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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가수’의 발견 - 강산에 <강산에 1집> (1992)

‘가장 한국적인 록’을 한다는 그의 음악은 서구적인 록과는 다른 무엇이 있습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라구요」 라든지 「할아버지와 수박」 등 토속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곡들은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며 그를 ‘한국 록 음악의 대안’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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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한국적인 록’을 한다는 그의 음악은 서구적인 록과는 다른 무엇이 있습니다. 이 앨범에 수록된 「…라구요」 라든지 「할아버지와 수박」 등 토속적인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곡들은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며 그를 ‘한국 록 음악의 대안’이라는 타이틀을 얻게 했죠. 강산에 본인도 가장 좋아하는 음반으로 꼽는 1집을 소개합니다.

강산에 <강산에 1집> (1992)

서태지와 아이들의 랩 음악 태풍이 하늘을 찌르며 음악시장의 주인을 신세대로 탈바꿈시킨 1993년, 한국 대중음악계는 주류 음악의 성격과는 지극히 다른 한국적인 정서를 표방한 한명의 주목할 작가를 확보하게 된다. 그는 「…라구요」 「예럴랄라」 그리고 「할아버지와 수박」을 연이어 팬들의 애창곡으로 만든 강산에였다.

강산에의 이 데뷔작은 1991년에 녹음하여 이듬해 발표한 뒤 거의 1년이 훨씬 지나서 호응을 얻는 지각 히트였지만 반향은 컸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곡을 작곡한 것은 물론, 시원한 맛을 주면서 대중을 단숨에 포획한 강산에 특유의 우렁찬 보컬을 부각하고 있다는 점에서 간만에 제대로 된 ‘가수의 발견’이었다.

하지만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감흥을 얻을 ‘토착성’의 메시지였다. 다른 국내 뮤지션들이 너도나도 랩, R&B, 얼터너티브 록 등 서구 수입음악을 토대로 삼아 분주히 트렌드를 타며 내달릴 때 도리어 그는 거슬러 대부분 쳐다보지 않던 한국적인 정서와 밀착했다. 모두들 ‘앞으로’를 겨냥하고 있을 시점에 ‘뒤로’를 택한 것이었다.

‘할아버지 그 하얀 수염 쓰다듬으시며 언제나 이웃집 복덕방에 …’(할아버지와 수박), ‘그 꺼벙이가 제일 먼저 장가가네, 쾌지나 칭칭 쾌지나 칭칭나네 얼싸 좋네’(장가가는 날) 등의 노랫말은 한국인들만이 호흡할 수 있는 향토적 분위기가 물씬했다.

물론 재래식의 단순 유락(遊樂)에 그치는 성질의 것들은 아니었다. 그는 토속적 향기를 서구의 록으로 승화하며 곡의 긴장감을 고조시키고 견고함을 도모하고 있다. 「장가가는 날」의 ‘우리 착한 꺼벙이 할렐루야, 쾌지나 칭칭 쾌지나 칭칭나네’ 하는 대목의 가사에도 그런 전통과 서구의 퓨전에 대한 의도가 슬며시 드러난다.

이 작품을 록 앨범으로 견인한 것은 먼저 포효하는 강산에의 보컬이었지만 숨은 주체는 기타 연주는 물론, 「사랑하는 것들」 「검은 비」 등 2곡의 수록 곡을 쓴 기타리스트 일명 아라이, 즉 박청귀였다. 그가 앨범의 편곡을 맡았다. 드럼은 김민기, 베이스는 강기영, 건반은 황수관 등 세션의 면면들도 막강했다.

뭐니 뭐니 해도 실제 실향민인 양친의 사연을 옮긴 곡 「…라구요」는 압권이었다. “두만강 푸른 물에 노 젓는 뱃사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 노래만은 너무 잘 아는 건 내 아버지 레퍼토리. 그 중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십팔번이기 때문에. 고향생각 나실 때면 소주가 필요하다 하시고, 눈물로 지새우시던 내 아버지 이렇게 얘기했죠. ‘죽기 전에 꼭 한번만이라도 가봤으면 좋겠구나’ 라구요…”

1990년대 들어 세(勢)가 위축된 민족음악 진영에서 그가 일약 희망의 존재로 우대된 것도 어쩌면 이 곡이 시작이었다. 모든 곡조에, 그가 토해낸 음 하나하나에, 가사 한마디 한마디에 당시 새로이 부상한 신세대음악이 작별하고 있는 ‘전통’의 숨결이 주먹을 불끈 쥐고 권토중래를 준비하는 듯 했다. 음악계의 입장에서는 가수의 발견을 훌쩍 뛰어넘어 ‘작가의 발굴’이었다.

강산에는 「넌 할 수 있어」, 96년 <삐따기> 앨범의 「삐딱하게」, 98년 <연어> 앨범의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 등을 잇달아 발표하며 한국적 음악작가의 위치를 공고히 했다. 2002년 하반기에도 그는 「지금」 「와그라노」를 수록해 본명을 타이틀로 내건 앨범 <강영걸>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강산에는 하지만 지금껏 내놓은 작품 가운데 무조건 이 첫 앨범을 최고로 꼽는다. “무엇보다 순수했던 앨범입니다. 여기에는 내가 인기가수가 돼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려는 욕심이 없어요. 그냥 인간 강산에의 소리가 있습니다.”

「…라구요」 역시 본인이 꼽는 최고의 곡. 라이브 하면서 갈수록 맛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음악적으로 약간은 일관성이 결여된 앨범이긴 하지만, 토착의 맛으로는 90년대 음반들을 통틀어도 단연 선두인 앨범이다. 흥에 넘치면서도 어딘가 모르게 결연한 강산에의 순수보컬이 빛을 발한다.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제공: IZM
(www.izm.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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