펑크밴드 블링크 182(Blink 182)의 드러머 ‘트레비스 바커’가 힙합 앨범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만의 드럼 비트가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 버스타 라임스(Busta Rhymes) 등과 만나 어떤 소리를 구현해낼지 궁금하네요. 그리고 작년 <Oneway Street>앨범에 이어 여전히 여러 장르를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원웨이의 2집, 기타 연주앨범으로 2번째 미니앨범을 발표한 기타리스트 유병열의 앨범도 소개합니다.
트레비스 바커(Travis Barker) <Give The Drummer Some> (2011)
트레비스 바커는 블링크 182(Blink 182)의 드러머다. 그런데 「All the small things」라는 희대의 익살곡으로 새천년을 호령하는가 싶더니 행방이 묘연해졌다. 사실 밴드 간에 감정의 골이 깊었던 탓도 있었고, 트레비스 바커는 2008년 9월 비행기 사고로 요절할 뻔했던 터라 그룹의 존명자체가 불투명했다. 다행히도 펑크 꼴통 3인방은 2009년 재결합을 천명했다. 바커의 솔로 앨범은 그동안의 공백을 깨며 기지개를 키는 워밍업의 성격을 지닌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신나는 펑크 앨범을 기대했다면 철저히 오산이다. 힙합 앨범이다. 그가 동원한 출연진을 보라. 명단과 각각 아티스트를 소개하려면 이 지면이 모자랄 판국인데, 몇몇을 제외하고는 래퍼 일색이다. 록과 힙합의 콜라보레이션이 이제는 더 이상 낯선 풍경은 아니지만 온전히 하나의 정규앨범 형태로, 게다가 드러머의 개인 앨범에서 실현된 일은 그리 흔치 않았다.
10여 년간 동선을 추적해보면 블링크 182로 활동 중이었거나, 해체 후에도 힙합 아티스트들과 꾸준히 협업을 해왔음을 알 수 있다. 릴 웨인(Lil' Wayne), 게임(Game), 번 비(Bun B) 등의 개인 곡에 드럼 세션으로 참여하면서 인맥을 넓혀왔다. 이러한 품앗이가 있었기에 풍성한 참여 인물로 채워진 올스타 앨범이 탄생할 수 있었다.
핸드메이드 비트는 시퀀서로 적당히 마우스로 찍어내는 마찰음의 나열과는 특화된 매력을 제공한다.「If you want to」의 펑키한 드럼비트는 퍼렐 윌리엄스(Pharrell Williams)의 목소리와 멋스럽게 어울리고, 탄력적으로 튀어 오르는 맥박은 힙합 신에서 초고속 래퍼로 이름난 트위스타(Twista), 버스타 라임스(Busta Rhymes)에게 최적화되어있다. 즉 각 아티스트의 곡선을 살리는 맞춤형 비트로 재단하는 것이다. 리드미컬한 대목은 기타의 그루브로 연결된다.
앨범의 흐름은 적당히 쉬어가는 곡이 없이 피치를 조절하며 질주한다. 상당수의 트랙은 힙합 곡이지만, 후반부에 들어서는 파괴적인 하드코어 록 사운드가 조력하며 재차 급유지원에 나선다. 사정없는 융단폭격을 투하하는 전투조에 랜시드(Rancid)의 팀 암스트롱(Tim Armstrong), 슬래쉬(Slash), 슬립낫(Slipknot)의 코리 테일러(Corey Taylor)가 투합했다. 앨범 내 통일성을 운운하기에는 각 트랙이 머금은 열혈에너지의 폭주가 가히 치명적이다.
허를 찌르는 펑크 드러머의 일대사고가 힙합 팬들에게는 무척 반갑다. 힙합 팬이나 심지어 뮤지션까지 리얼 연주가 탄탄하게 받쳐주는 힙합 사운드를 향한 염원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더 루츠(The Roots)의 드러머 퀘스트러브(?uestlove)에 팬들이 열광하는 이유도, 릴 웨인이 그렇게 욕을 먹으면서도 일렉 기타를 잡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뮤지션의 시각에서는 ‘힙합은 악보도 못 읽는 이들이 만드는 저급 음악’이라는 편견에 도전하는 몸부림의 표현이다. 무엇보다 팬들 역시 재미없는 루프에 랩을 얹기만 하는 직무유기 아티스트보다는 살아 꿈틀거리는 재밍 안에서 빛나는 랩을 듣고 싶어 한다.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원웨이(One Way) <Rainy Day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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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을 전후하여 국내 가요계의 흑인음악 인재풀은 상당히 협소해졌다. 힙합은 부흥기를 모색하고는 있지만 결정타라고 할 수 있는 신성은 아직도 요연한 상태다. 싱어에 대한 목마름은 더 심각하다. 디즈(Deez)나 보니(Boni) 등 청신호를 보이는 신예 가수들이 얼굴을 내밀어 평론계에서 호평을 받기는 했지만, 메이저급의 중량감을 가진 인물로 등극하기 위해서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제작자의 의도에 의해서 음악 성향이 가변될 소지가 있는 빅뱅(BigBang)의 태양을 바라보는 불안한 시선은 이런 조급증을 대변하는 사례일 것이다.
일련의 상황들은 원웨이를 바라보는 시선에 힘을 싣게 한다. 끈적끈적한 흑인 창법을 구사하는 챈스(Chance)와 피터(Peter)가 대부분의 곡을 작곡했고, 랩을 맡은 영 스카이(Young Sky)도 작사에 직접적으로 관여했다. 근래 들어 남성 아이돌 그룹의 음악이 친(親) 흑인 음악적인 성향을 보이고는 있지만, 프로듀싱의 측면에서 멤버들이 개입하는 정도가 전무하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원웨이의 운영체제는 분명 고무적이다.
