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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광이 살인마 아들에게 배달온 것은? - 『7년의 밤』

스릴러에서 순문학까지 장르를 넘나드는 재미! - 영화를 보고 책을 읽다 보면 감독의 또는 작가의 의도가 훤히 내다보여 뻔한 스토리에 김새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십 번의 실망감 만이 계속되던 중, 반쯤은 의무감으로 이 책을 펼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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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의 밤
정유정 저 | 은행나무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 수상작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제5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의 작가 정유정의 신작 장편소설. 전작을 통해 치밀한 얼개와 속도감 넘치는 문체, 살아 있는 캐릭터와 적재적소에 터지는 블랙유머까지, 놀라운 문학적 역량을 보이며 문단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작가는 다시 한 번 치밀한 사전 조사와 압도적인 상상력으로 무장한 작품 『7년의 밤』을 선보이며 독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영화를 보고 책을 읽다 보면 감독의 또는 작가의 의도가 훤히 내다보여 뻔한 스토리에 김새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수십 번의 실망감 만이 계속되던 중, 반쯤은 의무감으로 이 책을 펼쳐 들었다. 하지만 채 10페이지도 읽기 전에 가슴 속에 강력한 호기심이 들끓으며 기대감으로 설렜다. 아! 이 기분 오랜만이다.

서원, 살인자의 아들로, 아버지의 사형 집행인으로 살다
열두 살짜리 여자아이의 목을 비틀어 살해하고, 여자아이의 아버지를 몽치로 때려죽이고, 자기 아내마저 죽여 강에 내던지고, 댐 수문을 열어 경찰 넷과 한 마을주민 절반을 수장시켜버린 미치광이 살인마의 아들. 그 광란의 밤에 멀쩡하게 살아남은 아이(p.18)

그 밤의 일로 사람들은 아버지 최현수를 미치광이 살인마라 불렀고 아들 서원은 살인마의 아들이 라 불렸으며, 그 밤의 사건은 세령호의 재앙이라 불리게 됐다. 하루 아침에 고아 아닌 고아가 되어버린 서원은 친척집을 전전하게 된다. 하지만 친척들의 두려움 가득한 시선은 세상의 냉랭함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결국 서원은 눈보라 속으로 내동댕이 쳐진다. 서원은 세령마을에서 함께 살던 승환을 만나 함께 살게 되지만, 학교를 옮길 때 마다 세령호 사건에 대한 기사가 실렸던 잡지가 학교에 배달되었고, 서원은 열두 번의 전학 끝에 중학교를 자퇴하고 승환에게 의지해 도망자의 삶을 산다.

세령호 사건 후 7년, 조용히 살아가던 서원에게 세령호의 재앙이 낱낱이 기록 된 소설이 도착한다.

딸의 복수를 꿈꾸는 오영제, 아들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두렵지 않은 최현수
아내와 아이를 너무나 사랑하는 치과의사 오영제. 하지만 자신의 잣대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일종의 ‘교정’을 감행한다. 딸 세령이 최현수의 손에 살해되던 그 날도 그랬다. 단지 아이의 행동에 약간의 교정이 필요했을 뿐. 세령은 아버지를 피해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도망친다.

그는 기어를 당기듯, 움켜쥔 목을 끌어당겨 세령을 일으켜 앉혔다. 곧장 ‘교정’을 시작했다. 세령은 제 얼굴로 날아드는 주먹을 멍하니 쳐다봤다. (p. 104)

한 때는 신들린 것처럼 판을 읽어냈다는 전설의 포수 최현수. 하지만 원인 모를 왼손 마비로 그의 평생 꿈이였던 야구를 그만두게 된다. 이제 남은 삶의 기쁨은 오직 아들 서원 이였다. 그날 밤 술만 먹지 않았더라면, 그날 밤 아내가 이사 갈 집에 미리 가보라고 하지만 않았더라면, 그날 밤 비가 오지만 않았더라면 최현수가 세령을 차로 치는 일은 없었을까?

그가 원하는 건, 서원이 늘 이렇듯 평화롭게 잠드는 것이었다. ‘최현수’를 살인범이 아닌 아버지의 이름으로 기억하는 것이었다. 그럴 수 있을까. (p. 411)

가족, 환상으로 성을 짓다
소설은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인간군상, 인간의 본질을 밀도있게 조명한다. 술주정뱅이 아버지의 죽음을 남몰래 간절히 바랬던, 아버지 처럼은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하던 최현수. 술집 막부의 딸로 태어나 어머니의 삶을 되풀이 하고 싶지 않아 억척스레 살아 온 최현수의 아내 은주. 엘리트처럼 보이지만 아내와 딸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서슴지 않는 치과의사 오영제. 세상에 번듯한 가족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최선을 다해 그들만의 방식으로 사랑하지만 그 사랑은 죽음, 배신, 상실, 원망으로 되돌아 온다.

이 책은 왕따 라는 문제를 다룬 사회 소설로 시작해 폭력과 살인사건이 일어나면서 스릴러로, 또 범인을 밝혀내는 과정에서 추리소설로 탈바꿈 하고 마지막은 ‘부정’을 다룬 순문학으로 마무리 된다. 책을 읽는 동안 다른 생각을 할 여유는 없다. 긴박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쫒아가기에 숨가쁘고, 책을 덮고 나면 사실과 진실이라는 양 축에서 위험한 외줄타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과연 최현수는 아들에게 살인범이 아닌 아버지의 자리를 지켰을까?

마지막 반전은 496페이지 까지 계속됩니다.



정유정

소설가. 1966년 전남 함평 출생이다. 대학 시절에는 국문과 친구들의 소설 숙제를 대신 써 주면서 창작에 대한 갈증을 달랬고, 직장에 다닐 때는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홀로 무수히 쓰고 버리는 고독한 시절을 보내기도 하였다. 소설을 쓰는 동안 아이의 세계에 발을 딛고 어른의 창턱에 손을 뻗는 중학교 1학년인 아들의 성장 모습과, 스스로 지나온 십대의 기억 속에서 그 또래 아이들의 에너지와 변덕스러움, 한순간의 영악함 같은 심리 상태가 생생하게 떠올랐으며 덕분에 유쾌하게 종횡무진 이야기를 끌고 가는 입심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김미선 (문학 담당)

YES24 문학 담당. A형의 피를 물려받아 태어났지만 늘 B형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산다. 살까 말까 고민하는 것, 들은 얘기 또 듣는 것, 본 영화 또 보는 것 등에 질색하며, 잠들기 직전까지 책보다 잠드는 걸 즐겨해 다독은 어렵지만 취미는 독서인 책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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