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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불행했으면 좋겠어요

존 키츠의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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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에요, 내 사랑 패니. 내가 틀렸어요. 나는 당신이 불행하기를 원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불행하기를 바래요.

패니 브라운(Fanny Brawne)에게

1820년 5월
로마

화요일 아침.

나의 사랑스러운 소녀여, 어제는 당신의 어머니와의 만남을 기대하면서 편지를 한통 썼습니다. 그 편지가 당신을 조금 고통스럽게 할 걸 알면서도 편지를 보낸 전, 아마 이기적인 사람일 겁니다. 그렇지만 그런 편지를 보낸 이유는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얼마나 불행한지를 알아주길 바랐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모든 삶을 지탱하고 있는 내게, 당신의 모든 마음이 기꺼이 올수 있도록,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당신이 알아주길 바랐습니다.

한발자국도 내딛지 않고 눈꺼풀조차 움직이지 않고도 당신은 내 심장을 쏘네요. 나는 당신에게 탐욕적입니다 - 나 말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마세요. 내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살지 마세요-나를 잊지 마세요-하지만 당신이 나를 잊었다고 말할 권리가 제게 있을까요? 어쩌면 당신은 하루 종일 나를 생각하고 있는지도 몰라요.

당신이 나 때문에 불행했으면 좋겠다고 바랄 권리가 내게 있나요? 내 강렬한 열정을 안다면 나를 용서해주세요. 당신은 나를 사랑해야 하고, 내가 사랑하는 만큼 당신이 나를 사랑해야하기 때문에, 나 말고는 아무도 생각해서는 안돼요. 어제와 오늘 아침, 나는 달콤한 환상에 빠져 있었어요.

그 시간 내내 양치는 여자의 옷을 입은 당신을 보았지요. 나의 감각들이 그 모습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내 마음이 얼마나 빠져들었는지 모를 겁니다. 내 눈에 눈물이 가득 찰 정도였어요! 진정한 사랑은 아무리 넓은 마음이라도 충분히 채울 수 있답니다.- 당신이 혼자 마을로 나간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충격을 받았어요. 하지만 나는 그걸 예상하고 있었죠. 약속해줘요. 내가 나을 때까진 그러지 않겠다고. 그리고 세상에서 가장 사랑 스러운 단어로 가득 찬 편지를 보내 주세요.

선한 의지로 내게 약속하지 못하겠다면 사랑하는 그대여, 내게 말해봐요. 당신이 무얼 생각하는지 말해봐요- 당신의 마음이 너무 세속적이라면 내게 말해주세요. 아마도 그렇다면 나는 당신에게 거리를 둘 수 있겠죠. 나는 어쩌면 당신을 너무 가까이 하기엔 적절한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죠.

당신이 만약 좋아하는 새를 잃어버렸을 때, 그 새가 눈에 보이는 동안은 얼마나 아프겠어요? 시야에서 벗어날 때가 되어서야 고통은 조금씩 회복하게 되겠지요. 아마도 당신이 원한다면, 그리고 사실이 그렇다면 내게 고백해 주세요. 나를 빼고 당신에게 필요한 게 무엇인지 말해주세요. 그러면 나는 조금 덜 애타게 되어 조금 더 행복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죠. 젊음을 즐기지 못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이기적이고 잔인한지 당신은 항의할 수도 있겠죠. 게다가 불행하기를 바란다니!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반드시 불행해야 합니다. 내 영혼은 그것 말고는 그 어떤 것으로도 만족할 수가 없어요. 당신이 정말로 남들처럼 파티에서 즐길 수가 있다면, 당신이 사람들의 얼굴을 마주하고 웃을 수 있다면, 지금 당신을 사모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있다면, 당신은 나를 절대로 사랑한 적이 없었던 것이고, 사랑하지도 않는 겁니다. 나는 삶에서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의 확신을 빼고는 그 어떤 것도 알 수가 없어요. 내 사랑, 그걸 내게 확인시켜 주세요. 만약에 내가 어떻게든지 확신할 수 없다면 나는 고뇌에 차서 죽어버릴 겁니다.

