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국내외 흑인 음악 신보들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먼저 그윽한 목소리와 감성적인 리듬앤블루스로 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브라이언 맥나이트가 열 번째 정규 앨범을 내놓았습니다. 특유의 감성 발라드와 최신 전자 음악을 골고루 섞었습니다. 국내 힙합계의 형님, 데프콘도 새 앨범을 발표했네요. 요즘 힙합씬에 대한 데프콘의 쓴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또 마지막으로 미니멀리즘 팝 음악을 지향하는 뉴욕의 듀오, 컬츠의 데뷔 음반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 < Just Me >(2011)
브라이언 맥나이트(Brian McKnight)는 이원 뮤직(E1 Music)에서의 두 번째 음반이자 열 번째 정규 작품
< Just Me >를 통해 어김없이 그윽한 목소리, 정중한 음악을 선보인다. 얼핏 마빈 게이(Marvin Gaye)의 「I want you」가 연상될 만큼 농염한 기운을 가득 밴 「Temptation」을 시작으로 앨범이 나오기 두 달 전에 뮤직비디오가 공개되며 컴백을 알린 「Fall 5.0」, 1960년대 모타운풍의 리듬 앤 블루스 「One mo time」, 피아노, 신시사이저, 스트링 연주가 어울리며 어쿠스틱한 멋과 트렌디함을 동시에 구현한 「Just lemme know」 등이 안온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브라이언 맥나이트 특유의 감성 발라드가 빚는 마력이다.
스타일에 변화를 가한 노래들도 있다. 「Gimme yo love」는 요즘 유행에 맞춰 전자음을 앞세운 반주를 갖추고, 「Husband 2.1」에서는 묵직한 일렉트릭 기타 연주를 실어 록 사운드를 내보이며, 「End and the beginning with you」는 템포를 늦추긴 했어도 일렉트로니카의 하위 장르 중 하나인 투 스텝을 기초로 약간의 댄서블한 느낌을 드리운다. 팝과 R&B가 메인 메뉴이지만 이 안에서 다양성을 획득하려는 그의 노력이 곳곳에서 보인다. 재즈로 윤색해 왬(Wham!)의 원곡과는 확연히 차이 나는 신선미를 띤 「Careless whisper」 또한 여러 가지 모습을 보여 주려는 노력의 일환이라 할 것이다.
공연 음원을 담은 CD도 함께 수록되었다는 점은 앨범의 소장 가치를 더한다. 그동안 정규 작품과 성탄 음반, 컴필레이션 등 스무 장에 달하는 앨범을 냈지만 공연 실황 음반은 없었기 때문이다. 2011년 2월 로스앤젤레스의 한 공연장에서 열린 라이브 콘서트를 녹음한 CD에는 그의 히트곡 외에도 냇 킹 콜(Nat King Cole)의 「Unforgettable」, 스티비 원더(Stevie Wonder)의 「Overjoyed」,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Rock with you」를 커버해 감흥을 곱절로 늘리고 있다.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연출하는 감미로운 분위기는 마치 눈앞에서 공연을 보는 것 같은 생생한 공간감을 만들어 청취자들을 흡족하게 할 듯하다.
브라이언 맥나이트의 노래는 변함없이 잔잔하다. 그럼에도 쉽게 잊히지 않을 강렬함을 남긴다. 온순한 목소리, 침착한 노래가 듣는 사람을 편안하게 하는 마법 같은 힘을 내는 까닭이다. 브라이언 맥나이트를 접했던 이가 또다시 그의 음악을 찾는 게 당연하다. 전 세계적으로 2,000만 장 이상의 어마어마한 판매량을 기록한 게 다른 이유에서가 아니다. 특별한 사건이나 이슈가 없어도 그가 사람들 사이에서 늘 회자되는 것도 음성과 노래만으로 가수로서의 진가를 발휘한 덕분이다. 새 앨범
< Just Me >는 언제나 그래 왔듯이 목소리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높일 멋진 발걸음이다.
글 / 한동윤 (bionicsoul@naver.com)
데프콘(Defconn) < The Rage Theater >(2011)
어느 장르보다 세대교체가 빨리 이뤄지는 판이 힙합이다. 몇 개월간 신에 관심을 소홀히 하면 요즘 뜨고 있다는 엠시의 이름조차 분간하지 못하는 상황이 연출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침체기를 겪고 있는 탓인지 그동안 활발했던 세대교체의 움직임조차 현재는 둔화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베테랑 엠시들이 힙합 신에게 바치는 쓴소리는 발언 직후 곧바로 이슈가 될 정도로 시선을 끈다. 이제는 죽비소리를 내리칠 멘토 격의 래퍼들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희소성의 차원에서 조명을 받는 까닭도 있겠지만, 이들의 격문을 들어보면 인터넷을 위주로 돌아가는 힙합 ‘커뮤니티’에게 직격탄을 날려 뮤지션이나 팬의 입장에서도 얼굴이 붉어질 만한 요소가 다분하다.
사실 힙합 신에 대한 데프콘의 성토는 2010년에 발표한
< Macho Museum >에서 이미 펼쳐진 바가 있다. 「독고다이」와 「형이 들려주는 이야기」 등의 곡에서 언더그라운드 엠시라는 간판 하나 뒤에서 안주하고, 어정쩡한 히트 공식으로 연명하려는 래퍼들을 강한 어조로 비난했다.
