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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 투성이 아이의 그림, 즐기도록 놔두세요

아름다운 오류, 아동화의 특징들을 통해 내 아이의 그림 세계로 여행을 떠나자! - 아동화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의 그림이 섣불리 지적당하고 수정을 받게 되면 어른들의 생각처럼 쉽게 해답을 찾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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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에 버금가는 최고의 디자이너, ‘아이들’

“정~말 아름답구나!”

도시를 조금만 벗어나 자연에 몸을 맡기면 누구에게나 흘러나오는 탄성이 있다. 아무렇게나 자라난 나무와 풀들, 생각 없이 던져진 듯 자리 잡은 바위들, 이유 없이 이리 저리 제멋대로 내닿는 냇물…. 자연은 미술에 일가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자격에 구애 없이 자신을 접하는 모두를 시인으로, 미술가로 만드는 재주를 지녔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연스럽다’라는 말은 그런 것이다.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며 이상함이 없다.’라는 국어사전의 풀이를 굳이 인용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

이러한 이유 때문에 이 세상 최고의 디자이너가 ‘신’이라면, 이에 버금가는 디자이너는 ‘아이들’이 아닐까 생각한다. 화가나 디자이너가 아무리 자연스럽게 표현을 하려 해도 정형화(인공화)되고 마는 표현의 틀을 아이들은 자연스레 벗어나곤 한다. 그래서 고정관념의 틀에 갇히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그려 내는 아이들의 그림에는 바로 그 ‘자연스러움’이 한가득 채워져 있다.

피아노 학원에 나타난 공룡(8세 남)

‘틀렸다’, ‘맞았다’라는 상식의 굴레를 벗어 던지면 어른들도 누구나 만날 일이지만 이 또한 아동화 시기에만 주어지는 특권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러한 틀에 갇히지 않은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그림들이 동화에서 멀어진 어른들의 눈에는 잘못된 오류로 보인다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 된다. ‘어른들이 정답이라고 여기는 정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은 시기가 바로 ‘아동화 시기’이기 때문이다. (어른들 자신도 똑같이 지나온 시기인데, 어른이 되어서는 그 시기가 왜 그리 못마땅하게 보이는지…. 아이러니하다.)

아동화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의 그림이 섣불리 지적당하고 수정을 받게 되면 어른들의 생각처럼 쉽게 해답을 찾지 못한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자신의 눈높이보다 더 높은 단계를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결국 미술에 흥미를 잃거나 다른 놀이를 찾기 십상이다. 특히 아이의 미술에 관심이 많은 부모일수록 이러한 실수를 많이 겪는데, 주어진 아동화의 시기는 한 번뿐이라서 다시 시행착오를 거칠 기회는 없다는 것을 꼭 알아 두어야 한다.

강 위의 다리(9세 여) : 시점의 혼용

하지만 ‘상대를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고 하지 않는가. 눈높이를 조금만 낮추어 아이의 그림 속을 들여다보면 정말 재미나고 아름다운 오류들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그렇게 아이의 생각을 뢸나고 이해하고 친구가 되어 주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미술 교육 중 하나일 것이다.

이제부터 아동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특징과 오류를 알아보기로 하자.

▶ 아동화의 특징과 다양한 오류

* 수직의 실수

똑바로 서 있는 곤충들(7세 남) / 무빙워크에 수직으로 서 있는 사람들(9세 여) / 기울어진 굴뚝(9세 여)

사람이 태어나 가장 먼저 고정관념으로 굳어지는 것이 바로 수직, 수평의 개념이다. 비뚤어진 벽의 액자가 뭔가 불안하게 느껴지고 기울어진 컵은 바로 세워야 할 것 같은…. 가장 먼저 익숙해지고 습관화되며, 따라서 가장 고치기 어려워 성인까지 지속되는, 미술에 있어 가장 강한 고정관념이기도 하다. 아이가 바닥으로 여기는 기준선에 수직으로 물체를 세우려는 인식 때문에 나타나는데, 가장 흔하게는 삼각 지붕에 기울어진 굴뚝으로 나타나고 절벽을 수직으로 걸어 오르는 모습도 종종 볼 수 있다. 아래의 펼친 그림들도 이러한 수직 성향 오류의 하나이다.

