껴안고 싶은데 자꾸 떨어지래
‘띄어쓰기’ 헷갈려서 ‘떼쓰기’ 하고 싶은 한글 맞춤법 을 성토함
‘띄어쓰기’ 작작 하자고 ‘떼쓰기’ 하고 싶다.
자랑스러운 한글이 못마땅할 때가 있다. 영어가, 일본어가, 중국어가, 타이어가, 베트남어가 한글보다 더 훌륭해 보이다니! 머리 아픈 띄어쓰기 탓이다. 대부분의 외국어는 단어와 단어를 아예 떨어뜨리지 않거나(중국어, 일본어, 타이어), 하더라도 복잡하지 않다.(알파벳을 쓰는 언어권. 가령 for와 you를 붙일지 말지 고민하지 않는다)
‘쩝쩝조어’는 예외적으로 붙인다네
20여 년간 직업적으로 글을 썼지만, 아직도 띄어쓰기엔 젬병이다. 맞춤법 중에서 가장 난해하다. 경우의 수가 많아 법칙을 외운다고 되지도 않는다. 내가 아는 기자들 중 상당수도 글을 쓰며 ‘뗄지 말지’ 헷갈려한다. 가령 이런 경우를 보자. ‘다시한번’인가, ‘다시 한번’인가, ‘다시 한 번’인가. ‘해볼만하다’인가, ‘해볼 만하다’인가, ‘해 볼 만하다’인가, ‘해 볼 만 하다’인가. 틀리는 일이 하도 잦다 보니 편집국장이 극단적 처방을 내린 적도 있다. 매주 잘못 띄어 쓰는 기자들의 이름과 횟수를 공개했다. 교실에서 떠들다가 칠판에 이름 적힌 학생처럼 스트레스 뻗쳐하던 후배 한 명이 생각난다.
먼저 1989년 개정된 한글맞춤법 제5장 띄어쓰기 편을 요약해보자. 띄어쓰기의 대원칙은 한마디로 이렇다. “모든 낱말끼리는 떨어져 지낸다.” 여기엔 두 가지 예외가 있다. 첫째 ‘접접조어’는 붙인다. ‘접접조어’는 내가 만든 말이다. 기왕이면 ‘쩝쩝조어’로 발음하고 싶다. 접두사, 접미사, 조사, 어미는 붙인다는 이야기다. 둘째, 아예 한 낱말이 된 것은 붙여 쓴다. 가령 ‘띄어쓰기’는 붙이지만 ‘띄어 쓴다’는 뗀다. 전자는 하나의 낱말로 굳어졌고, 후자는 ‘띄어’와 ‘쓴다’라는 두 동사가 합쳐진 거라서다.
‘쩝쩝조어’는 ‘첩첩산중’이다.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접두사와 접미사는 쉽게 구분할 수 있는데, 조사와 어미가 문제다. 띄어 써야 하는 의존명사가 조사·어미인 듯 보일 때가 많다. 가령 ‘졸업장을 따는 데 목적이 있다’에서 ‘데’는 의존명사인가 어미인가.(의존명사라서 뗀다) ‘학부모의 고통이 큰데도’에서 ‘~ㄴ데’는 의존명사인가 어미인가.(어미라서 붙인단다) ‘하나로 굳어진 낱말을 붙인다’는 원칙도 정황을 잘 살펴야 한다. ‘잘되다’는 붙이지만 ‘잘 벌다’는 붙이지 않는다. 앞의 ‘잘되다’는 한 낱말이고 뒤의 ‘잘 벌다’는 부사와 동사의 결합이다. ‘독립된 낱말로 인정받는’ 기준도 모호하다. ‘사려깊다’, ‘굶어죽다’, ‘자리잡다’, ‘이름하여’, ‘쉼없이’, ‘속시원하다’는 한 낱말인가. 아니다. ‘사려 깊다’, ‘굶어 죽다’, ‘자리 잡다’, ‘이름 하여’, ‘쉼 없이’, ‘속 시원하다’로 떼야 한다.
우리 이산가족 상봉하면 안되나요?
띄어쓰기 규정을 읽다 보면 낱말끼리의 짝짓기 중매 본능을 강하게 느낀다. ‘전 세계’를 ‘전세계’로 쓰고 싶다. 단위를 나타내는 명사들도 본드를 발라 찰싹 붙이고 싶어 죽겠다. “한 개, 차 한 대, 금 서 돈, 소 한 마리.” “육 개월 이십 일 체류했다.” 짜증난다. 서로 부둥켜안고 “우리 사랑하면 안 되나요?”라고 울부짖을 것만 같은, 이산가족이 된 불쌍한 낱말들.
