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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이토록 새로운 삶] 왜 미친년은 꽃을 머리에 꽂고 행복해하는가?

중독 혹은 탐닉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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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도 마찬가지지만 동양도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미친 여자, 즉 미친년이 꽃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미친년은 들판에 가득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영화 「웰컴 투 동막골」

동구: 미친년들 특징 몇 가지 있다. 머리에 꽃 꽂았지?
이연: 안 이쁘나? 김 선상님은 이쁘다 했다.
동구: 그 말을 믿니? 미쳤네. 구릉에서 꽃 꺾어서 내려올 때 니 노래했지? 그때 죄다 니보러 미친년이라고 했다. 그 노래 한 번 더 해 봐라.
이연: (곧장 노래한다.) ‘마님 몰래 촌장님이 불러…… 내 가슴 만지면……아픈데 나아라……그믐밤 내 치마 걷어 촌장님이 만지면……아픈데 나아라…….’
(장진, 『장진 희곡집』「웰컴 투 동막골」)

1.
서양도 마찬가지지만 동양도 한 가지 흥미로운 현상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미친 여자, 즉 미친년이 꽃을 무척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미친년은 들판에 가득 피어 있는 꽃들을 보면 정신을 차리지 못합니다. 그리고는 이 꽃 저 꽃 아름다운 꽃들을 한 아름 땁니다. 그 중 꽂기 좋은 꽃을 찾아 머리에 꽂습니다. 그리고 해맑은 모습으로 마을로 내려오지요. 작은 시골 마을이라면 미친년은 보통 성욕을 해소하지 못하는 남정네들의 공적인 성적 노리개 역할을 수행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남성들의 거친 탐욕에 별다른 저항을 하지 않습니다. 저항을 했다가는 자신의 소중한 꽃들이 다치기 때문입니다. 부끄러운 성욕을 해소한 뒤 남성이 허겁지겁 사라질 때, 그녀가 신경을 쓰는 것은 오직 꽃들일 뿐입니다. 만약 꽃이 망가졌다면, 그녀는 남성에게 거칠게 화를 낼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녀는 마치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꽃을 들고 해맑은 얼굴로 들판을 뛰어다닐 겁니다.

왜 동서양을 구분할 것이 미친년들은 이다지도 꽃을 좋아하는 것일까요? 일반사람이라면 감당하기 힘든 주변의 조롱과 폭력에도 불구하고 미친년들이 꽃만 있으면 행복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미친년들 대부분이 자신이 감당하기 힘든 어떤 외적인 충격과 직면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전쟁이란 참혹한 과정을 몸소 겪었을 경우를 생각해보지요. 부모가 군인들에 의해 살해당하고, 자신도 겁탈을 당한 불행한 여자가 있다고 해보세요. 그녀는 과연 세상을 직면할 수 있을까요?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자신을 무력하게 만드는 압도적인 사건에 직면할 때, 일반 사람도 본능적으로 자신의 정신을 중지시킵니다.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것 이상의 것이 밀려들어올 때, 정신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기능을 중지시키는 겁니다. 자신을 보호하려는 비자발적인 반응인 셈이지요.

그렇지만 살아 있다면 정신의 기능은 다시 회복될 수밖에 없을 겁니다. 기절로부터 깨어난 사람은 다시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악몽을 꾼 것처럼 깨어나기를 간절히 원했지만, 냉혹한 현실은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경우 다시 기절할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기절과 깨어남을 반복할 수 있을까요.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그래서 살아가야만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아무리 해도 자신에게 거대한 쓰나미처럼 몰아닥친 불행을 맨정신으로 감당할 수 없습니다. 이 경우 우리 정신은 기묘한 전략을 씁니다. 그것은 주어진 불행을 외면하고 자신에게 위안을 주는 다른 대상을 찾아 그것에 마음을 주는 전략입니다. 영화를 본다든가, 여행을 떠난다든가, 아니면 친구를 만날 수도 있습니다. 이것저것 다 힘들다면, 독한 술을 마실 수도 있을 겁니다. 하늘을 가득 덮고 있는 검은 먹구름 사이에 얼핏 드러나는 광명을 찾는다고나 할까요.