만약 우리가 사랑한다면 다른 남자나 여자들이 사는 것처럼 살아서는 안 됩니다. 나는 유행과 겉치레, 그리고 뒷담화의 바꽃(독초의 일종)을 참을 수가 없습니다. 당신이 괴로워하며 죽기 위해서는 당신은 내것이어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보다 내가 더 많은 감성을 가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당신이 내 편지를 심중하게도, 대수롭지 않게도 생각해주시길 바래요. 그리고 이 편지를 쓴 -당신 때문에 매우 이상한- 사람이 긴 고뇌와 불확실성을 견딜 수 있는 사람인지 잘 생각해 주세요.

당신이 온전히 내 것이 아니라면, 내가 건강을 회복했을 때 무슨 소용이 있을까요. 제발 나를 구원해 주세요. 그렇지 않으면 내 열정이 당신에게 너무 끔찍한 것이라고 말해주세요.

당신에게 신의 가호가 있길...

J.K

아니에요, 내 사랑 패니. 내가 틀렸어요. 나는 당신이 불행하기를 원하지 않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불행하기를 바래요. 이토록 사랑스러운 아름다움이 있는 한, 그럴 거에요. 나의 가장 사랑스러운 그대여! 안녕!
당신에케 키스를. 오 이 고통이여!


존 키츠(1795-1821)는 젊은 영국의 낭만파 시인이었고, 살아있을 동안 많은 비판을 받았지만, 사후에 명성을 얻어나갔다. 명시 특히 "그리스 항아리에게 부치는 노래(Ode on a Grecian Urn)" 등으로 잘 알려져 있다.
1818년 친형을 폐병으로 잃고, 햄프스테드에 있는 패니 브라운의 옆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리고 둘은 급속도로 깊은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들이 만난지 2년도 안되서 키츠는 결핵을 앓게 되어 보다 따뜻한 지중해 기후로 옮겨야 했다. 이후. 26살의 젊은 나이로 그가 죽기 전까지 1년 동안 자주 서신을 왕래했다. 사후에 출판된 그의 편지는 논란거리가 되었다. 키츠는 로마에 묻혔으며 비석에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다. "여기에 물 위에 이름을 새긴 사람이 누워 있다."

서진의 번역후기.

아름다움은 영원한 기쁨이다.
A thing of beauty is a joy forever.
존 키츠의 장시, 엔디미온(Endymion)은 이렇게 간단하고, 명확한 구절로 시작합니다. 어쩌면 세상의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 많은 경험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존 키츠는 20세 초반 4년 동안 거의 모든 작품을 써 냈으니까요.

'내가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당신이 불행했으면 좋겠어요.'라는 메시지로 요약할 수 있는 이 편지는, 어떻게 보면 멀리 있는 연인에게 사랑을 종용하는 투정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 자유롭게 살았던 그의 연인 패니 브라운을 걱정하는 그의 심정도 이해가 갑니다. 연인에 대한 집착, 오직 자신만을 생각하고 사랑해 달라는 당부는 사랑에 빠진 사람만이 내 뱉을 수 있는 솔직한 말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말들은 유치하게 들리지만, 그걸 살짝 넘어서는 곳에 사랑의 진실이 있으니까요.

보르헤스가 말하길, 그가 처음으로 키츠의 시를 읽었을 때가 가장 문학적인 경험이었다고 했을 정도로 키츠의 시는 후대 많은 시인들, 작가들에게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지만 살아 있을 당시에는 많은 비판을 받았고, 25세에 요절한 이후에야 점차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합니다. 물 위에 이름을 새기면 금방 지워지기 때문에, 자신의 삶도 죽음과 함께 잊혀지길 바랬겠지만 키츠의 시는 아직까지도 남아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물론 낭만적인 시들 중의 일부는 분명 패니 브라운과의 사랑에 영향을 받은 것이겠지요.

-함께 읽어보면 좋은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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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진

소설가, 한페이지 단편소설 운영자.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1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 2010년 에세이와 소설을 결합한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출간. 세상의 가장 큰 의문을 풀 책을 찾아 헤매는 북원더러.(Book Wanderer) 개인 홈페이지 3nightson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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