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오늘날의 우리는, 특히 한국사회에서의 우리는 왜 쉽게 순응적이거나 아니면 냉소적으로 되어가는 걸까요? 여기에도 많은 요인이 있겠지만, 내가 보기에 그것은 무엇보다 현실에 대한 자기무장의 방식이 서툴러서이지 않는가 합니다. 복잡한 현실에 대항하는 대응방식은 간단할 수가 없지요. 간단해서도 안 되구요. 압도적 현실에 대해서는 한두 가지 다짐으로 맞설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현실과 대응할 수 있을까요? 이와 관련된 얘기 하나 할까요?
노벨문학상을 탄 영국의 작가 도리스 레싱(Doris Lessing) 인터뷰 기사를 LRB(London Review of Books)에서던가 어디에서 본 일이 있습니다. 그때 신문에 실린 사진이 아주 흥미로웠습니다. 도리스 레싱이 계단에 쪼그리고 앉아서 얘기하던 모습을 찍은 사진입니다.(이것이 재미있어서 그 무렵 경향신문의 문화컬럼에 쓴 적이 있어요. ‘도리스 레싱’으로 검색하면 그 글이 나올 겁니다.) 이 여든의 할머니는 자기가 노벨상을 탄 것도 모른 채 시장바구니를 들고 돌아오다가, 웬 사람들이 자기 집 앞에 모여 있는 걸 봅니다. 수십 명 되었던 그 사람들은 각종 신문사나 방송국에서 특파된 기자들이었죠. 기자들이 인터뷰하자니까, 할머니가 집을 미처 치우지 못했는지, 거실이 누추하니 그냥 여기 계단에서 간단히 인터뷰하자고 한 거죠. 그냥 거기에서 쪼그리고 앉아서 말이지요. 그 사진을 보니까 외부의 보상과는 무관하게 자기 길을 걷는 이들의 어떤 품위 같은 게 느껴졌습니다. 이것은 매년 노벨상 발표 며칠 전이면 기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이번에 타면 어떻게 될까’를 말하는 한국의 작가들과는 판이하지요?
삶의 품위란 행위의 자연스러움에서 오고, 이 자연스러움이 쌓일 때 진실은 드러나지요.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진실성, 그것은 아름다움의 표현이지요? 그렇습니다. 아름다움은 자연스런 행위의 진실성이 오래도록 쌓인 결과지요.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고 제 갈 길을 뚜벅뚜벅 가는 데서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구요. 그래서 ‘고귀하다’는 느낌을 갖게 하지요. 그리고 이 고귀한 느낌이 그 사람의 존엄성과 품위를 보장해주는 것입니다. 한 사회의 지적 문화적 전통이란 이런 존엄성과 품위의 예가 여럿 더해지고, 역사적으로 쌓여갈 때, 비로소 생겨나는 것이겠지요. 여기에는 오랜 시간적 숙성이 필요합니다.
그 두세 해 뒤엔 노벨문학상을 독일작가 헤르타 뮐러(H. M?ller)가 받았는데, 그녀의 인터뷰를 「Die Zeit」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이것 역시 ‘ 헤르타 뮐러의 작업방식’이란 제목으로 경향신문에 쓴 적이 있습니다.) 뮐러에게 스웨덴 한림원에서 전화가 걸려옵니다. 수상 소식을 알려주면서 그 소감을 물어보려고요. 뮐러는 “수상을 예상치 못했습니다. 소감의 내용은 앞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라고 대답하지요. 노벨상을 탄 뒤에 기자들이 그녀에게 자꾸만 묻습니다. ‘당신 문학은 이제 세계문학의 지위를 얻게 되었는데, 수상 전과 수상 후에 뭐가 가장 변했느냐?’고요. 그러자 뮐러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내 문학은 그 전에도 세계 문학이었는걸요, 나는 이 세계 안에 살면서 작업했으니까요. 하하하.” 