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제공 : 이장욱
문제 작가의 출현“박민규는 ‘문제작가’다. 그의 장편소설 『핑퐁』을 연재하기 시작한 계간지 <창작과 비평> 여름호의 광고는 그를 그렇게 규정한다. 광고인 만큼 별도의 설명은 없었지만, 이즈음의 한국 소설에 어느 정도 익숙한 독자라면 그런 규정에 특별히 토를 달지는 않을 것이다. 그가 ‘문제작가’이기 때문이다.”1)
|
|
<한겨레> 최재봉 문학전문기자의 말이다. 2003년 『지구영웅전설』로 제8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같은 해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제8회 한겨레 문학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등단한 박민규는 그 출발부터 예사롭지 않았다. 그래서 최재봉은 박민규의 “등장부터가 문제적이었다. …… 그는 대번에 21세기를 여는 한국 소설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주목받았다”고 말한다.2)
최재봉의 말처럼 박민규는 등장부터 화려했고, 화려한 만큼 한국 문단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2003년 그가 내놓은 소설은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새로운 독법을 요구하며 박민규란 이름을 대중의 뇌리에 각인시켰다. 그리고 2003년 이후 내놓는 소설마다 화제를 모았고 국내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했다.
펑크를 메우다 쓰게 된 소설
1968년 울산에서 태어난 박민규는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 입학했다. 원래는 음악을 하고 싶었지만 실기시험 때문에 선택한 학과였다.
“사실 대학은 커닝해서 들어간 거예요. 그래서 점수가 평소 내 성적보다 잘 나왔지요. 음악을 좋아해서 그쪽 계통으로 진학하고 싶었죠. 하지만 실기에는 자신이 없었고, 실기가 없는 학과를 생각하다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게 된 겁니다. 학교 다닐 때도, 그때 상황이란 것이 어수선했고 거기에 휩쓸려 다니다가 밀리듯 졸업하게 된 거죠. 학교 다닐 때 뭐 했느냐고 누군가 물어보면 시를 전공했다, 이런 식이 된 겁니다.”3)
대학을 졸업하고 그는 해운회사 영업사원으로, 광고회사 카피라이터로 5년 동안 일했다. 그는 카피라이터로 일했기 때문에 제목에 대한 노이로제가 있다고 말한다.
“『세일즈맨의 죽음』을 보고 많이 울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겪은 일에 대해서는 소설을 쓸 수가 없어요. 연상작용이 너무 많이 일어나요. 그리고 그것이 방해가 됩니다. 광고회사에서 카피라이터 생활을 한 3년 동안 굉장히 많은 글들을 썼어요. 한 인간이 3년 동안 쓴 글 중에 대표작이 무엇이었냐면 글쎄, ‘왕입니다요’입니다. 그때 그 생활 때문인지 제목에 대한 노이로제가 좀 있어요. 카피라이터 하면서 시달린 것 때문에.”4)
이후 박민규는 책 전문 월간지를 내는 잡지사에서 일을 하게 된다. 그때 우연찮게 소설을 쓰게 된다.
“잡지사 편집장으로 있을 때 필자 한 분이 급작스레 펑크를 냈어요. 인쇄소로 원고를 넘기기까지 남은 시간은 두 시간 남짓. 하는 수 없이 코너 하나를 맡아 가지고 얼렁뚱땅 소설 비슷한 것을 썼지요. …… 「카즈야(KAZUYA)의 낙서(樂書)」라고, 음악에 관한 이야기였죠. 그런데 그것을 써놓고 나니까 기분이 좋아졌어요. 그럼 진짜를 한번 써보자, 라는 생각이 들었죠.”5)
그 길로 잡지사를 그만둔 그는 아내의 전폭적인 지지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2년 6개월 동안 글만 썼다. 그 기간 동안 서른 편의 단편과 세 편의 중?장편을 완성했다.
그때 쓴 것이 바로 『지구영웅전설』과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이다. 야구도 별로 좋아하지 않고 삼미 팬도 아니었던 그가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을 쓰게 된 이유는 뭘까?
