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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혜윤의 호모 콰이렌스]한국에는 왜 룸살롱이 많을까?

사회가 행복해야 나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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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가 자유로운 시대인 것 같지만 노예적 삶을 살고 있다면 사실은 자유가 없는 겁니다. 이럴 때 ‘마음을 고쳐 먹는 게 중요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정혜윤(이하 정) : 모든 조건이 완벽해야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리고 사적으로 큰 불만 없이 비교적 행복감을 느끼는 사람도 공적인 행복을 생각해야 합니까?

김선욱(이하 김) : 제 삶을 잠깐 말한다면 사람들이 흔히 저에게 온실 속에서 자란 사람 같다고 합니다.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웃습니다. 저는 평탄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습니다. 이를테면 아버지에 대해 쓴 글을 읽으면 울컥합니다.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를 읽다 보면 아버지가 죽기 전에 아들이랑 같이 강에 가서 미역 감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것을 도서관에서 처음 읽었을 때 울컥했습니다. 그것이 까마득한 오래전 일인데도 지금도 그 책 이야기를 하니 가슴이 아려 옵니다. 아버지에 관한 한 어린 시절이나 지금이나 해결되지 않은 문제들이 내 마음에 깊숙이 남아 있습니다. 제가 대학을 마치고 유학을 다녀오니까 제 후배가, 저보다 훨씬 유복하고 삶의 조건이 좋은 후배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저도 선배님처럼 집에서 빵빵하게 도와줘서 공부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고요. 그래서 제가 숟가락을 내려놓으면서 당신 나에 대해 뭘 알아? 하고 물었지요.

저는 대학 때부터 제 용돈이며 학비를 스스로 벌어야 했습니다. 결혼할 때도 필요한 돈을 전부 빌렸습니다. 살면서 그 돈을 갚아나갔지요. 유학도 부모님이 도와줘서 간 것이 아닙니다. 저는 유학 다녀온 후에 기거할 집조차 없이 어렵게 공부했습니다. 다녀와서 대학에 자리 잡지 못해서 학원 강사를 하며 생활을 꾸렸습니다. 삶에 굴곡이 많았습니다. 제가 유학 간 곳은 미국 버펄로에 있는 뉴욕 주립대였고 그 학교에 한국인 유학생이 100명 정도 되었는데 숭실대 출신은 저 하나였습니다. 모두 서울대나 연세대 고려대를 나왔습니다. 명절 때면 서울대나 연세대 고려대 학생들은 따로 모입니다. 그런데 서울대 모임에서 자꾸 저를 불러요. 하루는 누군가 그러더군요. 아니 부인이 숭실대 출신이라는데 어떻게 만났어요?

그래서 저도 숭실대 나왔는데요. 그러니까 아!하고 놀라더군요. 저도 놀랬습니다. 제가 숭실대 출신이란 걸 생각도 못한 거죠. 결국 저는 출신 대학에 관계없이 학생들이 모두 모일 수 있는 한인 학생회를 만듭니다. 물론 제가 불행해서거나 제 필요에 의해 만든 것은 아니고 그게 있으면 좋겠단 단순한 생각에서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얼마 있다가 아이엠에프가 터졌습니다. 그때 학생회가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큰 차이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교무처장의 도움으로 한인 학생들이 등록금 분할 납부 등에서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겁니다. 돌아와서 대학에 자릴 잡고 저는 주로 정의나 윤리 문제를 가르쳤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 것이냐? 를 따지는 일을 하다 보니 골치가 좀 아팠습니다. 그런데 행복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지나온 삶까지 풍성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행복은 삶의 조건이 완벽해진 후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행복이 가능함을 믿고 행복이 좋은 것이란 것을 믿고 삶에 최선을 다할 때 나왔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말하는 공적 행복이란 어떤 시민단체에 가입하라거나 억지로 봉사 활동을 하란 말이 아닙니다. 누구나 공적인 활동에서 기쁨을 느낀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보통은 사적인 생활에서 행복을 느낍니다. 이를테면 제가 지금 광명에 사는데 개발 제한 구역이라 산이 보입니다. 게다가 시장이 가까워서 그날 빚은 장수 막걸리도 마실 수 있습니다. 파전 하나 부쳐서 아내랑 장수 막걸리 마시면 행복합니다. 시장에 장 보러 가서 과일장수 야채장수 아저씨랑 사는 이야기 하면 행복합니다. 그런데 하루는 집에서 아이들하고 문제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했죠.

