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600만 관객 육박. 2011년, 현재까지 개봉작 가운데서 최고 관객 동원 기록. 평일 관객 동원 1위. <쿵푸팬더2>, <캐리비안의 해적4>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에게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을 내주긴 했지만 꾸준히 2등 전략을 통해 스타가 없어도 콘텐츠만 좋으면 흥행에 성공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과속스캔들>로 830만 관객을 동원하며 혜성처럼 등장했던 강형철 감독은 소포모어 징크스(이년차 징크스 또는 소포모어 징크스(Sophomore Jinx)는 성공적인 첫 작품활동에 비해 그에 이은 작품활동이 부진한 경우를 가리키는 용어)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번에도 홈런을 날렸다.
<써니>는 과거를 이야기 하는 영화다. 현재 30대 이상이 되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코드들이 잔뜩 들어있다. 10대 후반에서부터 20대 초반이 영화 관객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점을 생각해 보면, 이례적인 흥행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 도대체 왜? 어떤 이유에서 <써니>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리는 것일까? 단순히 영화가 재미있어서라고 이야기 하기에는 600만이라는 숫자가 너무 크다.
영화의 재미를 떠나서 <써니>는 사람 냄새가 나는 영화다. 그리고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판타지를 극대화 하는 작품이다. 일단, 이 영화의 중심에는 우정이 있다. 어른은 아니고, 그렇다고 아이도 아닌 딱 그 중간지점인 고등학교에서 만난 친구들이다. 세상에 대한 가치관이 만들어질 때 만난, 일생에 있어서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게 될 소중한 사람들이다. 우리 중 하나를 건드리는 것은 모두에게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하는 그들의 우정은 누구나 꿈꿨을, 그리고 꿈꾸고 있을 소중한 믿음이다.
누군가에게 전적으로 마음을 열 수 있다는 설정이야말로 관객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는 가장 큰 강점이 아닐까 한다. 각박한 사회를 살아가며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심으로 누군가를 받아줄 수 있는 마음과 나의 지친 마음을 기댈 수 있는 누군가 인 것이다. <써니>는 과거를 이야기 하면서 이러한 감정선을 자극한다. 어느 순간 나는 나미가 되어 있고, 춘화가 되어버린다.
어렸을 땐 몰랐다. 나이를 먹으면, 어른이 되면 세상에 두려울 것이 없을 줄 알았다. 할 수 있는 것들도 많아지고, 거칠 것이 없을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실상은 오히려 반대였다. 어렸을 때는 용인되었던 작은 실수도 어른이 되면 일생을 좌지우지 할 만큼 큰 파장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말이다. 어른이 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어른 같은 행동을 해야 하고, 그 나이에 맞는 생각을 해야 한다는 것이 어쩌면 스트레스가 될 수도 있겠다.
피터팬 증후군이 생겨난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 모르겠다. <써니>는 이러한 갑갑한 마음을 판타지로 풀어낸다. 괴롭힘을 당하는 딸을 위해 교복을 입고 나타난 엄마의 복수극은 잔잔한 재미 이상의 카타르시스를 전한다. 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관통하고 있는 옛 친구 찾기라는 설정은 누구나 꿈꾸지만 쉽게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일이 아니던가. 모두가 행복한 결말. 그리고 모두가 즐거운 마무리. <써니>는 모두가 즐길 수 밖에 없는 꿈 같은 영화다.
누군가를 100% 믿는다는 것. 누군가의 꿈을 응원해 줄 수 있다는 것. 혹은 내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열어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 마음 속에서 얼마나 염원하고 있는 바람인지를 영화 <써니>는 보여주고 있다. 세상은 모두가 자기 중심대로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할 수 밖에 없기에, 상대를 위하는 <써니>의 정서는 감정적으로 관객들을 충분히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얘기다. <써니>를 보고 나와서 가장 먼저든 생각이 “나도 외롭고 싶지 않다” 였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에 도리질을 하고 말았다. 그래. <써니>는 모두의 꿈이고 판타지인 것이다. 그래서 영화인 것이다.
1980년대, 당시 어두운 사회의 분위기를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멋지게 포장한 감독은 분명 영리한 사람이 맞다. 관객들의 감정을 2시간이 넘는 러닝타임 동안 단 한 순간도 지루하게 만들지 않는 능력에는 박수를 쳐주고 싶다. 스타가 있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볼거리로 점철된 작품도 아니지만, <써니>는 분명 극장에서 9,000원 이상의 즐거움을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영화임에 분명하다.
현재 15세 관람가 등급을 맞추기 위해 수위를 조절했던 <써니>는 감독의 지휘아래 약 10분이 늘어난 감독 판을 준비 중이라고 한다. 청소년관람불가 등급을 예상하고 있는 감독 버전의 <써니>는 7월 개봉 될 예정이다. 많이 다르진 않겠지만 기꺼이 10분이 추가되고 편집이 달라진 새로운 <써니>도 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