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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셔츠만 잘 입어도 얼굴이 돋보인다

화이트셔츠 The White Shi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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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츠 한 장으로 얼마든지 아슬아슬해질 수 있어요” - 열다섯 살 때였나 싶다. 아버지의 흰 와이셔츠가 눈에 들어온 것이. 그 시절 중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는 상의를 헐렁하게 입는 것이 대세였다.

화이트 셔츠 일러스트

열다섯 살 때였나 싶다. 아버지의 흰 와이셔츠가 눈에 들어온 것이. 그 시절 중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는 상의를 헐렁하게 입는 것이 대세였다. 위는 넉넉하게, 아래는 비교적 타이트하게 입는 아이들이 많았다. 패션에 대해 알지도 못했지만 왠지 그렇게 입어야 할 것 같았고, 더 이상 입지 않는 아버지의 와이셔츠는 내 옷차림에 느슨함이라는 멋을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셔츠와의 첫 만남은 그렇게 시작됐다.

사람들은 눈부시게 하얀 셔츠를 점잖은 자리에 데려가기를 좋아한다. 목 아래로 정갈하게 자리잡은 반듯한 깃과 주름이 가지 않도록 빳빳하게 다려진 소매와 몸판이 ‘정돈’이라는 단어를 연상시켜서 그런 걸까? 격식을 차려야 할 때는 다소곳한 화이트 셔츠에 손이 간다. 부담을 주지 않는 천성 덕에 많은 이들이 화이트 셔츠를 어렵게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쉽게 입을 수 있는 옷이라고 믿고 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런데 아무리 입어봐도 셔츠의 멋을 제대로 살리기란 늘 어렵다. 셔츠를 어떻게 입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제아무리 소문난 멋쟁이라도 그 담백한 독성을 그럴싸하게 보여주려면 상당한 두뇌 회전과 연륜이 필요하다.

옷을 잘 입는 지인들 몇몇에게 물어보니 하나같이 셔츠는 ‘기본 중의 기본’이라고 부르짖는다. 또한, 지나치게 올곧아서 그 딱딱함을 풀어줄 지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얌전한 모양새를 돋우는 그 무엇, 즉 은밀한 기술이 뒤따라야 셔츠 특유의 남성적이면서도 여성적인 매력이 제대로 살아난다. 날이 선 깃과 정중한 소맷부리, 가지런히 정렬된 단추, 부드럽게 몸을 감싸며 흐르는 주름진 자락. 그 멋을 과연 어떻게 살려야 할까.

셔츠의 매력은 날이 선 소맷부리에서 찾을 수 있다.
그 매력을 놓치지 말고 활용해보라.

셔츠는 겉옷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 살갗과 겉옷 사이에 일종의 보호막처럼 입어온 옷이다. 백 퍼센트 순면 셔츠가 대접 받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피부가 화내지 않게 하려면 부드럽고 정직한 소재가 답이다. 질 좋은 면은 안락함을 보장하니 말이다. 좋은 것을 걸쳐보면 덜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이 애석하게도 작아진다.

멋이라는 두툼한 벽을 꿰뚫어 보는 이들은 한눈에 알아본다. 얼굴 아래 가슴 선과 어깨에서 팔을 잇는 소매 선에서 진정한 셔츠가 판가름 난다는 것을. 그 목소리는 여리면서도 똑떨어진다. 모델들이 그룹을 이루어 속된 말로 ‘떼샷’을 찍을 때나 뷰티 화보에 화이트 셔츠를 자주 입고 등장하는 까닭은 얼굴을 돋보이게 하기 때문이다. 화이트 셔츠는 빛을 뿜어내는 조명이다.

“셔츠 한 장으로 얼마든지 아슬아슬해질 수 있으며, 한껏 격식을 지키는 동시에 깨트릴 수도 있다.”