그럼 너 내가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그동안 너한테 준 자유를 다 뺏을 거다. 이렇게 말했더니 아이는 또 이렇게 대꾸합니다. 그럼 나도 저항할 거예요. 결국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하라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그때 깨달았죠. 아 ! 이건 다른 차원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문제구나. 아들의 말은 자신을 주체로 인정해달란 뜻이겠죠. 아들을 정말 동등한 주체로 대하지 않으면 문제가 풀리지 않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뒤로 아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서 아들과 친구같이 지내니 많은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공적 행복이란 이렇게 다른 차원으로 생각해 보자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예도 있습니다.

꽤 오래전의 일입니다. 시간강사시절, 어느 대학에서 교양철학을 강의하고 있었습니다. 수강인원이 100명이 넘는 강의였고, 저는 학생들에게 철학을 흥미 있게 가르쳐야 할 의무를 느끼고 있었습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를 보기는 했지만 그 외에도 학생들에게 리포트를 한 두 개씩은 쓰게 하는 과제를 내는 게 제 습관이었습니다. 그리고 학생들이 내는 과제는 아무리 양이 많아도 반드시 읽어 보는 것도 제 습관이었습니다. 그때는 한 번은 비교적 짧은 책 한 권을 읽고 쓰는 과제와, 영화 두 편을 보고 특정한 관점에서 비교하도록 하는 과제 두 가지를 내 주었습니다. 물론 학생은 두 과제 모두 다 해 내야 좋은 결과를 받을 수 있었지요. 상대평가였으니까요.

그 두 개의 과제 가운데 하나를 영화 보기로 설정했던 것은 학생들이 좀 더 편하고 즐겁게 주어진 철학적 내용을 숙고하도록 하게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영화 보는 걸 싫어하는 학생은 없기 때문이죠. 책 보다는 아무래도 영상매체가 더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제출된 리포트를 읽다가 깜짝 놀라는 일이 있었습니다. 어떤 리포트가 “이 리포트를 작성하는 것은 제게는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라고 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내가 내 준 과제가 어떻게 그 여학생에게 고통으로 다가갔는지 궁금하였습니다. 놀랍게도 그 학생은 영화를 보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학생이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고, 그냥 영화든 TV이든 영상 매체 자체를 싫어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학생의 집에는 비디오가 없었지만 과제이니 할 수 없이 어찌어찌해서 영화 두 편을 다 보고 글을 쓴다고 하였으나 특히 제가 보라고 했던 두 영화 가운데 하나인 우리 영화 <유령>은 정말 보기가 힘이 들었던 모양입니다. 그녀의 리포트를 읽은 뒤 저는 미안한 마음이 되어 다음 시간에 수업시간을 빌어 그 학생에게 사과를 했었고, 그 다음 학기부터는 영화를 싫어하는 학생이 있다면 다른 매체를 활용하여 과제를 하도록 옵션을 제공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드리는 이유는, 사람들은 정말로 다르고 또 다양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 특히 영화를 보면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영화를 싫어하는 것이 잘못이거나, 그런 사람을 별종처럼 취급하여 이상하게 만들어야 할 이유나 근거도 물론 없습니다. 그건 취향의 문제이니까요. 이처럼 우리는 살아갈 때 각자가 추구하는 행복의 대상도 다양합니다. 그저 맛난 것을 먹으면 행복감을 크게 느끼는 사람도 있고, 또 무슨 일이든 나서서 하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고 답답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행복의 대상이 다양하듯, 그 대상이 주는 행복의 종류도 다양한 데, 그런 다양성의 근거는 곧 사람이지요. 사람 자체가 다양하니까요.