작년에 발표한
<Oneway Street>와 비교하자면 핵심 기조는 크게 다르지 않다. 흑인 음악의 최신 트렌드에 이미 대중이 익숙해진 만큼 멤버들의 음악적 지향에 더하여서, 흥행여부와도 맞닿아 있는 시의성을 첨가했다.
다만 진일보한 대목은 스펙트럼의 확장이다. 지난 앨범의 테마가 비트를 잘게 쪼개며 바운스를 강조한 클럽 튠 사운드였다면, 본 앨범은 템포를 조절하며 활동 폭을 팽창시키는 편을 택하였다. 이는 곧 자신감의 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첫 트랙에서부터 합창단의 효과를 꾀하며 「The forecast」에 웅장미를 부여했다.
강한 비트로 일격을 가하는 「Flight 101」같은 곡도 있지만, 침착한 멜로디 위주의 작품들이 지분을 넓혔다. 상대적으로 두 보컬의 역량을 부각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Rainy days」와 「Forever」의 분위기와 창법은 흡사 1990년대에 신선한 충격이었던 솔리드(Solid)를 상기시킬 만하다. 안정적인 피아노 선율과 코러스의 하모니가 세련된 팝 발라드를 완성시킨 「A thousand words」는 앨범의 마지막 방점을 찍는다.
음악에만 집중하겠다는 의미가 담긴 팀명에도 불구하고 그리 상황은 녹록치가 않다. 「New drag」의 도입부에 실린 자조 섞인 잡담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까지 한국은 음악 외적인 요소가 인기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크다. 외줄타기처럼 가느다란 길이다. 추구하는 길이 좌초되어 끊길지, 좌우로 선회할지는 짐작할 수 없다. 다만 이들의 우아한 고집은 본 앨범에서 한결 강건해졌다. 대중의 피드백은 아직 답보상태이지만 유쾌한 일방통행은 그대로다.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유병열 <유병열’s Story Of 윤도현> (2011)
지난해 말 첫 번째 기타연주 미니 앨범을 내고 해가 바뀌기가 무섭게 두 번째 미니앨범을 가지고 왔다. 이번은 미니치고는 많은 6곡이다. 기타의 표현세계를 확장하려는 유병열의 무한 욕구를 읽는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힘닿는 대로 기타연주 앨범을 내겠다!”는 게 그의 의지다.
앨범은 당연히 유병열이 펼치는 다양한 스타일의 전시장이다. 기타리스트가 내보일 수 있는 거의 모든 스타일, 느낌, 맛을 풍미할 수 있다. 처연한 발라드, 16비트 펑키한 연주에 이어 블루스 그리고 퓨전으로 표현된 재즈의 터치와 록의 질주 등 대중음악 연주의 모든 접근법이 여섯 곡의 울타리에서 난무(亂舞)한다.
유병열이 고려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장르가 아니라 필(feel)인 것 같다. 곡에 따라, 전하려는 기분에 충실해 그 감정을 기타에 이입한 것이다. 이 장르를 했으니 이런 저런 장르도 해보자는 장르탐험 욕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윤도현과 함께 한 곡 「가슴이다」는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윤도현과 유병열의 재회만으로도 뜻 깊지만, 과거 윤도현밴드의 이 투톱은 조금도 상대 영역과 맞서려고 하지 않고, 도리어 경배하고 의탁하는 마음으로 아니 가슴으로 노래하고 연주한다. 유병열이 쓴 윤도현밴드의 히트곡 「먼 훗날」 이후 10년이 더 흘러, 정말 먼 훗날에 감동의 호흡을 맞췄다. 윤도현을 앨범 제목으로 내걸 수밖에 없다.
마지막에 배치된 故 게리 무어(Gary Moore) 헌정 곡 「Remember」 또한 마음과 가슴의 산물이다. 결코 장르에 대한 의식이 아니다. ‘부활’의 김태원과 ‘조용필? 위대한 탄생’의 최희선과 함께 엮어낸 이 곡은 전체적인 조화에 역점을 두면서도 후반부 트리플 플레이에 악센트를 주는 기타발라드의 정점을 선사한다.
언제부턴가 조금씩 기타연주를 자제했던 모습에서 벗어나 충분히 기타로 달리는(기타리스트 앨범으로서는 너무나 당연한) 면모를 보이지만 중요한 것은 기타가 ‘세게’ ‘튀게’ 들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가슴이다」에서는 적당히 뒤로 물러나고, 「Punk kid」에서는 알맞게 앞으로 나서며 「Blue moon」으로는 가라앉았다가 「Cat dance」로는 슬쩍 장난을 건다. 그리곤 「DMZ」를 거쳐 「Remember」에 와서는 폭발한다.
‘기타가 말을 한다’는 묘사는 과장일 수 없다. 거침없는 해머링 풀링 오프의 트릴, 스트로킹, 벤딩, 비브라토, 베이스 핑거링, 이펙터 사용 등 모든 기타의 기본기가 여기 있다. 기타가 그려낸 느낌 그리고 주법은 이토록 다채로운데 기타가 강하게 들리지 않는 이유는 감정(感情)의 상하, 고저, 강약, 완급의 조절을 통해 밸런스를 획득해냈기 때문이다.
기타 앨범이다. 아니 ‘기타 감정의 앨범’이다. 감정에 충실한 유병열의 무한도전은 아름답다.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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