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가수’라는 타이틀이 더 익숙한 신승훈이 데뷔 20주년이 되었네요. 총 20곡이 수록된 이번 기념 앨범은 일본의 뉴에이지 피아니스트 ‘유키 구라모토’를 비롯해 슈프림팀, 알리, 클래지콰이 등의 후배가수들이 함께해 깊은 존경심을 표했습니다. 어떤 스타일로 재해석되었을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리고 ‘진짜 노래’를 들려줄 가요계의 ‘빅마마’, ‘비엠케이’의 신작, 21세기 힙합신이 낳은 거장 ‘카니예 웨스트’의 다섯 번째 앨범도 감상해보세요.
신승훈 <20th Anniversary : Best Collection & Tribute> (2010)
20년의 시간이 담겨 있는 앨범이다. 신승훈 본인에게 뿐만 아니라 노래를 들으며 동시대를 보낸 팬들의 시간과 기억이 두 장의 CD로 압축됐다. 강과 물이 두 차례 바뀌는 동안 외길을 걸으며 누군가에게 각인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모든 것이 급변하는 지금에는 그 정도가 이전보다 심화된 것도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신승훈’ 이 세 글자는 놀랍다. ‘발라드의 황태자’, ‘국민 가수’ 등의 호칭을 얻으며 지난 20년을 가수로써 우리 대중가요의 역사에 중요한 버팀목 역할을 해온 그가 자축과 헌정의 의미가 담긴 기념 앨범을 발표했다.
신승훈이 누군가. 자작곡인 「미소 속에 비친 그대」가 타이틀로 담긴 1집 <미소 속에 비친 그대>를 시작으로 가요 순위 프로그램에서 14주 연속 1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던 <보이지 않는 사랑>. <널 사랑 하니까> 등 내는 앨범마다 밀리언 셀러가 되는 기록을 가진 몇 안되는 가수다. 무엇보다도 직접 작사, 작곡을 하고 앨범의 전체 프로듀싱까지 영역을 넓힌 덕분에 그의 노래는 늘 감성이 풍부하다. 때문에 앨범마다 감정이 흘러 넘쳐 사람들의 가슴까지 모두 적셨다.
두 장의 CD에 스무 해를 기념하며 꼭 20 곡이 수록됐다. 첫 번째 CD는 신곡 「You are so beautiful」를 필두로 대중에게 사랑 받았던 곡들과 지난 앨범들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시 소개 하고 싶은 아쉬웠던 곡들 13개로 채워졌다. 원곡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려고 한 부분도 있지만 편곡과 후배 가수의 피처링으로 새로운 느낌의 노래를 접할 수 있다. 특히 피아노 연주로 앨범에 도움을 준 두 명의 뮤지션과 트랙이 눈에 띈다. 신곡 「You are so beautiful」에서는 이루마가 반주로 애써주었고, 「가잖아」는 일본과 국내에서 뉴 에이지 피아니스트로 유명한 유키 구라모토가 연주곡으로 재탄생 시켰다.
차례로 싱글 발표 되었던 후배들의 헌정은 두번째에 실렸다. 다비치가 부른 「두 번 헤어지는 일」과 슈프림팀에 의해 재해석 된 「로미오 & 줄리엣」은 인기 순위 10위 권내에 진입하며 원곡 못 지 않은 반응을 불러 일으켰다. 거대한 오케스트레이션으로 펼쳐진 스케일이 돋보였던 「전설속의 누군가처럼」을 R&B 풍으로 바꿔부른 나비, 알리, 탐탐의 노래는 앨범의 백미다. 이 외에도 클래지콰이와 정엽, 싸이와 아이돌 2AM까지 가세하며 선배를 향한 깊은 존경심과 오랜 시간 음악을 해온 경의를 표시했다. 그 만큼 ‘신승훈 표’라는 수식이 달렸던 곡들이 여러 장르와 느낌으로 옷으로 갈아입고 새로운 느낌을 뽐낸다.
댄스 가수들이 분위기를 탈바꿈할 때 주로 이용되는 소재로 쓰이고, 이제는 앨범 순위 전쟁에서도 쉽게 눈에 뛰지 않는 장르인 발라드가 담긴 앨범이다. 신승훈의 노래는 발라드의 특징 중 하나인 사랑의 애절함이 주요 가사 내용이며 멜로디 또한 서정성 충만하고 부드럽다. 신나지도 직설적인 언어로 나와 상대의 마음에 직격탄을 쏘지 않아 현재 젊은층에게는 크게 소구되지 않는 음악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음악은 오랜 시간 동안 사랑을 받아왔고 지금에도 새로운 팬들의 오감을 자극한다. 잘 쓰여진 곡이기 때문이다.
