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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회] 우리 딸은 ‘엉덩이로 쓰기’ 대가입니다

데카르트가 아니고…아빠는 히틀러! - 공부에 비해 정답이 없는 글쓰기의 9개월 대장정…그 퇴짜는 헛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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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백소녀’의 마지막 신음

연재를 시작하던 2010년4월(왼쪽)과 12월(오른쪽)의 모습.
준석이 상대적으로 훨씬 자라났다.
생각도 훌쩍 자라나면 좋으려만.

열한 살 그녀는 ‘올백소녀’다.
나는 초딩 은서의 별명을 그렇게 지었다. 이런 말을 던지면 ‘재수 없다’는 반응이 돌아온다. 자신의 딸이 ‘공신’(공부의 신)임을 만방에 자랑하려는 팔불출로 오해받기 십상이다. 시험만 봤다 하면 올백! 전교1등 ‘올100점’ 소녀를 떠올리리라. 어림없는 판타지다. 은서는 ‘All Back’ 소녀다. 해석을 잘해야 한다. 완전히 뒤로 넘긴 ‘올백머리’와도 관련 없다. 은서의 굴욕을 상징하는 한 마디. 백이면 백, 글을 쓸 때마다 퇴짜를 맞는 ‘올 빠꾸’ 소녀!

학업의 울타리 밖에서 본 쓴맛

그녀의 오빠, 열네 살 준석은 동생을 보며 혀를 찬다. “얼마나 글이 한심했으면….” 그런 준석에게 묻는다. “너는 무슨 소년이냐?” 당당한 대답이 되돌아온다. “훗, 저는 에이피소년이죠.” “에이피?” “All Pass라는 말씀.” 헉! 그건 아니올시다. 흰 마리 하나 없지만, 준석을 ‘반백 소년’으로 칭하는 바이다.

통계를 보면 그렇다. ‘홈스쿨’을 시작한 뒤 남매의 글을 저장한 한글프로그램 폴더를 열어봤다. 무려 200여 편이다. 퇴짜당한 원고도 차곡차곡 쌓여 있다. 그중 은서의 것이 110편이다. 총 35회치를 썼으니, 1회 평균 두 번 이상을 ‘불합격’당한 셈이다. 기억을 더듬어보아도, 은서는 단번에 통과한 적이 없다. 준석도 사정이 훨씬 낫지는 않다. 총 77편이다. 1회 평균 한 번은 다시 쓴 셈이다. 대여섯 번 남짓은 단숨에 통과했다는 게 조금 위로가 될 뿐. 9개월 동안 그렇게 아이들은 학업의 울타리 밖에서 쓴맛을 보았다.

이제 마지막으로 쓴맛을 본다. 정기적인 글쓰기로부터 ‘해방’을 맞이하는 소감을 쓰도록 했다. 가벼운 마음으로 한달음에 뚝딱 끝내면 좋으련만, 역시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글쓰기홈스쿨을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2월이다.” 준석의 초고 첫 단락에서 ‘폭탄’을 발견했다. “1년 동안 글쓰기 훈련을 했다는 놈이 진부해서 말라비틀어진 ‘엊그제 같은데’가 뭐냐?” ‘단어 탄압’이지만 할 수 없다. 은서는 세 시간째 한 줄도 못 쓰고 신음만 흘린다. “끄~응 끄~응, 아빠, 도대체 소감을 어떻게 써야 해?.”

이 연재칼럼의 첫 회 제목은 “일가족 칼럼 사기단을 조심하라”였다. 그동안 준석 은서 남매의 글을 통해 뭔가 글쓰기의 노하우에 관해 한 수 가르쳐주는 척 폼을 잡았다. 시간은 흘러 흘러 벌써 마지막 35회째가 됐건만 아이들은 여전히 민첩하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일가족 칼럼 사기’를 친 게 아니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

“표현하는 자가 강하다”

“좀 더 활동적인 글쓰기를 했으면 한다는 것이다.…(중략)지난 1년 동안엔 주로 집에서만 뇌를 쥐어짰다. 우리가 만날 누워서 생각만 하는 데카르트도 아니고.”(준석) “공부보다 글쓰기가 어렵다. 공부는 답이 있는데, 글쓰기에는 답이 없다.”(은서)

만날 놀림만 당한 은서지만, 은근히 통찰력 있는 글이다. 그렇다. 공부에는 답이 있지만, 글쓰기에는 딱 떨어지는 답이 없다. 100점도 없고 빵점도 없다. 상대적인 평가만 존재한다. 머리가 빠개지는 경험을 통해 그 진리를 깨달았다. 은서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글쓰기의 고통이란 어쩌면 ‘짜증나는 프린터’다. 느낌은 분명히 있는데, 구체적인 표현으로 출력하지 못하는 안타까움. 종이가 자꾸만 걸리는 번거로움. “표현하는 자가 강하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오늘도 많은 이들이, 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노심초사한다. 이 칼럼이 그런 어른과 아이들을 위해 콩알 반쪽만한 기여라도 했다면 기쁜 일이다. ‘올백소녀’의 신음은 헛되지 않았을까?