“학교 다닐 때는 만날 꼴찌였고, 직장 다닐 때는 ‘쟤 아직도 안 잘렸냐’는 시선을 받으며 살았죠. 저처럼 뒤떨어지고 못하는 삶이 하나도 부끄러운 게 아니라는 거, 이제는 용기를 가지고 놀자는 취지에서 쓰게 된 소설입니다.”6)
팍스 아메리카나를 비꼬고 있는 『지구영웅전설』을 쓰게 된 계기는 이렇다.
“어느 책에선가 일본인만 명예 백인으로 간주해주겠다고 하는 대목을 읽었습니다. 명예 백인이라는 단어에서 바나나맨이라는 캐릭터가 떠올랐죠. 아시아인이면서 백인이 되고 싶어 하는, 껍질은 황인종이지만 속엣 것은 백인인. 그런데 지금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나나맨이 아닌가라는 생각도 듭니다.”7)
『지구영웅전설』은 박민규에게 문학동네 신인작가상을 안겨주었다. 당시 심사위원이었던 문학평론가 도정일은 『지구영웅전설』에 대해 이렇게 평한다.
“이 소설은 문학의 어떤 의자에도 편히 앉지 않는다. 판타지인가 싶으면 판타지의 의자에서 풍자로 가고, 풍자인가 싶으면 풍자의 의자에서 냉소로 간다. 냉소인가 하면 냉소의 건너편에 가서 블랙코미디가 된다. 그 블랙코미디는 또 그리 코미디가 아니다. 그러므로 내가 보기에 이 작가의 재능은 이 탁월한 미끄러지기에 있는 듯하다.”8)
그러나 도정일은 박민규의 탁월한 재능을 인정하면서도 “뛰어난 필력에도 불구하고 탐구와 발견의 뒷받침이 없어 보이고, ‘미국이 지배하는 세계’에 대한 풍자의 강한 열정에도 불구하고 그 열정은 범속하고도 진부한 이류 정치평론의 도식을 넘어서는 것이 아니라 그 도식 밑으로 미끄러진다”며 박민규가 가진 한계도 지적한다.9)
그럼에도 불구하고 심사위원들은 모두 박민규가 가진 가능성에 주목하고 그에게 상을 안겨주었다.
쓰고 싶은 것을 쓴다
한 해에 각기 다른 소설로 두 개의 문학상을 받는 일은 분명 흔치 않은 일이다. 신인작가에게는 영광일 수도 있다. 그러나 박민규는 상을 받은 것을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듯하다. 문학상을 두 개나 받은 소감을 그는 이렇게 피력한다.
“제가 잘했다기보다는 예전에 비해서 문학을 하려는 사람들의 숫자가 적어서 그런 것 같아요. 저희 때만 해도 문학에 대한 환상 같은 것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세상이 전부 돈으로 말해지잖아요. 재능이 있는 사람은 돈 벌 수 있는 쪽으로 가버리니까 그런 거겠죠. 2003년도에 작가가 된 사람인데 저는 솔직히 요즘 문학이 생산업인지 서비스업인지 분간이 가지 않아요. 왜 농업에도 우루과이라운드가 있는 것처럼 문학에도 우루과이라운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거든요. 농사짓던 사람들이 도시로 와서 ‘삐끼’를 하는 것처럼 문학을 하는 사람들도 이제는 돈이 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만 해도 1970~1980년대 작가들을 보면서 문학을 공부했지만 지금은 안 그렇잖아요?”10)
박민규는 당선 소감에서 박상륭과 이외수 두 선배 작가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표하며 두 작가의 각기 다른 면모를 가진 소설가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박상륭 선생과 이외수 선생은 저에게는 하나의 아이콘과 같은 의미예요. 솔직히 두 분의 문학은 많이 다르죠. 제가 잡지사에 다닐 때 두 분을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두 분 다 괴물 같잖아요. 그리고 저는 소설가도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해요. ‘연구의’로서 소설가와 ‘개업의’로서 소설가. 박상륭 선생이 연구의라면 이외수 선생은 개업의죠. 의학에서 어떤 병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탐구하는 것이 연구의라면 개업의는 실제 일상생활에서 우리의 아픈 몸을 치료하는 최일선에 서 있는 것이죠. 솔직히 연구의가 하는 일은 잘 모르잖아요. 100년 후, 200년 후 의술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 연구의라면 개업의는 머리가 아프면 주사를 놓고 아스피린을 처방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개업의도 아무나 못하잖아요. 이외수 선생의 글은 재밌잖아요. 그렇지만 그렇게 쓰는 것도 아무나 못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저는 연구의와 개업의 이 모두를 다하고 싶어요. 그래서 개인의 상처, 고통받은 개인의 다친 부분을 고칠 수 있는 소설가가 되고 싶어요.”11)
