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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냄새, 그 수공의 치열함

영화 <황해>와 다시 뭉친 세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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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추격자>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신인감독에 인지도 낮은 연기자, 낯선 소재로 채워진 그 영화는 기획 단계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편이었다.

<황해>, 더 깊고 거대해진 추격의 농도


2008년 <추격자>는 하나의 현상이었다. 신인감독에 인지도 낮은 연기자, 낯선 소재로 채워진 그 영화는 기획 단계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 편이었다. 하지만 전직 경찰과 연쇄살인마의 끈질기고 치열한 추격전을 담아낸 <추격자>는 개봉과 동시에 하나의 ‘발견’이라 불리며 한국적 리얼리즘 스릴러라는 극찬과 함께 관객들의 환호까지도 얻어내었다.

나홍진 감독은 첫 장편영화 데뷔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노련하고 또 부지런하게 어둡고 눅눅한 밤 장면이 대부분인 이 영화를 빈틈없이 꽉 채워낸다. 여기에 송강호, 설경구의 존재감에 절대 뒤지지 않는 김윤석의 존재감과 그야말로 영화계의 기대주로 다양한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는 하정우까지 더해져 꽉 찬 화면에 농밀한 점성을 만들어 낸다. 여기에 최근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을 통해 여배우로 재조명받은 서영희가 유일한 생존자 역할을 맡아 사건의 중심이자 치열한 슬픔의 핵심이 된다.

특수효과와 현란한 기술로서가 아니라 밑바닥 인생의 리얼한 삶에 카메라를 들이밀고, 오직 몸으로 부딪히고 충돌하는 가운데 쌓아올리는 스릴러의 강도와 효과는 이전의 어떤 영화에서도 볼 수 없었던 간결하면서도 강력한 것이었다. (사담이지만 결코 녹록치 않았을 몸의 투쟁 속에 던져진 김윤석과 하정우, 그리고 감독은 큰 주목을 받았지만 어떻게 보면 가장 더러운 곳에서 가장 치열한 몸의 생존을 보여준 서영희가 그 치열한 현장에서 즉각적인 찬사를 받지 못한 것은 두고 봐도 아쉬운 일이었다.)


그리고 2010년 거의 1년에 가까운 촬영기간을 마치고 <황해>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나홍진 감독과 김윤석, 하정우 등 <추격자>의 세 남자가 뭉쳤으니 영화에 대한 기대감은 부글거릴 수밖에 없다. 게다가 그 사이 세 사람에 대한 영화계의 입지도 달라졌으니, 그 많은 기대감을 충족시키려면 어지간히 잘 만들지 않으면 힘들 것이란 생각도 해 본다.

중국 연변의 택시운전수 구남(하정우)은 한국으로 간 뒤 연락 두절된 아내를 기다리며 빚에 허덕이며 마작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는 밑바닥 인생을 살고 있다. 그런 그에게 살인청부업자 면가(김윤석)가 나타나, 한국에 가서 한 사람만 죽여주면 모든 빚을 없애준다는 제안을 한다. 선택의 여지가 없는 구남은 황해를 건너 한국으로 오고, 목표로 한 인물이 먼저 살해당하는 바람에 누명을 쓰고 쫓기는 신세가 된다.

줄거리만 보면 이 영화가 <추격자 2>가 아니냐는 말이 과장이 아닐 정도로 전작의 냄새가 강하게 묻어난다. 하층민들의 고단한 삶 속에서 벌어지는 추격은 늘 생존의 문제에 맞닿아있고, 그 사이에 벌어지는 치열함이 농축된 스릴러를 만들어 내리란 기대를 하게 된다.

스케일도 훨씬 커지고 훨씬 더 치열해진 <황해>는 더욱 악랄해진 조건 속에서 쫓고 쫓기는 순환을 계속할 예정이다. <추격자>에서의 추격이 쫓고 쫓기는 맨몸이었다면, <황해>에서의 추격은 대형 트레일러가 등장할 정도로 규모와 속도는 훨씬 거대해졌다.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에게 덤벼드는 쥐처럼, 서서히 조여 오는 극한의 상황에서 괴물이 될 수밖에 없는 구남의 역할은 젊은 남자 배우에게서 찾아보기 어려운 굵고 폭넓은 연기력을 갖춘 하정우를 만나 더욱 치열해졌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어정쩡한 인물이었던 김윤석은 <황해>에서는 철저하게 사악한 캐릭터로 변신하였다. 자신의 목구멍에 밥을 넘기기 위해 살인을 밥 먹듯 하는 면가 캐릭터는 김윤석을 만나 소름 돋을 정도로 생생해졌다. 타인에게는 ‘악’이라고 정의된 모든 것들이 생존의 문제에 직면한 개인들에게 ‘일상’일 수밖에 없는 잔혹한 현실을 추격하는 <황해>는 <추격자>를 뛰어 넘어 또 다른 밑바닥 인생과 얽힌 농익은 스릴러의 재미를 선사해 줄 것이다.

