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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의 그림이 파격적인 이유 - 인상파 그림 속 파리의 모습

인상파는 무엇보다도 도시의 화가들이었다. 자연을 즐겨 그리긴 했지만, 그 모양새는 과거와 사뭇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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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는 무엇보다도 도시의 화가들이었다. 자연을 즐겨 그리긴 했지만, 그 모양새는 과거와 사뭇 달랐다. 낭만주의 화가들의 그림에 나오는 그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풍경을 더 이상 인상파의 화폭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모네와 르누아르의 그림이 살롱에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그림은‘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미학으로 판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변화는 아이로니컬하게도 나폴레옹 3세의 근대화와 오스망 남작의 도시개발과 맞물려 있었다.

 
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이택광 저 | 아트북스
유럽 문화의 중심지이며 예술 작품들을 찾아볼 수 있는 대표 명소인 파리를 싫어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며 문화를 즐길 줄 아는 사람들에게 최고의 공간이 되어 주었던 파리. 인상파는 이러한 파리의 변화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낸 화가들을 칭하는 말이다. 지금 파리의 모습은 19세기 후반 오스망 남작의 지휘 아래에서 추진된 도시계획으로 완성 되었는데 이 때 인상파 화가들은 이 변화의 순간순간을 마치 스냅사진처럼 생생하게 그림으로 담아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예술의 다리」, 캔버스에 유채, 62?102cm, 1867, 노턴 사이먼 재단, 로스앤젤레스

인상파는 무엇보다도 도시의 화가들이었다. 자연을 즐겨 그리긴 했지만, 그 모양새는 과거와 사뭇 달랐다. 낭만주의 화가들의 그림에 나오는 그 신화적이고 종교적인 풍경을 더 이상 인상파의 화폭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모네와 르누아르의 그림이 살롱에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들의 그림은‘새로운 것’이었기 때문에, 기존의 미학으로 판단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변화는 아이로니컬하게도 나폴레옹 3세의 근대화와 오스망 남작의 도시개발과 맞물려 있었다.

마네는 노골적으로 나폴레옹 3세의 정책에 반감을 표시하는 예술계 인사였다. 직접 살롱의 그림을 심사하기도 했던 나폴레옹 3세의 이력으로 본다면, 이런 마네의 성향을 몰랐을 리 없다. 당시로 본다면, 쿠르베 못지않게 마네는 정치권에게 불편한 화가였다. 그리고 그 불편함은 마네의 정치성향보다는 그의 미학 때문이었다. 마네와 인상파의 미학은 기존의 인식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나폴레옹 3세가 원했던 것은 과거의 귀족문화를 유지하는 것이었지만, 그가 수립했던 근대화 정책은 역설적으로 고급문화의 대중화를 부추겼다. 인상파 화가들은 이와 같은 취향의 대중화를 누구보다 일찍 알아차린 예술가들이었다. 말하자면, 이들은 앞으로 다가올 ‘대중의 시대’를 위해 그림을 그렸던 것이다.

나폴레옹 3세도 이런 시대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었다. 오스망의 도시개발은 변화를 갈구했던 파리지앵의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책이기도했다. 개발로 인해 파리는 과거의 모습을 버리고 새로운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오늘날 파리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당시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파리지앵 자신들이 근대의 관광객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또한 19세기 파리의 거리는 타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었?. 영국이나 미국에서 파리를 보기 위해 숱한 여행객들이 당도했다. 그중 헨리 터커맨이라는 미국인이 있었다. 1867년 만국박람회 무렵에 파리를 방문한 그는 오스망의 개발로 변화한 거리의 정경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완벽한 오스망 남작은 넓은 거리를 조성하고 구역을 정비했는데, 오래된 불결함을 현대적인 우아함으로 교체했다. 아직 해체 작업 중에 있는 구역에 얼룩덜룩하게 검게 그을린 굴뚝 잔해들의 더미가 지그재그로 산처럼 쌓여서 점점 높아지는데, 붐비는 마차들, 모르타르와 석재부스러기 사이를 헤치며 조심스럽게 걷는 이들에게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보인다.