* 펼친 그림으로의 표현

펼쳐진 울타리(8세 남) / 펼쳐진 식탁과 사람들(8세 여)

전개도처럼 펼쳐진 형태의 그림을 말한다. 식탁이나 책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식탁 윗면을 중심으로 사방으로 사람이나 식탁 다리를 펼쳐 그린 그림들이다. 길을 기준으로 양쪽에 나무나 집이 마주보고 누워 있는 경우도 같은 경우이다. (재미있는 것은 각 면을 기준으로 오려서 접어 세우거나 내리면 입체형태가 된다는 것이다.) 보통 8세를 지나면서 조금씩 수정되지만 개인차가 크고 오래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

* 만화적 표현과 의인화

여러 개의 다리 / 의인화된 꽃과 곤충 / 말풍선을 통한 그림 설명

말 그대로 만화적인 표현의 나열이다. 만화는 아이의 흥미를 쉽게 유발하고 친근하기에 나이에 상관없이 다양하게 나타나는 표현이다. 예전보다 만화가 더욱 대중화되고 접할 기회가 많아져서 요즘의 아동화에서 더욱 많이 나타나고 있다. 캐릭터의 커다란 눈동자, 만화적인 동작의 표현들이 주를 이룬다. 아직도 만화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어른들이 적지 않아서인지 말풍선을 그림에 쓰지 못하게도 하지만…. 아이가 그림을 설명하려는 의도로 사용하는 것은 적당히 허용하도록 하자.

그림에서의 글은 부족한 그림을 설명하려는 의도일 수도, 남에게 내보이는 자신감의 표현일 수도 있다. 엄마의 나무람 때문에 “말풍선 써도 돼요?”라고 몇 번을 물어서 확인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산으로 가는 미술 교육을 느끼곤 한다. 아동화에서 ‘어떻게 해야 한다.’, ‘어떻게 하면 안 된다.’라는 기준을 둔다는 것이 어찌 보면 억지스러운 모습이다. 아동화는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것’이기 때문이다.

* 공간의 채움

바닥에 닿도록 긴 다리(7세 여) / 가득 채운 도화지(8세 남)

아이들이 종이 공간을 채우는 것을 보는 것도 정말 즐거운 일이다. 6세 전후로 바닥 선을 인지한 아이가 발을 땅에 닿도록 길게 늘이는 것을 억지스럽지 않게 보아 주는 것도 어른이 할 일이다. 비어 있으면 무언가 채워야 한다는 생각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인지 화면을 가득 채워 나가는 아이들도 많이 볼 수 있다. (그림의 완성도는 접어 두더라도 일단 가득 채운다는 것은 그림에 열의가 있다는 것이 아닐까? 집 하나만 달랑 그려 놓고 ‘사람들은 모두 집에서 잔다.’라? 말을 천연덕스럽게 하는 아이들도 많다. 정말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 공간 이해의 오류

무인도와 바다의 분리(8세 남) / 공간의 오류: 벽선(7세 여)

바닥을 인지한 아이라도 공간을 완전히 이해하고 이치에 맞게 그려 내는 것은 매우 어렵다. 아직은 입체의 이해와 표현이 어려운 시기이기 때문이다. ‘무인도’라는 주제로 고민한 끝에 위와 같이 바다와 섬을 따로 그리기도 하고, 벽선에 맞지 않게 사람을 배치하기도 한다.

* 시점의 재구성과 다양화

여러 방향의 표현(7세 여) / 여러 방향의 표현(9세 여) / 스케치북을 돌려 가며 그림(7세 여)

아이들은 보이는 사실을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자신이 표현 가능한 물체의 방향을 머릿속에서 재구성하여 표현하는 특징이 있다. (위의 ‘공간 이해의 오류’와 같은 선상에 있는 특징이다.) 이 때문에 위의 그림처럼 집 안이나 밖의 모습을 여러 개의 시점으로 그려 나가기도 한다. 간혹 위의 세 번째 그림처럼 스케치북을 돌려 가며 그리는 아이들도 있다.

보통 초등학교 3~4학년을 지나면서 스스로 문제점(?)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시점을 하나로 모으기는 쉽지 않다. 이후에 ‘입체’의 벽에서 아동화가 멈추는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이지만, 아동화 시기에서는 흔하게 나타나는 표현 방식의 한 부분이다.