나홍진 그리고 <추격자>


나홍진 감독은 몇 편의 단편영화로 큰 주목을 받았지만 장편 극영화를 만들기에는 완벽한 신인이었다. 2003년 단편 <5 minutes>로 주목받고, 2005년 단편 <완벽한 도미요리>로 제4회 미장센 단편 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제6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장려상, 제25회 하와이 국제영화제 초청, 레스페스트 2005년 페스티벌 초이스로 선정되었다. 이어 2007년에 단편 <한(汗)>으로 제44회 대종상 단편 영화 감독상, 제11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단편 부문 심사위원상, 제8회 대한민국 영상대전 우수상을 수상했다.

2008년 장편 영화 데뷔작 <추격자>는 이미 그 구상에 있어서 만만치 않은 작품이었다. 조금만 어긋나도 쌓아둔 모든 것이 와르르 무너질 수 있는 스릴러 장르에 밑바닥 인생의 치열한 삶을 녹여냈으니, 어지간히 노련한 감독이 아니라면 말 그대로 ‘작품’을 꾸려내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추격자>는 이런 모든 우려를 떨쳐내면서 2008년 백상예술대상에서 영화대상 및 영화신인감독상, 2008년 대한민국영화대상에서 최우수작품상, 감독상, 각본/각색상을 받으면서 2008년 가장 주목받는 뜨거운 작품이 되었다.


<추격자>에서 보여주는 세상은 그야말로 날 것 그대로의 정글이다. 시장은 똥을 맞고, 경찰들은 성과에 연연하고, 그 가운데 여자들을 등쳐먹는 포주들이 있다. 그 속에 사람들은 계속 죽어나가고, 공권력은 절대 믿을 것이 못된다. <추격자>에서 보이는 세계는 자생할 수밖에 없는, 한 마디로 믿을 놈 하나 없는 약육강식의 먹이사슬의 세계이다. 철저하게 한국사회라는 현실의 공간에 초점을 맞춘 이 영화는 한국형 장르 영화의 계보에서 독보적이라 할 수 있는 <공공의 적>과 <살인의 추억>을 보고 자란 영화 키드가 구현할 수 있는 차세대 모범답안이라 할만하다.

이성적인 판단과 제도(경찰의 공권력)로 절대 해결하지 못하는 미궁의 연쇄 살인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야성과 육감의 몸싸움이라는 씁쓸한 결론으로 치달아가는 동안, 겨우 탈출한 생존자가 어이없이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는 현실까지도 제시하면서 대안이 없는 한국사회의 제도를 곱씹고 되뇐다.

추격의 고단함 속에 달리고 또 달릴 수밖에 없는 <추격자>는 그 피로한 아침을 주목한다. 포주가 된 전직경찰이 그렇게 치열하게 달리는 과정과 어떤 상황으로도 면죄부를 쓸 수 없는 연쇄살인범의 현실을 훑어가는 나홍진 감독은 끈질기고 치밀했던 그의 이전의 단편 영화처럼 독하고 질긴 데뷔작을 선보였다. 단 한 번 누군가의 연출부 활동도 하지 않고 우뚝 솟은 나홍진 감독은 뒷심 딸리지 않는 안정적 연출력을 선보이면서 한국영화에 달려든 든든한 추격자가 되었다.

강하고 깊은 존재감, 김윤석과 하정우


포주가 된 전직경찰이라는 아이러니 속에, 더 이상 경찰이 아니지만 경찰보다 더 월등한 실력을 선보이는 중호라는 인물은 <추격자> 속에서 가장 역설적이고 생생한 캐릭터였다. 이 비열하고 밉지만, 인간적인 캐릭터는 김윤석을 만나 생생한 실체가 되었다. <황해>를 통해 잔혹한 살인청부업자가 되어 극한의 비열함을 선보일 김윤석은 광기와 카리스마로 무장해, ‘악’이 생활인 된 면가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전작 <거북이 달린다>에서도 탈주범을 잡겠다고 용쓰는 시골 형사가 되었다. <추격자>를 떠올리게 하는 유사함 속에서도 김윤석은 전혀 다른 연기의 스펙트럼을 만들어낸다.

애초에 김윤석이란 이름과 인물은 낯설었다. 2006년 드라마 <인생이여 고마워요>와 아침 드라마 <있을 때 잘해>에서 유호정의 남편 역할을 맡은 김윤석은 ‘대체 누구’라는 의문을 낳으며 등장했다. 2001년부터 몇 편의 영화에 등장하기는 했지만 이름을 알릴만큼 비중 있는 역할은 없었기에 그 정도 나이의 배우라면 당연하게 있어야 할 그럴 듯한 프로필도 없이, 거의 아무것도 알려지지 않은 김윤석이란 배우는 그래서 낯선 주목을 받았다.