서울의 재개발 현장을 떠올려보면, 당시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터커맨은 이런 파리의 근대화에 경탄을 보내면서도 오래된 파리에 대한 향수를 드러낸다. 어쩔 수 없는 인지상정이다. 새것이 오면 옛것은 사라지는 것이고, 사람이라면 이런 변화에 대한 느낌 한 자락 없을 수 없다. 개발로 인해 사라져가는 카페와 가게, 프랑스혁명의 흔적들에 대한 소회가 먼나라에서 파리를 찾아든 여행객의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이와 같은 시기에 그려진 르누아르의「예술의 다리」는 터커맨의 심정을 짐작하게 해주는 풍경을 보여준다. 마치 파노라마 사진처럼 르누아르는 터커맨의 인상기에 나오는 파리의 변화를 그려놓았다. 이 그림에서 드러나는 것은 구시가지를 압도하는 신시가지이다. 터커맨이 말한 아케이드의 확장이나 구역의 정비가 확연하게 드러나는 광경이다.「 예술의 다리」는 나폴레옹 1세 때 건설된 다리로 영국의 건축 양식을 본뜬 파격적인 철골 디자인으로 유명하다.

르누아르가 이 그림을 그린 시기는 1867년이었다. 이때는 여전히 낭만주의 화풍이 주류를 이루고 있었고, 많은 이들은 이렇게 도시 풍경을 직접적으로 그리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런 면에서 르누아르의 그림은 파격으로 받아들여졌고, 마네처럼 공개적으로 악명을 얻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출품할 때마다 살롱의 심사자들 사이에서 논란을 빚기 일쑤였다. 특히 만국박람회가 열리던 1867년 모네와 르누아르는 살롱에서 낙선하고, 마네와 더불어 독자전시회를 개최하려고 했지만 무산되었다. 마네와 마찬가지로, 모네와 르누아르는 새롭게 정비한 거리와 광장, 그리고 센 강의 선창가를 그리기에 여념이 없었는데, 르누아르의 그림도 이런 분위기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림 오른쪽에서 멀리 보이는 돔형 지붕이 루브르이다. 오래된 파리의 거리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는 터커맨의 관점과 달리 르누아르는 환한 햇빛이 비치는 신시가지의 정경을 보여준다. 배들이 정박해 있는 곳은 말라케 선착장이다. 이곳에서 구시가지를 바라보는 구도를 설정해서 르누아르는 새롭게 출현한 도시의 공간과 그것이 부여하는 쾌적한 근대성을 암시하고 있다. 이 근대성이야말로 보들레르가 경멸하면서도 찬양한 새로운 문화의 원천이었다.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 「1867년 만국박람회 동안의 샹젤리제」, 캔버스에 유채, 1867, 개인 소장

비슷한 시기에 르누아르가 그린「1867년 만국박람회 동안의 샹젤리제」를 보면 이 문화의 주체들이 누구인지 잘 드러난다. 양산을 받쳐 들고 외출복을 차려 입은 파리지앵들이 새로운 파리를 만끽하는 주인공들이었다.

장 베로,「샹젤리제 거리에서 모자를 파는 여인」, 캔버스에 유채, 45.1?34.9cm, 1888, 개인 소장

인상파는 아니었지만, 장 베로가 그린「샹젤리제 거리에서 모자를 파는 여인」을 보면 당시 파리 거리의 분위기를 확연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예술의 다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는 승객들 너머로「예술의 다리」를 한가로이 거닐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런 평범한 파리지앵의 모습들은 당시를 지배하던 아카데미 화풍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그로가 그린「역병이 창궐한 자파를 방문한 나폴레옹」을 보자. 나폴레옹 3세의 살롱이 권장했던 화풍은 바로 이런 것쳀었다.

장 그로, 「역병이 창궐한 자파를 방문한 나폴레옹」, 캔버스에 유채, 1804, 루브르 박물관, 파리

그로는 나폴레옹을 고대의 영웅처럼 표현해놓고 있는데, 아카데미가 추구하는 미학의 정수가 모두 녹아 있는 느낌이다. 이처럼 그로와 르누아르의 그림 사이에서 발견할 수 있는 차이는 명백하다. 시간의 간극을 뛰어넘어, 이 미학적 혁신의 깊이는 얼마나 깊고 아득한가? 1867년 그 무렵, 오스망의 재개발이 만들어낸 새로운 파리의 거리에서 인상파라는 근대의 화가들이 서서히 자신의 모습들을 드러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택광
경희대학교에 영미문화 전공 교수로 재직 중
경향신문에 ‘이택광의 왜’ 연재 중
네이버 캐스트 '오늘의 미술'에 '인상파 아틀리에'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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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파, 파리를 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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