얼마 지나지 않아 대부분의 사람은 현실에 직면할 수 있는 힘, 혹은 살아갈 수 있는 힘을 회복하게 됩니다. 이어서 그들은 불행한 현실을 가능한 한 행복한 현실로 바꾸려고 노력하게 될 겁니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불행한 현실은 절대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법입니다. 당연히 그는 불행한 현실을 직면하기를 두려워할 수밖에 없을 겁니다. 바로 여기서 미친년은 탄생하는 겁니다. 불행한 현실을 회피하려고 보았던 꽃만을 계속 응시하면서 사는 겁니다. 꽃을 제외한 모든 것은 그녀에게 거의 무(無)에 가깝습니다. 그러니까 마을 남정네들의 겁탈도 그녀에게는 아무런 의미도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꽃과 자기 자신이니까요. 여자로서 감당하기 힘든 상처가 반복될수록, 미친년은 더욱 미쳐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미친년을 완전하게 미치도록 만든 당사자들은 어쩌면 그녀의 상처를 헤아릴 생각 없이 그것을 악용했던 무지하기만 마을 남정네들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2.
미친년은 들판에서 아름다운 꽃들을 꺾기 좋아합니다. 그녀는 그 중 특별히 예쁜 꽃을 골라 자신의 헝클어진 머리에 꽂고 행복한 미소를 띄웁니다. 이런 애달픈 광경을 보면 우리는 인간의 본질 하나를 직감하게 됩니다. 미친년을 포함한 모든 인간은 행복하고 아름답게, 한마디로 말해 예쁘게 살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전체적으로 보면 미친년의 삶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피폐해져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아름다운 꽃을 좋아하며, 그것으로 자신을 아름답게 꾸밉니다. 그렇습니다. 그녀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아름답고 행복한 삶을 소망하고 있었던 겁니다. 이 점에서 그녀는 사실 전혀 미치지 않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심지어 삶에 절망하여 허무주의에 깊게 젖어 살고 있는 일반 사람들보다 훨씬 더 건강하다고까지 이야기할 수 있지요.

스피노자(Baruch de Spinoza, 1632-1677)도 『에티카(Ethica in Ordine Geometrico Demonstrata)』에서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정신은 신체의 활동 능력을 증대시키거나 촉진하는 것을 가능한 한 상상하고자 한다”고 말입니다. 그녀에게 일어났던 감당할 수 없는 과거의 사건들과 뒤이어 일어났던 인격적인 모독과 성적인 폭력은 그녀의 신체 활동 능력을 감소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활동 능력을 증대시키거나 촉진할 수 있는 무엇인가를 상상할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것이 바로 아름다운 꽃이었습니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녀가 꽃을 따고 그것으로 자신을 장식하는 능동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미친년이 꽃을 따는 행위는 무지한 성욕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드는 무력한 상황과는 정반대의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들판의 이름 모를 꽃들이 그런 무력한 상황에 처해 있으니까 말입니다.

이제야 우리는 미친년이 왜 꽃을 사랑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정리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첫째 그녀는 감당할 수 없는 불운에 마주쳤던 겁니다.(피할 수 없는 현실적 불행) 둘째 그녀는 행복한 혹은 아름다운 삶에의 본능을 포기할 수 없었던 겁니다.(행복에의 욕망) 셋째 그녀는 자신이 능동적일 수 있도록 만드는 가장 약한 대상을 찾았던 겁니다.(능동성에의 의지) 결국 미친년이 행복하게 머리에 꽂고 있던 꽃에는 너무나 많은 의미가 함축되어 있었던 셈입니다. 그렇지만 미친년이 왜 꽃을 머리에 꽂는지 확인하는 순간, 우리는 스스로 소스라치게 놀라게 됩니다. 정도상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모두 미친년의 행동을 결정하는 세 가지 계기, 즉 불행한 현실, 행복에의 욕망, 그리고 능동성에의 의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조선조 시대 암울했던 삶의 조건 속에서 여성들이 규방에 갇혀 아름다운 수를 밤새도록 놓았던 것도, 실연을 당한 어느 여성이 마치 일과 결혼이라도 한 것처럼 일에만 몰두하는 것도, 혹은 실직한 남성이 밤이나 낮이나 술만 마시는 것도, 혹은 청소년들이 온라인 게임에 몰두하는 것도 모두 미친년이 가진 내적 구조를 공유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집에 불이 나도 수를 놓고 있다면, 일을 제외하고는 일체의 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혹은 가족들이 굶어도 술만 찾는다면, 그리고 가족이나 친구와의 인간적인 관계도 모두 저버리고 오직 모니터에만 몰입한다면, 이 경우 이들은 모두 미친년이 된 것입니다. 결국 정도상의 차이는 있지만, 지금 우리는 미친년이 될 수 있는 내적 구조를 가지고 있던 겁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행복에의 욕망과 능동성에의 의지를 왜곡시킬 만큼 커다란 불행의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3.
중독 혹은 탐닉(addiction)의 메커니즘, 혹은 오타쿠(御宅, おたく)의 메커니즘이 이제 눈에 보이지 않나요. 술, 섹스, 일, 컴퓨터, 블로그, SNS 등 특정한 것에 탐닉하거나 오타쿠가 되어가는 것, 이것은 결국 완전한 미친년이 되기 직전의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세상은 다양한 사람들, 사물들, 그리고 사건들로 경험되는 법입니다. 그렇지만 무엇인가에 중독되거나 오타쿠가 될 때, 우리는 세상을 자신이 몰입하고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으로 이분화시킵니다. 그렇지만 이 경우 아직 우리는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다른 것도 있다는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불행히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 이외에 다른 것이 있다는 의식마저 잃어버리게 될 때, 다시 말해 자신이 탐닉하고 있는 것 이외의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보여서 마침내 그 존재마저도 의식되지 않게 되었을 때, 우리는 완전히 미친년이 되어버린 겁니다.

