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 날에는 일찍부터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관람하기 좋은 장소에는 이미 돗자리를 깔고 가족단위의 관객들이 소풍을 즐기고 있다. 일교차가 크다는 일기예보를 보고 왔는데, 아침부터 바람이 거세다.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들이나 관객들이 여기저기서 날아가는 물건을 뒤쫓고 있는 풍경이 보인다.
이것이 감성음악, <어반자카파>
출연 아티스트의 음반을 판매하던 YES24 부스 옆에 사인회 부스가 마련되어 있었다. 둘째 날에는 ‘갤럭시 익스프레스’와 ‘더 핀’, ‘어반자카파’의 사인을 받기 위해 팬들의 줄이 옆 부스까지 길게 이어졌다. 특히 최근 정규 1집을 발매한 ‘어반자카파’의 반응이 좋았고, 더불어 음반을 찾는 관객도 많았다. ‘어반자카파’는 어쿠스틱 소울 음악을 하는 세명의 혼성그룹이다. 소울 충반한 흑인 그루브 음악을 들을 수 있다기에, 멀고 먼 WIND 무대에서 마련된 이들의 공연을 찾아갔다.
세련된 팝 발라드 곡들은 귀에 편안하게 들린다. 감성 물씬한 곡들이 호소력 있게 다가온다. ‘신인 같지 않은 신인’이라는 표현을 이럴 때 쓰는 걸까. 인디 밴드 특유의 거친 발랄함보다 잘 다듬어졌다는 인상을 주었다. 익숙하고 친근하다. 일청을 권한다. 최근에 박정현 콘서트에 게스트로 초대되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정현이 찜한 밴드라고. 박정현이 깊고 풍부하다면, ‘어반자카파’는 담백하고 세련됐다.
테이의 절정의 재치를 맛보다 <핸섬피플>
‘핸섬피플’을 아는지? 오페라 스타 테이가 소속되어 있다고 해서 화제가 되었던 ‘핸섬피플’도 그린플러그드 무대에서 만나볼 수 있었다. 테이가 핸섬하지 않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핸섬피플’이라는 이름은 들을 때마다 웃음이 나온다. 특히 “핸섬핸섬핸섬핸섬~ 피,플!”이라는 아카펠라를 듣는다면 누구라도 웃음을 터뜨리고 말 거다. 테이 역시 이를 알고 있는지, 이름에 대한 부연설명부터 했다.
“개성있는 얼굴들이 모여서 ‘핸섬피플입니다’하면 빵 터질 줄 알았는데…… 저희가 잘생겼나 봐요.(웃음) 뻔뻔하게 밀고 나갈까 봐요. 오페라 하는 모습보다 밴드 하는 제 모습을 기억해주세요.”패닉의 「달팽이」로 무대를 열었다. 익숙한 멜로디를 듣고 사람들이 오가던 발길을 멈춘다.
“한때 발라더였을 때, 테이였을때 리메이크했던 노래입니다. 앞서 공연의 여운이 남아 있을까봐 쫙 가라앉혀드렸어요.” 핸섬피플은 따로 장르가 없단다.
“다 해요. 심지어 저? 오페라도 합니다.(웃음)” 테이는 재치 있는 말투로 끊임없이 관객들 들었다 놨다 했다.
“큰 공연이 처음이라 완벽하게 세팅해왔습니다. 이 머리도 완벽하게 세팅한 거고요. 설렘으로 가슴이 터져야 할텐데, 스키니를 입었더니 바지가 터질 것 같아요.(웃음)”‘핸섬피플’의 그루브한 매력의 댄스곡 「쉘 위 댄스」와 「크레이지」로 분위기는 한껏 치달았다. 아쉽게도 대부분의 가수들에게 할당 된 시간은 30분~ 40분 뿐이었으므로, 음악에 막 젖어들 즈음 막을 내리는 아쉬움이 있다. 헤드라이너가 아닌 모든 가수들이 피해갈 수 없는 시간 제약! ‘핸섬피플’은 마지막 곡으로
“도?히 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노래”라고 소개하며 현진영의 「흐린 기억 속의 그대」를 연주했다. 비록 이날, ‘오페라 스타’에서 막 나온듯한 외모로 ‘발라더’였을 당시 테이 자신의 곡을 리메이크해서 부르기도 했지만, 오늘만큼은 분명 밴드 ‘핸섬피플’의 보컬, 테이였다.
