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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공간 ‘발코니’

카유보트, 발코니에서 파리 시가지를 내려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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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도「발코니」라는 작품을 그렸지만 카유보트도 발코니를 즐겨 그린 화가이다. 마네가 다분히 스페인풍으로 발코니의 정경을 그렸다면, 카유보트는 이와는 다소 다르게...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이택광 저 | 아트북스
유럽 문화의 중심지이며 예술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는 대표 명소인 파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며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공간이 되어 주었던 파리. 인상파는 이러한 파리의 변화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 화가들을 칭하는 말이다. 지금 파리의 모습은 19세기 후반 오스망 남작의 지휘 아래에서 추진된 도시계획으로 완성 되었는데 이 때 인상파 화가들은 이 변화의 순간순간을 마치 스냅사진처럼 생생하게 그림으로 담아냈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발코니」,
캔버스에 유채, 69?62cm,
1880, 개인 소장

마네도「발코니」라는 작품을 그렸지만 카유보트도 발코니를 즐겨 그린 화가이다. 마네가 다분히 스페인풍으로 발코니의 정경을 그렸다면, 카유보트는 이와는 다소 다르게 근대적인 분위기를 많이 드러내는 프랑스적인 모습을 담았다고 하겠다. 마치 사진처럼 말이다. 발코니의 의미는 무엇일까? 실내에서 외부를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이 바로 발코니이다. 외부 자의 시선으로 본다면 은밀한 건물 내부를 조금이나마 훔쳐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마네의「발코니」가 부르주아적 삶에 대한 구경꾼의 궁금증을 유발한다면, 카유보트는 그렇지 않다. 오히려 파리의 시가지를 내려다보는 당당한 부르주아의 시선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카유보트의 그림은 과감한 구도를채택해서 오른쪽에 인물을 배치하고, 왼쪽에 풍경을 그려놓았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유럽의 다리」,
캔버스에 유채, 124.8?180.7cm,
1876, 프티팔레 미술관, 파리

「유럽의 다리」처럼, 이 그림에서도 아래에 있는 무엇인가를 구경하는 ‘신사’를 확인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 그림의 경우는「유럽의 다리」와는 달리 구경하는 주체가 부르주아이다. 이 남자들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보이지는 않지만 거리의 중들일 것이다. 햇빛이 반짝이는 가로수 아래로 느릿느릿 길거리 풍경을 경하며 돌아다니는 만보자들이 있을 것이 뻔하다. 「위에서 내려다본 대로」라는 특이한 구도의 그림?서 드러나는 거리의 풍경이 거기에 있다. 만보자는 구경꾼이자 동시에 구경거리를 제공하는 이중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이 그림은 잘 드러낸다. 도시는 이처럼 상호의 경험과 기억을 주고받는 공간인 셈이다.

귀스타브 카유보트, 「위에서 내려다본 대로」,
캔버스에 유채, 100?81cm,
1880, 개인 소장

귀스타브 카유보트, 「눈 내린 오스망 대로」,
캔버스에 유채, 62.8?95cm,
1880, 개인 소장

비슷한 시기에 그린「눈 내린 오스망 대로」에서도 이런 구도를 확인할 수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여기에서도 카유보트는 근대 도시의 풍경을 특이한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마치 독일의 문예학자 벤야민이 개념을 통해 19세기 파리의 풍경을 복원해내는 것처럼, 카유보트는 특유의 시선으로 실내에서 관찰할 수 있는 외부의 풍경을 생생하게 잡아내고 있다.

벤야민에게 파리의 풍경은 기억의 심해에 가라앉아 있다가 갑자기 떠오른 고대도시의 이미지들을 곳곳에 숨기고 있는 박물관 같은 곳이었다. 낯선 풍경처럼 안개 속에 잠겨 있던 무의식의 공간들이 나타난 것이 근대성이라는 것이다. 새로운 것은 무에서 유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이 출몰하는 것이라는 미학이 여기에 깔려 있다.