***

이것은 ‘공짜 회사체험’이었단 말인가


“자식 팔아먹는 방법도 참 가지가지다.”

이 연재칼럼을 본 누군가가 놀렸다. 매주 아들 딸을 ‘앵벌이’시켜 아빠의 대외활동에 써먹는다는 농담이었다. 또 다른 누군가는 “만날 퇴짜를 놓아 아이들을 혹사시킨다”며 아동학대나 고문과 다를 게 뭐냐고 비난했다. 웃자고 하는 얘기지만, 뼈가 담겼다. 인정한다. 글이란 쓰고 싶을 때 써야 한다. 마음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준석과 은서는 안 그런 경우가 더 많았다. 『삶을 가꾸는 글쓰기교육』이라는 책에서 고 이오덕 선생은 “쓰고 싶은 것을 쓰는 자유가 주어져야”한다고 말했다. 나는 ‘타율적으로’ 시켰다. 아이들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세상이 무너지지 않는 한 무조건 써야 했다. 주제도 일방적으로 정할 때가 많았다. 아빠가 오케이할 때까지 수정하고, 또 수정하느라 아이들은 케이오 다운을 당했다. 글쓰기에 관해 ‘학을 떼게’ 한 측면이 있다. 즐거움보다는 환멸을 심어주었는지도 모른다. 나쁜 아빠였다. 준석과 은서에게 미안한 마음은 여기까지다.

이번엔 변명 모드다. 첫째, 독자에 대한 예의였다. 아이들에게 최상급의 완벽한 글을 바라지 않았다. 예닐곱 번까지 글을 물리기도 했지만, 이는 그만큼 글의 수준이 비참(!)했기 때문이다. 사실 내 기대치는 소박했다. ‘최소한의 꼴’이라면 만족했다. 그것조차 쉽지 않았다. 독자들에게 ‘낙서’같이 조악한 글을 보여주면서 연재랍시고 할 수는 없었다.

둘째, 돈 주고도 못할 ‘퇴짜’ 예행연습이었다. 몸뚱이 하나만을 믿고 살아가지 않는 한, 글쓰기는 어떤 ‘운명’이다. ‘원하지 않을 때, 원하지 않는 주제의’ 글을 끊임없이 써야 함은 숙명이다. 서술형 시험문제도 풀어야 하고, 논술시험도 치러야 하고, 입사를 위한 자기소개서도 써야 한다. 각종 기획서와 프리젠테이션의 타당성은 결국 글로서 검증된다. 홍보와 마케팅의 기술도 문장력을 피해갈 수 없다. 누군가의 부당한 견해를 공격하는 창을 들거나, 궁지에 놓인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방패를 치켜들 때도 논리적 글은 필수적이다. 전업적인 작가가 되지 않아도, 이렇게 우리는 글과 분리된 삶을 살아가기 힘들다. 세상의 주인으로 우뚝 서는 데에서, 한심한 글은 엄청난 핸디캡이다. 아빠의 ‘퇴짜’는 두고두고 기억되리라. 믿거나 말거나, 준석과 은서는 나중에 당할 퇴짜를 경감시켜주는 ‘선행학습’을 빡세게 하였다.

아이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그동안의 9개월을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은서의 글부터 보자.

글 쓰느라 머리 안 감아서 좋았지롱~


아이들은 말한다. “공부가 제일로 싫어-.” “공부 따위가 왜 존재하는 거지?” (공부를 좋아하는 아이도 있다.) 아이들은 이렇게나 공부를 싫어한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나는 공부도 하고, 공부보다 더 심한 글쓰기도 하기 때문이다. 공부는 답이 있다. 때로는 찍어도 된다. 글쓰기는 찍을 수가 없다. 답도 없다. 잘 쓴 것 같은데, 아빠는 또 쓰라고 했다. 아빠는 원하는 게 너무 많았다.

