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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사람들의 세 가지 단계

빈센트 반 고흐의 러브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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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맘 속에 있어. 어쩌면 너는 벌써 알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새로운 소식이 아닐 지도 몰라. 케이 포스와 올 여름 깊은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1881년 11월 3일
네덜란드 에튼.


테오에게.
네게 말해주고 싶은 것이 맘 속에 있어. 어쩌면 너는 벌써 알고 있는지도 모르니까 새로운 소식이 아닐 지도 몰라. 케이 포스와 올 여름 깊은 사랑에 빠졌다는 걸 알아줬으면 해. “마치 케이 포스가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고, 내가 케이 포스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 같은”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을 정도야. 그 말은 내가 그녀에게 한 말이기도 하지.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그렇게 말했을 때, 그녀는 과거와 미래가 그녀에게 하나로 남아 있기 때문에 절대로 나의 감정에 호응할 수가 없다고 대답했어.

그래서 나는 어떻게 할 것인지 큰 딜레마에 빠져 버렸지. “절대, 절대, 안 돼요” 에 나를 맡겨야 할까, 아니면 아직 풀리지 않은 문제를 용기를 가지고 포기하지 않아야 할까?

나는 후자를 선택했어. 비록 여전히 내가 “절대, 절대, 안돼요”에 직면해 있기는 해도 이 방식을 후회하지 않아. 그 이후로 물론, 정말 몇 개 안되는 “삶의 몇 가지 작은 문제들”을 견대야 했지. 그것은 책에 이미 쓰여 졌던 것들이고 아마도 몇몇의 사람들을 웃기게 해줄 거야. 하지만 만약 스스로 경험한 사람들이 있다면 오직 기쁨으로 간주할게 틀림없어.

하지만 오늘까지, 나는 그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과 계속 용기를 갖고 있는 나를 위해서 포기-혹은 ‘어떻게 하지 않을까’ 하는 방법 취하기-하지 않은 것이 기뻐. 이런 경우에 무얼 할지 하지 말지를 누군가에게 물어본다는 게 무척 힘들다는 걸 넌 이해하겠지. 그러나 “우리는 방랑을 할 때 향기를 따라가지 게으르게 앉아 있지는 않아.”

내가 너에게 이 모든 것을 전에 쓰지 못한 이유는, 내 입장이 굉장히 불확실하고 불안정해서 설명할 수가 없어서였어. 하지만 지금은, 내가 말하고자 했던 지점에 다다른 것 같아. 그녀에게 뿐만 아니라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스트리커 이모와 이모부에게 그리고 프린센하헤의 숙모와 숙부에게 다 말했어.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향상시킬 수 있다면 정말 기회가 생길 수 있다고, 매우 비공식적으로 그리고 사적으로 말해준 단 한사람은 내가 가장 기대하지 않았던 센트 삼촌이었어. 그는 내가 케이의 “절대, 절대, 안돼요”의 응답에 반응한 방식에 기뻐하셨어. 삼촌는 그걸 과대포장하지 않고 재미난 유머로 말씀 하셨지. “케이 포스가 만들어 놓은 ‘절대, 절대 안돼요’의 방앗간에는 곡물을 주지마. 나는 그녀가 최선을 다하길 원하지만, 그 방앗간이 파산하기를 더 바라니까.”

이와 비슷하게 나는 스트리커 삼촌이 “내가 받을 수 있을 친밀한 관계와 오래된 끈”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말했을 때에도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지 않았어. 그래서 내가 보기에 진짜 문제는 오래된 끈을 계속 잇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수선이 필요한 곳에서 새롭게 고쳐질 수 있는지를 보는 거라고 말했지.

아무튼 내가 그걸 이어나갔으면 했으면 좋겠어. 일을 열심히 하는 동안 낙담과 우울함을 버리고 말이야. 그녀를 만난 이후로는 작업이 정말 잘 되고 있다고.

내가 말했지, 내 입장이 점점 더 선명해지고 있다고. 첫째, 케이는 “절대, 절대, 안돼요”라고 말하지. 이제는 다 해결된 문제여서 나더러 포기하라고 강요하는 늙은 사람들을 상대하기가 굉장히 힘들 거라는 느낌이 들어.

그러나 12월에 있는 스트리커 이모와 이모부의 은혼식이 끝날 때까지 한동안 그들은 그 문제에 대해서 매우 부드럽게 넘어갈거야. 나를 계속 따라다니면서 적당한 말로 속이겠지. 그 후에 그들이 나를 쫓아내지는 않을까 두려워.

