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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승이 만난 사람들]우정과 환대의 돌봄 인문학, 조한혜정 교수

삶은 하나의 싸이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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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라는 건 하나의 사이클이에요. 그걸 아이들이 모두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네가 60이 될 때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바람이 불 때도, 눈보라가 칠 때도 있겠지만 그걸 모두 겪어내 보라고요.

인문학이 새롭게 떠오르고 있다. 갈등과 혼돈의 시대를 통합하는 열쇠로 인문학이 주목 받고 있다. 카이스트 정재승(39) 교수가 우리 시대의 대표적 인문학자를 찾아 나선다. 역사?사회?과학 등을 가로지르며 세상의 보다 건강한 모습을 그려 보일 예정이다. 그 첫 회로 연세대 조한혜정(63) 교수의 연구실을 두드렸다. 조한 교수는 우리 시대의 청소년과 20대를 문화인류학적 시선으로 관찰하고, 그들과 함께 대안교육 운동을 주도해왔다. 언제부턴가 빛나고 가슴 벅찬 때가 아닌 바쁘고 외롭고 불안한 시기로 요약되는 한국 사회의 청춘. 베스트셀러 『아프니까 청춘이다』(김난도 지음)의 열풍 뒤에는 무엇이 숨어 있을까. 또 21세기 대한민국 학교교육의 현주소는 어디일까. 조한 교수는 “20대의 불안을 근원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경험하고, 스스로 세상을 만들어가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 먼저 선생님의 ‘청춘’은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조한 : 저는 대학을 67년에 들어갔어요. 저희 때는 미국식 자유주의 분위기였죠. 경제적으로는 혼란기에 살았는데, 저는 사회를 이해하고 글을 쓰는 역사학자가 되고 싶었죠. 통기타를 치던 시대라 반전 노래를 많이 했어요. 특히 밥 딜런의 노래를.

: 그 시절의 동년배도 요즘 젊은이들처럼 여전히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고, 취직을 걱정했나요?

조한: 경제성장을 막 하던 때라, 청춘을 정말 즐기는 분위기였어요. 취직 걱정도 별로 없었고요.

: 그동안 쓰신 책을 읽어보면, 학교 교실과 학원에서 10대의 대부분을 보낸 청춘들을 인류학자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신 것 같습니다. 80년대와 90년대, 2000년대에 청춘들을 꾸준히 관찰하셨는데요. 그들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요?

조한 : 『탈식민지 지식인시대의 글 읽기와 삶 읽기』를 쓸 때, 저는 80년대 운동권이 굉장히 중요한 일을 했지만, 좀 더 민주적이고 다원화되고, 내부적으로 소통을 했다면, 지금 정치도 한결 나아지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도구적 합리성’으로 목적을 빨리 달성해야 한다는 조급함 때문에 내부 소통을 등한시했어요.

90년대 대학생들은 그야말로 한쪽으로는 일상의 민주화, 개인의 권리라든가 장애인들의 권리라든가, 소수자 권리 전체를 이야기 하면서 차이에 대한 감수성으로 갔어요. 다른 편으로는 이른바 ‘서태지 세대’죠. 자기를 표현할 줄 알고, 즐겁게 모여서 놀고, 그게 어떤 식으로든 산업으로 가고, 먹고 살게 되는 식의 분위기로 갔던 거잖아요? 그게 바로 90년대 서태지 시대가 낳은 고유하고 문화적인 존재이고, 소통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지금 보면 소통은 안 하고, ‘나는 나’라는 게 너무 셌던 거 같아요. 소비사회적 존재로 갔다고나 할까? 소통을 잘하면서 개성적인 인간, 공존하며 끌어안는 존재가 아니고, ‘내 아인 내가 길러!’ 이런 식의 미시족부터 시작해서 너무 자기가 강한 인간들이 나온 거죠.



