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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벽에 낙서해도 혼내지 마세요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아동화의 흐름을 알면 아동화의 답이 보인다! - 미술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른들이지만 정작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이들이다. 강요하거나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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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이에게 미술 공부는 꼭 필요한 것일까?

“미술 공부는 어떻게 하고 있어?”
“딴 것도 시켜야 하는데 미술까지 해야 하나?”
“가르치긴 해야 할 텐데…. 여러 가지 여건이….”
유치원 통학버스를 기다리며 삼삼오오 모인 엄마들의 ‘~카더라’ 통신에서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소재가 바로 미술에 대한 이야기다.

8세 여아의 그림 - 해님 달님.

많은 사람들이 미술이란 타고난 소질이 있어야 하거나, 단순히 다른 교과목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서 존재하는, 있으나 마나한 것으로 여기지만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적지 않다. 실생활에서 미술이 영어, 수학과 같은 학문들보다 얼마나 더 광범위하고 빈번하게 사용되는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우리가 배우고 익힌 것들이 의외로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폭넓게 이용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떤 도배지를 선택해야 새집과 잘 어울릴지, 어떻게 집안을 꾸미는 것이 세련돼 보일지, 어떤 옷이 나에게 어울리고 어떤 구두가 그 옷에 어울릴지, 어떻게 화장을 해야 뚱뚱한 볼살을 홀쭉하게 보일지, 우리 아이가 그린 그림이 어딘가 이상하기는 한데 그게 어느 부분인지, 심지어는 내 핸드폰에 붙일 앙증맞은 스티커는 어느 방향으로 붙여야 가장 보기 좋을지까지도…. 우리는 나름 최선의 선택은 하고 있으나 최고의 선택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또 하나! 미술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어른들이지만 정작 그것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이들이다. 강요하거나 가르치지 않아도 아이들은 스스로 미술적인 영역을 즐기고 체험해 나간다.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는 매체로,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놀이로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물론, 부모들의 방해가 만만치 않은 경우가 있기도 하다.) 적어도 초등학교를 벗어나기 전까지 아이들이 누려야 할 표현의 자유를 한낱 낙서로 치부하거나 공부할 시간을 갉아먹는 존재로 여겨서는 안 될 것이다.

7세 남아의 그림 - 무지개 날개의 사자

미술이라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당장 몇 년 앞만을 본다면 중?고등학교의 내신에만 관여되거나, 정서적인 면, 비약하자면 일종의 문화적인 사치로 여겨질 수도 있겠지만, 과연 그것에만 머무를 것인지…. 결국 미술 학습의 가치판단은 아이의 선택보다는 부모의 몫으로 남게 된다. 단, 우리 아이가 일생에 단 한 번 가질 수 있는 시기라는 것을 떠올린다면 조금 더 많이 고민하여? 할 문제가 되겠지만….

▶ 그리 길지 않은 아동 미술의 여행길을 들여다보자

한 자녀 가정이 늘면서 첫째에게서 경험한 시행착오의 해답을 둘째에게 적용할 기회마저 많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가르쳐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고민하기 전에 아동 미술이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를 안다면 그 선택이 보다 수월해지지 않을까?

‘아동화’ 하면 빠뜨릴 수 없는 사람이 미국 펜실베니아대학교의 ‘로웬필드’라는 교수이다. 이분이 아동화를 열심히 연구하다가 아동화의 단계를 구분해 놓았는데, 이것을 전 세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1. (4세 이전) 난화기 : 무의미한 낙서의 시기이자 체험적 신체적 놀이의 시기이다. ‘직선-곡선-네모-세모-마름모’로 발전하며 후에는 자신이 그린 소재에 이름을 붙이기 시작한다.
2. (4-7세) 전도식기 : 얼굴이 표현된다(올챙이 사람). 다양한 소재를 표현하며 자신의 반복 소재와 틀이 나타난다.
3. (7-9세) 도식기 : 자신의 견고한 틀이 생긴다(도식화). 창의력이 극대화되는 시기이다.
4. (11-13세) 의사실기 : 장식의 세부 표현, 사실감의 표현이 발달한다.
5. (13-17세) 사춘기/사실기 : 주관적인 시각을 표현하는 시기이자 아동 미술의 정지 시기이다.

