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모스크바의 추위에 혼이 난 적이 있다. 뇌진탕으로 큰일을 당할 뻔했으니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당시 나는 파리를 거쳐 모스크바에 밤늦게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할 때까지도 좋았다. 사건은 그 다음날 약속장소에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서면서였다. 처음으로 경험해본 영하 20도의 눈이 쌓여 만들어진 빙판길. 나는 한걸음도 걸을 수 없었다. 그때 나는 파리에서 산 살롱부츠를 신고 있었다. 그 부츠의 바닥은 소가죽이었다. 영하 20도에서 소가죽 신발은 맨발 그 자체나 다름 아니었다. 엉금엉금 겨우 기어가 장화와 같은 부츠와 모자를 사서 쓰고 나서야 모스크바 시내를 걸어 다닐 수 있었다.
겨울에는 소가죽 부츠를 많이 신는다. 소가죽 부츠는 공기가 잘 통하지 않아 어느 정도 단열이 되지만 문제는 통풍이 잘 안 된다는 것. 통풍이 안 되니 발에 땀에 찰 수 있다. 수분은 공기보다 열이 잘 전달되니 온도가 밖으로 쉽게 빠져나간다. 그러니 발이 쉽게 시릴 수 있다.
또 한가지 땀이 신발에 차면 박테리아 번식으로 인한 무좀이 발생할 수 있다. 좋은 신발의 핵심은 통풍이다. 어느 정도 땀을 밖으로 내보내면서 보온을 유지하는 기능을 갖추는 것. 그런 기능을 잘 갖춘 조직이 피부다. 양털을 감싸고 있는 양가죽도 그런 기능을 한다.
물리학적으로 겨울 부츠는 이래야 한다
얼마 전 딸아이의 어그부츠를 한번 신어보았다. 왜 이런 바보같이 생긴 것을 신고 다니는가 싶었는데 신어보니 너무 편하고 따뜻했다. 어그부츠가 궁금해졌다. 호주의 서퍼가 만들어 신었고, 여름에도 신을 수 있고, 양 한 마리로 두 짝을 만들고,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유행이 시작되었고, 상표 이름이 어글리(ugly)라는 이름에서 왔다는 등등.
보통 신발은 소가죽으로 만들지만, 어그부츠는 양털가죽을 뒤집어 만든다. 발을 감싸고 있는 양털이 발의 열기가 밖으로 빠져 나가지 못하게 막는 장치를 한다. 양털이 단열의 핵심사항인 것이다.
단열의 핵심은 보온이다. 열 전달을 막는 것. 공기는 나쁜 열 전도체다. 모피나 오리털이 절연체로 쓰이는 것은 털 조직 사이에 공기를 많이 포함하기 때문이다. 오리털이나 모피가 열을 내지는 않는다. 열을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기능을 할 뿐이다. 보온병의 원리 역시 공기를 차단해 온도가 외부로 못 빠져나가게 차단하고 유지하는 데 있다.
착한 어그부츠의 물리적 핵심
어그부츠도 마찬가지다. 양털 사이의 미세 공기층이 열을 차단시켜 마치 열을 내는 것처럼 착각이 드는 것이다. 우리가 이불을 덮고 자면 따듯한 이불이 열을 내는 것처럼 착각하듯이 말이다. 열을 내는 유일한 것은 39도의 우리의 몸이다.
어그부츠의 단점. 눈이 조금 녹기 시작하면 도로의 검정 때가 양털가죽을 까맣게 잡아 먹는다. 그렇다고 부드러운 양털가죽을 플라스틱으로 코팅하면 통풍성이 떨어진다. 패션도 문제다. 짝퉁 어그는 위에서 말한 단열작용이 효과적이지 못하다. 인공섬유로 만든 털은 동물 모피와 비교 대상이 되지 않는다. 오리털의 구조나 양털의 미세구조를 인공적으로 흉내 내서 만들 수 있는 기술은 지구상에 없다.
털의 미학
동물 털의 기능은 털 조직 사이에 공기를 많이 포함해 단열을 하는 데 있다. 사람 역시 열적으로 가장 중요한 부위는 털로 덮여 있다. 얼마 전 머리를 아주 짧게 깎았는데 추운 날씨에 그냥 나서기엔 고통스러웠다. 그래서 비니(beanie)를 썼다. 비니 한 겹의 단열효과는 대단했다.
머리가 많이 빠진 사람은 물리적으로 체온이 밖으로 여과 없이 빠져나가는 문제가 있다. 온도는 더운 곳에서 차가운 곳으로 빠져나간다. 물리의 불변 법칙이다. 36도의 체온과 영하의 날씨에서 체온을 유지하는 방법은 내 몸의 체온이 밖으로 빠져나가지 못하게 모자를 쓰든지 옷을 입어 단열하는 것이다.
따뜻한 눈
또 다른 단열체로 눈이 있다. 북극의 곰이 어떻게 눈 언덕에 굴을 파고, 그 안에서 얼어 죽지 않고 추위를 피하는지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눈은 나쁜 전도체인 동시에 좋은 절연체이기도 하다. 겨울에 눈이 쌓이면 담요를 덮는 것처럼 따듯해진다. 눈송이의 결정구조가 오리털의 깃털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눈송이 사이의 조직에 공기가 들어차면 지표면으로부터 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아준다. 우리가 오리털 파카를 입는 것과 마찬가지 역할이다.
에필로그
우리 연구실에 몽골에서 유학 온 마루라는 학생이 있다. 그의 집은 몽골 초원에서 말과 양을 키운다. 지난겨울 키우던 양의 반이 얼어 죽었다고 아쉬워했다. 얼마만큼 추우면 양이 얼어 죽었을까? 상상이 되지 않는 추위가 떠오른다.
또 하나
『알래스카 바람 같은 이야기』의 저자 호시노 미치오가 입었던 파카가 생각난다. 에스키모 파카는 바다표범과 족제비 종류의 울버린 모피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그가 알레스카 쉬스마레프 마을을 처음 방문할 때 그 파카를 선물 받는다. 그 후 18년이 지나고, 그는 다시 방문해 가죽이 다 닳아버린 파카를 수선해달라고 알쉬 할머니에게 부탁한다. 하지만 가죽이 너무 낡아 수선이 불가능했고, 그는 새로운 파카를 선물 받는다. 그 파카를 선물 받고 5년 후, 호시노 미치오는 붉은 곰의 습격을 받고 목숨을 잃는다. 그의 나이 43살이었다.
북극곰처럼 눈 위에서 생활하며 사진을 찍었을 호시노 미치오와 끝까지 한 몸이었던 바다표범 파카. 극한의 추위와 극한의 상황. 세상은 물리학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극한의 상황이 존재한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물리적인 세계는 지극히 연약한 것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