저는 그녀의 대답에서 외적 보상이나 평가와는 무관하게 자기세계를 만들어가는 고집과 자부심 같은 것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흐뭇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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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좋거나 아름답거나 진실한 것을 너무 쉽게, 또 안이하게 얻으려 하거나, 혹은 대가를 염두에 둔 채 추구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어떤 일을 하는데 목적이 없을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좋은 일의 이유를 어떤 가시적 목적과 물질적 대가에 제한시키는 것은 헌신하려는 일의 진실성을 깎아내릴 수도 있습니다. 칸트가 아름다움을 두고 ‘무목적적 목적성’이라고 말한 것은 이 때문 아닐까요? 어떤 일정한 가치를 지향하되, 동시에 그 너머로까지 사고는 열릴 수 있어야지요. 적어도 이상적으로는 말이지요. 말하자면 ‘형이상학적 열망’이라고나 할까요? 참된 예술적 체험, 그리고 심미적 경험에는 여하한의 유용성과 실용성을 넘어서는 이런 깊은 울림이 있습니다. 세계 지성사를 보면, 사상가든 예술가든, 큰 일을 한 사람 중에 이런 외적 반대급부와 무관하게 자기 길을 가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지요. 또 다른 각도에서 말하자면, 그것은 모든 예술적 문화적 정신적 성취에 말할 수 없는 오해와 멸시와 소외의 흔적이 배어있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저는
『렘브란트의 웃음』에 도연명의 「귀거래혜사」를 인용했는데요. 그의 나이 42세 때 쓴 시죠. 그는 귀향해서 누구에게 호령을 내리고 사는 것이 아니라 술잔을 기울이고 창밖을 내다보는 걸 즐깁니다. 그 시의 후반부는 이렇습니다.
서성이며 어디로 가려는 것인가
부귀는 나의 소원 아니고
임금의 고향 기대할 수가 없네
좋은 때 사랑하여 외로이 다니고
때로는 지팡이 꽂아놓고 김을 맨다네
동쪽 언덕에 올라 휘파람 불고
맑은 강가로 나가 시를 짓는다네
이렇듯 변화 타고 인생 다할 때가지 가려거니와
천명을 즐기는데 또 어찌 의심하랴시인이 돌아온 것은 즐기면서 스스로의 삶을 만들기 위해서죠. 늦어버렸지만 이제라도 하려고 하는 거죠. 말하자면, 여기에도 자기형성의 기쁨이 녹아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썼습니다.
“하늘의 운명을 즐기는 것은 지금 여기를 떠나 드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책 속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념 속에 든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내 사는 곳의 동네와 그 주변을 거니는 것이고 여기 있는 땅과 하늘, 소나무와 구름과 햇빛을 즐기는 일이다. 깊은 즐거움은 사람의 운명이 하늘의 운명과 합치되는 일상에서, 이 일상의 열락에서 생겨난다. 그것은 속정(俗情)이나 권력에 야합하여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 아니라, 사물들처럼 자연의 운행을 좇아 자기 삶을 주형하려는 태도이다. 이것은 매우 단순하면서도 그러나 많은 것이 현실적으로 그렇지 않다는 점에서 매우 어려운 것이다.”제가 지금은 대학에서 학생들과 만나고 있지만, 대학임용을 위한 지원에서 나는 여러 차례 ‘자격이 없는’ 것으로 간주된 사람이었습니다. 그때그때 대학임용에 필요한 논문을 쓴 것이 아니라 제가 절실하다고 여기고 생각한 글을 썼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하나의 결단이었죠. 말하자면 손해는 말할 것도 없고 이런저런 오해를 감당해야 했으니까요. 제게 중요했던 것은 논문 몇 편 쓰는 것이 아니라 일정한 계획에 따라 책을 쓰고, 그 끝에 내 나름의 미학세계를 만들어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세 가지 방향에서 책을 썼던 것이구요. 그러나 강사료 받아 매달 생계를 꾸려가는 것은 간단치 않았지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는 기쁨에 다른 모든 것은 그 당시의 내게 사소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다시 그렇게 할 수 있을 지 자신이 서지 않네요.
