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만 들어도 감이 오는 영화가 있다. 윤재근 감독의 데뷔작 <심장이 뛴다>는 제목 하나에 영화가 담아낼 박진감, 소재, 그리고 배우들의 면면이 주는 관객들의 기대감까지 모두 담아낸다. <심장이 뛴다>는 죽어가는 딸을 살려야 하는 연희(김윤진)와 죽어가는 엄마를 지키기 위해 처음으로 모든 것을 거는 휘도(박해일)의 ‘심장’을 둘러싼 피할 수 없는 대결을 그리며, 제목 그대로 하나의 '심장‘에 걸린 두 사람의 목숨, 그리고 그 목숨을 지키기 위한 두 사람의 절박한 대결을 그려내는 영화다. 심장을 훔치려는 사람이나 심장을 지키려는 사람이나 그 이유를 관객이 얼마나 깊이 공감할 수 있느냐에 영화의 성패가 달려있다고 할 수 있다.


내용에 대해서 말하자면 <심장이 뛴다>는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가장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윤리와 법의 영역을 넘어 어느 선까지 갈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영화다. 감독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여러 가지 과오들이 우리가 흔히 말하는 선과 악의 잣대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풍요롭고 안정적인 삶을 살아온 ‘연희’와 허드렛일을 하며 하루하루 연명하는 ‘휘도’, 각자 다른 삶을 살아오며 마주칠 일 없을 것 같던 두 사람이 오직 단 하나의 목적으로 만났다. 그 목적을 위해 여자는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의 소중한 것을 빼앗아야 하고, 남자는 뒤늦은 불효를 후회하고 지키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싸운다.

관객의 입장에서 <심장이 뛴다>는 심장을 훔쳐 딸을 살리고 싶은 엄마의 편에 서느냐, 찌질한 인생이지만 엄마의 심장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아들의 입장에 서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공감과 인물에 대한 감정이 달라질 수 있다. 그만큼 인물의 절박함과 그 절박함을 몸으로 드러내 줄 수 있는 배우의 캐스팅이 영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부분이다. 이름만으로도 신뢰가 가는 김윤진과 박해일을 캐스팅한 것만으로도 영화는 역시 절반 이상은 성공한 셈이다. 박진감 넘치면서도 절박한 두 사람의 대결이 두근두근 관객의 심장이 뛰게 만드는 것은 물론이다.

김윤진, 그녀 연기의 방점은 ‘모성’이 아니라 ‘진심’에 있다


그녀는 전형적이지 않다. 이것은 배우로서의 김유진의 존재감에 대한 이야기이며, 그녀의 연기에 대한 이야기이다. 그녀는 가해자일 때 애처로운 동정심을 유발할 수 있고, 피해자일 때도 목적이 분명한 사람의 꼿꼿한 태도를 보인다.

<쉬리>에서 김윤진은 철저하게 병기로 훈련된 여전사이지만, 사랑 앞에서는 한없이 순수하고 여린 여자일 뿐이다. 그 이미지는 충분히 상충될 수 있지만 여린 강인함, 강인한 순정이라는 다층적인 연기가 가능한 김윤진을 만나면서 하나의 현실이 된다. 그녀는 전형적인 미인형은 아니지만 충분히 아름답고, 서구적이면서도 동양적인 스타일 때문에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몇 안 되는 동양 배우로 그 존재감을 널리 알리고 있다.


기억하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처음 김윤진이 관객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것은 90년대 중반 TV 드라마에서였다. <화려한 귀가>, <예감>, <웨딩드레스> 등의 일련의 드?마에서 김윤진은 교포 배우라는 이미지를 활용하여 진취적인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전형적인 미인이라기에 선이 너무 굵고 가녀린 여성을 연기하기에 낮은 저음의 목소리와 당시에는 어색한 발음 때문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김윤진을 ‘배우’로 인식하게 만든 영화는 1999년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영화 <쉬리>였다. 이 영화에서 김윤진은 남한 기관원과 사랑에 빠지고야 마는 북한 첩보원 이명현 역을 연기하면서 그 해의 신인상을 휩쓸면서 대중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스타가 되었다.

이어 최진실, 김석훈, 설경구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과 함께 한 <단적비연수>를 통해 입지를 굳혔어야 했지만 영화 자체의 신선도가 떨어지고, 집중력이 여러 배우로 분산되었기에 김윤진이 확실하게 배우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기회가 되진 못했다.

