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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의 그릇 김광선 저 | 모요사 |
현재 세계 미식의 흐름은 ‘무엇을 담느냐’에서 ‘어디에 담느냐’로 변화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런 현대 미식의 흐름을 충실히 좇아가며 도쿄에서 시카고로 다시 서울로, 발로 뛰어 찾아낸 첨단 미식의 현장을 역동적으로 소개한다. 음식을 담아낸 그릇에 반해 그릇의 뒷면을 기어이 뒤집어 이름을 확인해본 경험이 있는 이라면, 놋그릇에 담은 비빔밥과 도자기 그릇에 담은 비빔밥에서 맛의 차이를 경험해본 이라면, 셰프의 설명을 들어가며 도쿄의 미슐랭 스타급 레스토랑에서 코스요리를 먹는 간접 체험을 해보고 싶은 이라면 이 책은 진정 충만한 즐거움을 선사할 것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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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이었다. 따뜻한 차가 마시고 싶은 고요한 시간, 부암동의 한 작은 가게에 들어섰다. 난간이 없으면 올라갈 수 없을 것 같은 까마득하게 높은 계단을 휘청거리며 오른 그 곳엔 새로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일본 시골 마을에 있는 작은 카페 같기도 하고 북유럽 어딘가에 있는 소박한 밥집 같기도 한 마음이 따뜻해지는 작은 공간이었다.
들깨가 가득 들어간 버섯 덮밥과 정말 고양이들이 먹을까? 궁금해지는 고양이 맘마, 마치 마음씨 좋은 푸근한 아줌마가 뜨개질을 하며 기다려줄 것 같은 동화 속 한 장면에서 진정 나의 시선을 사로 잡은 건 바로 식탁을 가득 채운 찻잔과 접시, 그리고 주전자였다. 화려하게 멋을 부린 크리스탈도 기교를 부린 도자기도 아니었지만 여러 주인들을 거쳐왔을 세월과 더불어 이 곳까지 먼 시간 여행했지만 전혀 지쳐보이지 않는 북유럽의 그릇들이 얌전히 앉아있었다.
부암동에서 만난 그릇들에 대한 잔상이 남아있을 무렵, 이 책을 만났다. 셰프이자 푸드스타일리스트로 활동하는 저자가 일본, 미국, 그리고 우리나라의 그릇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바늘가는 데 실이 빠질 수 없는 것처럼 그릇과 함께 꼭 붙어다닐 수 밖에 없는 음식 이야기를 함께 담았으니 도저히 놓칠 수 없는 일이다. 미슐랭에서 별을 받은 최고급 레스토랑부터 일본의 소박하고 정겨운 다방, 그리고 사람 냄새 나는 우리의 국밥집까지. 그들은 어떤 그릇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을까.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찾아간 쓰키지 새벽시장까지 아침바람을 맞으며 좀비처럼 마냥 걸어간 그들은 한 스시집 앞에 도착한다. 이른 시간부터 길게 줄이 늘어져 있는 그 곳은 백발의 아버지와 젊은 아들이 함께 하고 있는 스시집이다. 초밥은 도마 접시에 담겨져 나오는데 도마 접시는 주로 향나무와 대나무로 만들어진다. 나무가 수분을 흡수해 초밥이 무너지지 않게 하고 밥의 고슬고슬한 식감을 유지시켜주기 때문이다. 소박한 나무 도마위에 올려준 스시지만 먹는 사람?게 새로운 맛과 감흥을 전달하기에는 전혀 부족하지 않다.
미슐랭 1스타를 획득한 오모테산도의 하마사키. 프리젠테이션 플래터가 테이블 위에 놓여있다. 골드 트림에 잔잔한 꽃과 줄기를 그려 넣은 본차이나 접시는 리처드 지노리의 최고가 제품인 라스칼라 라인이다. 지노리는 고전주의와 아르누보 디자인을 동시에 수용해 동시대의 로열 코펜하겐, 세브르와 함께 유럽의 도자기 문화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다. 이처럼 유럽에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도자기 회사들이 하나둘 생겨났는데, 독일의 마이센, 영국의 로열 우스터, 덴마크의 로열 코펜하겐, 이탈리아의 리처드 지노리 등이 그것이다. 그릇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도 한번 쯤은 들어봄직한 이름들인데 이 도자기들은 유럽의 문화를 자기만의 스타일로 표현한 제품들이 많다고 한다.
생각해보면 조선시대만 해도 우리나라 도자기 산업은 꽤 발달했는데 그 기술은 지금까지 전해져오고 있지 않다. 조선시대 역사를 공부할 때 백자, 분청사기 등 도자기가 중요하게 언급 되곤 했는데.. 저자는 이와 관련된 이야기를 책의 뒷부분에 실었다. 조선시대 중기에 반상의 규범화가 이루어져 조리법, 그릇, 식상들이 체계적으로 정립되었고 백자, 분청사기 등이 발전하였다. 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급속히 쇠락하고 만다. 일본의 값싼 그릇인 '왜사기'가 들어오고 우리의 식생활은 일본에 의해 점령당하게 된다. 뒤이은 6ㆍ25 전쟁으로 식생활이 회복할 여유가 없이 열악한 상태를 계속 이어나갔고, 그리고 들어오게 된 중국, 일본, 서양의 식문화는 우리의 근본을 찾을 수 없게 변형시켰다.
어떤 그릇에 담기느냐에 따라 요리의 모양과 의미가 달라진다. 음식은 그릇과 하나가 되어 완벽한 예술로 완성되는데 우리나라 유명 한식당에서조차 국적 불명의 그릇을 사용하는 일이 다반사라고 한다. 이름을 뒷면에 새긴 그릇을 사용하는 식당,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명품 식기에 음식을 담는 고급 레스토랑, 아무런 무늬없는 실용적인 그릇이지만 그에 맞는 합리적인 음식을 담아내는 식당들을 보며 우리만의 그릇을 생각해본다. 음식을 먹기도 전에 그릇의 뒷면을 들춰본 경험이 있는 미식가라면 김광선 셰프의 맛과 멋 이야기에 가만히 귀를 기울여 볼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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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선
홍익대학교에서 회계와 경영을 공부하며 평범한 삶을 살던 그는 잠재되어 있던 요리에 대한 열정과 에너지를 발견하고 요리계에 입문한다. 라퀴진 FCA(Food Coordinator Academy)와 이탈리아 ICIF(Italian Culinary Institute for Foreigners)를 수료한 후 압구정동에 쿠킹 스튜디오 ‘라붐(Laboom)’을 오픈한다. 그때 이미 다양한 매거진과 EBS 『일과 사람들』, 선키스트(Sunkist) 기획 광고에 출연했고, 여러 기업 행사의 케이터링과 공간 연출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 요리의 대가 박찬일 셰프를 만나 이탈리아 레스토랑 ‘뚜또베네’에 들어가게 되는데, 이는 진정한 요리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이었다. 이후 스승 박찬일의 제안으로 오가닉 티 브랜드 ‘사루비아 다방’, 동양그룹 ‘누보쉐프’에서 메뉴 기획 및 개발 컨설팅을 맡으며 왕성하게 활동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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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나래 (컨텐츠팀)
입사한 후, 지하철에 앉아 책을 읽는 사람이 내가 등록한 책을 들고 있으면 가서 말을 걸고 싶을 만큼 신기했다. 지금은 끝이 없어 보이는 책의 바다에서 수영을 배우고 있는 듯한 기분. 언젠가는 벽 한 면을 가득 서재로 꾸미고 포근한 러그 위에서 향긋한 커피를 마시며 주말을 보내는 꿈을 꾼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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