저는 『행복의 철학』에서 ‘다차원적 관점’을 가져야 한다는 주장을 핵심 테제로 삼았습니다. 그리고 그 책에서 집중했던 것은 ‘공적 행복’이었구요. 하지만 공적 행복 또한 여러 행복들 가운데 하나일 뿐, 다른 모든 것을 대체할 절대적 행복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람이 다양하듯 어떤 사람은 NGO 활동 등을 통해 큰 행복을 느끼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그저 작은 수입에 만족하면서 스스로 자족하며 영화보기나 음악, 혹은 맛난 커피 즐기기 등과 같은 것에서 큰 기쁨을 느끼며 살아가기도 합니다. 맛난 커피 사랑에 자신의 인생을 걸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마도 혁명이 일어난다 해도 한 잔의 맛난 커피가 주는 기쁨을 맛보는 시간을 포기하지 않으려할 것입니다. 제가 커피를 워낙 좋아하니까 그런 사람의 심정을 잘 이해할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추구하는 행복을 이루기 위해 그 행복을 가져다주는 일에만 집중해도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잘 압니다. 오늘날 대학에는, 특히 인문학 분야에는 많은 비정년 교수(시간강사)들이 있지만 이 분들이 정년직 교수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연구하고 또 논문과 책을 쓴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열심히 연구하고 논문과 책을 쓰는 일이 좋은 학자의 조건일 수는 있지만 개인의 노력으로 그 목표를 이룰 수 있겠지만 정년직 교수가 되는 것은 제도의 문제이고 제도에 변화가 없는 한 유능한 학자들을 모두 정년직 교수로 활용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소위 88만원 세대라는 청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작게 벌어 작게 쓰면서 소소한 기쁨에 맡기는 삶에 만족하지 않는다면 그러한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들여다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제도를 변화시킬 힘은 개인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모임에서 나오고 조직적 대처를 통해 성취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생각이 되고 관심이 돌아간다면 우리는 공적 측면, 정치적 차원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이런 문제들을 공적으로 해결이 성공적으로 되었다 칩시다. 그러면 사람들은 다시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행복에 몰두하고 공적인 일에는 무관심한 상태로 돌아갈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겠지요. 하지만 이런 것은 허구이며, 자기 앞에 놓은 현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것이지요. 우리의 개인적 삶은 이마 다른 사람들과 함께하는 삶 속에서만 존립하는 것이며, 우리가 개인이 되는 것 자체가 사회화 과정을 이미 거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개인의 삶은 이미 공적 영역 속에 있는 것이고, 그런 만치 우리는 공적인 차원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공적 차원은 정치적 문제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다른 사람들과 사회적 문제, 가치의 문제, 함께 살아가며 발생하는 소소한 일들을 해결해가려는 노력을 하는 가운데 부딪히는 일들에 관심을 쏟을 때 이미 공적인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지요.

아파트라면 반상회나 입주자회의, 학교라면 학생회의 일 등도 공적인 일을 다루는 훌륭한 영역이고 공적 행복을 맛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물론 이런 일들을 통해 개인 혹은 집단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관심이 있다면 공적 차원과는 거리가 있지만 말입니다.

제가 공적 행복을 강조하고 싶은 것은, 개인의 행복에만 몰두하는 이들이 모두 한 사람도 빠짐없이 공적 행복에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는 주장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닙니다. 개인의 자신의 삶에 몰두하다가 만나게 되는 어떤 문제들은 개인의 차원에만 몰두해서는 결코 해결되지 않으므로 우리의 시야를 돌려 다른 차원을 들여다 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그때 우리는 공적 차원을 만나게 된다는 것을 우리가 알 필요가 있다는 것과, 또 이런 공적 차원에 대한 관심을 우리에게 번거로움이나 고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개인적 차원에서 경험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행복을 제공해 준다는 것을 주장하고 싶었습니다.

어쩐 일인지 우리 사회는 어린 시절부터 이런 공적 행복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한 경험으로 나아가는 것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분위기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학에서 과대표를 맡는다는 것은 많은 용기를 필요로 합니다. 특히 다른 사람들이 나를 우습게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극복할 용기가 필요합니다. “쓸데없이 제 시간 낭비하면서 저런 일이나 한다.” “저거 해서 교수들에게 잘 보여 학점 잘 받고 장학금 얻으려 한다.” “저 녀석은 그저 나서기를 좋아하는 녀석이야.” “웃긴다. 뭐 하러 그런 일 하나. 쓸데없이.” 등등. 이런 분위기는 초등학교 때부터 대통령 선거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모든 단계에서 느낄 수 있는 일이기도 합니다. 아마도 이런 일들을 아무런 거리낌 없이 선택할 수 있는 사람들은 정치가들 밖에 없다고 생각될 수 있고, 그런 점에서 정치가들은 우리의 일차적 조롱의 대상이 되기 쉽습니다. “너, 참으로 정치적이야!”라는 말은 결코 칭찬일 수 없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런 일들은 다 필요한 일일뿐만 아니라 중요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성격의 일들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고 그것이 가진 긍정적인 측면을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책에서는 자유, 세계화, 시민 연대, 사랑, 평화, 핵문제, 종교 등과 같은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가운데 어떤 문제는 독자들에게 심각히 다가올 수 있지만 어떤 문제들은 아주 거리가 먼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에 이런 일들이 자신의 문제의 중심에 들어올 수 있고, 그러기 때문에 이런 사안들에 대해 미리 조금씩은 생각해 둘 필요가 있으리라 봅니다.