요즘같이 변화가 빠르고 ‘효용과 실적’을 중시하는 불안정하고 전략적인 세상에서 자기를 돌볼 틈이 없다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지요. 그래도 그 흐름을 거스르면서 자기를 돌보는, 그렇게 돌보려는 사람은, 비록 소수이지만, 존재합니다. 세상에서 자기를 잃지 않고 사는 것이 독립적 인간의 자기무장이고, 가장 깊은 의미의 행복감을 주는 원천이지 않는가 싶어요. 그것은 유행이나 경향으로부터 자기를 지키면서도, 동시에 이 자기자신을 부단히 교정해 가면서 살아가는 실존적 결단입니다. 매순간의 결정은 도전이면서도 감행이고, 불안이면서 자유의 실천이기도 하지요.
우리 삶은 가만히 있어도, 마치 모래알처럼 손가락 사이로 순식간에 빠져나가고 맙니다. 순식간에 부서지고 사라지고 흩어지는 것이 인간의 생명이고 생애의 사연들이고, 우리를 둘러싼 세계의 본성이지요. 그러므로 ‘내가 여기 있음’은 절대적으로 확실하고 절대적으로 중대합니다. 지금 여기의 내가 내 몸을 통해 만나는 나 자신과 우리의 현실 그리고 세계의 모습이야말로 우리 두 발이 딛고 선 가장 명약관화한 디딤돌이지요. 지금 여기 있는 내 실존은 현재의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 속에서 오직 나일 때, 나이고자 애쓸 때, ‘다른 나들’로 이뤄진 우리 그리고 그들과 정당하게 만날 수 있고, 이 정당한 만남을 통해 성장과 변형으로 가득 찬 삶의 경이로운 기쁨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나는 나를 키우고 깨우치며 갱신시켜 가는 일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심은 대로 얻을 것입니다. 삶은 행한 대로 조직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두 가지를 말하겠습니다. 정 피디가 나에게 반성을 말하면서 왜 이 책
『렘브란트의 웃음』에서 ‘행동’과 ‘책임’에 대해선 별로 말하지 않느냐고 물었지요. 그것은 정확하게 보았습니다. 저는 우리 사회에서 생각의 회로와 실천의 회로, 그리고 이 생각과 행동을 잇는 상호통로가 지나치게 일차원적인 게 불만입니다. 이킷과 실천 사이의 연결고리는 지극히 간단할 수도 있지만, 사실은 사람 수만큼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생각이 있으면 우리는 이 생각을 어떤 행동으로 즉각적으로 옮기길 요구합니다. 옮기길 요구할 뿐만 아니라 즉각적으로 드러나길, 그래서 어떤 눈에 띄는 효과를 보여주길 원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요구가 그렇게 나타나길 바라는 효과보다 더 억압적일 수도 있습니다. 말하자면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조급증이 심한 것이죠. 혹은 전(全)사회적 강박증이 편재화되어 있다고나 할까요? 우리 사회가 말하자면 항시적 충혈상태에 있는 것 - 전체적으로 언제나 들떠 있는 것은 그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들뜬’ 것은, 정확히 말하자면, 무르익지 않았을 때, 나타나지요. 칸트 식으로 말하면 계몽 이전의 미숙한 상태지요.
우리는 흔히 사람들에게 도덕적이길 요구합니다. 저는 강제나 명령의 언어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강제나 명령은, 간섭과 비난처럼, 폐단이 크지요. 이것은 도덕이 불필요하다거나 도덕적 행동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른바 ‘좋은 말들’도 외적으로 부과되는 것이 아니라, 또 위에서 시켜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설령 그것이 느리더라도 각자의 느낌과 사고의 자발적 동의 속에서, 차근차근 행해질 때, 폭력의 가능성이 최소화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사고도 그렇지만, 행동과 실천의 문제는 더더욱 신중해야 합니다. ‘선의’를 가진 말과 의도가, 수많은 혁명의 과정에서 보듯이, 얼마나 자주 큰 불행과 폭력으로 끝나던 것인가요? 행동으로의 전환은 성찰적으로 매개되어야 하고, 이런 매개 없이 그것이 순식간에 이뤄진다면, 그로 인한 폐해는 행동이 초래할 긍정적 결과를 능가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미안함이란 말을 제대로 하는 법에 대해서노베르트 엘리아스(N. Elias)가
『문명화 과정』이나
『궁정사회』에서 썼듯이, 예의범절, 에티켓을 포함한 규범도 사회역사적으로 만들어지고 관습적으로 주입되며 지배권력적으로 유포되는 것이지요. 그러니 ‘미안함’이란 기준이나 그에 대한 감정이나 함의도, 마치 아름다움에 대한 기준이나 판단이 그렇듯이, 각 사회마다 다르고 역사적으로 변하는 것이지요. 그러면서 동시에 각 사회 사이에 어떤 공통분모도 있습니다. 그 중의 하나는 겸손, 겸허, 솔직성과 같은 미덕이지요. 이런 미덕은 하루아침에, 그러니까 며칠 행한다고 하여 금방 체득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무례하지 말라’라는 것이 아니라, 예절의 필요성뿐만 아니라 이런 규범이 지닌 억압가능성을 동시에 헤아리는 것 자체가 무례를 줄이는 일이기도 합니다.