그러면서도 박민규는 문단에서 원하는 겸손한 신인은 되지 않겠다고 말한다. 창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문단에 처음 나온 신인들에겐 세상이 원하는 것이 있잖아요. 무언의 압력이랄까. 겸손하길 바라고 얌전하길 바라는, 이런 것들 때문에 좋은 작품이 나오지 않는다고 봐요. 사람들이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이죠. 저는 작가가 멋있게 살지 않으면 작가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자살하거나 탈영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죠. 군대에서 일어나는 자살이나 탈영 사건이 군대 자체를 바꿀 순 없잖아요. 제가 지금 쓰고 싶어 하는 이야기도 이런 거예요. 세상이 점점 작아지고, 말 그대로 ‘마이크로 소프트’해지고 있잖아요. 사람들이 점점 지배하기 좋은 인간형으로 바뀌고 있잖아요. 이런 것들을 저는 이야기하고 싶어요.”12)
이 말에서 볼 수 있듯 박민규는 당돌하다. 그 당돌함은 그의 문학관에서도 드러난다. 그는 자신이 쓰고 싶은 것을 쓰겠다고 진작부터 얘기해왔다. 이론 대신 자기가 가진 동물적인 감각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도 얘기한다.
“저는 누가 뭐라 해도 제가 쓰고 싶은 것을 쓸 거예요. 저는 글을 쓸 때 한 2, 3일 동안은 눈을 가리고 있어요. 눈 가리고 밥 먹고 화장실 가고, 그렇게 며칠 하다가 안대를 벗으면 동물적인 감각이 곤두서는 것을 느끼죠. 그때 쓰는 거예요. 격투기 하는 분들이 등 근육을 발달시키기가 제일 어렵다고 해요. 그래서 선수들은 등만 보면 고수냐 하수냐를 구분한다는 거죠. 저는 상상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등이 원래 날개가 있던 자리잖아요. 상상력의 차이, 이론 대신 동물적인 감각으로 글을 쓰는 것이 제가 하고 싶은 거죠.”13)
평단에 던진 숙제
박민규의 당돌함은 계간 <대산문화> 2004년 여름호에 「좃까라 마이싱이다!」라는 글을 발표한 데에서도 드러난다. 과격한 제목의 이 글은 같은 잡지 봄호에서 서정인, 김원우 등 선배 문인들이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우려 섞인 조언을 했던 것에 대한 답이었다. 이 글에서 박민규는
“지금의 위기는 문학의 위기가 아니다. 문학의 위기를 떠드는 놈들의, 위기일 따름이다”,
“근친상간 그만하자. SF도 추리도 공포소설도, 심지어 제대로 된 하이틴 로맨스도 있어야 정상이 아닌가?”라고 주장했다.14)
또 이 글에서 박민규는 잡지 편집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기도 했다.
“③독자나 평론가들이 자신의 소설에 대해 오해, 오독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답: 누구에게나, 꼴린 대로 생각할 권리가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④자신을 비롯한 젊은 작가들의 소설에 대한 선배 문인들의 평가(<대산문화> 2004년 봄호)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답: 수고하셨다는 견해를 가지고 있다. 나도, 열심히 하겠다.”15)
이런 당돌함 때문인지 최재봉은 박민규 소설에 대한 평론 글을
“박민규 소설에 대한 기대 8, 불만 2의 이 글을 그가 읽는다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짐작되지 않는 건 아니다: 수고하셨다. 그리고, 좃까라 마이싱이다!”라고 끝을 맺기도 했다.16)
박민규는 한국문학에 대해서도 신랄한 비판을 가했다. 그는
“‘한국문학’이란 환상을 가지게 된 건 해방 후 1980~1990년대까지 이곳의 문학이 봉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한국소설의 위기’란 개폼일 뿐 한국문학은 단 한 번도 번성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과거에도 소설이 수입됐다면 그렇게 많이 팔리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한국문학’이 성립하려면 서구에서 일본을 통해 수입한 장르가 아니라 음악으로 치면 레게나 재즈 같은 새로운 장르가 나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너무 어려운 용어가 많아서 문예지가 배달돼도 읽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다.17)
박민규가 한국문학계에 던진 파장은 이것만이 아니다. 문학평론가 권성우는 박민규의 소설은 문학비평가에게 도전과제가 되었다고 얘기한다.