앨범의 가치는 바로 이러한 보편타당한 감수성의 지속에 놓여 있다. 한국의 조용필, 서구의 비틀즈의 음악도 그렇지 않은가. 같은 시간과 공간을 나누고 있는 사람들의 보통 생각과 일상을 음악의 언어로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어주는가. 그렇다고 현재 가요계를 장악하고 있는 가수들에게 질타를 가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 나름의 매력적 요소는 분명 존재하지만 긴 시간을 두고도 많은 이들의 마음에 남을 노래가 될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신승훈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도 동시에 여러 사람의 마음을 보듬는다.
20년 동안 13장의 앨범을 발표했다. 소가 한 걸음 걸음을 걷는 꾸준히 이어진 행보다. 늘 오르막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큰 슬럼프는 없었지만 앨범의 색채가 바뀔 때마다 등 돌린 팬들도 적지 않다. 반대로 그는 인기와 세를 얻었다고 해서 정지한 상태로 머무르지 않았다. 항상 고민하고 시도를 지속해왔다. 음악계의 큰 선배로 물리적, 시간적 모든 환경이 변해하고 있지만 그의 궤적은 늘 신세계를 향해 움직이고 있다. 이 번 앨범도 마찬가지다. 한 곡마다 손질해가고 전혀 새로운 편곡을 통해 스스로에게 후배들에게 팬들에게 고여 있지 않고 활동하는 미친 존재감을 나타낸다.
글 / 옥은실(lameta@gmail.com)
비엠케이(BMK) <사랑은 이별보다 빨라서> (2010)
텔레비전에서 ‘가수’를 보기 어려운 시대다. 이상하지 않은가, 가수란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노래 부르는 것이 직업인 사람’으로 정의됐음에도 가요 프로그램에 볼 수 없으니 말이다. 대신 그 자리는 이제 춤 동작에 더 치중하고 있는 이들이 메우고 있다. 나아가 예능 프로까지 접수하고 있으니, 가수가 실종됐으리라 오해할 수 있는 건 어색한 게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노래꾼들은 살아 있다. 다만 티비에서 보기 어려울 뿐. 가창력만큼은 의심에 여지없이 인정받는 비엠케이(BMK)도 미니 앨범을 내면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재즈와 소울의 감정이 버무려진 그의 창법은 여전히 ‘이상무’다. 확실히 음성 그 자체만으로도 진가를 발휘하기에 「사랑은 이별보다 빨라서」, 「보물찾기」, 「그대가 있어」 등 이번 음반의 전 곡이 발라드에 맞춰지며 뚜렷한 초점화를 이루어냈다.
이쯤에서 또 의문이 발생한다. 적어도 음악에 관심 있는 이라면 비엠케이의 실력은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대표곡을 뽑으라면 어떤 곡이 먼저 나올까. 「아직 못다한 이야기」? 「인생은 아름다워」? 아쉽게도 이건 그가 데뷔 전 피처링 해준 곡들이다. 조금만 더 고민하면 「꽃피는 봄이 오면」(2005), 「하루살이」(2007)가 나올 수 있다. 그 해의 판매나 수상 부분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기진 못했지만, 그 시기에 익숙히 접한 노래인 건 사실이다.
싱어로서 기본기와 인상 깊은 곡을 갖췄음에도, 대표곡을 쉽게 떠오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서 발견된다. 앞서 말했듯 도와준 곡들이 먼저 더 알려졌으며, 이후 본인의 이름으로 시장성 높은 곡을 갖게 됐지만, 곡을 알릴 만큼의 충분한 홍보가 뒤받치지 못했다.
<사랑은 이별보다 빨라서>의 등장은 그래서 시기상 가능성이 있어보였다. 정확히 말하면, 아이돌 천지가 되어버린 가요계에서 노래쟁이에 목마른 대중의 욕구를 채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타이틀곡만 제대로 무장됐다면 음원 순위에서 선전을 기대하는 건 무리가 아니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 바람은 충족되지 못했다. 조성모의 「행복했었다」를 작곡한 하정호가 쓴 「사랑은 이별보다 빨라서」는 그의 역대 앨범 타이틀 곡 중 가장 조용한 선율을 갖췄다. 흥행 경쟁에서 쉽게 승리를 낙관할 수 없는 곡이다.
이미 디지털싱글로 공개한 ‘일어나’의 경우도 마찬가지. 파워풀한 음색을 위해 손질한 편곡이 ‘합당한 계획’이라는 느낌은 드나, 보컬 톤과 매치했을 때 어울림은 일어나지 않는다. 중저음이 기반컀 그보단 고음을 잘 쓰는 여성 가수에게 더 자연스러울법한 곡이다.