자, 이제 우리는 잠재적으로 미친년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요. 만나는 이성보다도 집에서 자신을 기다리는 애완견에 더 신경이 쓰일 때가 없나요. 자신도 모르게 조그만 소품들을 사 모으고 있지나 않은가요. 세상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별로 입을 일도 없는 옷들을 쇼핑하러 직접 매장에 가거나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지나 않은가요. 네일 아트점에서 손톱을 형형색색으로 가꾸지 않으면 불행하다는 느낌이 들지나 않는가요. 세계라는 거대한 다양성의 세계를 외면하고 무엇인가 작고 귀여운 것에만 점점 더 시선이 가고 있다면, 여러분은 분명 조금씩 조금씩 미친년이 되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자본가들이 이런 메커니즘을 놓칠 리가 없지요. 들판에 흐드러지게 핀 다양한 꽃들을 대신해서 그들은 작고 깜찍한 소품을 여러분의 눈 앞에 펼쳐 놓습니다. 사는 게 힘들고 무거워 버겁다면, 이것을 구매하면 된다고 유혹하면 말이지요.

『에로티즘의 역사(L'histoire d'erotisme)』에서 바타이유(Georges Bataille, 1897-1962)는 말했던 적이 있습니다. “금기의 대상은 금지되었다는 사실 그 하나만으로 강력한 욕망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고 말이지요. 인간의 욕망이란 얼마나 당당합니까? 금지된 것, 그래서 도달하기 어려운 것에 대해서 인간은 금지를 넘어 그것에 도달하려고 목숨을 거는 법입니다. 그렇게 험준한 아이거 북벽이나 에베레스트에 인간이 오르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일 겁니다. 금지는 인간의 불타는 투지에 기름을 끼얹는 법입니다. 그냥 길을 갈 수도 있었지만, “들여다보지 마시오”라는 경고문은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아두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입니다. 금지나 제약에 직면하면 인간은 자신의 자유와 능동성이 위축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금지나 제약을 넘어서지 않는다면, 인간은 자신이 불행하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러니 금지와 제약을 넘어서려고 하는 겁니다. 행복하고 싶으니까 말입니다.

미친년을 만드는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피할 수 없는 현실적 불행’입니다. 바로 여기서 엄연한 현실을 외면하고 깨알 같은 행복을 추구하려는 유혹이 발생합니다. 이런 유혹은 우리를 서서히 미친년으로 만들어갈 겁니다. 그렇지만 과연 절대적으로 ‘피할 수 없는 현실적 불행’이란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노력도 해보지 않고 ‘피할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래서 피할 수 없을 것 같지만 현실적 불행에 과감하게 맞서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부분은 현실적 불행을 돌파할 수 있는 실마리가 보일 겁니다. 물론 이런 과감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현실적 불행이 극복되지 않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을 수가 있습니다. 오직 이때에만 주어진 상황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할 겁니다. 이 경우 우리는 미친년이 되지는 않습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모두 해보았으니까 말입니다. 에베레스트 정상 문턱에서 다시 돌아온 산악인들 중 머리에 꽃을 꽂고 다녔다는 말을 들은 적도 없습니다. 극복하기 어려워 보이는 현실에 온몸으로 부딪혀 보세요.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건강한 정신을 가질 수 있을 테니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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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강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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