“박민규의 소설은 그가 존중하는 선배소설가 박상륭의 작품과 완전히 다른 의미에서 이 시대의 문학비평가에게 하나의 ‘도전’이자 ‘뜨거운 감자’이다. 한 사람의 비평가로서 박민규의 소설을 어떻게 평가하고 수용하느냐의 문제는 그 비평가로 하여금 전통과 혁신, 정전(canon)과 실험, 내용과 형식, 현실과 판타지, 진지함과 가벼움, 고급문화와 대중문화(혹은 예술성과 대중성), 문어체와 구어체, 리얼리즘과 모더니즘 등의 수다한 미학적 주제와 비평적 척도에 대한 근본적인 정체성을 환기시킨다.”18)
권성우는 또 박민규가 문학비평계에 하나의 커다란 숙제를 안겨주었다고 평한다.
“설사 그것이 상찬이나 적극적인 의미부여가 되었건, 엄정한 비판이나 문학적 폄하가 되었건 간에 이제 우리 시대의 비평가들은 박민규 소설에 대한 발언과 판단 없이 이 시대 소설 문학에 대한 전체적인 조감도를 온전히 그리는 것이 힘들어진 것이 아닐까. 왜냐하면 앞으로 박민규 식의 무규칙 이종 소설은 하나의 유력한 문학적 트렌드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앞으로 수많은 박민규가 나타나리라. 그럴 때 비평은 과연 무엇을 해야 되는 것일까.”19)
문학평론가 이명원 역시 박민규의 소설이 던져준 소설과 비평의 관계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박민규 씨의 소설을 읽으면서 또 한 가지 생각이 든 것은 이런 방식으로 소설이 진화하기 시작한다면, 이제 비평가가 불필요한 시대가 올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박민규 씨의 소설은 비평의 매개 없이 독자와의 직접 소통이 용이한 새로운 문학의 출현으로 느껴졌는데, 이 경쾌한 작품을 두고 비평가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거운 언어를 동원하면서 분석하는 건 일종의 희극적인 상황이 아닌가,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20)
그러나 권성우는 이명원의 지적과는 다르게 박민규가 비평가에풰 가장 선호되는 소설가 중 하나라면서,
“박민규는 이 시대 문학의 주류 비평의 해석학뿐만 아니라 대중독자들로부터도 지원과 관심을 받고 있는 드문 소설가이다. 이러한 박민규의 면모는 대중적 지지와 비평적 관심이 철저하게 분리되어 있는 소설가 공지영의 면모와 인상적으로 대비된다”고 평한다.21)
연이은 수상
권성우의 말처럼 박민규는 대중독자와 비평가 양쪽으로부터 호의적인 평을 받았다. 특히 문단에서 그에게 보인 관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2005년 박민규는 첫 소설집
『카스테라』를 출간한다.
『카스테라』에는 총 10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그 이유가 재미있다. 박민규는 자신이 좋아하는 지미 헨드릭스의 데뷔 앨범에 10곡이 수록돼 있어서 자신의 첫 소설집에 10개의 단편을 실었다고 한다.
『카스테라』는 박민규에게 제23회 신동엽창작상을 안겨주었고 비평가들의 찬사 또한 안겨주었다.
『카스테라』에 대해 문학평론가 백낙청은
“이번에 『카스테라』를 읽으면서 훌륭한 작가임을 재확인했고 나 나름대로 ‘한국문학의 보람’을 느꼈지요”라고 극찬했다.22)
박민규는 2006년에 소설
『핑퐁』을 내놓는데
『핑퐁』의 책 뒷날개에서 백낙청은 다음과 같은 호의적인 평가를 내놓는다.