지금까지 글쓰기 때문에 많은 시간을 뺏겼다. 아빠는 평일에도 글써라- 글써라-시험기간에도 글써라- 글써라- 주말에도 글써라- 글써라-
그 아빠의 지겨운 잔소리 때문에 시간을 뺏겨 좋아하는 프로그램도 못 봤다. 내가 정주행하던 런닝맨이라는 예능 프로그램인데... 진짜 짜증난다.

글쓰기가 쉽고, 재밌었다면, 글을 싫어하지도, 미워하지도, 한을 품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벌써 마지막이다. 아무리 한을 품고, 미워해도, 그래도 조금은 재밌고 신나는 글쓰기였다. 네티즌들에게 칭찬 댓글도 받아서 기분도 좋았다. 글쓰기 덕분에 서술형 문제도 잘 풀게 되었다. 역시 아빠는 한 번 편집장을 해 봐서인지 능력이 있나? 어쨌든, 수행평가, 단원평가에 나오는 서술형 문제는 모두 맞았다.

글 덕분에 내가 싫어하는 것도 안 했다. 글이 시간을 뺏어줬기 때문에... 나는 사실... 머리 감는 것을 귀찮아한다.(싫어하는 것은 아니고.) 아빠가 글을 쓰라고 재촉했기 때문에, 그 핑계로 머리를 안 감고 글을 쓸 수 있었다.

글쓰기 덕분에 타자도 빨라져서 아이들이 나보고 타자왕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나는 타자검정을 무척이나 잘하였다. 방과 후 수업 컴퓨터 시간에서도 4학년인데 빨리 끝내는 애는 나밖에 없었다.
글 쓰는 게 어려웠지만, 조금은 보람과 재미가 있었다. 만약 다음에 기회가 된다면 소설을 써서 책을 내 보고 싶다.(고은서)



히프 라이팅! 생각날 때까지 엉덩이로 써라

앞에서도 잠시 밝혔지만, 은서는 글쓰기의 본질을 꿰뚫었다. “공부는 답이 있다. 찍을 수가 있다. 글쓰기는 찍을 수가 없다. 답이 없다.” 아빠의 지겨운 잔소리를 비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재밌고 신나는 글쓰기’였음을 부정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들이 천방지축이다. ①인터넷에 칭찬댓글이 달려서 ②시험에 나오는 서술형문제를 잘 풀어서 ③머리를 안 감을 수 있어서 ④타자 속도가 빨라져서. 아빠는 이 중에서 ③번 이유가 가장 멋지고 사랑스럽다.

은서는 ‘엉덩이로 쓰기’의 대가다. 먼저 “이거 정말 손으로 쓴 글 맞아?”라고 의심을 산다는 점에서다. 아빠는 은서의 글을 읽으며 “엉덩이로 쓰지 않고서는 이렇게 엉성할 수 없다”는 한탄을 1년간 약 50회 이상 했던 것 같다. 가장 분노를 일으킨 지점은 ‘성의 없음’이다. 다른 말로는 ‘생각 없음’이다. “생각 좀 해봐!”라고 목소리를 높으면, 은서는 불쌍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생각이 안 나~ 엉엉.” 그렇다고 자비를 베풀 수만은 없었다. 아빠는 바로 퉁을 놓곤 했다. “생각날 때까지 기다렸다 써.” 허~엉 징징거리고 끄~응 신음을 내면서 무언가를 끼적거리다 보면 가끔 신통방통한 이야기가 나오기도 했다. 위의 글도 장장 8시간 만에 완성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머리가 아닌 엉덩이로 쓴 게 분명하다. ‘히프 라이팅’(hip writing)'이라고 이름 붙여야겠다. 그런데 마지막 문장이 죽여준다. 뭐 소설을 써서 책을 내보고 싶다고? 지나가는 동네 도둑 고양이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크하하, 히프 라이팅 분야의 새로운 신인? 여기에 비해 준석은, 엉덩이가 아닌 머리가 뜨겁다.

난 데카르트가 아니고…아빠는 히틀러!