상큼한 음악 담백한 보컬 <W & WHALE>
W & WHALE, 이 낯선 밴드명은, 밴드의 구성을 알려주는 이름이기도 하다. 기존의 남성 3인조 밴드 W에서 WHALE이라는 여성 보컬을 영입했다. 고래(WHALE)라는 이름 때문일까, 왜일,이라고 입을 벌려야 하는 발음 때문일까 팀 이름만 읊조려 보아도 이내 푸르고 상쾌한 기운이 밀려오는 것 같다. 이름뿐이 아니다. 실제로 이들은 시원하고 상쾌한 음악을 하는 밴드다. 혹자는 sk 광고에 로고송으로 삽입된 「R.P.G.SHINE」이라는 음악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실제로 이 그룹은 드라마, 영화 ost 작업을 많이 해왔다.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케세라세라> <불량가족>뿐 아니라 영화 <바다 쪽으로 한 뼘 더> <핸드폰> MV에서도 이들의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경쾌한 일렉트릭과 테크노 사운드는 아직 해 저물기 무렵의 축제속에 정말로 잘 어울렸다. 무대 위를 유영하는 듯한 보컬의 몸동작에 맞춰 공연장은 단번에 들썩였다. 이날은 ‘COLD PLAY’의 곡 「In my place」를 W & WHALE 스타일로 편곡해 들려주기도 했다. 담백한 보컬의 목소리가 인상적인 공연이었다.
“이날을 위해 악플과 그렇게 싸웠나보다” <노라조>
정말 관객들과 잘 놀아줄 수 있을 것 같은 ‘노라조’도 큰 무대에서 많은 관객들과 만났다. 분홍자켓, 파란 와이셔츠에 노란 바지까지. 딱 봐도 공들인 의상을 입고 등장한 노라조
“내가 놀아주마!” 첫 곡부터 강력한 화력으로 객석에 불을 놓는다. 첫 곡부터 모두가 손을 들고 발을 구른다. 열화와 같은 관객의 풍경에 노라조 스스로도 당황한 듯. 감격한 듯.
“오늘 드디어 가수가 된 것 같아요. 이날을 위해 악플과 욕과 그렇게 싸웠나보다. 감사합니다!”“늘상 웃기는 팀. 기타 잭도 꼽지 않고 기타 치는 팀, 밴드인척 하는 밴드.” 이것이 노라조가 스스로 규정한 팀 정체성이다. 이들의 공연은 하나의 퍼포먼스다. 노래 자체에 몰입하기는 어렵지만, 특유의 유머 작열하는 가사와 퍼포먼스로 객석의 혼을 빼놓는 파워풀한 무대는 ‘노라조’만의 힘이다. 「슈퍼맨」 「고등어」는 정말 많은 사람들을 순식간에 단결시킬 수 있는 노래다! 이날 무대에서도 그들은 이를 증명해 보였다. 이번 달 발매된 신곡 「포장마차」도 직장인의 애환을 담은 경쾌한 노래다. 웃다 보니 벌써 마지막 곡이다.
“초심 잃지 않고 싼티 나게 웃기겠습니다.? 공손하게 꾸벅 절하고 들어간다.