외모가 우선순위로 대접받는 시대에서 가수가 살아남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대중의 귀를 훔칠만한 멜로디를 적어도 한 개 이상은 갖춰놔야 차트에서 1일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시대가 이소라의 「난 행복해」처럼 라디오와 입소문만으로 정상을 차지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지 않은가. 곡과 홍보 방법에서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글 / 이종민(1stplanet@gmail.com)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2010)
카니예 웨스트(Kanye West)는 다섯 번째 앨범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로 또 한 번 비범한 재능을 뽐낸다. 전작들과는 또 다른 스타일로 신선함을 제공하며 주춤함이라고는 전혀 모르는 것 같은 튼튼한 구성으로 그에 대한 신뢰를 지속하게 한다. 어째서 그가 21세기 힙합 신이 낳은 거장인지, 새 앨범을 출시한다고 밝혔을 때 매체들은 왜 하나같이 그의 신보를 2010년 최고의 기대작으로 꼽았는지는 이번 앨범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을 듯하다.
앨범을 관통하는 특징, 이전 작품들과의 가장 두드러지는 차이점은 웅장함이다. 겹겹으로 층을 낸 코러스와 스트링, 관악기를 공격적으로 편성해 악곡의 부피를 늘리고 있다. 「Dark fantasy」는 은은하면서도 넓게 퍼지는 느낌을 주는 하모니가 곡에 입체감을 부여하며 「Power」는 토속적인 느낌이 나는 스캣을 삽입해 역동성을 살린다. 격렬하게 뛰는 드럼 프로그래밍과 브라스 연주가 소리의 체구를 확대하는 「All of the lights」, 롤랜드의 앙상블 키보드를 이용해 노래를 부르는 듯한 「Lost in the world」 등도 우람한 풍모를 대표한다. 근래 메인스트림 힙합에서는 접할 수 없는 거대한 스케일이 압도적으로 다가선다.
수록곡들의 비교적 긴 러닝타임도 장대함을 지지한다. 5분이 넘는 곡이 셋, 6분이 넘는 곡이 둘, 「Blame game」은 7분이 넘고, 「Runaway」는 무려 9분이 넘는다. 재생 시간이 짧은 노래를 많이 선호하는 지금 같은 때에 쉽사리 이해되지 않는 구성이다. 짧은 시간 안에 최대한 간결한 반주와 분명한 임팩트를 나타내는 것을 우선으로 여기는 요즘 음악계에서는 환영받지 못할 구조다. 여기에서도 자기만의 표현을 중시하는 예술가의 고집이 느껴진다.
그럼에도 지루함이라고는 없다. 단편영화를 방불케 하는 영사 시간의 뮤직비디오로 제작돼 화제를 모은 「Runaway」는 래핑과 싱잉을 거듭하는 보컬, 인위적으로 노이즈를 섞은 기계음의 읊조림, 후반부에 다다라 완전히 음조를 바꾼 첼로 연주를 절묘하게 배치해 처음부터 끝까지 단단한 흐름을 내보인다. 「Monster」와 「So appalled」는 다수 래퍼의 참여로 인해 더욱 알차게 들리며 「Blame game」은 마지막 부분을 랩이 아니라 말을 하는 것 같은 형식으로 처리함으로써 평범한 진행에서 탈피한다. 보통 힙합곡들보다 길지만 처지는 감이 안 드는 이유가 이러한 장치들을 설치한 덕분이다.
카니예 웨스트를 거론할 때 샘플을 멋스럽게 구사하는 능력을 빼놓을 수 없다. 「Devil in a new dress」는 스모키 로빈슨(Smokey Robinson)의 노래를 수정해 감성적인 분위기를 발산하고 「Lost in the world」는 마누 디방고(Manu Dibango)의 「Soul makossa」를 이용해 원초적인 기운을 드러내며 「Hell of a life」는 컨트리, 록 싱어송라이터 토니 조 화이트(Tony Joe White)의 「Stud-spider」를 빌려 와 질척한 느낌을 늘린다. 가공한 원본을 알맞은 곳에 투입해 노래의 풍미를 더하는 감각은 여기에서도 그대로다.
프로그레시브, 아트 록을 힙합으로 환산한 것 같은 앨범이다. 힙합이 시장과 타협하고 무도회장과 끈끈한 동맹을 맺으며 스스로를 한없이 단순화, 경량화하는 시기에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는 무게와 복잡성을 갖추어 경향에 반대표를 던진다. 거기에 출중한 프로듀싱 능력으로 고귀한 웅장미까지 이뤄 냈다. 줏대 있는 작가적 자세, 음악을 진지하게 대하는 정성, 뛰어난 재능으로 달성한 쾌거다. 카니예 웨스트를 21세기가 배출한 최고의 힙합 아티스트라 송찬하는 이유를 본 작품이 똑똑히 나타내고 있다.
글 / 한동윤(bionicsoul@naver.com)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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