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의상과 화려한 퍼포먼스로 무대를 사로잡는 레이디 가가. 만약 그의 음악이 설득력을 얻지 못했다면 약간 수위를 넘는 그의 발언은 공감조차 얻지 못했을 겁니다. 탄탄한 사운드를 바탕으로 그만의 감성을 들려주는 레이디 가가의 새 앨범, ‘일렉트로닉 록’이라는 서로 다른 장르의 조합을 멋지게 일궈낸 몽구스, 마지막으로 몽환적이고 편안한 엠비언트 팝 ‘모비’의 열 번째 정규앨범도 감상해보세요.
레이디 가가(Lady Gaga) <Born This Way> (2011)
앨범 표지부터 가가답다. 모터사이클의 일부가 돼 앞바퀴를 다잡은 모습에서 새로운 파격과 마주한다. 사진 속 가가바이크는 자신의 독특한 외형을 어색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당하게 내비치며 날카로운 눈빛으로 포효한다. ‘난 이렇게 태어났어! (I was Born this way).’
본업인 음악에 소홀했다면, 난해한 콘셉트는 가볍게 치부되었을 수 있다. 동성애, 양성애 등 다양한 성정체성을 지지하는 발언(LGBT 운동)도 대중의 호응을 이끌어내긴 어려웠을 것이다. 이런 음악 외적 활동들은 뮤지션으로서의 본분을 충실히 수행했기에 설득력을 얻었다. 2008년 「Just dance」를 시작으로 「Pokerface,」 「Bad romance,」 「Alejandro」 등 고품질의 일렉트릭 댄스넘버들이 쉼 없이 차트를 공략했다. 더욱이 보수적인 그래미가 E.P.
<The Fame Monster>를 올해의 팝 앨범(Best Pop Album)으로 지목한 건 커리어의 하이라이트. 신드롬을 주시하던 평단으로부터 제대로 공인을 받은 셈이다.
2011년 5월, 팽팽한 긴장감 속에 공개된 두 번째 정규 작품은 그녀의 행보를 좌우할 중요한 터닝 포인트다. 3년간 펼쳐진 가가 열풍이 쇠퇴기를 맞느냐, 융성하느냐의 키를 이 앨범이 쥐고 있는 것이다. 지금 상황에선 후자가 더 유력해 보인다.
리드 싱글인 타이틀곡은 핫100 차트의 1000번째 넘버원이 되었고, 후속 싱글인 「Judas」와 「The edge of glory」는 연이어 탑 텐에 진입했다. 이미 성공이란 단어를 써도 될 만큼 폭발적인 반응이다. 이와 더불어 눈여겨볼 대목은 그녀가 더욱 직설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앨범 타이틀에서 나타나듯 공통적으로 식재된 테마는 자기애다. 세상에 의해 약자로 분류된 자신을 비관하기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여기라는 메시지도 내재되어 있다. 록, 유로 비트, 레이브, 로큰롤이 혼합된 음악에 매력적인 코러스를 뭉쳐낸 곡들은 메시지와 블렌딩되어 최상의 흡인력을 갖췄다.
메인 테마송 격인 「Born this way,」 머리카락을 자아에 비유해 속박 없는 삶을 갈구하는 「Hair」가 작품의 주제를 대표한다. 동성결혼의 법적 효력이 없음을 비판한 투쟁적인 내용의 「Americano」나 막달라 마리아를 테마로 여성의 힘을 숭배하는 「Bloody Mary,」 벗어나려 해도 재차 빠져드는 대상을 유다에 비유해, 어둠을 알아야 빛도 맞이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내포한 「Judas」도 지향점이 분명하다.
스타일 확장은 록 적인 곡들을 통해 나타난다. 퀸(Queen)의「We will rock you」를 샘플링했고, 브라이언 메이(Brian May)가 직접 기타연주를 맡은 「You and I,」 거친 리프가 담긴 「Electric chapel」이 그것. 이-스트리트 밴드(The E-Street Band, 브루스 스프링스턴의 백 밴드)의 멤버 클라렌스 클레몬스(Clarence Clemons)가 색소폰 연주를 맡은 「The edge of glory,」 「Hair」도 일렉트릭 팝과 브루스 스프링스턴 식 사운드의 매치가 독특하다.