12월이다. 2010년의 마지막 달이다. 참 시간도 빠르다. 그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이젠 글쓰기 홈스쿨도 하나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1년 동안 글쓰기는 그림자처럼 항상 따라다녔다. 뭔 일을 하려고 하면 아빠는 ‘글쓰기 해야지!’라고 한다. 그러면 ‘이것 좀 하고 하면 안 돼요??’ 하지만 아빠는 극구 반대다. “안 돼, 글쓰기가 먼저다!”라고 말하신다. 시험 막바지에 이를 때 아빠가 글을 쓰라고 한다. “아 안돼요 아빠. 시험이 더 중요해요!!” 엄마는 “맞아요. 애 시험 공부하는데 글쓰기를 시키면 어떡해요!” 하지만 아빠는 자신의 명예가 훼손될까 봐 말한다. “안 돼! 글쓰기가 더 중요해! 빨리 글 써!” 아빠는 히틀러다. “글쓰기만이 급하다!”라고 생각하는 히틀러. 시험이건 뭐건 간에.
아빠는 작년에는 이런 식으로까지 신경을 써 주시지 않았다. 조금은 귀찮기는 했지만, 오히려 아빠가 귀찮을 것 같기도 했고, 고맙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글쓰기를 하면서는 크고 작은 다툼이 많았다. 그 예로 자전거 도둑이 있는데, 아빠가 자?거 도난에 대해 질문하는 중에 내가 너무 답답하게 ?답했나 보다. 물론 그럴 때 쿨하게 대답할 사람이 있을 리 없다만. 하여튼 아빠의 ‘불심 검문’ 에 나는 울어 버렸다. 은서는 딴짓해서 들켜 제재를 당하기도 했다. 아빠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성의가 없다”와 “이게 글이냐?”라는 욕이다. 그 외에는 대부분 작은 일이었다.

글쓰기를 할 때 가장 싫은 것이 하나 있었다. 아니, 가장 두려운 것. 바로 ‘빠꾸’이다. 마치 수학학원에서 장쌤에게 머리를 잡아당김을 당하게 될까봐 시험지를 내지 않는 것과 같이 나는 아빠의 ‘빠꾸+지적’이 두려워 글을 다 쓰고도 보내지 않는다. 그러다 빠꾸 당하면 ‘하아-’ 한숨을 쉬면서 다시 쓴다. 근데 그럴 때는 아빠가 불쌍하다. 아빠도 한숨 쉴 걸 연상하면. 이때부터 나는 느꼈다. ‘회사생활’이란 이런 것이던가!

은서는 좋을 것 같은데 나는 싫은 것도 있다. ‘사생활’ 아니 초상권 침해인 사진 찍어서 인터넷 올리기였다. 예를 들어 아빠는 엄마와 나의, 아니면 은서와 나의 키재기를 찍었다. 나 혼자 용을 들고 서서 사진을 찍고, 도덕책 들고 찍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싫다. 사진발이 잘 안 나와서 그렇다. 만날 은서는 괜찮게 나오는데, 나는 무슨 굴욕 사진처럼 나왔다.

이렇게 보면, 글쓰기라는 게 절대 쉽지 않음을 절실하게 느낄 수 있다. 생각하는 게 참 힘들었다. 글쓰기 할 때는 몸이 정말 뜨거웠다. 마치 용광로가 내 앞에 있는 느낌이랄까? 운동할 때는 땀도 안 나더니 글쓰기 할 때는 웬 땀이 다 나는지. 몸도 뻣뻣해지는 느낌이고, 갈증을 느낀다. 눈도 침침해지는 느낌이다. 몸 전체의 느낌이 좋지가 않았다.

어떨 땐 모든 게 짜증나기도 하다. ‘앞으로 회사 가면 정말 지옥이겠다’ 이런 생각도 했다. 그래서 이 글쓰기를 하며 가장 제대로 박힌 생각은 글쓰는 직업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땀흘려서(너무 컴 앞에 오래 앉아 있다 보니) 만들어낸 글을 보면 뿌듯하기도 했다. 그걸 끝내다니 좀 아쉽기도 하지만 이젠 일요일에 새로운 일을 할 수 있다는 게 좋기도 하다. 뭣보다 “아! 이걸 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것은 좀 더 활동적인 글쓰기를 했으면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책을 읽고 난 뒤의 독후감이나 여행기, 오페라나 뮤지컬 감상문 쓰기다. 그런 게 없지는 않았지만 지난 1년 동안엔 주로 집에서만 뇌를 쥐어짰다. 우리가 만날 누워서 생각만 하는 데카르트도 아니고, 이런 점이 아쉽기는 했지만, 내 글쓰기 실력을 확인한 것과 실력이 한층 높아진 점은 인정한다. 마지막으로, 그동안 우리를 힘들게 책임지신 아빠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남긴다. (고준석)