차기작은 2002년 변영주 감독의 <밀애>였다. 영화 자체는 김윤진의 ‘노출’로 홍보되고 주목받았지만, 김윤진은 배우로서 한층 더 성숙해져 있었다. ‘여전사’라는 강인한 이미지를 벗고 우울한 주부가 위험한 사랑에 이르는 과정을 심도 있게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 모든 것을 잃고서 초라하고 험난한 표정과 몸짓으로 대로를 건너는 김윤진의 무심한 듯 진심어린 연기는 앞으로 펼쳐질 여주인공의 먹먹하고 초라한 삶을 고스란히 전해주었다. 이 영화를 통해 청룡영화상과 대한민국 영화대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김윤진은 믿을만한 여배우가 부족한 영화계에 든든한 배우가 되었다.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것은 이후 그녀의 출연작이었다. 배우로서 절정의 인기를 누릴 수 있는 상황에서 <아이언 팜>과 <예스터데이>의 선택은 실패였다. 다음 기회를 해외에서 찾은 김윤진은 유창한 영어실력과 배우로서의 연기력을 바탕으로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국 TV 시리즈 <로스트>에 캐스팅이 되어 국내에서 주춤한 인기를 다시 해외에서 얻은 인기로 만회한다.

시리즈를 통해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2005년 국내 복귀작은 조용히 묻혔던 <6월의 일기>였다. 신은경, 에릭과 함께 한 이 영화는 왕따 문제를 연쇄살인이란 화두 속에 묻어 펼치려했던 스릴러 영화였다. 이 영화에서 김윤진은 자살한 아들을 위해 연쇄살인범이 된 잘못된 모정을 연기한다. 김윤진은 자신이 돋보일 수 있는 상업영화 대신, 출연 자체가 하나의 모험이었던 이 영화를 통해, 흥행성공을 하진 못했지만 미혼의 젊은 배우가 해내기 힘들었을 깊이 있는 ‘모성’의 연기를 선보인다.

이 영화에서 김윤진이 찍고자 했던 방점은 ‘엄마의 모성’이 아니라 자애롭지 않고 이기적이지만, 극단적인 엄마의 사랑을 확인하는 한 여자의 진심이었다. 어긋난 모성에 앞서는 것은 김윤진이라는 배우가 가진 그 의외성에 있었다. 가해자이지만 피해자이고, 악랄하지만 상처가 깊은 그 이중적인 상황에서 김윤진이라는 배우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리고 기회는 다시 찾아왔다. 한국형 스릴러의 가능성을 선보이며 크게 성공한 <세븐 데이즈>에서 김윤진은 숨 가쁜 스릴러 속에 또 다른 모성과 충돌하는 엄마가 되어 전형적이지 않은 연기로 절절한 모성을 선보인다. 할리우드라는 넓은 무대를 이미 품어본 배우로서의 여유로움과 진정성은 예뻐보이려하지 않는 매 순간의 진심에 있었다.

차기작은 수감자의 애틋한 모성과 여자들 사이의 진한 우정을 그린 <하모니>였다. 영화는 상업적으로도 비평적으로도 큰 성공을 거두었고, 김윤진은 그 이름만으로도 흥행이 약속되는 믿음직한 여배우로 우뚝 섰다. 그리고 차기작 <심장이 뛴다>에서도 딸을 살리기 위해 악행을 저지를 수밖에 없는 엄마 역할을 맡았다. ‘모성’에 방점을 찍는 것이 아니라 엄마인 여자의 상황과 그 상황에 맞는 진심이 김윤진이 연기를 하는 이유이자,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방법이기 때문에 유사한 캐릭터에 갇히는 것은 아니냐 하는 우려는 기우에 불과한 것이다. <심장이 뛴다>는 김윤진의 동어반복이 아니라 김윤진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는 기회가 되리라 믿어보고 싶다.

박해일, 당신은 또 누구인지 묻고 싶은 배우


박해일 연기의 특징을 되짚어 보거나 정리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많은 영화 속 주인공을 맡았지만 어느 영화도 그 장르나 특징에 있어서 겹치지 않는다. 그가 연기한 캐릭터도 마찬가지다. 일상 속에서 그는 작고 귀엽고 반듯해 보이는 얼굴로 웃고 있지만, 영화 속에 등장하는 박해일을 보면, 늘 ‘너는 누구’하는 의문이 들곤 한다. 흔한 말로 배우는 ‘천의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천의 얼굴’을 가진 배우를 만나기는 쉽지 않는데 박해일이라면 그 흔한 표현에도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대학로에서 잔잔하지만 큰 반향을 일으켰던 <청춘예찬>이란 연극은 박해일이라는 배우를 발견한 혹은 발견하게 한 작품이었다. 반항적인 고등학생의 먹먹한 삶을 그려낸 이 작품을 통해 연극계에서는 차세대 연극을 이끌어 갈 기대주로 우뚝 섰고, 열성팬까지 만들어냈다. 이 작품을 눈여겨 본 임순례 감독은 당연하게도 <와이키키 브라더스>에 그를 캐스팅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좋은 배우를 만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었다.