위의 발달 과정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겠지만 오랫동안 아이들과 같이 지내다 보니 우리나라의 현실과 달라진 시대로 인해 정확히 일치하지도 않는다. 작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정리된 아동화의 흐름을 찬찬히 알아보기로 하자.

1~4세 : 난화의 시기 (낙서지만 낙서만은 아닌….)

아기들은 태어나 돌을 지날 즈음에 집 안을 돌아다니다 우연히 발견한 색연필이나 연필을 입에 가져가 본다. 먹는 것이 아니라 장남감이라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연필을 휘두르다 바닥에 선이 그려지는 것을 보고 아이는 신세계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이때부터 엄마는 낙서와의 전쟁을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림의 시작은 아이에게 놀이의 모습으로 나타나 필력과 미술적인 표현력을 쌓기 시작하는데, 엄마는 낙서의 주범인 필기구를 치우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엄마의 자랑인 새하얀 벽과 흰 소파가 아이들의 눈에는 드넓은 캔버스로 보일지도 모른다.)

난화 초기(자유선) - 난화 중기(도형의 표현) - 난화 말기(얼굴의 표현)

온 바닥과 벽에 낙서하다 혼이 난 아이는 ‘아! 그림을 그리면 엄마가 싫어하는 구나.’ 하고 인식을 하게 된다. ‘미술을 시작도 못해 보고 끝맺는 아이가 그리 적지 않다는 것’과 ‘안 하는 아이는 머지않아 못하는 아이가 된다는 것’ 또한 기억해야 한다. 아이가 낙서를 시작한다면 못 그리게 할 것이 아니라 그림을 그릴 장소를 만들어 주면 된다. 아이를 종이 앞에 앉게 하여 그림을 그릴 장소를 마련해 주고, ‘그림은 종이에 그린다.’라는 인식을 심어 주는 것이 좋다. 가능하면 아이의 행동을 다 담을 수 있는 넓은 종이를 준비하고, 그래도 걱정이라면 종이 밑에 더 넓은 비닐을 깔아 주는 것도 좋다.

너무 깔끔한 엄마는 아이 미술의 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아이가 미술 놀이를 할 때는 깨끗한 것을 포기해야 하고, 음악 놀이를 할 때는 조용한 것을 포기해야 하지 않을까? “나, 그림 그릴 때가 됐어요!”라고 아이가 말하지 않는 이상, 미술의 시작은 엄마가 바르게 꿰어 주어야 할 첫 단추라는 것을 기억하고 그 시작을 눈여겨보자. 이 시기는 무엇을 가르치거나 알려 주는 시기가 아니라, 그저 아이 스스로 놀게 하는 시기로 삼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채색 재료(크레파스, 색연필, 물감 등)와 표현 재료(점토를 이용한 소조 놀이, 만들기 등)를 사용하여 경험의 폭을 넓히는 시기가 되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다.

4~6세 : 구상화의 시작과 생각의 표현

3~4세를 지나면 낙서로만 보이던 그림들이 조금씩 정리되어 동그라미, 네모, 세모로 발전해 나간다. 그러다 무언가를 그려 놓고 이름을 붙이며 그림을 설명하는 아이를 만나게 된다(이름을 붙이는 난화 말기). 사실 부모의 눈에는 위아래도 구분이 안 가는 난해한 그림을 펼쳐 두고, 아이는 “이건 아빠, 이건 엄마야.”라며 자랑스레 말한다. 머지않아 눈, 코, 입을 표현한 얼굴이 나타나고 뒤이어 얼굴에 팔다리가 붙어 있는 ‘올챙이 사람’ 그림이 나타나며, 이때부터 미술에 관심 있는 엄마들은 아이의 그림에 의미를 두게 된다. ‘얘가 이쪽에 소질이 있는 걸까? 혹시 천재성이?’