“박민규의 소설은 우선 재미있게 읽지만 그 ‘재미’의 성격이 간단치 않다. 새로운 감각과 재치 넘치는 표현, 기발한 착상 등 여러 신예작가들이 공유하는 미덕 외에도 언어예술의 온갖 가능성을 총동원하는 드문 능력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장편소설에서 특히 그러한데 『핑퐁』도 예외가 아니다. 손에 들면 단숨에 읽히지만 책을 놓았다가 다시 잡을 때면 이것이 줄거리로만 연결된 작품도 아니려니와 줄거리를 떠나 입심으로만 끌고 가는 소설도 아님을 실감하곤 한다.”박민규에 대한 문단의 평가는 계속 이어졌다. 2007년 6월 박민규는 단편 「누런 강 배 한 척」으로 이효석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되었고, 2009년 단편 「근처」로 제9회 미당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그 사이 박민규는 2008년 12월 1일부터 2009년 5월까지 인터넷서점 ‘예스24’에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연재했고, 2009년 7월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예담)를 출간했다.
계속 상을 받아 자칫 창작 욕구가 느슨해질 수도 있었지만 박민규는 자신이 칭찬에 둔감하기 때문에 괜찮다고 말한다.
“고교 시절 저는 꼴찌 등급인 내신 15등급이었습니다. 담임선생님이 그런 저를 반 평균 떨어뜨린다며 6개월간 괴롭혔지요. 칭찬을 받은 기억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소설 잘 쓴다는) 남들의 칭찬에 무감각합니다.”23)
그리고 2010년 1월 월간 <문학사상> 2009년 12월호에 실린 단편소설 「아침의 문」으로 제34회 이상문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아침의 문」은 자살을 기도하던 남자가 건너편 옥상에서 몰래 아기를 낳아 죽이려던 미혼모를 우연히 목격한 후 옥상으로 건너가 아이를 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박민규는 이 소설을 ‘답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고 밝혔다.
“세상에는 모여서 자살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하고 남몰래 아기를 낳아서 제 손으로 죽이는 여자도 있더군요. 문득, 그 두 존재가 서로 맞닥뜨리면 어떻게 될까 하는 생각에서 쓴 작품입니다. 소설에 나오는 이들은 ‘답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함께 모여서 자살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새롭게 태어나는 어린 생명 역시 답이 안 나오는 탄생이라 할 수 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 있는 사람들, 힘든데도 살아주시는 분들에게 감사한다는 마음으로 소설을 썼습니다.”24)
이 소설에 대해 문학평론가 김윤식?권영민, 소설가 윤후명?신경숙?권지예 등 심사위원들은
“우리 시대가 안고 있는 삶의 문제성을 근원적인 생명의 가치에 대한 파괴적 해석을 통해 새롭게 형상화하고 있다”며
“파격적 기법이 소설적 소재의 과격성과 조화를 이루며 독특한 서사적 미학을 가능하게 한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25)
수상 사실이 알려졌지만 박민규는 상을 받지 않는 게 좋을 것 같아 고민했다고 한다. 자칫 상을 받는 게 자신의 성질을 변하게 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개인적으로 상을 받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안 받는다고 할까 고민했다. …… 상을 받고 ‘뭐라도 된 듯한 생각’에 내가 가진 성질이 변하지 않도록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가능한 한 빨리 잊자 생각한다.”26)
또
“말없이 쓰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다. 계속 신인으로 살아갈 생각”이라는 말도 덧붙였다.27)
그리고 2010년 11월 박민규는 두 권으로 된 소설집
『더블』(창작과비평사)을 출간한다.
격투와 비슷한 글쓰기
2003년 등단한 이래 박민규는 끊임없이 작품을 발표해왔다. 한 달에 3주 동안은 춘천에 머물며 소설을 쓰고, 1주 동안은 집에 와서 쉴 정도로 그는 소설 쓰는 일에 매진해왔다. 그에게 소설은 어떤 의미일까?
