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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마을 사람들이 어디로 사라졌을까?

베니싱,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어둠의 공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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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무섭게 돌아가고 있다. 일본 지진이 낳은 끔찍한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과 영화의 구분이 모호해질 정도다. 문득,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영화라는 것이 정말 허구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베니싱: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어둠의 공포

세상이 무섭게 돌아가고 있다. 일본 지진이 낳은 끔찍한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현실과 영화의 구분이 모호해질 정도다. 문득,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영화라는 것이 정말 허구만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후쿠시마 지진 사태는 이어 원전 사고로 이어져 세계인들의 촉각을 곤두서게 한다. 뿐만 아니라 이번 지진의 여파는 필리핀, 대만 등 다른 동남아시아 지역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연쇄 지진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것이 세상의 끝이 아니기를 기도하게 된다. 그리고, 상처 입고 고통 받은 이들이 부디 하루 빨리 다시 건강한 모습으로 회복할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1587년 영국 식민지였던 노스캐롤라이나 해변 로어노크섬에서 사라진 115명의 주민, 1930년 캐나다 북부 로키산맥에서 없어진 27명의 마을주민, 1940년 버지니아 해군기지에서 사라진 45명의 브레이크호 승무원. 1945년 포르투알레그레로 향하던 여객기 탑승자 92명 실종, 1954년 버뮤다 삼각지대 플로리다로 향하던 미 해군 수송기 탑승자 43명 실종 등을 ‘5대 미스터리 사건’이라 부른다. 영화 <베니싱>은 그 중에서도 로어노크섬 모든 주민들과 집들이 사라진 뒤 나무 중앙에 ‘크로아톤’이란 글자만 새겨져 있었던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작품이다. ‘베니싱(vanishing) 현상’이란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현상을 뜻한다. 사람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5대 미스터리 사건은 아직도 풀리지 않는 미제사건으로 남아있다.


지난해 부산 국제영화제에 출품된 적이 있는 영화 <베니싱>은 어둠이라는 근원의 공포를 다룬 작품이다.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빛이 없는 곳에서 사람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리고 사람의 형체를 가진 그림자들이 사람들을 덮쳐온다. 믿을 것은 자기 손에 들고 있는 자기만의 빛뿐이다. 그것이 랜턴이든 라이터든 혹은 야광봉이든 중요하지 않다. 믿을 것은 자신 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영화는 극도의 외로움을 두려움으로 차용한다. 분명 거리로 나와있지만, 세상은 닫혀있는 느낌이다. 어둠이라는 불확실한 공간에서 남아 있는 것은 자신 뿐이다. 헷갈린다. 이것이 새로운 시작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 세상의 끝을 이야기 하는지 모르겠다. 그림자에 동화되어야 할지 아니면 계속 빛을 지켜나가야 할지에 대한 확신도 서지 않는다. ‘나는 사라지지 않는다’를 계속 외치는 이들은 과연 진정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을까. 나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것은 타인의 존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은 아닐까.

이 영화를 끌고 가는 힘은, 어둠이라는 아이디어와 캐릭터에 있다. <스타워즈>와 <점퍼> 등으로 할리우드 주류 영화계에서 확고한 위치를 구축한 ‘헤이든 크리스텐슨’은 기자 출신의 ‘루크’라는 캐릭터를 연기한다. 그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버린 남자다. 그런 그가 세상에 어둠이 잠기자 커리어를 위해 포기해야 했던 아내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물리치료사를 연기한 <미션 임파서블2>, <2012>의 헤로인 ‘탠디 뉴튼’은 아이를 잃어버린 엄마의 슬픔을 대변한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소년이 있다. 이 영화가 실화임을 강조하기 위한 캐릭터이자 또한 이 모든 상황이 영화라고 대변해 주는 캐릭터로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존 레귀자모’가 등장한다. 그는 극장에서 영사기를 돌리며, ‘크로아톤’과 ‘로아노크 섬’에 대해 책을 읽는다. 그들이 어떻게 모이게 되었는지,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인지 이야기들이 풀어져 나가는 것이 이 영화가 보여주는 상황의 핵심이다. 그리고 그 긴장감과 궁금증이 주는 영화적 재미가 상당하다.


<베니싱>은 단순히 재난영화로 치부하기에는 복잡다단하게 생각할 것들이 촘촘히 짜여진 영화다. 이 영화를 두고 종교적인 접근을 할 수도 있고, 혹은 철학적이나 심리학적으로 풀 수도 있다. 존재에 대한 물음과 빛에 대한 이야기에 더불어 구원과 종말의 메시지는 종이 한 장 차이고, 고독과 어두움이라는 근원적인 공포는 심리적으로 혹은 철학적으로 접근 가능 하다는 뜻이다. 혹자는 에너지 낭비에 대한 자연에의 경고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 태양 폭발로 인한 세계 정전 가능성의 뉴스를 접하면, 영화는 더 이상 영화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를 연출한 브래드 앤더슨 감독 역시도 이 영화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 냈으면 좋겠다는 인터뷰를 했다. 그의 연출 의도를 이해하고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사람들이 더 많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댓글: 요즘 네티즌들의 별점 평을 보면, 자기가 생각하는 점수보다 높거나 낮으면 그 점수를 맞추기 위해 자신이 느끼고 생각한 점수와는 다른 평을 내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영화가 5점 정도 수준인데, 전체 평점이 10점이니까 점수를 깎기 위해 1점을 주겠다 하는 식이다. 여기에 불법 공유파일로 영화를 보고 나서는 ‘나는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도 안 되는 식의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있다. 어처구니가 없다. 왜 내가 생각하는 바를 다른 이들에게 강요해야 하고, 불법을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문화가 조성 되었을까? 조금은 슬프기도 하고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다. 이런 식으로 나가다 보면, 결국 영화라는 문화 콘텐츠가 고사해 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모르는 걸까? 영화 비즈니스를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이 같은 풍조는 어둠 속으로 하루빨리 사라졌으면(vanish…ing)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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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정성렬

정성렬의 아비정전(阿飛正傳)
"아비(阿飛)"는 '아비정전'의 주인공 이름이자 불량한 혹은 반항하는 젊은이를 상징하는 이름이며, "정전(正傳)"은 "이야기"라는 뜻. MOVIST.COM에서 "정성렬의 영화칼럼"을 2년 간 연재했으며, 인터넷 한겨레의 문화부 리포터, '연인', '극장전' 등의 홍보를 맡은 소란커뮤니케이션에서 마케터로 활동하기도 했다. 대학원을 진학하려 했으나 영화에 대한 애정을 접지 못하고 (주)누리픽쳐스에서 '향수', '마이클 클레이튼'등의 작품을 마케팅 했다. 현재, 좋은 외화를 수입/마케팅해 소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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