3세 여아의 그림 - 올챙이 사람

점점 알아볼 수 있는 다양한 일상의 소재들이 등장하고, 자신이 흥미를 느끼는 간단한 소재를 하루하루 반복하여 그려 나가며, 도화지 위아래의 구분 없이 낱개의 소재들이 산발적으로 표현되는 시기이다.

6~8세 : 기저선(바닥선, 땅)의 등장과 이야기의 표현

6세 정도를 지나면서 아이는 자신의 그림 속에 땅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도화지 아래 부분인 땅 위에 여러 가지 소재들을 빽빽하게 늘어놓고 정작 텅텅 빈 도화지 윗부분은 하늘이라 그릴 수가 없다는 이야기를 천진스럽게 들려주기도 한다. (이후에 산을 그리기 시작하면 산 아래를 모두 바닥면으로 인지하게 된다.) 땅을 인지하였기에 하나의 장면을 이야기로 풀어내는 주제화가 가능해지지만, 반복적인 틀 속에 갇히게 되는 경우가 많이 생기는 시기이기도 하다.

6세 남아의 그림 - 바닥선의 표현 || 7세 여아의 그림 - 산과 공간의 표현

아이 혼자 그리고 싶은 것을 그리도록 놓아두면 항상 같은 그림이나 소재를 반복하여 그리기도 한다.
* 남아의 경우 - 사냥하는 그림, 말 타기, 우주선, 전쟁, 로봇, 자동차 등
* 여아의 경우 - 공주, 집, 꽃밭, 가족, 엄마 등

(왼쪽부터)8세 남아의 그림 - 사냥하기, 7세 남아의 그림 - 우주전쟁, 6세 여아의 그림 - 공주와 왕자

아이가 이러한 틀 속에서 벗어나려면 엄마의 도움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스케치북만 새것으로 바꾸어 줄 것이 아니라, 아이의 곁에 앉아서 아이의 그림 속으로 함께 들어가야 그 역할을 할 수 있다. 반복적인 틀에서 벗어나려면 아이가 좋아하는 소재를 꼬리에 꼬리를 물듯 연상하여 한 주제로 유도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아이가 공주를 즐겨 그린다면 “공주는 어디에서 살까?”, “공주의 집 밖에 큰 나무가 있으면 멋지겠구나.”, “나무 밑에는 꽃밭을 만들어 줄까?” 하는 식으로 공주에 묶여 있던 아이의 시각을 넓혀 주는 방법이 그것이다. (공주 - 사는 집 - 집 옆의 나무 - 나무 밑의 꽃밭 - 나비나 벌 - 왕자의 방문 - 행복한 결혼식…)

단, 이렇게 이야기를 가진 주제화로 영역을 넓혀 주려면 소재 표현력이 꼭 뒤따라야 한다. 동물들을 못 그리는데 동물원을 어떻게 그릴 수 있으며, 물고기를 못 그리는데 바닷속의 모습을 어떻게 그릴 수 있을까?

8세 여아의 그림 - 소재의 연습(바닷속 동물) 8세 남아의 그림 - 주제로의 활용(바닷속 모습)

‘많이 보고 경험하는 것’ 또한 소재를 발전시키는 데 큰 몫을 한다. 책 속에서, TV를 보면서, 야외 활동을 통해서 많은 것을 보고 경험한 후에 도화지로 아이의 생각이 드러나도록 하자.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 시기의 아이에게는 사실적인 모양보다 심상적인 의미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는 물체를 보고 똑같이 그리는 것이 아니라, 머릿속에서 생각하여 자신이 그릴 수 있는 형태로 재구성하여 표현하기 때문이다. 컵 손잡이가 안 보여도 손잡이를 보란 듯이 그리고, 하나의 그림 안에서 식탁은 옆모습으로 침대는 위에서 본 모습으로 그리기도 한다. 자동차 바퀴 네 개를 나란히 그리기도 하며, 빨리 달리는 사자의 다리는 수십 개로 그리기도 한다.