너에게 명확하게 입장을 나타내기 위해서 조금 거칠게 표현한 것 용서해. 표현의 색깔들이 다소 화려했고 선들이 다소 강하게 그려졌다는 걸 인정하고 있어. 하지만 그건 내가 요점을 피해서 얼버무리는 것 보다는 분명한 통찰력을 줄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내가 혹시 늙은 사람들에 대한 공경이 부족하다고 의심하지는 말아 줘.

그러나 나는 그들이 우리 관계에 확실히 반대한다고 믿고 있어서, 명확하게 네게 이야기 하고 싶었던 거야. 그들은 케이와 내가 서로 보지도, 말하지도, 편지를 주고받지도 못하게 하기 위해 노력할 거야. 왜냐하면 우리가 서로 보았고, 말했고, 편지를 주고받았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케이가 마음을 바꿀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케이는 스스로 절대로 마음을 바꾸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 늙은 사람들은 그녀가 마음을 바꿀 수가 없다고 내게 납득시키려고 노력하겠지만 혹시나 변하지는 않을까 두렵겠지.

케이가 입장을 바꿀 때가 아니라 내가 적어도 1년에 1,000 홀덴을 버는 사람이 되었을 때에야 늙은 사람들은 이 연애에 대한 생각을 바꿀 거야.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일을 그려내기 위해 거친 윤곽을 사용한 걸 용서해줘. 내가 늙은 사람들로부터 조금이나마 동정심을 받는다면 젊은 사람들도 내 입장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테오, 너는 아마 내가 일을 무리하게 진행하고 싶다고 말하는 것, 혹은 이와 비슷한 표현을 들었을 거야. 그러나 모두가 사랑에 있어서 무력이라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지 알고 있어. 아냐, 어떤 것도 내 생각을 벗어나지 않아.

하지만 케이와 내가 만나지 못하게 하는 대신에 우리가 서로 잘 알기 위해, 심지어 우리가 서로에게 잘 맞는지 안 맞는지 알기 위해서, 서로 만나고, 보고, 편지를 쓰는 건 불공평하거나 비합리적인 게 아니야. 1년 정도 서로 만나보는 것인 그녀에게도 나에게도 이로운 일이겠지만 늙은 사람들은 이 점에 대해 정말 완고한 입장이야. 내가 부자였다면 그들이 곧 장단을 바꿀 텐데 말이야.

하지만 지금 너는, 내가 그녀와 가까워지기 위해 얼마나 갖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깨달았을 거야. 이것이 내 계획이야.

그녀가 마침내 나를 사랑할 때까지
그녀를 계속 사랑하는 것.
그녀가 점점 사라질수록 그녀는 점점 잘 보는 것.

테오야. 너도 이만큼 사랑에 빠져 본 적이 있니? 네가 그래봤길 바래. 날 믿어, 비록 “작은 고통”도 의미가 있으니까. 때로는 절망에 빠지고 지옥에 있는 것 같은 순간도 있겠지. 하지만 그 고통도 조금씩 다르고, 다른 것보다 나은 것도 있어. 자 그걸 3 단계로 나눠 볼까.

1. 사랑하지 못하고 사랑 받지 못하는 단계
2. 사랑하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단계(지금의 내 경우지)
3. 사랑하고 사랑 받는 단계

지금 나는 1단계 보다 나은 2단계에 있다고 말하지만 바로 3단계가 있잖아. 바로 그거야!
음, 테오 녀석아, 가서 사랑에 빠진 다음에 나에게 사랑에 대해 때때로 말해주려무나. 지금 내 상황에 대한 너의 조언은 그냥 계속 간직한 채로 나를 위해 동정심을 가져 주렴. 물론 케이에게 찬성이나 아멘의 대답을 받았었더라면 더욱 좋았겠지만 나는 “절대, 절대, 안돼요”라는 대답에도 거의 기뻐하고 있는 정도야.(나이 많고 현명한 사람들은 그 대답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겠지만, 나는 그걸 중요한 것으로 간주하고 있어.)

라파르드가 여기와서 꽤나 잘 나온 수채화를 가지고 왔었어. 모베가 곧 오기를 바라지만, 안온다면 내가 가야겠지. 나는 꽤 괜찮은 양의 드로잉을 그렸고 점점 발전하고 있다는 기분이 들어. 그 전보다 훨씬 많이 붓을 사용해서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야. 지금은 굉장히 추워서 실내에서 인물 소묘- 여자 재봉사나, 바구니를 짜는 사람들을 등등을 그리고 있어.

내 마음 속에서 너와 악수를 해본다. 곧 답장을 주고 나를 믿어다오.

너의 영원한
빈센트.