저는 제 수업을 듣는 학생들과 공적 행복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그들 가운데 공적 행복을 경험해 본 학생이 얼마나 되는지를 물어보았습니다. 30여명 되는 학생 가운데 오직 3명만이 손을 들었습니다. 이 가운데 공적 행복과 공동체적 행복(2002년 월드컵에서 경험했던 것과 같은 집단적 행복)을 구별하지 못한 경우를 제외하면 오직 2명의 학생만이 공적 행복을 경험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2명 가운데 한 명은 사회복지학을 전공하는 졸업반 학생이었습니다. 그는 어느 지역에 실습을 나가 시설에서 살고 있는 중증장애인들에게 사회에 나가 살아보도록 하는 체험을 하게 했습니다. 그 제안이 실현되려면 주민센터 등과 같은 관련 기관의 도움이 필요했기 때문에 거기서 활동하는 사회복지사들과 공무원들을 찾아다니며 설득을 했다고 합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시설에서 잘 살고 있는 장애인들이 왜 험난한 사회에 나가 사는 경험을 해야 하는 지를 이해하지 못했으나 그는 끈질기게 설득해 내었고, 결국 그들의 협조를 얻어 내어 자신의 제안을 실현시켰습니다. 이러한 일을 만들어 내는 것은 자신이 계획했던 일을 실현하는 데서 오는 성취감도 포함되어 있지만, 이 일 자체가 제도적 차원에서의 노력을 요구했던 일이며 많은 사람들의 협력을 이끌어 내어야만 하는 일이었기에 이 과정에서 그는 개인의 이익이나 개인적 차원에서의 기쁨과는 다른, 공적 활동을 통해 어떤 행복감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공적 행복입니다.

공적인 일에 관심을 가져 본 일이 없는 이들은 이런 공적 행복을 경험해 볼 기회가 없었던 이들입니다. 공적 행복은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의외로 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그런 것이 있는지도 모르며, 그 길로 나아가기를 거부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런 길로 나가는 것이 우리에게 이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행복을 경험하게 해 줄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정 : 행복에 관한 한 개인의 내면에 비중을 둔 심리학적 접근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심리학적 접근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시는 이유는요?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영화 「8밀리」


김 : 일단 개인의 심리는 너무나 다양합니다. 반드시 예외가 존재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해볼 수도 있습니다. 슬라에보 지젝이 한국에 왔을 때 영화 「8밀리」에 대해 저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8밀리」는 니콜라스 케이지가 탐정으로 나오는 영화입니다. 그 영화 속에서 세계적인 부호가 죽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남편이 죽은 후 금고에서 이상한 「8밀리」 테이프를 발견합니다. 아내는 탐정에게 그 테이프의 정체에 관해 수사를 의뢰합니다. 그리고 탐정이 테이프의 주인공 소녀를 추적하는 가운데 소녀를 때리고 강간 살해하는 포르노 산업의 어두운 정체가 서서히 밝혀집니다. 크리스티앙은 부유하고 건실한 남편인데 왜 스너프 필름에 관여했을까요? 알고 보니 그 사람 이상한 변태였어, 라는 개인 심리의 문제로 돌려선 안됩니다.

크리스티앙은 프로텐스탄티즘의 윤리로 살아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치열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억눌린 욕망이 어둡게 분출된 거죠. 우리나라로 이야기를 돌리면 한국에 왜 그렇게 룸살롱이 많을까요? 이것도 사회 지도층 인사 개개인의 비뚤어진 심리라고 생각하고 말 문제가 아니죠. 자본주의 제도 속에서 치열하게 살다 보면 반드시 억압과 왜곡이 생깁니다. 밖에선 성매매를 한 남편이 자기 집에선 아주 착한 남편인 듯 행동을 할 때도 그것을 그 개인의 심리적인 문제만으론 접근해선 곤란합니다. 우리 사회가 개개인을 밀어 넣는 경쟁 구조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권위적인 구조, 여성에 대한 시각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래서 지금과 같은 심리학적 접근 말고 구조를 생각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정 : 노예도 행복할까?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에겐 행복이 있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삶의 노예처럼 끌려가며 산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많습니다. 그럼 우리도 행복할 수 없는건가요?