독서와 체험이라는 배터리 충전

준석은 신중하다. 은서가 엉덩이로 휘갈기듯 글을 쓰면서도 엉덩이의 종기 같은 엉뚱한 표현을 가끔 짜내는 데 반해, 준석은 늘 정장을 입은 꼬마신사처럼 점잖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참 시간도 빠르다. 그 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고, 이젠 글쓰기 홈스쿨도 하나의 추억이 되어버렸다”는 앞부분도 그렇다. 초고에선 “글쓰기홈스쿨을 시작한 게 엊그제 같은데”라고 했다가 아빠로부터 핀잔을 얻어먹고 다시 쓴 내용이다. ‘엊그제 같은데’와 ‘참 시간도 빠르다’는 똑같이 ‘저급 수식어’다. 남이 통상적으로 쓰는 케케묵은 표현은 가까이 하지 않길 바란다. 읽는 사람 목이 켁켁 막힌다.

‘수식어’의 결핍을 어떻게 넘어서야 할까. 뭔가 다른 게 없을까? 차라리 “시간은 수다쟁이 은서의 말보다 빠르다”라고 생활 속에서 지어내는 게 낫겠다. 그 경우의 수는 수백, 수천, 수만 가지다. “아름답다”를 아름답게 보여주는 수사도 마찬가지다. “너를 사랑해”를 말하는 기술도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하다. 그렇다면 이 ‘수식’의 힘은 무엇으로 커지는가. 대화의 경험치나, 글쓰기 훈련의 총량이 가늠할지도 모른다. 더 결정적으로는 ‘독서’다. 독서란 어떤 점에선 ‘수식어’를 위한 배터리 충전기다. 준석은 배터리 충전을 잘 안한다. 낱말과, 문장과, 수식과, 비유와, 색다른 발상의 재고량이 금방 바닥난다. 배터리 플러그 좀 자주 끼워라!(그런 점에서 이번 글쓰기홈스쿨에선 독후감이 적었다)

준석의 논지는 은서와 비슷하다. 아빠는 전체주의 독재자 히틀러처럼 ‘빠꾸 횡포’를 부렸지만, 글쓰기실력이 높아진 건 사실이므로 감사한다는 ‘해피엔딩’이다. 고맙지만, 아빠는 ‘뻔한 해피엔딩’은 좋아하지 않는다. 이는 예전에 여러 차례 지적했던 바다.

자신이 ‘생각만 하는’ 데카르트냐며 앞으로 활동적인 글쓰기를 하고 싶다는 대목에선 미안스러움이 마음 밑바닥에서 목욕탕의 기포처럼 뽀글거린다. 좀 더 가보지 못한 곳을 쏘다니고, 더 다양하고 멋진 경험을 함께 했어야 했다. 불행히도 휴가 때 이외에는 집 밖을 벗어나지 못했다. 독서만 배터리가 아니다. 체험도 배터리다. 아빠도 준석과 은서를 위해 이 배터리 플러그를 더 자주 끼워야겠다.

이제 결론을 내릴 때가 됐다. 지난 4월부터 시작해 매주 한 편씩 준석 은서와 함께 힘겹게 이어온 대장정! 9개월간 총 35회 연재를 모두 마친 ‘초딩중딩 글쓰기 홈스쿨’의 마지막 결론은 다음과 같다.

신중하되, 뻔뻔하게 쓰자.

준석과 은서의 장점을 한데 섞어 흔든 결과다. 준석은 조심스럽다. 반듯하다. 은서는 경박하다. 산만하다. 한데 가끔 예측을 불허한다. 준석처럼 신중하게 써야 하지만 ‘신중하게만’ 쓰면 재미없다. 은서처럼 삐딱하고 엉뚱하고 뻔뻔한 면도 있어야 한다. 그 두 가지가 절묘한 배합으로 섞이면 딱이다!!!

‘신중’과 ‘뻔뻔’은 양날의 칼이라고 생각한다. 매력적인 글쓰기를 원하는 어른들에게도 권할 만한 미덕이다. 팩트(사실)와 논리적 근거에 대한 신봉, 내가 옳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겸손한 자세는 좋다. 다만 만날 그렇게 돌부처처럼 뻣뻣하면 질린다. 수줍음 많이 타는 사과빛 뺨을 유지하되, 때로는 용접할 때처럼 얼굴에 철판도 까는 거다. 지나친 자기확신을 경계하면서도, 한번 마음먹으면 거친 말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비난과 비웃음을 받을까봐 두려워하지 말자. 준석 은서도 그렇게 ‘두 얼굴’을 가졌으면 좋겠다. ‘두 얼굴’이 하나의 얼굴 속에 잘 녹아들어갔으면 좋겠다.