이후 박해일은 조역이었던 <후아유>를 거쳐 고 장진영과 함께 한 <국화꽃 향기>를 통해 가슴 절절한 순정남의 연기를 통해 대중적인 인지도를 넓혀 나갔다. <질투는 나의 힘>과 같은 해 개봉된 <살인의 추억>을 통해 정갈하고 반듯한 이미지의 연쇄살인범을 연기하면서 관객의 뇌리에 큰 흔적을 남겼다. 문학소년 같은 풋풋함을 가진 착실한 노동자이면서 동시에 잔인한 살인범의 섬뜩함을 동시에 뿜어내던 그의 얼굴에 담긴 놀라운 변화는 많은 사람들에게 그의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다음 작품은 2004년 <인어공주>, 박해일이 가진 가장 착한 얼굴에 어울리는 이 영화에서 그는 반듯하고 다정한 박해일의 얼굴을 보여준다. 곧 다음 영화 <소년, 천국에 가다>를 통해 어른의 몸, 아이의 마음을 가진 네모가 되어 천진함의 끝을 보여준다. 징그럽지 않은 귀여운 박해일의 연기는 눈에 띄지만 영화 자체는 설정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지 못한 영화였다.

같은 해 강혜정과 함께 한 <연애의 목적>은 박해일의 진면모를 드러낸 작품이었다. 순진해 보이는 외모에 속물근성, 뻔뻔하고 적나라한 속성을 가진 유림이라는 배우는 이제까지 한국영화 속 남자 캐릭터에서 쉽게 볼 수 없는 인물이었다. 찌질해 보일 수 있는 이 인물은 박해일이라는 배우를 만나 미워할 수 없는 ‘현실’ 속 인물이 된다. 낯설다며 계속 보면, 이런 유형의 남자, 내 이웃에도 내 직장에도, 어쩌면 내 속에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겉으로만 ‘로맨틱 코미디’였던 <연애의 목적>은 홍상수 식의 대화에 감각적인 영상으로 버무린 파격적이고 쿨하지 않은 사랑의 유형을 보여준 ‘쿨’한 영화였다.


2006년 <괴물> 속 박해일은 그 다양한 배우들 사이에서도 자신만의 색깔을 가지고 튀지도 묻히지도 않는 모습을 보여준다. 2007년 <극락도 살인사건>은 투박하고 성실한 영화였다. 스릴러 장르를 표방하지만, 호러와 코미디가 마구 뒤섞인 혼종의 영화 속에서 박해일은 여러 인물과 사건이 뒤섞컀 복잡한 흐름 속에서 하나의 ‘각’을 잡아주는 역할을 한다. 인기 있는 젊은 배우라면 선뜻 선택하지 않았을 작품에서 박해일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이 즐거운 영화였다.

하지만 2008년 <모던 보이>와 2009년 <10억>은 배우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특히 <모던 보이>에서 박해일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했다. 자칫 잘못하면 개그가 되거나, 과장이 될 수도 있는 인물 앞에서 박해일은 균형을 잡는 방법을 득도한 것처럼 보이지만 영화 자체가 김혜수와 박해일의 충돌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주춤거려 아쉬웠다.

2009년 <10억>에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수의 전도유망한 배우들(신민아, 이민기, 정유미, 이천희, 고은아)이 등장하고, 그 중에서 박해일은 사건의 열쇠를 가진 인물로 등장하지만 눈에 훤히 보이는 배우들의 몸 고생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말 그대로 ‘재난’ 그 자체였다. 하지만, 박해일의 입지가 달라질 건 없었다. 인기를 얻으려 달려간 적도, 인기를 얻기 위해 애쓴 적도 없는 천상 배우인 그에게 계속해서 좋은 영화는 기회가 되었고, 강우석 감독의 <이끼>는 그를 좀 더 대중적인 작품에도 어울리는 배우가 되게 해주었다. <이끼>는 세 시간에 가까운 러닝 타임이 줄곧 힘차게 뻗어나가는 영화였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중견배우들의 열연 앞에서도 전혀 눌리지 않는 박해일의 강단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다시 <심장이 뛴다>를 통해 김윤진과 박해일이라는 걸출한 두 배우를 함께 볼 수 있다는 사실은 관객의 입장에서는 정말 ‘심장이 뛸’ 일이다. 하지만 배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실패를 맛본 수많은 영화가 있고, 선뜻 믿음을 가지기에 <심장이 뛴다>가 데뷔작인 윤재근 감독에 대해 검증된 바가 없다. 그럼에도 <심장이 뛴다>는 역시 김윤진과 박해일 때문에 믿고 볼 수 있는 영화란 생각이 든다. 늘 전형성에서 벗어난 진심을 보여주는 김윤진과, 곧 터져버릴지도 모를 뇌관을 어딘가에 묻어두고 있는 것 같은 박해일의 만남이 이미 영화의 반 이상을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심장이 뛴다 윤재근 김윤진 | 박해일 | 김상호 드라마 15세이상관람가 2011.01.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