당시 주요 힙합 커뮤니티 내부에서 반응이 엇갈렸던 사실은 데프콘의 위치를 상징적으로 표출하는 순간이었다. 하드코어 랩을 특유의 스타일로 구축했던 선구자의 이미지와, < 무한도전 >과 케이블 TV를 전전하던 코믹 캐릭터 간의 괴리가 그것이다. 특히 래퍼의 언행일치를 음악적 진정성의 핵심 잣대로 고려하는 일부 마니아들에게는 다소 꼰대의 일장연설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번 앨범 역시 재차 칼을 빼들었다. 혼자만은 아니다. 유엠시(UMC), 주석, 사이드비(Side-B), 대팔, 가리온 등을 대동했다. 가리온을 제외하고 리스트를 살펴본다면 그 동안 관심 밖에 있었거나, 퇴물논란이 일었거나, 고정적인 안티세력을 보유한 인물들이다. 어쨌든 잔뼈가 굵지만 몸을 담은 기간만큼의 지지는 받지 못하는 얼굴들이다. 가사를 들어보면 메시지는 예상대로 진행된다. 힙합 신에 속한 후발주자와 어린 청취자들을 겨냥한다.
이들이 성난 이유를 소외감으로 봐야할 것인가. 그렇다면 그들이 진단하는 중2병 환자와의 지루한 싸움만 이어질 뿐이다. 베테랑 래퍼들의 랩이 질이 떨어져서 문제가 생기는 것이 아니다. 기본적인 메시지가 이제는 어린 힙합 팬들의 감성에 닿기 힘들게 되었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 우선이다. 국내 힙합 신 자체가 주로 10대 중후반에서 돌고 도는 순환고리다. 아저씨와 삼촌 격의 화법이 중고등학생의 화법과 맞을 리가 없다. 뭔가 새롭고 젊은 얼굴과 최신의 트렌드를 언급해야지 담론장에 편입될 수 있는 분위기도 유쾌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20대 이상의 팬들을 포섭하면서 파이를 키우는 수밖에 없는데 이 역시도 래퍼의 권한 밖에 놓여있다.
즉, 데프콘은 힘겨운 줄타기를 하는 중이다. 미디어에 진출한 힙합 아티스트들은 나름대로 방송용 곡과 마니아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곡들을 적당히 배분하는 전략을 써왔지만, 여기에 그는 어린 힙합 팬들의 기호까지 고려를 해야 할 형국이다. 이번 앨범은 하드코어적인 요소, 질펀한 성적인 요소를 일정 부분 유지하며 본연의 아이덴티티를 훼손하지는 않았지만 고민이 지속될 가능성은 명약관화와 같다. 일련의 풍경들은 국내 힙합의 선수층도 얇지만, 노장 래퍼의 입지가 쉽게 흔들리는 한 장면으로도 아직 국내 힙합의 리스너층 역시 얇음을 깨닫게 해준다.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컬츠(Cults) < Cults >(2011)
미니멀리즘 팝의 전형이다. 재기 어린 생기와 ‘로-파이’의 기운이 물씬 느껴진다. 혼성 록 듀오 컬츠의 데뷔 앨범은 초보 뮤지션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감각적인 빈티지 사운드와 비범한 팝 감수성을 지니고 있다. 1960년대의 사이키델릭과 1980년대의 뉴웨이브가 한 음반에 공존한다.
보컬을 담당하는 매덜린 폴린(Madeline Follin)과 사운드를 주조하는 브라이언 어블리비언(Brian Oblivion)은 연인사이다. 뉴욕에서 함께 영화 공부를 하는 이들은 영화가 아닌 음악으로 자신들조차 예상치 못한 사건을 터뜨렸다. DIY 뮤지션들의 온라인 음원 사이트인 밴드캠프(Bandcamp)에 올린 곡들로 ‘바이럴 마케팅’의 수혜를 받으며 특별한 프로모션 없이 다수 미디어와 대중의 지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단숨에 인디 팝계의 대형신인으로 자리 잡아 음악 활동의 순조로운 스타트를 끊었다.
1960년대의 서프 뮤직에 질척한 화음을 더했다. 이질적인 감성을 배재하고 어딘지 모를 데자뷰를 경험하게 한다. 「Abducted」와「Bumper」는 매덜린, 브라이언 커플의 하모니가 어우러지는 달콤한 노이즈 팝이다. 발랄한 전개를 취하면서도 권태와 근심이 동시에 느껴진다. 생기발랄한 실로폰으로 시작하는「Go out side」에서는 사랑스럽지만 나른한듯한 목소리와 징글쟁글 기타의 리버브 사운드는 질척한 공간감을 형성한다.
성공적인 데뷔다. 이미 유수의 평론 저널과 음악팬들에게 큰 지지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11곡이 실린 정규 작품은 몇 곡의 음원을 선보였을 당시 큰 기대감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앨범 전체의 멜로디와 음색은 일관적이고 기타는 몸을 사리는 듯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한다. 표현의 스펙트럼이 다양하지 못해 밋밋함마저 느껴진다.
단순히 싱글들로만 분리해서 들으면 매력이 넘치는 곡들이다. 한 대 모아 ‘모음집’의 형태를 취하면서부터 취약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완성도를 떠나 트랜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음악팬들의 이목은 끌 수 있겠지만 단순히 ‘예스러운 팝 음악’의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특별’은 하지만 흥분은 거기에서 그친다.
글 / 신현태 (rockershin@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