밟혀서 죽을 수도 있다. 한 인간이 정상에 올라서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쟁에서 상대방을 물리치는 것이 정당화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그리고 사이코패스에게는 죽이는 것도 한 가지 선택지일 뿐, 그것이 각별한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칭송받는 사회에서, 사이코패스는 오히려 의기양양해질 것이다.

『악의 교전』의 하스미는 사이코패스다. 하스미가 고등학교 교사를 하는 이유는, 사람들을 조종하여 자신의 왕국을 만드는 것에 즐거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과거의 사건 때문에 약간의 제약이 생기기도 했지만, 하스미는 현재의 처지에 충분히 만족하고 있다. 2학년 4반 학생들은 하스미를 거의 왕처럼 숭배하고 있으며, 대부분의 선생들도 하스미에게 의존하거나 존경한다. 아이들에게 헌신하는 열혈 교사이며 최고의 수업 능력을 보여주는 탁월한 영어 교사. 어느 면으로 보나 하스미는 최고의 선생이다. 그런 평가를 바탕으로, 하스미는 학교를 자신의 왕국으로 건설해가고 있다.

기시 유스케는 능숙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열혈 교사 하스미가 학교에서 얼마나 능숙하게 일처리를 하는지 보여주면서, 작은 의심들을 불어넣는다. 그러다가 그 의심을 직감이 강한 여학생 가타기리에게 투사한다. 가타기리는 ‘학교란 아이를 지키는 성역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치열한 생존경쟁의 장’이라는 것을 잘 느끼고 있다. 그런 생존경쟁의 장에서 철저하게 아이들의 편인 것 같은 하스미를 볼 때마다, 가타기리는 뭔가 이상한 기운을 느낀다. 어딘가 공허해 보인다. 아이들을 협박하고 성추행까지 일삼는 체육교사 시바하라 같은 악당은 아니지만, 무엇인가 위험해 보인다. 그것은 어린 시절 하스미를 가르쳤던 교사가 직감했던 것과도 비슷하다. ‘너와 이야기할 때면 인간의 감정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너는 시험 정답처럼 상대가 바라는 대답만을 딱 골라서 하지. 하지만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드러내지 않아.’

가타기리의 의심은 조금씩 전염되고, 하스미는 의심과 불안의 씨앗을 파내기 위해 계속해서 행동한다. 그리고 결국은 파국으로 이어진다. 『악의 교전』이 대단한 점은 사이코패스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 실상을 흥미진진하게 풀어나가다가, 클라이막스에서 거대한 상황극을 연출하여 스펙터클의 진수를 보여준다는 것이다. 유일하게 아쉬운 점은 하스미에게 집중하다보니, 수학선생과 양호선생 등 개성 넘치는 조연들이 활약할 무대가 좁아졌다는 점 정도다. 『악의 교전』은 엔터테인먼트 소설로서의 임무를 잊지 않은, 그러면서도 사이코패스의 정체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는 탁월한 소설이다.

하스미의 범행을 보도하는 뉴스에서 말한다. ‘이유는 밝혀지지 않았다’라고. 맞다. 그런 사소한 이유로, 그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사건들을 모두 잠재우기 위해 그렇게 엄청난 선택을 했을 것이라고는 믿지 못한다. 보통 사람들은. 우리는 보통, 돈이나 치정 같은 범주에서만 범죄를 사고하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가 살인을 하는, 타인을 괴롭히는 이유가 그렇게 사소하고 일상적이고 간단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런 존재들이 있다. 지금 우리가 사이코패스라고 부르는 그런 인간들이. 더욱 문제는 그런 사이코패스들이 범죄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책임 있는 어떤 자리로 갔을 때다.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그런 사이코패스들은 수십, 수백 명의 목숨도 태연하게 빼앗을 수 있다. 아마도, 이미 그러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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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김봉석

대중문화평론가, 영화평론가. 현 <에이코믹스> 편집장. <씨네21> <한겨레> 기자, 컬처 매거진 <브뤼트>의 편집장을 지냈고 영화, 장르소설, 만화, 대중문화, 일본문화 등에 대한 글을 다양하게 쓴다. 『하드보일드는 나의 힘> 『컬처 트렌드를 읽는 즐거움』 『전방위 글쓰기』 『영화리뷰쓰기』 『공상이상 직업의 세계』 등을 썼고, 공저로는 <좀비사전』 『시네마 수학』 등이 있다. 『자퇴 매뉴얼』 『한국스릴러문학단편선』 등을 기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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