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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 저/이종인 역 | 열린책들 |
개성 있는 소재와 전개, 독창적인 아이디어로 자신만의 확고한 문학 세계를 구축한 폴 오스터의 신작. 『보이지 않는』은 오스터가 그간의 작품들에서 천착해 온 주제 의식에서 벗어나지 않으면서도 그 구성이나 내용 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하는, 말 그대로 '스토리텔러'로서의 오스터의 진면목이 유감없이 드러나는 작품이다. 그는 크게 하나의 그림을 이루는 이야기를 세 가지 시점, 40년의 세월을 넘나드는 전개 속에 녹여냄으로써 독특한 형식의 소설을 선보인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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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노래 가사에 이런 부분이 있다.
“사랑은 비극이어라. 그대는 내가 아니다.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이 지극히 짧은 세 문장의 가사에는 사랑을 할 때도, 또 이별을 하는 순간에도 끝내 각자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쓸쓸함이 묻어 있다. ‘그대는 내가 아니’기에, 함께 했던 시간들과 사랑했던 추억들마저 서로의 기억 속에 다르게 기록된다.
모든 것은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돌이킬 수 없다. 다만 그 시간 안에 함께 존재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만 숨쉴 뿐이다. 거의 대부분의 기억은 왜곡된다. 하지만 그것이 왜곡된 기억이라 믿는 이는 없다. 누구나 자신이 기억하는 것이 진실이라 믿고 산다. 진실이 무엇이든, 그렇게 기억하는 한 그 사람에게는 그 기억이 진실이 된다.
폴 오스터의
『보이지 않는』은 바로 그 기억의 파편들을 통해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1인칭 시점으로 시작하는 1부는 주인공인 애덤 워커가 자신의 기억을 기록한 것이다. 뉴욕 컬럼비아 대학에 다니는 스무 살 청년 애덤은 시인을 꿈꾸는 문학청년이다. 우연히 참석한 파티에서 그는 프랑스에서 교환 교수로 온 보른과 그의 동거녀 마고를 만나게 된다. 보른은 교수라는 직위에 걸맞는 지적이고 신사적인 모습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전쟁을 인간의 영혼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라 주장하며 분노를 즐기는 묘한 폭력성을 보이는 인물이다. 두 사람이 대화하는 동안 옆에서 있는 듯 없는 듯 행동하는 마고 역시 애덤에게 생소한 존재이기는 마찬가지다.
단 한번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을 뿐인 애덤에게 보른은 잡지 창간을 제안하며 거액을 투자하겠다고 한다. 뜻밖의 제안으로 시작된 그와의 인연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어느 날 애덤은 보른과 함께 산책을 하던 중 소년 강도를 만나게 되고, 보른이 그 소년을 칼로 찌르는 장면을 목격한다. 다음날 소년이 여러 번 칼에 찔린 채 시체로 발견되자 애덤은 그가 소년을 죽인 거라 믿는다. 하지만 자신이 망설이는 사이에 보른이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프랑스로 돌아가버린 것을 알게 된 후 오랫동안 죄책감에 시달린다.
2부가 시작되면서 독자들의 이 ?의 진짜 화자가 애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1부의 내용은 애덤이 쓴 원고의 일부이며, 실제로 이 책을 쓰고 있는 이는 그의 동창생이자 유명 작가인 제임스 프리먼(이하 짐)이다. 애덤이 보른을 처음 만난 1967년 봄으로부터 40년이 흐른 뒤, 짐은 애덤의 원고를 받게 된다. 불치병에 걸려 죽음을 앞두고 있는 애덤은 짐의 독려에 힘을 얻고 ‘여름’이라는 제목으로 1부에 이은 2부 원고를 완성한다. 2부에는 그 해 여름 애덤과 그의 누나 그윈 사이에 일어난 부도덕한 근친상간의 이야기와 애덤이 보른에게 복수하기 위해 그가 있는 파리로 떠나기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2부 원고까지 읽은 짐은 애덤을 만나기 위해 그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로 찾아간다. 하지만 애덤은 이미 죽은 후다. 대신 그는 짐에게 3부 ‘가을’의 원고를 남겼다. 3부는 원고라기보다는 메모에 가깝다. 죽음을 앞두고 급하게 써 내려간 탓이다. 완전한 문장이 되지 못한 메모들을 짐이 대신해서 글로 완성시킨다.
하지만 짐이 애덤의 누나 그윈에게 원고의 존재에 대해 고백하고 또 보여주게 되면서 이야기는 독자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원고를 읽은 그녀가 2부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애덤의 환상이 지어낸 이야기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윈의 말대로 정말 애덤은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를 글로 쓴 것일까. 아니면 짐을 비롯한 타인에게 자신과 애덤 사이에 일어난 일을 들키고 싶지 않아서 그윈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걸까. 만약 그녀의 주장대로 애덤이 쓴 2부의 내용이 거짓이라면, 1부와 3부의 내용들은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거짓일까. 40년이나 지난 일을 고백하고 있는 애덤의 기억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는 걸까.