그 낱말들이 북한 체제를 동경할 지도 모르겠다. 북한은 남한보다 붙여 쓰는 경우를 훨씬 폭넓게 인정한다. ‘사회주의농촌건설속도’ ‘리순신훈장’처럼 명사들끼리 어울릴 때도 대개 붙여준다. ‘말할나위가 없다’‘회의중이었다’처럼 의존명사도 마찬가지다. 동사와 형용사도 붙는다. 관형사와 부사도 외롭지 않다. 북한이 옳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과도한 띄어쓰기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필요해 보인다.
***
“조사?어미?의존명사, 그게 뭐야?”
헛수고다.
위 글을 준석과 은서에게 읽게 했다. 그런 다음 두 남매에게 물었다. “무슨 뜻인 줄 알겠니?” “……….” “아빠가 쓴 글을 한마디로 줄이면 뭐야?” “띄어쓰기를 잘하자. 흐흐.”(은서) “뗄지 말지 고민된다. 헤~.”(준석)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거냐고.” “나 알아! 과도한 띄어쓰기에 대한 사회적 논쟁은 필요해 보인다는 거잖아.” 아빠 글의 마지막 문장을 그대로 읊은 은서의 머리에 알밤을 먹였다. 준석은 대놓고 이야기한다. “아빠, 솔직히 말해서 넘 어려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어.” 순간, 머리가 띵~.
독해가 안되는 글을 쓴 셈이다. 아이들은 접두사, 접미사, 조사, 어?가 정확히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한다. ‘의존명사’는 더더욱 생경하다. 여기에 체언이니, 용언이니 하는 말까지 붙이면 비명을 지를 듯하다.
그렇다고 국어문법 강의를 하랴. 내 몫이 아니다. 아이들의 띄어쓰기 이해도와 실력을 테스트해보기로 했다. 20가지 문제를 내주고 시험을 보게 했다. 독자 여러분도 자가진단 해보는 셈 치고 한 번 풀어보시라. 문제 나간다.
올지말지? 올지 말지? 올 지 말 지?
***
준석과 은서를 위한 띄어쓰기 시험문제지 ***
(다음 각 문항 중 띄어쓰기가 맞는 부분에 표시를 하시오)
1. 나는 글쓰기 홈스쿨을 1년간 했지만 아직도 글을 참
①못쓴다 ②못 쓴다.
2. 아빠는 오늘도 술을 마시고 새벽에
①오실 듯하다 ②오실듯 하다.
3. 아빠는 늦게 들어와서도 내가 글을 잘 썼는지 체크한다. 글이 엉터리면
①잡아먹을 듯이 ②잡아먹을듯이 화를 내신다.
4. 그러면 나는 열심히 글을
①쓰기는커녕 ②쓰기는 커녕 뭐가 문제냐며 신경질을 낸다.
5. 에이, 그래도 결국 더 생각해서 다시
①쓸 수 밖에 ② 쓸 수밖에 없다.
6.
①다시 한번 ②다시한번 ③다시 한 번 쓰면 글이 좋아지게 마련이다.
7. 오빠는
①나보다 ②나 보다 글을 잘 쓰는 것 같다.
8. 내가 오빠보다 글을
①못 쓸망정 ②못 쓸 망정, 공부는 더 잘한다고 생각한다.
9. 나는 공부를
①잘할 뿐만 ②잘할뿐만 아니라 춤도 잘 춘다.
10.
①나 뿐만 ②나뿐만 아니라 내 친구 영지도 공부와 춤에 만능이다.
11. 영지는 공부도 잘하고 춤을
①잘 출 뿐더러 ②잘 출뿐더러 그림도 잘 그린다.
12. 아이고, 이런 시험을 집에서 보는 것도
①얼마 만이냐 ②얼마만이냐.
13. 이제 얼마 있으면 초등학교
①오학년 ②오 학년이다.
14. 나도
①늙어간다 ②늙어 간다 ㅋㅋ.
15. 그건 그렇고, 올해 크리스마스엔 선물을
①열 개 이상 ②열개 이상 받으면 참 좋겠다.
16. 내가 받고 싶은 선물은 엠피3, 아이폰,
①아이패드 등이다. ②아이패드등이다.
17. 받고 싶은 선물을 못 받으면 나의 입은
①10센치가량 ②10센치 가량 나온다.
18. 크리스마스에 할머니를 만나면 좋을 텐데.