: 제가 72년생, 그러니까 말씀하신 ‘서태지 세대’에요. 선생님이 쓰신 『탈식민지 지식인시대의 글 읽기와 삶 읽기』를 대학시절에 읽었고, 그래서 이 자리가 제겐 특별히 반가운데요. 사실 우리가 그 시대를 관통할 때는 ‘X세대’라고 불리면서, 이전 활자세대보다 이미지로 사고한다며 깊이가 없다고 존중받지 못했죠. 지금 청춘을 보니 우리보다 훨씬 자유롭고 풍요로운 환경에서 자란 것 같고요.

조한 : 제가 쓴 『교실이 돌아왔다, 신자유주의 시대 대학생의 글 읽기와 삶 읽기』를 보면, 애들이 똑똑하거든요. 그런데, 그게 똑똑한 게 아니고 사실 ‘불안’이었어요. 그 세대는 부모가 자수성가하고 나라를 위해서라도 할 거 다 해봤고요. 굉장히 어려운 시대에 살아서 똑똑하고 기획력 있고, 주도적인 사람이 부모가 된 거예요. 그러다, IMF 터지면서 “어? 나라 믿고는 안 되겠다” 해서 학원에 보내거나 유학을 보내거나 해서 애들을 위한 계획을 세운 거죠.

학교에서 학부모와 학원이 서로 봐주는 역할을 하면서 결국 공공영역이 없어졌죠. 좋든 싫든 학교에 와서 선생님과 싸우든, 골탕을 먹이든 하나의 공공 영역이었는데, 아이들이 개별화 되면서 너무 할 일이 많아진 거예요.


: 그게 선생님이 신자유주의세대라고 정의하신 학생들의 특징인 거 같습니다. 교육이 학교에서 시장으로 넘어갔고, 개인의 자유보다는 ‘시장의 자유’가 더 중요한 신자유주의의 세례를 받은 학생인 거죠.

조한 : 엄마가 모든 걸 챙겨줬던 애들이 결국 좋은 대학에 입학했지만, 끝까지 먹여 살려줄 순 없죠. 아이의 자생능력은 점점 줄어들었구요. 우리가 농담으로 그런 말을 해요. “엄마한테 전화해서 이렇게 판결해도 돼요?”라고 묻는 판사도 나올 거라고요.

이런 아이들의 특징이 뭐냐면, 친구를 깊게 못 사귀어요. 엄마가 최고의 친구거든요. 친구는 경쟁상대일 뿐이고요. 그래서 저는 수업시간에 다섯 명씩 토론을 시켜, 한 학기 동안 친구 만드는 수업을 해요. 아이들이 정말 좋아해요. 효과도 좋고요. 첫 수업에 그런 말을 합니다. “너희 스스로 배울 수 있다!” 우리 학과에서 강조하는 건 돌봄(care), 노동(work) 그리고 시민(citizen)입니다.


: 저도 학생들 면담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고민이 “‘이거 아니면 안 돼!’ 하는 꼭 하고 싶은 게 없어서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거에요.

80년대가 사회를 위한 인간, 즉 ‘Good one’식의 사고였다면 90년대는 ‘The only one’이었어요. ‘나는 유일한 존재!’라는 거죠. 그리고, IMF 이후 신자유주의 시대는 ‘The best one’을 외치는 경쟁사회였는데, 이제 다시 전 ‘Good one’이 많이 생겨날 것 같아요. 그 부분에서 희망을 봅니다. 요즘 아이들은 제가 콤플렉스 느낄 정도로 영어도 잘하고요. 그걸 잘 쓰기만 하면, 좋은 재원들이 되는 거죠.


: 연세대를 다닐 수 있는 수준에 좋은 사교육을 받아 온 아이들이라면 그럴 거 같아요. 하지만, 대학에 못가는 사람들도 많고요. 스펙 쌓기가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못하기 때문에 불안에 떠는 청춘들이 많아요. 이 청춘을 위해 인문학은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요?

조한: 제가 엘리트만 분석한다는 비판을 받아요. 하지만, 이른바 탑 클래스 아이들의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사회가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여기에 있는 아이들도 이렇게 불안해하고 초조해한다! 이런 게 문제다”라는 이야기를 해야 바뀔 것 같아요.

