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도 여름, 특히나 큰 한국영화들이 쏟아져 나왔다. 첫 테이프를 끊었던 것이 <고지전>과 <퀵> 두 편. 현재까지 두 편 모두 300만 고지를 향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두 편 모두 총 제작비가 100억 원 가량 투입된 대작이다. 같은 날 개봉된 두 영화는 엎치락뒤치락 하면서 사이 좋게 시장을 나눠 가졌다. 이어 2주전, 대한민국 최초 3D 괴수영화 <7광구>가 개봉되었고, 현재까지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고 있다. 제작비를 생각하면 아직 갈 길이 먼 작품이지만, 입소문이 아주 좋은 편은 아닌지라 관객 감소율이 눈에 띄게 증가하고 있다.
그리고 여름 방학의 대미를 장식할 한국 영화 두 편이 지난 주말 나란히 개봉되었다. <극락도 살인사건>의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박해일과 류승룡이 주연을 맡은 <최종병기 활>과 김하늘 유승호 주연의 스릴러 <블라인드>가 그 주인공이다. 먼저 <최종병기 활>이 전국 450여 개 스크린에서 일제히 공개되어 첫 주말 140만 명의 누계를 기록했고, <블라인드> 역시 60만이 넘는 관객 누계를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2위에 올랐다. 두 편이 주말 동안 끌어 모은 관객 수가 어림잡아 200만 명이다. 아주 훌륭한 스코어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흥행에 성공하고 있다는 점 외에 관객들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먼저 <최종병기 활>은 병자호란을 배경으로 한 ‘활에 관한 모든 것’을 보여주는 추격 액션 영화다. 인질로 잡혀간 누이를 구하기 위한 목숨을 건 사투를 그린 <최종병기 활>은 총 제작비가 100억 원에 육박하는 대작이다. 마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액션영화였던 <원티드>를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화려한 ‘활’액션을 보여주는 이 작품은 비교적 긴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긴장의 끊을 놓을 수 없게 만든다.
고급스러운 영상과 배우들의 호연에 이어, 감독의 안정적인 연출은 오락영화로써 흠을 잡기 어려울 정도로 훌륭한 앙상블을 보여준다. 사실, 앞서 개봉된 <고지전>, <퀵>, <7광구>에 비해 인지도나 선호도가 낮았던 작품인 만큼 입소문을 유도하기 위해 개봉 1주 전에 유료시사회를 단행했고, 시사회의 입소문이 전국으로 퍼져나가 폭발적인 관객몰이에 성공할 수 있었다. 물론 앞서 개봉된 다른 큰 한국영화들의 힘이 생각보다 일찍 빠졌기 때문에 반사 이익을 본 부분도 분명히 있다. <마당을 나온 암탉>에 이어 올 여름, 롯데엔터테인먼트의 효자 상품이 된 것이다. 현재까지 분위기로는 추석 연휴 전까지 영화의 흥행세가 계속 될 전망으로, 김한민 감독은 전작 <핸드폰>의 아쉬운 기억을 이 작품으로 훌훌 털어 버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블라인드>는 부천국제 판타스틱 영화제 폐막작으로 제일 먼저 관객들에게 소개 되었다. 한국에서는 비교적 성공하기 어려운 스릴러 장르를 택했다는 점이 불안한 요소였음에도 불구하고, 완전 매진을 기록한 화제에서의 반응이 엄청나다는 입소문이 퍼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 영화 역시 입소문을 위해 개봉 1주 전 유료시사회를 통해 관객들을 먼저 만났고, 이어진 전국적인 대규모 시사회를 통해 영화가 재미 있음을 알리는데 총력을 기울였다. 역시나 이 같은 전략은 성공하였고, 40% 넘는 좌석점유율을 기록하며 박스오피스 2위에 오르는데 성공했다. 18세 이상 관람가라는 등급에의 핸디캡을 극복하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들과 물량공세를 퍼 붓는 대형 한국 영화들 틈바구니에서 영화자체의 힘으로 이만큼 큰 성적을 기록한 것이다. 극장에서 터져 나오는 비명 소리와 박수소리 그리고 영화가 끝난 뒤 만족감을 표하는 관객들의 모습을 보면서 <블라인드>의 흥행세 역시도 당분간 계속 될 수 있을 거라고 쉽게 짐작된다.
앞서 개봉한 어떤 한국영화들 보다 <최종병기 활>과 <블라인드>가 돋보이는 이유는 단순히 사이즈로 밀어 붙이거나 화제성에 기대어 영화를 포장하지 않고, 영화 자체의 힘으로 관객들에게 어필했다는 점이다. 일단 누가 봐도 두 편 모두 재미있다는 얘기를 압도적으로 많이 할 수 밖에 없는 만듦새를 지니고 있다. <7광구>가 사이즈와 특이한 소재로 초반 눈길을 끄는데 성공했음에도 관객 수가 곤두박질 치고 있고, <고지전>과 <퀵>이 300만 고지를 눈앞에 두고 생각처럼 쉽게 그 고지를 넘어서지 못하는 데는 여려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관객과의 소통여부 혹은 얼마나 즐길 수 있느냐의 조건이 많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고 미루어 짐작 할 수 있겠다. 실제로 올 상반기, 그 유명한 스타 한 명 등장하지 않는 <써니>가 750만 관객을 동원하며 파란을 일으켰고, 외화 가운데서는 <엑스맨 퍼스트 클래스>가 역대 <엑스맨> 시리즈 가운데 가장 좋은 성적을 기록했다. 이런 작품들의 공통점은 역시나 관객의 반응이 다른 영화들 보다 좋았다는 것이다.
결론은 아주 간단하다. 처음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마케팅이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의 힘이다. 아무리 겉으로 화려한 영화라도, 쟁쟁한 배우들이 나오고 엄청난 제작비를 쏟아 부어도 영화 자체가 잘 만들어 지지 않으면 관객들에게 환영 받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고양이, 죽음을 보는 두 개의 눈>이 초반 관객몰이에도 불구하고 생각보다 저조한 스코어를 기록했고, <기생령>은 재편집에 재편집을 거쳤지만 관객들의 외면을 받고 말았다. 엄청난 화제를 불어 일으켰던 <퍼스트 어벤저>, <슈퍼 에이트>나 <토르> 같은 대작도 기대만큼의 성적을 기록하지는 못했다. 중요한 것은 영화 그 자체이다. 관객들은 이미 영화를 보는 눈이 이만큼이나 높아져 있고, 너무나 많은 루트를 통해 정보를 획득하고 있다. 이제 속일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다. 정말 잘 만들어진 콘텐츠만 살아 남는다. 지금 우리 영화인들이 명심해야 할 점은 그것이다.
영화의 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