전체적으로 공을 많이 들였지만, 필요 이상의 무게감이 내재된 것이 흠이다. 어깨 위에 과중한 부담감 혹은 사명감이 얹어진 탓일까. 전작에서 보였던 일렉트릭 팝의 경쾌함이 희미한 채, 날카롭고 암울한 기운이 전반적인 분위기를 주도한다. 싱글로 감상하기엔 무리가 없지만, 러닝 타임 73분 동안 압도적이고 과한 앨범의 사운드를 감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야심작 「Born this way」도 마돈나 음악들과의 유사성이 제기되며, 과거의 음악적 요인만을 고루 섞어 완성한 파생적 산물이라는 비판도 들었다. 이는 정규 앨범이 2장뿐인 그가 차후 풍성한 에디션을 쌓으며, 연구하고 해결해야할 숙제다. ‘나 이렇게 태어났어, 이게 바로 나야’란 깨달음이 음악적 문제가 발생했을 시 면죄부가 되진 못함도 깨달아야한다.
사회적 약자들은 그들을 대변해줄 대상을 찾고, 소위 총대를 멘 이는 기득권 세력이나 보수층의 집중 포화를 받기 마련이다. 우선순위 중 한 명이 바로 레이디 가가였다. 데뷔 앨범에 미치지 못한 결과물이 나왔을 경우, 가혹한 비난에 직면할 것은 어렵잖게 예상할 수 있었다. 상업성 짙은 레이디 가가가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자신에게 내려진 약자의 대변인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리스크를 감내했으며, 음악 뿐 아니라 소신발언, 기부 등 사회활동, 자신의 외형적 이미지에 그것을 제대로 표출했기 때문일 것이다.
패셔너블한 아티스트를 뛰어넘어 음악에까지 자신의 의지를 투영하기란 쉽지 않다. 고작 정규앨범과 비정규 앨범 한 장씩을 내놓은 아티스트라면 더더욱 어려운 영역이다.
<The Fame> 이후, 후속 작을 기대했거나 공격의 수단으로 여긴 이들이 건넨 중압감은 말하지 않아도 감지할 수 있다. 외양이 더 대담해지고, 화려해질수록 부담은 마일리지처럼 쌓여 그를 짓눌렀다.
무거운 중하감을 뚫고 소포모어 작을 완성해낸 점은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 지금 상황에선 자신의 로드맵을 형성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데뷔 후 3년이란 기간 동안 세상에 자신을 내보이며, 수도 없는 질문과 의문에 휩싸였을 이 젊은 아티스트는 마침내 자신의 입장을 명쾌하게 정리했다. 아티스트로서 한 여자로서 그에게 자유와 해방을 부여해준 심플한 문장 「I was Born this way」를 통해서 말이다.
2011/06 성원호 (dereksungh@gmail.com)
몽구스 <Cosmic Dancer> (2011)
더 세졌다. 그룹의 주요 음악 어법인 두 장르 모두 강해졌다. 일렉트로니카 성향은 전작들보다 한층 날렵하고 공격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록의 정취는 체구를 더 키운 형태로 시원하게 펼쳐진다. 이 때문에 앨범은 느린 템포의 노래를 제외하고는 이전보다 훨씬 역동적이고 격정적인 모습으로 다가온다. 확실히 이전에 비해 더 세졌다.
두 양식이 다 힘을 키운 상태지만 어떤 것 하나가 더 튀어 보려고 애쓰는 형국을 보이지는 않는다. 전자음악을 나타내는 신시사이저와 록을 대표하는 전기기타는 상호 보완하며 스트레이트하면서도 안정적으로 곡을 인도한다. 프로듀서로 참여한 히치하이커(Hitchhiker)의 스타일과 몽구스(Mongoose) 멤버들의 기존 지향이 서로 배척하지 않고 조화를 이뤘다는 증거일 것이다. 덕분에 노래들은 조금의 혼란스러움 없이 밴드의 두 가지 음악 기반을 온전하게 구현해 낸다.
소리의 덩치가 커졌음에도 전혀 우악스럽게 들리지 않는다. 이 같은 인상을 받게 되는 것은 판타지를 형성하게끔 하는 내용(「Never forget you」, 「우리는 하나」), 유락(愉樂)으로 이끄는 절제된 댄스의 메시지(「Cosmic dancer」, 「Everybody」), 서정적인 노랫말(「별이 비가 되던 여름밤」, 「열아홉 번」)에 연유한다. 언어를 가볍게 함으로써 수록곡들은 강한 에너지와 경쾌함을 동시에 발산한다.
