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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러 콘텐츠 승부사들 정해승 저 | 몬스터 |
대한민국 콘텐츠 승부사들의 무한 혁신, 그 치밀한 전략 K-POP은 전 세계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눈과 귀를 잡아끄는 문화현상이자 하버드대학교를 비롯한 세계 유수 경영대학원의 연구대상이 되고 있다. K-POP 열풍의 진짜 비밀은 과연 무엇일까? 한류 열풍 뒤에는 킬러 콘텐츠를 만들겠다는 일념 하나로 엔터테인먼트 세계에 뛰어든 대한민국 콘텐츠 승부사들의 과감한 혁신과 치밀한 전략이 그 비밀의 답이었다. 이 책의 저자 정해승은 관련 산업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콘텐츠 비즈니스에 대한 통찰력을 제공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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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떠나는 순간 초심도 잃는다6집을 낸 이후 6년만인 2007년, 박진영은 정규 7집
「Back to Stage」를 발표한다. 프로듀서로서의 성공이 정점에 다다랐을 때다. 그런데 앨범명에서도 볼 수 있듯 그는 무대로 다시 돌아갈 것을 선언한다. 그리고 지금까지 박진영은 매년 1월부터 11월까지는 JYP엔터테인먼트 대표로서의 삶을 살고, 12월 한 달은 자신이 그토록 원하는 딴따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당시 박진영은 매일 아침 8시에 일어나서 비타민과 영양제를 먹고 스트레칭, 웨이트 트레이닝, 유산소 운동을 했다. 남들은 안 아프고 오래 살려고 하는 일을 그는 1년이라도 더 춤추고 싶어서 한다고 했다.
“아무리 작곡가나 사장 자리가 좋다지만 역시 난 춤출 때가 가장 좋다. 춤추고 있는 나에게 환호하는 팬들을 보면 혈관이 부글부글 끓는다. 내겐 춤이 마약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렇게 딴따라로서의 끈을 놓지 않고 있기 때문에 프로듀서로서도 승승장구하는 것이 아닐까.
일본은 한국과 달리 100년 이상 대대로 이어오는 식당들이 많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가업의 대물림에 대한 그들의 독특한 방식 때문이다. 오래된 일본 식당들은 사장이 곧 주방장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창업주들은 은퇴 전까지 수석 주방장으로서의 역할을 다한다. 그리고 체력이 떨어져 은퇴가 다가오면 식당을 물려줄 자식에게 첫 번째로 좋은 재료 구하는 법을 가르친다. 그 다음 재료 다듬는 법을 가르치고 마지막으로 자신이 주방을 완전히 물려줄 때가 돼서야 양념 만드는 비법을 전수한다.
일본 식당들이 이와 같은 방식으로 대물림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음식은 맛이 생명이므로 그 맛의 책임자인 주방장이 최대한 오랫동안 직접 조리해야 한다는 장인정신 때문이다. 장사가 조금 잘 된다고 해서 전문 주방장을 고용하고 카운터에 앉으면 그 순간 음식 맛의 영속성이 떨어진다는 것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마지막 순간에야 양념 비법을 전수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맛의 영속성을 유지하기 위함이다. 이른 시기에 전수하면 젊은 자식들이 현대적인 입맛이나 트렌드에 따라 맛의 변형을 시도할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본의 음식점들은 창업 이후 100년이 지나도 한결 같은 맛과 인기를 유지한다.
비록 분야와 방식은 다르지만 박진영 역시 전통 일본 식당들과 유사한 형태로 JYP엔터테인먼트를 경영하고 있다. 창업자로서 성공을 한 이후에도 그는 총괄 프로듀서로만 남지 않고 작곡과 안무는 물론, 제자들의 뮤직비디오에까지 직접 출연하는 열정을 보여준다. 그뿐 아니라 댄스 가수로서 직접 노래하고 춤추고 공연과 버라이어티 출연을 병행하면서 현장의 감을 놓지 않고 있다. 창업자가 작은 성공을 거두자마자 바로 현장을 버리고 관리자 모드로 전환하는 순간 그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동물적 감각으로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가능한 전문 영역에 오래 머물러라딴따라로서의 삶을 유지하는 박진영식 경영방식은 세계 유수 IT업체에서도 유사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2011년 4월, 구글의 전문경영인 에릭 슈미트는 10년간의 CEO 생활을 접고 창업자인 래리 페이지에게 자리를 넘겨주었다. 에릭 슈미트는 전문경영인으로서 재임 기간 마케팅과 조직관리, 운영을 주로 맡으며 구글을 작은 벤처기업에서 IT업계의 스타로 발전시켰다.
구글은 전문경영인을 통해 괄목할만한 성장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대표적인 전문경영인 영입 사례로 꼽힌다. 사실 IT업계는 젊은 개발자들이 아이디어 하나로 시장에 뛰어들기 때문에 기술이 실리콘밸리의 투자를 받아 잭팟을 터트리는 순간, 창업자들은 고심을 하게 된다. 나이도 어리고 경영에 대한 경험도 없다 보니 조직관리나 자금운용, 마케팅 등 기본적인 회사 운영의 경험이 일천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주로 개발자인 창업자들은 기술이나 전략분야만 담당하고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회사의 성장을 담당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박진영의 경우도 일찍이 경영과 창작의 영역을 분리해 자신은 창작의 영역에만 집중했다. 사실 금전 출납만 발생하는 구멍가게가 아닌 이상에야 회사는 회계, 재무, 인사, 마케팅 등 법인이 유기적인 생명체로 돌아가게 하는 운영시스템이 필요하다.
1990년대 말 SM엔터테인먼트의 성공 이후, 젊은 아티스트들이 스스로 기획사를 설립해 후배들을 양성하는 케이스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실 아티스트들도 앞서 말한 IT업계의 개발자처럼 자신의 전문영역 외에 경영에 대해선 잘 알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과거 엔터테인먼트업계에서 발생한 창업자의 회사공금 유용의 사례는 이들이 얼마나 경영에 무지한가를 보여주는 대표적 사례다. 그러나 박진영은 회사설립 초부터 경영을 전문경영인에게 맡겼기에 자신은 창작에 좀 더 몰두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오늘의 JYP엔터테인먼트로 성장시킬 수 있었다.
물론 모든 기업의 창업자가 전문 분야에 끝까지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설비를 활용한 제조?이나 초기 고객확보가 중요한 금융업 등은 창업자가 빨리 영업과 관리로 전환하는 것이 기업의 성장에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사람의 전문 능력이 필요한 분야는 다르다. 상품과 서비스의 품질을 일정 수준 이상 유지하는 것이 핵심 성공요인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이 본격적인 성공의 반열에 오르기 전까지 창업자는 자?의 전문영역에 머물러 있어야 한다. 다시 말해 창업자가 절대 일찍 관리자 모드로 전환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창업자가 전문 영역에서 물러나는 순간 그 기업은 야생성을 급격히 잃게 되고 대기업병에 걸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