가장 아름다운 무대 「C’mon Through」 <라쎄 린느>
부지런히 발걸음을 돌려 WIND 무대로 돌아갔다. 보통의 WIND 무대는 관객과 아티스트가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였는?, 모두 일어서 열광의 축제를 벌이고 있다. 무대 위의 주인공은? 스웨덴 아티스트 라쎄린느다. <소울메이트>에 삽입된 곡 「C'mon Through」가 마지막 곡이었다. 반주가 흘러나오자 일어섰던 사람들 모두 자리에 앉아 들을 준비를 했다. 한강을 뒤로 하고 환상적인 무대가 펼쳐졌다. 궁극의 애절함을 담은, 그의 허스키한 목소리가 아름다운 멜로디를 타고 흘러나온다. 라세린느의 라이브를 이렇게 가까이 볼 수 있다니.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아름다운 시간이었다.
다음 EP앨범 수록곡 총 공개 <좋아서 하는 밴드>
이어 ‘좋아서 하는 밴드’가 무대에 올랐다.
“지금 다른 무대에서 크라잉넛도 하고 데이브레이크 공연도 하는데, 여기 와준 여러분 정말 고마워요.” 이날 모인 관객들을 위해서 ‘좋아서 하는 밴드’는 특별한 시간을 마련했다. “온전히 저희 음악을 들으러 모이신 여러분께, 아직 발매되지 않은 새 EP에 실린 다섯 곡을 다 들려드릴게요.”
핫초코와 까페라떼 중 어떤 것을 주문할까 고민하는 에피소드가 담긴 「인생은 알 수 없어」 젬베 하나로 음악을 시작해 여기까지 오게 된 이야기가 담긴 「젬베의 노래」 각각의 곡에 소박하고 따뜻한 즐거움이 담겨있다. 화려하진 않지만, 친근한 동네 카페에서 따뜻한 핫초코 한잔 손에 쥐어주는 기분이랄까. 마지막 곡 「당신만의 BGM」을 듣고 있을 무렵, 해는 완전히 저물고 강바람이 쌀쌀하게 불어왔다. 그들은 스스로
“점점 잘하는 밴드”라며,
“이번 앨범에 실린 곡을 이제껏 중 제일 잘 불렀다”고 귀여운 자랑을 했다. 다음 앨범, 들어보니 좋다. 믿고 사도 되겠다.
“페스티벌, 한 달은 해야 하는데……”
깊은 밤, 마지막 불꽃처럼 타오르는 헤드라이너 무대는, 이야기를 나누기보다 끊임없이 연주가 흘러나온다. 워낙 유명한 노래가 많아 충분히 노래만으로도 뜨거운 교감이 되기 때문이다. 이날 밤을 책임져줄 ‘김창완 밴드’ 그리고 ‘YB’가 그랬다. 여전히 건재한 ‘김창완 밴드’는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기 시작해서, 모두가 신나게 달렸다. <나는 가수다> 출연으로 더욱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모았던 YB의 공연도 늦은 밤, 금세 떨어진 낮은 기온의 추위도 싹 잊고 달렸다. 발을 땅에 붙일 새가 없을 만큼 흥겨운 시간들이었고, 특히 YB의 회심의 곡(?) 「Dash」를 부를 땐 공연장 전체의 술렁임이 대단?다. 김창완은 말했다.
“페스티벌 너무 짧죠. 한달 정도는 해야 하는데.” 짧은 페스티벌이 이렇게 막을 내렸다.
무대에 불이 꺼지자 이제껏 환호하던 무대를 등돌리고 사람들이 우수수 축제장을 빠져나간다. 아직 조명이 켜져 있는 상태, 비어져가는 공연장을 보고 있노라면, 밀물과 썰물. 진부한 비유를 절로 되뇌기도 하고 알 수 없는 슬픈 감상이 울컥 솟아오르기도 한다. 뭐든 끝나면 아쉬운 법이니까. 일년에 단 이틀,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축제가 끝났으니까. 사람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바쁘게 나가니까. 이제 한 사흘 간은, 이날 들었던 음악을 끝없이 되풀이하며, 여진을 감당해야 할 터다. 마치 일상과는 완전히 격리된 듯한 착각 속에서 보냈던 이틀 간의 음악 축제. 내년을 기약하며 나도 발걸음을 돌렸다. 귀에 꽂은 음악의 볼륨은 한껏 키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