셔츠에 자기만의 감각을 불어넣는 디자이너들은 수두룩하다. 개인적으로 점수를 더 주고 싶은 사람 혹은 브랜드를 밝히자면 국내에서는 진태옥, 박춘무, 홍은주, 송지오, 김재현 등이 우선 떠오르고 해외에서는 헬무트 랭, 칼 라거펠트, 샤넬, 캘빈 클라인, 앤 발레리 아시, 카샤렐, 팀 해밀턴, 보테가 베네타, 에르메스, 휴고 보스, 꼼 데 가르송, 요지 야마모토, 알렉산더 왕 등이 다른 이름들을 앞지른다. 이들의 손끝에서 나오는 셔츠는 혁신과 전통을 교묘히 오가며 눈길을 앗아가는 아름다움을 선물한다. 그토록 자태가 우아한 셔츠를 흐트러트릴까 두렵다.

난 잘생긴 셔츠를 발견하면 수중에 넣어야 직성이 풀린다. 벌써 몇 장이나 갖고 있는지 모른다. 보기에는 비슷한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첫 여밈 단추가 어디서부터 시작하는지, 깃 모서리 부분의 각이 어느 정도인지, 단추의 소재가 값싸 보이진 않는지, 소매 단의 넓이가 어느 정도인지, 몸통에 얼마나 달라붙는지 혹은 떨어지는지, 엉덩이를 덮는 길이인지 아닌지, 소매산이 자연스러운 곡선을 그리는지, 가슴 언저리에 주머니가 붙어 있는지, 허리 재단선이 들어갔는지, 어떤 소재로 만들었는지, 편하게 입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등등 이것저것 따져볼 사항들이 한 아름이다.

셔츠를 입을 때 역시 애정 어린 손길이 맵시를 만들어낸다. 앞여밈 단추를 잠그고 난 후 깃을 몇 번 어루만지면 기가 살아나고, 소맷부리를 걷어 올리면 즉각 기동성이 부여된다. 한껏 위로 접어올린 소맷부리 아래로 고개를 내미는 시계와 팔찌는 더없이 매력적이다. 깃을 세울 것인가, 접을 것인가 혹은 단추를 끝까지 잠글 것인가, 두어 개 풀 것인가에 따라 인상이 달라지기도 한다. 셔츠 한 장으로 얼마든지 아슬아슬해질 수 있으며, 한껏 격식을 지키는 동시에 깨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하나하나 따지고 대화하며 세심하게 골라온 셔츠들이 나는 자랑스럽다. 옷장을 열면 옷걸이에 걸려 좌우로 흔들흔들 움직이는 그들의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새하얀 셔츠를 몸에 걸치면 마음이 청소가 되는 느낌이다. 아무도 눕지 않은 이불 속으로 몸을 뉘였을 때 온몸을 감싸오는 서늘한 감촉을 입는 듯하다.

<그녀의 셔츠>

“원피스 셔츠의 실용성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스타일리스트 서영희

서영희의 옷장에는 화이트 셔츠가 유난히 많다. 그녀가 특별히 아끼는 것은 패션쇼 연출의 귀재로 불리는 안토니오 마라스의 셔츠. 독특한 생김새로 원피스 혹은 셔츠로 소화 가능한 실용성이 매력이다.

“칼라와 커프스의 끝 라인, 소재, 착용감 모두 중요하지만, 소재가 좋으면 보통 칼라와 커프스의 끝 라인도 좋게 마련”이라는 그녀는 화이트 셔츠를 살 때는 프랑수아즈, 갭, 유니클로를 선호한다.

<그의 셔츠>

“화이트 셔츠는 품위와 활동성 모두 보장한다.” 사진작가 권영호

성향도 사진도 담백하고 깔끔한 그는 촬영하는 날 화이트 셔츠를 즐겨 입는다. 불편하지 않냐는 물음에 “화이트 셔츠는 품위와 활동성 모두를 만족시킨다”는 단호한 답이 돌아온다. 가벼운 질감에 흠잡을 데 없는 재단의 셔츠는 완벽한 착용감을 선사한다는 것. 그는 뉴욕에서 구입한 클럽 모나코의 화이트 셔츠를 즐겨 입는다. 여기에 나비 넥타이를 더하는 것이 권영호만의 개성이다. 그를 보면 알 수 있듯, 작은 소품 하나만 곁들여도 셔츠의 표정은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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