제가 88만원 세대를 이야기 하면 아이들은 그런 말도 합니다. “우리는 아니지만.” 그럴 때 저는 묻죠. “왜 너희는 아닌데?” 그건 특정 누군가의 문제는 아니거든요. 1%의 아이들이 느끼는 불안도 체감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두가 눈을 감고 돌진하는, 아무도 이기지 않는 매스게임을 보라는 거죠.


: 지금은 부모의 욕망이 자연스럽게 아이의 욕망으로 전이되고 있어요. 지금 아이들이 직업을 선택하는 과정엔 부모의 욕망이 그대로 반영되고 있지 않나요.

조한: 그래서 일에 대한 개념이 바뀌어야 한다는 겁니다. 스스로 좋아하면서, 잘하면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일 같은 게 필요해요. 저희 쪽에서 강조하는 게 바로 ‘돌봄과 노동’입니다. 결국엔, 일을 하면서 스스로는 물론 다른 사람을 돌볼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해요. “기도와 노동이 필요하다!”는 한 선생님의 주장도 있었는데요. 여기서 말하는 기도는 인문학이에요. 이제는 먹고 사는 문제를 넘어 지속가능한 삶에 대해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인문학과 공업, 생태, 커승니티 비즈니스, 자활 노동, 무엇 하나 빼놓을 수 없어요.

: 그것이 선생님의 ‘돌봄 철학’과도 맞닿아 있는 거죠?

조한: 그렇죠. 이젠 자신이 속한 커뮤니티에서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자존심도 생기고, 무엇보다 표류하지 않아요. 무조건 일류대를 가야 한다! 는 식의 돌봄은 지금 상황과 맞지 않다는 겁니다. 그런 압력을 받고 자란 아이는 기본적으로 심성이 불안해요. 실패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니까요.

: 선생님 말씀을 듣다 보니 ‘하자 센터’ 아이들은 어떤지 궁금해지는데요.

조한 : 대안학교 쪽에 있는 학생들은 몸이 아예 달라요. 스스로 방황도 하고 바닥을 쳐보기도 하고 이런 경험이 반복되죠. 안 그래도 10주년이 돼서, 지지난주에 아이들을 만났는데 굉장히 다양한 트랙을 찾아 가고 있었어요. 예컨대, 이번 여름에는 탑골 공원에 계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온도문제에 관심을 갖는데요. 온도가 너무 높으면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는데요. 그 문제를 ‘행동연구소’라는 곳과 같이 연결해 한 달 내내 온도 재는 일을 한답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세상을 들여다보게 되죠. 함께 사는 사회를요. 그런 아이는 제 힘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죠. 10년 전과 비교해보면, 하자센터 커리큘럼도 많이 바뀌었고요. 변화는 계속 일어나고 있죠.

: 걱정이 되는 건, ‘하자’ 안에서 대안교육을 받고 스스로 삶에 정착한 아이들이 ‘하자’ 밖의 삶을 어떻게 극복해나가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신자유주의적인 삶과 마주쳐야 하고, 제도권 교육 받았던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데요.

조한 : 하자를 둘러싼 삶은 참 다양해요. 중간에 나가는 아이도 있고, 쉬다 다시 오는 아이도 있고요. 함께 농산물을 지어 먹으며 사는 그룹도 있죠. 한편에선 사회적 기업도 합니다. 3년 전부터 적극적으로 그 부분을 보고 있는데, 아이들은 새로운 기업을 만들고, 질문을 던지고, 몸을 움직여 공간을 만들어나가죠. 전혀 다른 식의 자발적인 공간이 형성되고 있어요. 저는 그런 공동체 의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 페미니스트로서는 어떤 아젠다가 인문학적으로 중요해질까요? 예전과는 이슈가 많이 달라졌을 것 같은데요.