김 : 노예는 절대로 행복하지 않습니다. 행복에는 조건이 필요합니다. 당장 단순하게 생각해봐도 물적 조건이 필요합니다. 먹고 사는 것 뿐만 아니라 여유를 즐길 수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빈곤의 문제는 절대적으로 해결되어야 합니다. 이제는 노예제 사회가 아닙니다. 그런데 과거 노예들이 감당했던 노동은 모든 사람의 몫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노예처럼 만들어 버리는 조건들은 어디에나 존재합니다. 우리는 일을 하다가 자주 노예 같은 느낌이 드는 것을 떨칠 수가 없습니다. 직업을 갖고 있어도 자기가 원해서 하는 일이 아닌 한 더욱 그렇습니다.

우리 시대가 자유로운 시대인 것 같지만 노예적 삶을 살고 있다면 사실은 자유가 없는 겁니다. 이럴 때 ‘마음을 고쳐 먹는 게 중요합니다.’ 라고 말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질 않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노동의 문제로 고통 받습니다. 편의점에서 열시간씩 일하는 88만 원 세대가 행복할 수 있느냐? 88만 원 세대에서 행복의 문제는 빈곤의 문제를 풀지 않는 한 어렵기 짝이 없습니다. 시스템을 봐야지 네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그 정도는 감수해라. 내지는 세상이 원래 그렇단다. 누구나 힘들게 사니 만족하고 살라 라고 말해선 안 되는 것입니다.

이 경우 한국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변화와 반성을 촉구하는 데 힘을 모으는 것 같은 다른 차원을 보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습니다.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는 부는 커지는데 트리클 다운 효과가 없다는 것입니다. 부는 흘러가지 않고 있습니다. 천재 한 사람이 십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게 삼성 이건희 회장의 생각입니다. 그러나 천재 한 명이 십만 명을 먹여 살리지 않고 자기가 다 먹으려 한다고 생각해보면 그 사회는 얼마나 끔찍합니까. 지금 우리 사회가 천재 한 명이 자기가 다 먹을 생각을 하는 사회입니다.

그런데 빈곤의 문제를 다룰 때 한 가지 위험한 것이 있습니다. 경제주의적 관점입니다. 빈곤의 이름으로 더 많은 물질의 추구를 정당화하는 것이 경제주의입니다. 허영심 때문에 남과 비교해서 빈곤하다고 느끼는 경우도 흔히 있습니다. 차를 바꾸는 것 같은 사소한 문제에서도 그 사람이 행복할지 불행할지 알 수 있습니다. 이런 경제주의적 관점의 지배를 받으면 누구나 당연히 불행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 욕망 때문에 행복해질 수가 없는 겁니다.


정 : 행복은?

김 :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란 말이 있습니다. 내가 왜 행복하지 못한가? 치열하게 생각해 본 다음에 행복이란 것을 생각지도 말고 삶을 열심히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정피디님은 제가 행복에 대한 사랑에 빠졌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행복은 어쩌면 쾌락과도 같은 성격의 것일 수 있다고 봅니다. 저는 책에서 쾌락의 패러독스에 관해 말했습니다. 우리가 쾌락을 목표로 좇아간다면 결국 쾌락을 놓치게 된다고요. 행복도 이와 마찬가지일 수 있다고 봅니다. 목전의 행복을 좇아간다면 우리는 쉽게 행복을 놓치게 되겠지요. 실제로 우리는 행복을 얻기 위해 행복을 희생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carpe diem과 memento mori 사이에서 적절한 태도를 취할 필요가 있겠지요. 저는 행복은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하는 것과 그에 따른 마음의 상태”라고 했습니다. 저의 관심은 이처럼 어떻게 내가 나의 삶을 온전하게 만들 수 있는지, 그리고 우리 모두가 자신의 삶을 온전하게 만들어가는 데 내가 기여할 수 있는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결국 이 정의에 따르면 저는 행복에 대한 사랑을 하고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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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혜윤

마술적 저널리즘을 꿈꾸는 라디오 피디. 세월호 유족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시즌 1, 재난참사 가족들과 함께 만든 팟캐스트 [세상 끝의 사랑: 유족이 묻고 유족이 답하다] 등을 제작했다. 다큐멘터리 [자살률의 비밀]로 한국피디대상을 받았고, 다큐멘터리 [불안],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새벽 4시의 궁전], [남겨진 이들의 선물], [조선인 전범 75년 동안의 고독] 등의 작품들이 한국방송대상 작품상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사생활의 천재들』, 쌍용차 노동자의 삶을 담은 르포르타주 『그의 슬픔과 기쁨』, 『인생의 일요일들』, 『뜻밖의 좋은 일』, 『아무튼, 메모』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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