카유보트가 이 그림을 그렸던 1880년은 파리에 1월 내내 폭설이 쏟아졌던 해이다. 무척 이례적인 날씨였다. 2월에 되어서야 겨우 평년 기온을 회복했으니, 따뜻한 봄이 무척 그리웠을 것이다. 이렇게 길고 추운 겨울을 지나고 맞이한 생동하는 풍경이 카유보트의 「발코니」에 담겨 있다.

부유했던 카유보트야 별문제 없었겠지만, 당시 가난한 동네 몽마르트르에 살고 있던 르누아르는 매일 아침, 없는 살림에 난방을 위해 불을 지펴야 했다. 하지만 저녁은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건너편에 있는 치즈가게에서 저녁을 해결하면서 몸을 녹였다.

‘크레메리’라는 상호를 달고 있던 이 작은 가게는 간이식당을 겸하고 있었는데, 가게의 여주인이 르누아르를 사윗감으로 점찍고 있었다. 매일 저녁 가게에서 저녁을 해결하는 그의 모습에서 이 여주인은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여주인의 착각이었고, 르누아르는 초상화를 그려서 생계를 해결하면서 저녁이면 카페나 바에 모여서 시간을 보내는‘비혼자의 삶’을 불편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이런 르누아르와 대조적으로 카유보트는 부유하고 젊은 화가였다. 1880년「발코니」를 그릴 당시, 그의 나이는 서른둘에 불과했다. 그의 그림에서 다른 화가들의 그림에서는 읽을 수 없는 패기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 당시 카유보트는 화가이자 수집가로서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었고, 이런 에너지가 그림에 넘쳐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나머지 인상파 화가들은 서서히 노년으로 접어들고 있었다. 인상파 화가들 중 제일 연장자인 피사로는 이때 50세를 맞이했다.

20여 년 동안 이들은 전통적인 취향에 사로잡혀 있던 관객의 비난과 싸워야 했고, 그림을 구매해줄 화상을 찾지 못해서 가난에 시달려야 했다. 이런 처지에 비한다면 카유보트의 삶은 편안했다고 할 수 있다. 카유보트의 뒤를 따라서 장 라파엘리나 고갱 같은 신진세력들이 성장하고 있었고, 이들도 점차 화단에서 이름을 얻어가기 시작했다. 인상파의 세대교체가 임박했던 것이다.

카유보트의 그림이 보여주는 것은 인상주의의 다른 면모이기도 하다. 주로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중요한 실험으로 생각했던 인상파 화가들은 1880년대에 이르러서는 판화기법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다. 판화기법에 영감을 받아 드가가 조각을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

드가는 일찍부터 판화에 관심을 갖고 있었는데, 메리 커샛도 마찬가지였다. 카유보트의 그림은 판화는 물론 사진술의 영향을 읽을 수 있게 하는 작품이다. 물론 카유보트가 사진술을 직접적으로 활용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그는 요즘으로 치자면 ‘줌인’ 기법을 적절하게 활용하여 구도? 잡았다. 앞서 본「위에서 내려다본 대로」에서 사진술의 기법을 연상하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인상파 화가들이 활동했던 시기에 파리는 낡은 중세 도시의 이미지를 탈피해서 우아하고 화려한 근대의 도시로 탈바꿈했다. 카유보트의 그림은 이런 변화의 실상을 흥미롭게 담아내고 있는 기록물이기도 한 것이다.

그가 사진술을 채택한 것은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 날씨만 좋으면 카메라를 둘러메고 거리로, 야외로 쏟아져 나오는 요즘 우리의 일상을 생각해보라. 일상의 풍경을 낯설게 만들어서 되돌아보고 싶은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다. 이것이 미학의 역할이다. 19세기 파리도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다만 이들은 카메라 대신 그림을 통해 이런 욕구를 실현했다고 할 수 있다. 카유보트의그림은 이런 사회적 변화에 대한 인상파적인 대응이었던 셈이다.


이택광
경희대학교에 영미문화 전공 교수로 재직 중
경향신문에 ‘이택광의 왜’ 연재 중
네이버 캐스트 '오늘의 미술'에 '인상파 아틀리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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