①만난지도 ②만난 지도 오래됐다.
19. 할머니는 크리스마스에
①올지말지 ②올지 말지 ③올 지 말 지 모르겠다고 하신다.
20. 띄어쓰기는 꽤 어렵다. 아빠는
①쓸 데 없는 ②쓸데 없는 ③쓸데없는 일을 다 하고 난리다.
| 채점이 된 자신의 띄어쓰기 시험지를 손에 들고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준석과 은서. ‘가’에 해당하는 낙제점수지만, 대견한 실력이라 격려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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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말하자면, 준석과 은서는 모두 낙제점수를 받았다. 100점 만점에 준석은 11개를 맞춰 55점, 은서는 9개를 맞춰 45점이다. 수도, 우도, 미도, 양도 아닌 ‘가’다. 이 점수가 지닌 의미를 좀 더 상대적으로 보기 위해 어느 40대 성인에게도 시험을 치르게 했다. 개인의 명예 보호를 위해 ‘가정주부 박 아무개씨’라고만 해두자. 그녀의 점수는 충격적이게도 네 개를 맞춘 20점이었다. 학교에서 국어 수업을 듣는 초딩과 중딩의 점수가 그나마 낫다고 보아야 할까. 정답은 다음과 같다.
1. ② 2. ① 3. 둘 다 맞음 4. ① 5. ② 6. ③ 7. ① 8. ① 9. ① 10. ②
11. ② 12. ① 13. ① 14. 둘 다 맞음 15. ① 16. ① 17. ① 18. ② 19. ② 20. ③
100% 습득 못해도 간이라도 봐두자
솔직히, 문제를 낸 나도 헷갈린다. 글쓰기홈스쿨을 하면서 이렇게 공부를 많이 하기는 처음이다. 신문사 교열부 선배들의 ‘특별지도’를 받으며 이 원고를 준비했을 정도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쩝쩝조어’(접두사, 접미사, 조사, 어미)와 하나의 낱말로 굳어진 것은 붙이되 ‘의존명사’는 뗀다는 게 대원칙이다. 여기서 포인트는 낱말의 소속을 정황에 따라 잘 살펴야 한다는 점이다. 가령 17번 문제 ‘가량’의 경우 명사일 때도 있고 접미사일 때도 있다. 여기서는 ‘정도’를 ?타내는 접미사라 붙였다. 19번 문제 ‘올지 말지’에서 ‘지’는 어미라서 붙지만, 18번 문제 ‘만난 지도’의 ‘지’는 기간을 나타내는 의존명사라서 뗀다. 1번 문제 ‘글을 못 쓴다’에서 ‘못’은 부사이므로 뒤의 ‘쓴다’와 떨어뜨린다. 한데 ‘그러면 못쓴다’라고 할 때는 ‘못쓴다’가 하나의 낱말이기 때문에 붙인다.
더 이상 구구절절한 정답 해설은 하지 않겠다. 띄어쓰기를 전문적으로 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은 표준국어대사전을 펴놓고 완전정복해보시라. ‘쩝쩝조어’의 적용 예를 깊이 파다 보면 이런 외마디 탄성을 지를지도 모르겠다. “쩝~.”
이 칼럼에서 띄어쓰기를 논하는 목적은 ‘계몽’이나 ‘학습’이 아니다. 먼저 ‘뗄지 말지’ 마음의 갈등을 일으키는 한글의 혼란상을 성토하고 싶었다. 얼마나 혼란스러우면 컴퓨터 한글프로그램의 맞춤법 표시도 틀리기 일쑤일까. 이 글 속에서도 ‘안되다’라고 ‘안’과 ‘되다’를 붙였더니 (띄어쓰기 오류라는 의미의) 빨간 줄이 그어진다. ‘안되다’는 한 낱말로 국어사전에 등록됐기에 붙여 써도 됨에도 한글프로그램은 헛다리를 짚는다. 컴퓨터도 두 손을 들고 만 띄어쓰기라니!
그러나 어쩌랴. 악법(!)도 지켜야 하는 것을. 악법을 고치려면 악법도 좀 공부해주는 센스가 필요하다. 100% 꼼꼼하게 습득은 못 하더라도 간은 봐두자. 위 시험문제에서 최소한 40점 이상 받을 수 있는 상식은 갖추자. 40점은 준석과 은서, 가정주부 박 아무개씨의 점수를 합쳐 평균을 낸 주관적인 수치다. 40점!!! 독자 여러분을 향한 기대치가 그 정도뿐이라니 슬프다. 흑흑.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