빈센트 반 고흐(1853-1890)는 네덜란드의 표현주의 화가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화가로 여겨진다. “해바라기”,“아이리스”,“생 레미”, 그리고 걸작인 “별이 빛나는 밤”을 포함한 소묘와 그림은 후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으며 전 세계를 통해 가장 잘 알려져 있고, 인기가 있으며 비싼 작품들이기도 하다.

1881년 여름, 그가 부모님과 함께 젤더랜드에 살고 있을 동안 빈센트는 사촌 케이 포스와 함께 시골근방을 산책하고 그림을 그리는데 시간을 보냈다. 그녀는 최근에 과부가 되었고 한 아이의 엄마였으며 그보다 여섯 살 연상이었다. 그녀는 고흐가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고흐의 청혼을 거절했고 그를 다시 볼 것을 거부했다. 빈센트가 그의 손을 램프 위에 올려놓고 “내가 불꽃 안에 손을 넣고 있을 동안이라도 그녀를 볼 수 있게 해주십시오”라고 말했을 때, 그녀의 아버지-그의 삼촌-은 불꽃을 꺼버렸다고 한다.

반 고흐는 술과 압셍트 대한 집착으로 고통 받는 예술가였다. 그는 발작 중에 그의 왼쪽 귓불을 잘랐으며 1890년에 밭에서 자살했다. 그의 마지막 말은 “슬픔이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였다.

* 본 글은 John C. Kirkland 의 위대한 남자들의 연애편지(Love Letters of Great Men) 의 일부를 번역한 것입니다. 저작권은 해냄 출판사에 있으며 출판사의 양해를 구해 채널예스에 싣습니다.


서진의 번역 후기

뉴욕 모마(MoMA)에서 고흐의 작품을 본 적이 있습니다. “우체부 아저씨의 초상화”와 “별이 빛나는 밤”이었어요. 미술 책에서만 본 작품들이라 실제로 보니 크기가 작아서 살짝 실망했더랍니다.

그러나 고흐의 작품은 누가 보더라도 마음을 뒤흔드는 힘이 있습니다. 그림도 유명하지만 그의 인생과 그림에 대한 이야기가 전설처럼 전해져 내려오기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그것도 편지로 말입니다. 잘 알려졌다시피 고흐는 동생 테오에게 평생 경제적으로 후원을 받았습니다. 동생과 주고받은 편지는 650여통이 넘었는데 그 속에는 그림을 그릴 때 겪는 사소한 어려움, 그림을 향상 시키고 싶은 마음, 남들에게 인정받고 싶을 열정 등이 자세하게(어쩌면 너무나 자세하게) 적혀져 있습니다.

우리가 그의 그림을 보면서 느끼는 감동도 어쩌면 편지에 나온 이야기들 때문이 아닌가 싶어요. 사촌 케이 포스에 대한 사랑은 비록 이루어지지 않았고, 이후에 있었던 몇몇 사랑도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림에도 마찬가지지만 사랑에도 그는 남들이 뭐라고 하던 거침없이 달려들었던 것 같습니다. 최소한 포기하지는 않았어요. 비록 사랑하지만 사랑받지 못하는 2단계에 머물고 있다고 해도 1단계(사랑하지도 못하고 사랑받지도 못하는)에 있는 사람들 보다는 낫고, 3단계(사랑하고 사랑받는)에 대한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겠지요.

집착이거나, 정신병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세상에 어느 사랑이 ‘정상적’일 수 있겠습니까? 그의 말처럼 사랑을 하면서 겪게 되는 작은 문제들이 몇몇 사람을 웃게 만들 수 있겠지만 정작 사랑에 미쳐 버리면 그건 기쁨이 될 겁니다.

그의 그런 집착이 작품에 없었더라면 아마 죽어서라도 큰 영향을 줄 그림들을 그리지 못했을 겁니다. 우리가 보는 건 그가 그림을 그릴 때 겪었던 사소한 어려움이나 불행이 아니라 마음을 흔들게 하는 그의 그림이니까요.

추운 겨울, 독자님들도 약간은 정신 나간 사랑을 해보시길 기원합니다. 1단계에서는 2단계로, 2단계에서는 3단계로 나아가길 바랍니다.


 같이 읽어보면 좋은 책

 반고흐의 편지를 볼 수 있는 곳(영문) : //www.webexhibits.org/vango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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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서진

소설가, 한페이지 단편소설 운영자. 장편소설 『웰컴 투 더 언더그라운드』로 12회 한겨레 문학상 수상. 2010년 에세이와 소설을 결합한 『뉴욕 비밀스러운 책의 도시』 출간. 세상의 가장 큰 의문을 풀 책을 찾아 헤매는 북원더러.(Book Wanderer) 개인 홈페이지 3nightson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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