* 비례의 무시

나무보다 큰 사람(7세 여) / 수상스키 타는 주인공을 크게 그림(8세 남)

아이들은 아직 정확한 비례 감각을 가지고 있지 못하기에 자신이 원하는 소재를 크게 그리는 특징을 보인다. 의식적으로 과장하는 것이 아닌, 중요한 소재를 자연스럽게 크게 그리는 것이다. 간혹 너무 크게 그린 소재가 있다면 꼬투리를 잡기 전에 잘 살펴보자. 아마도 아이가 그림 속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소재일지도 모른다.

* 고유색 인지의 미완성

다양한 색의 꽃(7세 여) / 여러 색으로 사람 채색(7세 여)

많은 물체들은 저마다의 고유색을 가지고 있다. 아이가 태어나면서 알고 나오는 것이 아니란 것쯤은 누구나 알 것인데도 아이가 칠한 색에 고민을 하는 부모들이 의외로 많다. 아이가 빨간색이나 검은색을 많이 쓴다며 아동심리와 연결 지어 걱정을 내비치기보다는, 다양한 사물을 자주 접하게 하고 소개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될 것이다. 아이들은 보통 5~6세를 지나면서 대부분 사물들의 고유색을 인지하고 고정관념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물론 얼마 동안은 과도기적으로 중복되어 나타나겠지만….)

* 정면의 고정 표현

정면을 보며 진찰하는 의사와 나(7세 여) / 곰의 정면과 측면의 표현(7세 남)

아이들의 그림은 증명사진 같은 느낌이 유독 많이 든다. 측면을 그리지 못하고 항상 정면을 그리기 때문인데, 그 이유는 물론 그리기 어려워서이다. 아이들 그림 속의 사람이나 동물들은 앞을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앞을 보고 인사를 하며 행동을 한다.

문제는 정면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정지한 그림이 되는 것에 있다. 움직임과 이야기가 있는 화면을 그려 내려면 옆면의 표현이 꼭 필요하지만, ‘고개 돌리기’가 아이들에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자연스레 옆모습을 관찰하게 하거나 잘 그린 또래의 그림을 조금씩 참고하도록 하면 보다 자신감 있고 자유로운 표현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 가려짐의 회피

식탁과 겹침을 피한 사람들(7세 여) / 겹치지 않은 과일들(6세 여)

아이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그래서 가장 싫어하는 표현이 아마 겹쳐서 가려지는 부분의 표현일 것이다. 입체보다는 수월한 단계이지만, 그래도 만만한 상대로 쉽게 다가서지는 못한다. 요리조리 겹치지 않기 위해 피해 가는 그림들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나기도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난해한 부분임을 이해하고 나아짐을 기대하는 것이 바로 어른들의 몫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경험을 통해 조금씩 겹침을 이해하고 초등학교 3학년 정도를 지나면 원근까지 표현하기도 한다.

* X-ray 방식의 표현

땅속의 당근(9세 여) / 집 안의 아기돼지 삼형제(6세 여)

투시하여 속이 보이는 것을 표현하는 그림이다. 보이는 것이 아닌 심상의 것을 그려 내는 아동화의 특징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기도 하다. (무엇이 눈앞을 가린다고 하여 안절부절 하거나 고민할 필요가 없는 가장 자유로운 표현의 시기이기도 하니까.)

위에서 나열한 특징들 외에도 아동화의 다양한 표현들이 있지만 위의 것들을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나머지를 보는 눈을 충분히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살펴보면 모두 오류투성이, 틀린 그림으로 어른의 눈에 비춰지기도 하겠다. 하지만 여러 번 언급한 대로 성급한 수정이나 지도는 아주 위험한 모험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자. 아이가 이 시기에 할 수 있는 것은 이렇게 하는 것뿐인데, 못하게 하면 어떤 방법이 있을까? 그저 다른 놀이를 찾을 수밖에….

그대로 보아 주고 이해하고 즐기도록 놓아두자. 아니, 한 걸음 더 나아가 도화지 앞에 같이 앉는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 (아이의 미술에 관해서 자신이 너무 잘난 부모가 되는 것도, 혹은 너무 움츠러든 부모가 되는 것도 그리 현명한 방법은 아니다.)

다음 회에는 코에도 걸고 귀에도 걸고 여기저기 다양하게 쓰여 오히려 골치 아픈(?) ‘창의력’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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