<천하장사 마돈나>의 찌질한 동구 아빠와 <타짜>의 아귀를 통해 강인한 인상을 심어주며 성큼 올라선 김윤석이 폭발한 것은 당연하게도 <추격자>에서 부터다. 그렇게 단시간에 비중 있는 연기파 배우의 리스트에 이름을 올릴 수 있을 만큼, 그의 연기는 남다르면서도 자연스럽고, 또 독특하다. 독하고 매섭고, 굵고 강렬한 인상이다. 연극으로 갈고 닦은 오랜 무명생활의 고단함이 묻어나는 그의 삶은 캐릭터에 그대로 투영된다.

범죄자를 쫓는 형사라는 판박이 설정을 거부하지 않고 전혀 새로운 인물을 만들어내는 그의 장기는 <거북이 달린다>에서 자리매김한다. 뚜렷한 목표 설정은 되어있지만, 느릿느릿한 시골형사는 김윤석이라는 배우를 만나, 정말 있음직한 인물로 살아난다. 우리가 송강호에게서나 기대할만한 능력을 김윤석이란 배우에게서 발견하는 순간, 그는 든든한 주연급 배우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거북이 달린다>는 카리스마와 격정, 에너지를 모두 내려놓은 고단한 보통 남자의 모습을 선보이면서 그가 일상적이고 소소한 소시민의 연기도 가능하다는 다른 지점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리고 2010년 <황해>로 돌아온 김윤석에게 기대하는 바는 이전과 확실히 다르다. 우리는 그를 믿고, 그가 더 잘하리라 기대한다. 그리고 그 믿음은 아마도 더 큰 확신으로 발전할 것 같다.


하정우는 애초에 운이 좋았다. 유명 연예인 2세라는 타이틀을 업고 배우가 되었고, 그 장점이자 단점인 상황 속을 헤쳐 더 이상은 수식이 필요 없는 한 명의 ‘배우’가 되었다. 2002년 <똑바로 살아라>를 시작으로 연기자가 된 하정우의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꽤 유명한 다 수의 작품이 포진되어 있지만, 그의 역할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작품의 조연이었다.

이름과 얼굴을 알린 작품은 TV 드라마 <프라하의 연인>이었지만,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알린 건 독립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였다. 뭔가 어설프고, 뭔가가 부족한 듯한 여러 연예인 2세들 속에서 하정우는 아버지의 이름대신, 작품을 선별하는 안목과 겸손한 자세로 성장했다. 9년의 연기기간 중 21편의 영화 출연이라는 그 부지런함은 다른 청춘 배우들이 갖지 못한 빠른 성장과 관객들의 믿음으로 보상되었다.

본인의 말처럼 오래 생각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반응하고 행동하는 배우로서 그는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그리고 다양한 영화 속에서 하정우는 늘 다른 모습이다. 상업영화와 독립영화 사이를 오가면서 어쩌면 위험한 균형감각을 가진 배우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하정우는 계산기를 두드려 완벽한 캐릭터를 선보이는 재바른 스타일은 아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탱탱볼처럼 그는 정말 여러 영화와 장르를 종횡 무진한다.

그 속에서 그는 주인공이기도 조연이기도 하지만, 하정우라는 배우는 영화 속에서 늘 제 몫을 한다.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는 배우 하정우는 여전히 젊고 생생하고 생활력이 강하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도 쉽게 볼 수 있는 배우가 될 것이다. 그것이 소모적이고 지겹지 않은 것 역시 하정우라는 배우의 종잡을 수 없는 매력 때문이다. 원대한 포부나 계획 없이 한 발 한발 나아가는 이 배우의 저력은 늘 일상적이기 때문에 더욱 값질 것이다. 동시대 젊은 배우들에게서 발견할 수 없는 이 바지런함이야 말로 하정우의 미래를 기대하게 만드는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다.


‘황해’는 중국 동부 해안과 한반도 사이에 있는 바다로 한국에서는 서해(西海)라고 부르는 바다이다. 국제무역이 활발한 중국의 특성 상 육지로부터 늘 물건을 운반하는 사이 바닷물이 누렇게 흐려져 황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 불투명한 황해의 운명은 늘 인간의 고된 노동과 이어져있는 것이다. 그 고단한 삶의 흔적을 영화 <황해>는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단단한 캐릭터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 있는 배우들과 몸 냄새와 땀의 매력을 아는 나홍진 감독이 다시 만난 <황해>는 세 사람에 대한 믿음이 어우러져 더욱 큰 주목을 받고 있는 작품이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옛말이 틀린 순간이 많아진 지금, <황해>가 2010년 마지막 ‘발견’이 되어 영화계를 기쁘게 만들어주었으면 좋겠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보면 칙칙할지도 모를 한국형 스릴러 영화를 기대하게 만드는 저력이 믿음이 되어 극장가를 들썩이게 만들어준다면 영화팬들에게 그만큼 신나는 연말 선물이 어디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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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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