“저는 제가 소설을 왜 쓰는지 아직 잘 모릅니다. 이번 작품들도 그냥 마구 썼어요. 지금도 뭐가 뭔지 몰라요. 다만 앞으로 무엇이든 쓸 수 있다는 느낌이 들긴 해요.”28)
이 말만 들어서는 소설 쓰는 이유가 명확지 않다. 그는 이런 말도 했다.
“나는 내가 겪은 일을 절대 소설로 쓰지 않는다. 소설은 상상력과 정보의 결합이다.”29)
그럼 그가 쓰는 소설의 주제는 무엇일까? 의외로 간단하다.
“제가 쓰는 소설의 주제는 근본적으로 한 가지입니다. 잘 살자는 것이죠.”30)
잘 살자라?! 손에 잡힐 듯 잘 잡히지 않는다.
어찌 됐든 그는 글을 계속 쓰겠다고 한다. 격투가처럼 말이다.
“글 쓰는 일은 격투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홍수환 씨가 어느 경기의 해설에서 그런 말을 했어요. ‘예전의 복서들은 맨 먼저 파괴를 생각했다. 그런데 요즈음의 복서들은 승리만 생각한다.’ 파이팅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지적인 거죠.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권투가 재미없어진다고 불평합니다. 제가 갑자기 글을 쓰고 싶어진 것이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파이팅-격투가들의 대부분이 몸이 기형적으로 발달한 사람들이에요. 모든 근육이 골고루 발달하지 못했죠. 어떤 근육이 가볍지 않으면 다른 어떤 근육에 힘을 실을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완벽한 체형을 갖춘 작가란, 글쎄요, 전 파이팅이 아니라 헬스를 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런 몸을 가지고 실질적으로 데미지를 생각하는 분들은 없어요. 상대편을 꼼짝 못하도록 끌어안고만 있으려 할 뿐이죠. 제가 하고 싶은 것은 파이팅이에요. 계속 쓸 생각입니다. 욕을 먹을 때도 있고 질 수도 있겠죠. 전 제가 잘할 수 있는 것에 힘을 쓰고 몰두하려고 합니다.”31)
인파이터의 자세로 소설을 쓰겠다는 각오를 밝혔던 박민규. 그는 그 말대로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고, 발표하는 작품마다 평단과 독자 모두에게 만족을 안겨주었다. 그리고 어느새 한국문학을 이끄는 대표 작가군에 포함되었다.
그런데 그는 환갑 때까지만 글을 쓰겠다고 한다. 환갑이 지나면 자신이 좋아하는 기타를 치겠단다.
“저는요, 예순 살까지만 소설가 할 거고요, 그 뒤는 기타만 칠 거예요. ‘전직 소설가 기타리스트’요. 나이 들어 글 못 쓰면 전직 소설가 아닌가요.”32)
‘무규칙 이종 소설가’란 말, 참 잘 어울린다 싶다.
|주|1) 최재봉, 「박민규 전복적 상상력의 문제작가」, <한겨레>, 2005년 6월 10일, M02면.
2) 최재봉, 「박민규 전복적 상상력의 문제작가」, <한겨레>, 2005년 6월 10일, M02면.
3) 하성란, 「그는 중심을 파고드는 인파이터다」, 박민규,
『지구영웅전설』(문학동네, 2003), 177쪽.
4) 하성란, 「그는 중심을 파고드는 인파이터다」, 박민규,
『지구영웅전설』(문학동네, 2003), 186쪽.
5) 하성란, 「그는 중심을 파고드는 인파이터다」, 박민규,
『지구영웅전설』(문학동네, 2003), 177~178쪽.
6) 김은형, 「‘삼미슈퍼스타즈의…’로 한겨레문학상 받은 박민규 씨」, <한겨레>, 2003년 6월 2일, 31면.
7) 하성란, 「그는 중심을 파고드는 인파이터다」, 박민규,
『지구영웅전설』(문학동네, 2003), 182쪽.
8) 도정일, 「심사평」, 박민규,
『지구영웅전설』(문학동네, 2003), 170쪽.
9) 도정일, 「심사평」, 박민규,
『지구영웅전설』(문학동네, 2003), 170쪽.