시인 김수영은
“시를 공부하는 것은 전체를 공부하는 것”이라고 쓴 적이 있습니다. 전체를 본다는 것은 삶을 ‘온전하게’ 보는 것이겠지요. ‘온전하게’라는 말에서 우리는 무엇을 먼저 떠올리나요? 저는 ‘동그라미’를 떠올립니다. 둥근 원은 무엇을 뜻하나요? 그것은 완벽성이나 완전함의 표상 아닌가요? 혹은 원만하여 모든 것이 충족된 상태 같은 것을 말하지요. 다시 말해 그것은 전체(totality/Totalit?t/das Ganze)지요. 그리하여 ‘온전하게 본다는 것은 삶을 일정한 균형감 속에서, 어딘가에 기울어지지 않은 채, 비편향적으로 본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는 대상을 그렇게 온전하게 보려고 노력할 때, 자기 스스로의 삶도 온전하게 살 가능성이 높습니다. 삶은 나와 너, 우리와 그들 사이의 일정한 균형 속에서 부단히 조정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실 사람이 보는 대부분의 것은 온전한 것이 아니라, 부분적이고 현상적이고 파편적이지요. 부분적이고 파편적인 것 위에 자리한 옳음이 ‘온전한 옳음’일까요? 그렇기 어렵습니다. 그것은 부분적 정당성이요. 사실 인간의 현실에 일어나는 거의 모든 갈등은 하나의 부분적 정당성과 또 하나의 부분적 정당성 사이의 무모한 싸움입니다. 사람이 아는 것은, 또 말하는 것은, 지금 제가 말하는 내용처럼, 기껏해야 조각난 진리의 덩어리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 덩어리를 때로는 옆으로, 마치 아무 것도 아닌 것처럼, 제쳐둘 수도 있어야 합니다.
온전함을 갖기 힘든 인간이 부분적 정당성에, 그래서 조각난 인식에 의지하는 것은 이해할 만합니다. 또 그때그때의 현실적 절박함은 우리가 겨우 얻은 부분적 정당성에 온 몸을 던지게 만들지요. 그러나 그렇게 부분적 정당성에 의지하면서도, 각자가 기댄 그 정당성이 ‘정당성의 전체’는 아니라는 것, 더 크고 더 높은 정당성은 또 있을 것이고, 따라서 더 탐색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삶의 온전함을 위해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부분적 정당성에 대한 당장의 확신이 초래할 오류와 폭력의 가능성을 줄여주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우리 사회에서의 진선미의 기준은, 많은 경우, 협애한 자기이해(自己利害)의 관철수단이 되어 있지요. 혹은 정의를 가정한 사적 이해의 다른 표현들일 따름이지요. 그리고 그 정열이 격앙될수록, ‘국민’이나 ‘대의’를 전면에 내걸지 않나요?
우리는 부분적 옮음에, 이 옳음을 가장한 온갖 슬로건과 플레카드에 너무 도취되지 말아야 합니다. 집단 혹은 사회 전체의 문제에 관한 한, 우리는 더 냉정해야 합니다. 사회의 문제를 과열된 집단열정을 통해서가 아니라 차가운 개별이성의 구축을 통해 점진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기에서 시와 그림과 음악에 대한 절실한 체험은, 마치 마음의 잔잔한 파문처럼, 느리고 모호하게 일어나긴 하나,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이런 역할에 저는 글을 통해, 예술론을 통해 기여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