조금은 부담스러운 요소도 존재한다. 「Seoul saram」을 비롯해 「Never forget you」, 「로라」, 「Everybody」, 「열아홉 번」 등 낮게 읊조리듯 노래하는 파트나 내레이션 형식으로 가사를 전달하는 부분이 몇 차례 되는 탓에 무겁고 느물거리게 느껴진다. 더군다나 한두 번 나오고 마는 것도 아니라서 등장할 때마다 긴장감이 떨어지는 면도 없잖아 있다.
앨범은 그런 아쉬운 점에 크게 흔들리지 않을 기력을 뽐낸다. 록 밴드로서의 튼튼한 사운드와 전자음악 성격이 동반 성장, 발전한 골격으로 몽구스의 노래들은 견고함을 과시한다. 복고 정서와 첨단 향수를 함께 간직한 멋스러운 일렉트로닉 록의 귀환이 반가울 따름이다.
글 / 한동윤(bionicsoul@naver.com)
모비(Moby) <Destroyed>(2011)
여행지의 밤은 미묘하다. 마음껏 돌아다니고 싶은 욕망이 솟으면서도, 두려움도 함께 엄습한다. 그래서 모두들 잠든 도시에서 혼자 잠이 깨어있는 경우가 많다. 낯선 곳의 긴장감이 눈꺼풀이 감기는 것은 최대한 막는다.
모비의 열 번째 정규 앨범은 그렇게 탄생했다. 여행과 투어를 다니면서 호텔 방에서 불면의 밤을 보내는 자신의 상태를 그려냈다. 특히 새벽 두시의 기묘한 이미지와 감성에 몰입했다. 타이틀인
<Destroyed>은 스페인 과르디아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다 전광판에 나오는 ‘주인이 없는 수화물은 모두 파기됩니다. (All unattended luggage will be destroyed)’라는 안내문구의 마지막 문장을 인용했고, 직접 사진을 찍어 앨범 커버로 사용했다.
일렉트로니카 거장이 주조해낸 새벽 두시의 사운드는 몽환적이고 편안한 앰비언트 팝이다. 수려한 멜로디와 물 흐르듯 진행되는 전자음의 파동은 소파에 몸을 푹 감추고 새벽을 맞이하는 모비의 모습과 중첩된다. 10년 전 같은 상황이라면 클럽에서 신나게 몸을 흔들며 밤을 지새울 강렬한 일렉트로니카 록을 표방했겠지만, 세월은 모든 걸 변화시키기 마련이다. 걸작 앨범
<Play>(1999)는 30대의 모비다. 이제 모비도 불혹을 넘겼다.
스페인의 호텔 방에서 만든 첫 싱글 「The day」는 데이빗 보위가 연상되는 보컬과 아날로그 감성을 전면에 내세운 일렉트로닉 팝이다. 방에서 어쿠스틱 기타로 곡을 쓰고 휴대폰으로 녹음을 한 다음, 스튜디오에서 다시 재녹음을 했다고 한다. 이어지는 트랙 「Lie down in darkness」에서 잠 못 이루는 밤의 쓸쓸함은 최고조에 달한다. 인코그니토 출신의 여성 보컬리스트 조이 말콤(Joy Malcolm)의 가스펠 창법과 나른한 비트의 반복은 아무도 보이지 않는 자욱한 안개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하다.
외로움을 넘어 경건함(?)까지 강조하다 보니 후반부로 갈수록 지루하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레고리안 성가풍의 「Stella maris」, 낮게 깔리는 스트링과 일정한 패턴의 일렉트로닉이 점점 상승곡선을 타며 반복되는 「The violent bear it away」 등은 자꾸 러닝타임을 살피게 한다.
모비는 차가울 것 같은 일렉트로니카도 온기를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아티스트다. 불면증에 걸린 새벽 두시의 사운드도 따뜻하다. 오히려 그 포근함에 이끌려 음악이 멈추기도 전에 잠에 빠질지도 모른다.
글 / 안재필(rocksacrifice@gmail.com)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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