조한 : 페미니스트로서 제가 주로 이야기하는 건 40~50대 여성들의 사회활동입니다. 사실, 커뮤니티 비즈니스 공간에서 이 분들의 역할이 아주 크거든요. 돌봄의 감각을 가진 분이죠. 그래서 저는 나라 돈을 쓰려면 제발 좀 아줌마들에게 주라고 얘기해요. 반찬가게, 아이 돌보는 공간, 또 노인 돌볼 사람. 이렇게 돌봄이 필요한 곳이 너무 많다고요. 유치원에서 학교까지 엄청나게 경쟁하고 있는 시대에 어떻게 그 곳을 ‘우정과 환대’의 공간으로 바꾸느냐!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문제죠.

: 마지막으로 지금 청춘들에게 ‘이렇게 살면 더 빛난다!’라는 마음에서 조언해 주신다면요.

조한 : 환갑을 지나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요. 삶이라는 건 하나의 사이클이에요. 그걸 아이들이 모두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요. 네가 60이 될 때까지,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있고, 바람이 불 때도, 눈보라가 칠 때도 있겠지만 그걸 모두 겪어내 보라고요. 삶이라는 것, 참 살아볼 만한 거다. 이렇게 인식을 하면 고단한 삶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요.


조한혜정 교수는?

현재 연세대학교 사회과학대 문화인류학과 교수이자 동료들과 시대를 이끌어 가는 비전을 만들고 그것을 실현해 내는 작업을 꾸준히 해 온 대안문화 활동가다. 연세대 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LA소재)에서 문화인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또 하나의 문화’, ‘하자센터’에서 활동하면서 여성문화와 청소년문화에 대한 실천적 담론들을 생산해왔고, 1980년대에는 페미니스트 운동을 ‘또 하나의 문화’ 동인들과 했으며, 1990년대에는 청소년과 대안교육 현장에서 여러 가지 실험적 사업들을 10대, 20대들과 함께 벌여왔다. 지금은 모든 세대가 어우러지는 마을 만드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다. 저서로 『한국의 여성과 남성』, 『성찰적 근대성과 페미니즘 ― 한국의 여성과 남성 2』, 연작 형태의 문화비평서인 『탈식민지 시대 지식인의 글 읽기와 삶 읽기1, 2, 3』, 교육 현장을 다룬 『학교를 거부하는 아이, 아이를 거부하는 사회』, 『학교를 찾는 아이, 아이를 찾는 사회』 등이 있으며, 마거릿 미드의 『세 부족 사회에서의 성과 기질』를 번역했다. 공동저서로 『누구와 함께 살 것인가』, 『가족에서 학교로, 학교에서 마을로』, 『왜, 지금, 청소년?』, 『탈분단 시대를 열며: 남과 북, 문화 공존을 위한 모색』, 『경계에서 말한다』, 『인터넷과 아시아의 문화연구』 『교실이 돌아왔다』(공저) 등이 있다. 21세기 대한민국 학교교육의 현주소는 어디인가? 현재 젊은이들은 무슨 고민을 하고 있을까? 이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이 시대의 청춘을 문화인류학적 시선으로 관찰하고, 그들과 함께 대안교육 운동을 주도해온 그의 대답은 명료했다. ‘돌봄’의 철학이 부재한 우리 학교가 경쟁주의에 함몰되지 않고 ‘우정과 환대의 공간’이 되길 꿈꾸고 있었다.

정재승 교수는?

KAIST 바이오및뇌공학과 교수다. KAIST 물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예일의대 정신과 연구원, 콜롬비아의대 정신과 조교수를 역임했다. 2009년 다보스 포럼 ‘차세대 글로벌 리더’에 선정되기도 했다. 저서로 『과학콘서트』, 『크로스』(진중권 공저), 『쿨하게 사과하라』(김호 공저) 등이 있다.

※ 하자 센터

공식명칭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1999년 12월 18일에 개관했으며 현재, 연세대학교가 서울시로부터 위탁 운영 중이다. “스스로의 삶을 업그레이드 하자” “하고 싶은 일 하면서 해야 하는 일도 하자” “자율과 공생의 원리”가 모토인 청소년 센터가 바로 ‘하자 센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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