7세 여아의 그림 - 식탁의 펼친 그림 | 7세 여아의 그림 - 의자의 심상 표현

어른의 눈에는 오류이자 문제로 보일 수도 있지만, 아이만의 해결 방법이므로 섣불리 지적하거나 수정하려고 한다면 미술에 자신감이나 흥미를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아이의 눈높이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한 시기이다.

8~10세 : 좀 더 다양하고 좀 더 자세하게

소재의 표현과 주제의 활용이 익숙해지는 아이들은 취학 후 더욱더 다양하고 폭 넓은 그림을 그리게 된다. 취학 후 미술 학습이 학교에 맡겨지고, 엄마에게서 선생님에게로 그 역할이 넘어가지만 미술은 부모의 도움을 계속 필요로 한다. 초등학교 1~2학년을 거치면서 그리던 소재들이 점점 정확해지고 패턴화되며 장식성이 풍부해진다. 만화나 캐릭터를 묘사하는 경우도 많고, 간단한 입체의 표현이나 원근이 표현되기도 하는 ‘아동화의 르네상스 시기’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왼쪽부터) 10세 여아의 그림 - 장식적 표현(나의 모습)/ 9세 여아의 그림 - 시점 혼용과 입체 표현(피아노 학원) / 9세 여아의 그림 - 원근 표현(농장의 하루)

이렇게 모든 아이들이 미술의 시기를 잘 밟고 지나간다면 걱정이 없겠지만 현실은 그리 녹녹하지 않다. 제 시기의 미술적 경험이 충분하지 못하면 아이의 표현력은 그 자리에 멈추게 된다. 미술은 나이와 발맞추어 같이 발전하는 능력이 아니라 경험과 반복를 통한 학습이기 때문이다. 여아가 남아보다 1~2년 이상 미술적 표현력이 앞서는 이유도 그림이 앉아서 노는 여아에겐 ‘놀이’, 뛰어 놀아야 하는 남아에겐 ‘일’이기 때문이다. 자매나 남매, 형제의 경우는 서로가 그림 친구가 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부모가 그 역할을 대신 해 주어야 하는 것을 기억하도록 하자.

10세 이후 : 미술의 정점을 지나 종점에 도달한다

초등학교 3학년을 지나면서 아이들은 미술과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된다.
1. 미술은 이제 부모님의 관심 밖으로…. (공부에 집중해야 하는 시기로 판단함)
2.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글이나 말로 수월하게 대체됨)
3. 그림을 그릴 시간이 없다. (다른 사교육의 우선순위에서 밀림)
4. 미술 말고도 놀 거리가 많아진다.

위의 몇 가지 문제와 더불어서 아동화의 종지부를 찍도록 만드는 원인은 바로 ‘입체 표현의 문제’이다. ‘내가 보는 것과 내가 그리는 것이 같지 않다는 것’, ‘하지만 보이는 대로 그려 낼 수는 없다는 것’, ‘그림은 더 이상 내게 만족을 주지 못하고 창피함으로 남는다는 것’이 미술의 흥미를 급격하게 떨어뜨리게 된다. 생각보다 입체의 벽은 단단하고 높은 것이라 많은 아이들이 이 벽을 넘지 못하고 아동화의 마지막 시기를 만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왼쪽부터) 9세 여아의 그림 - 우리 집 / 9세 남아의 그림 - 과수원 / 9세 여아의 그림 - 연필깎이 (보고 그리기)

초등학교 3, 4학년 정도가 되면 “선생님, 제 그림이 뭔가 이상해요. 그런데 어딘지는 잘 모르겠어요.”라는 푸념 섞인 이야기를 자주 듣고는 한다. 머릿속으로 재구성하여 소재마다 각각 쉬운 방향으로 그리던 아이가 입체에 눈을 뜨면서 아동화의 마지막을 맞게 되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열쇠는 찾는 자가 구하는 법이다.

다음 회에서는 아동화 시기의 ‘재미있는 오류들’과 특징을 통해 ‘아이와 눈높이를 맞추는 방법’을 알아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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