10) 김동현, 「길들여지지 않은 ‘괴물’ 그 탄생의 전조」, <월간 말>, 2003년 8월호, 166쪽.
11) 김동현, 「길들여지지 않은 ‘괴물’ 그 탄생의 전조」, <월간 말>, 2003년 8월호, 166쪽.
12) 김동현, 「길들여지지 않은 ‘괴물’ 그 탄생의 전조」, <월간 말>, 2003년 8월호, 169쪽.
13) 김동현, 「길들여지지 않은 ‘괴물’ 그 탄생의 전조」, <월간 말>, 2003년 8월호, 169쪽.
14) 김지영, 「젊은 소설가들 ‘대산문화’서 중견작가 비판에 반론」, <한국일보>, 2004년 6월 8일, 21면.
15) 최재봉, 「박민규 전복적 상상력의 문제작가」, <한겨레>, 2005년 6월 10일, M02면.
16) 최재봉, 「박민규 전복적 상상력의 문제작가」, <한겨레>, 2005년 6월 10일, M02면.
17) 한윤정, 「‘문학동네’ 여름호 젊은 소설가 좌담 “문학이 위기이고 늙었다?”」, <경향신문>, 2007년 5월 24일, 19면.
18) 권성우, 「박민규, 혹은 비평의 운명?1」, <오늘의 문예비평>(2007년 2월), 46쪽.
19) 권성우, 「박민규, 혹은 비평의 운명?1」, <오늘의 문예비평>(2007년 2월), 47쪽.
20) 권성우, 「박민규, 혹은 비평의 운명?1」, <오늘의 문예비평>(2007년 2월), 48쪽에서 재인용.
21) 권성우, 「박민규, 혹은 비평의 운명?1」, <오늘의 문예비평>(2007년 2월), 50쪽.
22) 권성우, 「박민규, 혹은 비평의 운명?1」, <오늘의 문예비평>(2007년 2월), 50쪽에서 재인용.
백낙청의 이런 유례없는 상찬에 권성우는
“유력한 문예지를 운영하는 출판사에서 출간하는 단행본에 대한 비평적 거리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는 현상이 지금 비평계를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이미 수년 전부터 이런 현상이 전개되어왔다. 문제는 출판계의 위기가 심화되면서 이제 창비마저도 그러한 시스템의 배후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라고 비판하며 백낙청의 발언에서 문학권력과, 주례사 비평 문제를 지적한다. 앞의 글, 60쪽.
23) 조장래, 「박민규 첫 소설집 출간 “남들 칭찬?평가 무감각 뭣이든 쓸 수 있다 느껴”」, <경향신문>, 2005년 6월 8일, 23면.
24) 최재봉, 「34회 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박민규 씨 “힘들어도 살아주는 사람들에 감사”」, <한겨레>, 2010년 1월 8일, 28면.
25) 이영경, 「‘아침의 문’ 박민규 씨, 제34회 이상문학상 대상」, <경향신문>, 2010년 1월 8일, 21면.
26) 이영경, 「‘아침의 문’ 박민규 씨, 제34회 이상문학상 대상」, <경향신문>, 2010년 1월 8일, 21면.
27) 이영경, 「‘아침의 문’ 박민규 씨, 제34회 이상문학상 대상」, <경향신문>, 2010년 1월 8일, 21면.
28) 조장래, 「박민규 첫 소설집 출간 “남들 칭찬?평가 무감각 뭣이든 쓸 수 있다 느껴”」, <경향신문>, 2005년 6월 8일, 23면.
29) 한윤정, 「애니메이션, 추리…기발한 상상력 신세대 소설 두 편」, <경향신문>, 2003년 6월 21일, 25면.
30) 하성란, 「그는 중심을 파고드는 인파이터다」, 박민규,
『지구영웅전설』(문학동네, 2003), 183쪽.
31) 하성란, 「그는 중심을 파고드는 인파이터다」, 박민규,
『지구영웅전설』(문학동네, 2003), 179쪽.
32) 김지영, 「너희들 누구냐…박민규-김형태-성기완의 ‘무규칙이종예술가 콘서트’」, <동아일보>, 2006년 11월 10일, 25면.
제공: 인물과사상사
(
//www.inm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