『보이지 않는』그리고 마고가 모두 죽은 40년 후다. 따라서 그가 볼 수 있었던 것은 진실이 아닌 누군가의 말과 글을 통해 그려진 ‘기억’이다. 이 기억은 각자의 욕망에 따라 공통된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하고 또 서로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한다.
애덤의 기억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1인칭, 2인칭, 3인칭 시점으로 변해가면서 점점 진실과 허구, 현실과 환상의 사이를 오가며 독자들을 혼란에 빠트린다. 1부에서 자기 자신을 1인칭으로 서술함으로써 줄곧 ‘보이지 않는’ 존재였던 애덤은 2부에서 ‘너’라는 2인칭 존재로 이야기에 등장하는데, 이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의 이야기인 것처럼 2인칭으로 서술하는 방식은 이 이야기가 실제로 일어난 일인지 혹은 그의 머릿속으로 지어낸 이야기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짐에 의해 3인칭 시점으로 서술된 3부에 이르면서 허구와 진실의 경계선은 더욱 모호해진다. 심지어 짐은 책의 후반부에서 이야기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의 이름과 배경을 수정했음을 고백한다. 즉 이 책에 등장하는 애덤은 애덤이 아니고 그가 다닌 대학은 컬럼비아 대학이 아니며, 글을 쓰고 있는 작자 역시 짐이 아니라는 것이다.
책의 첫 부분에서 애덤은 오래된 과거가 되어버린 보른, 마고와의 첫만남에 대해 이렇게 기억한다.
“그들과 대화할수록 점점 더 그들이 실존 인물이 아닐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들은 내 머릿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야기 속의 가상 인물같이 보였다.” 그냥 스쳐 지나가게 마련인, 그다지 놀라울 것 없는 이 짧은 두 문장에는 책 전체를 관통하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 이야기는 누군가의 ‘기억’에 의존하여 전개되고 있으며, 따라서 그 기억 속 인물과 사건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는 누구도 알 수 없는 것이다.
보른이 실제로 소년을 죽인 범인인지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다만 애덤이 그렇게 믿었을 뿐이다. 그렇기에 어쩌면 애덤의 기억은 보른이 범인이라 믿었던 그의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쪽으로 왜곡되었을지도 모른다. 40년이나 지난 보른과의 첫만남에 대해 애덤은 그때 그들이 술을 마셨는지, 또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전부 기억하지는 못한다. 하지만 그는 보른이
“전쟁은 인간의 영혼의 가장 순수한 표현”이라고 말한 것을 기억하고 있다. 그 말이 보른의 폭력성을 잘 드러내주기 때문이다. 즉 보른이 살인범이라고 믿고 있는 애덤에게는 그의 폭력적인 면이나 비정상적인 행동들만이 더욱 과장되고 왜곡된 형태로 기억에 남아 훀는 것일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애덤의 기억 혹은 환상, 짐의 기록 혹은 창작을 통해 겉으로 드러나는 이야기들 외에 그 사이에 숨어 있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은 독자들의 몫이다. 책의 후반부에서 애덤이 아닌 다른 이들의 기억을 통해 서술되는 이야기는 보른과 얽힌 또 다른 충격적인 사건을 암시한다. 하지만 동시에 실제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과, 이 모든 이야기가 허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그 모든 것은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달려 있다.
보른이 소년 강도를 칼로 찌른 것은 소년이 총으로 위협을 했기 때문이었다. 나중에서야 소년의 총에 총알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는 애덤을 더 큰 죄책감 속으로 몰아넣는다. 반면에 보른은 끝까지 자신은 소년을 죽이지 않았으며 그를 칼로 찌른 자신의 행동 역시 정당방위였음을 주장한다. 만약 총에 총알이 장전되어 있었다면 보른이 애덤의 목숨을 구해준 거라고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총알이 있었던 없었든 결과는 똑같았을 거라고 보른은 말한다. 소년이 총으로 위협했을 때 그들은 총알이 있을 거라고 믿었고, 그렇게 생각한 이상 총알은 장전되어 있는 것이다.
1967년 애덤에게 일어난 그 모든 일들은 사실일까. 해답은 인간의 욕망과 기억 사이에 있는 ‘보이지 않는’ 이야기 속에 숨어 있다. 정답은 없다. 진실이 무엇이든, 책을 덮는 순간 당신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그 수많은 생각들이 바로 폴 오스터가 하고자 한 진짜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