마지막 인사말도 신중하되, 뻔뻔하다. 준석과 은서의 한 목소리로 여기고 들어주시길. “그동안 저희들의 생각 없는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생각이 없는 것 같지만 알차고 재밌는 글이었죠? 지루할 틈이 없었죠? 대빵 섭섭하시죠? 저희는 대빵 시원하고 호빵만큼 섭섭하답니다. 빠이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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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영화가 끝난 뒤 엔딩 크레딧과 함께 흐르는 ‘번외 동영상 조각모음’ 정도에 해당한다. 영화관의 어중간한 어둠을 뚫고 퇴장하면서 슬쩍슬쩍 눈길을 주는 기분으로 읽어보시라. 이젠 정말 빠이빠이.

(첫 회 연재를 시작하며 대담을 나눴던 필자 세 명이 35주 만에 다시 회동을 했다. 장소는, 은서의 강요에 따라 동네 피자집.)

한 해 동안 글쓰기를 잘한 거 같아?
(준석, 은서) 응
왜?
(준석)아빠가 우리에게 신경을 쓰는 계기가 됐잖아요.
(은서)잘한 것 같아. 남들이 보고 재밌다고 하니까?
글쓰기 실력이 는 거 같아?
(준석) 늘어난 것 같은데 왜 학교에서는 상을 못 받았지?(웃음) 착각에서 벗어나는 느낌이야. 그전에는 내가 책을 안 읽고도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내 지식이 부족하다는 느낌이 더 들어. 가령 91테러라든가.
9.11테러겠지.
(준석)아 맞다.

은서도 얘기해봐?
(은서) 재밌게 쓰기가 어려워.
어떻게?
(은서)어려워, 어려워.
서로의 글에 대해 평해봐.
(준석)은서는 체험한 일에 대해선 되게 솔직히 잘 쓰는데, 생각해서 쓰는 글은 꽝이야.
(은서)내가 잘 쓸 땐 오빠가 못 쓰고, 내가 못 쓸 땐 오빠가 잘 써.
스스로 제일 잘 썼다고 생각하는 글은?
(준석)남이섬 갔다 와서 쓴 글.(2회 ‘새똥과의 전쟁, 뒤집어서 생각해봐’. 일단 아빠의 보증이 있었고, 세밀하게 묘사했잖아요.
(은서)새똥 맞은 글.(같은 글)
은서는, 그게 왜 잘 썼는데.
(은서)내가 쓴 글 중에서 가장 재밌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준석)은서의 그 글은, 생각이 있든 없든 일단 재밌잖아요.
앞으로 글쓰기를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어?
(은서)위인전, 세계명작을 많이 읽어야지.
그 얘기 좀 그만해라. 지겹다.
(준석)책만 읽으면 되니? 생각이 있어야지?
생각을 키우려면?
(준석)그건 모르겠는데?

글이란 한마디로 뭐니?
(은서) 답이 없는 공부. 아무리 써도 틀리는 거.
(준석) 인간이야. 완벽한 인간이란 없듯 완벽한 글이란 없잖아
글쓰기 홈스쿨 1년을 한마디로 하면?
(은서)지독한 공부. 해도 해도 계속해야 하는.
(준석)무료회사체험. 회사에서 당하는 느낌을 공짜로 얻었다? 글 써놓고 퇴짜당하면서 회사란 게 이렇겠구나 느꼈지.

독자들에게 한마디.
(은서)지금까지 저희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준석)부족한 글을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좀 다르게 해봐라.
(은서)저희 글이 곧 책으로…(아빠가 말을 자름)
됐고. 아빠한테는 고맙지도 않니?
(은서)유명인이 되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뭐가 유명인이야?
(은서)아빠 몰라? 인터넷에 나왔다고 하면 아이들이 깜짝 놀라?
(준석)무료강의 감사합니다.
푸핫!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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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은 필사하는 해였다. 전작 『더 나은 문장을 쓰고 싶은 당신을 위한 필사책』에 이어 글쓰기 대가가 남긴 주옥같은 글을 실었다. 이번 편은 특히 표현력, 어휘력에 집중했다. 부록으로 문장에 품격을 더할 어휘 330을 실었으며, 사철제본으로 필사의 편리함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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