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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고통 걷어차기 한네스 슈타인 저/김태한 역 | 황소자리 |
이 책에서 그가 겨누는 풍자와 조롱의 대상은 ‘우리 삶을 피로하게 하는 일상 속의 크고 작은 고통들’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일에서부터 늦은 밤 잠드는 순간까지, 댄 브라운에서 미셸 푸코, 컴퓨터에서 콘돔, 노화에서 노동에 이르기까지……. 한네스 슈타인은 우리 삶을 구성하는 90여 개의 사물과 개념, 인물과 현상들을 글감으로 끌어들여 그 속에 포진한 무자비한 폭력, 문명의 야만성, 사이비 지성의 폐해를 통렬한 위트와 아이러니로 거침없이 이야기한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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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본 드라마에서 여주인공이 이런 대사를 뱉었다.
“내가 삼재라서 참는다.”삼재(三災)는 9년을 주기로 찾아온다는 3년 동안의 세 가지 재난으로 2010년은 나도 삼재에 들어가는 해다. 몰랐다면 모른 상태로 지나갔겠지만, 삼재라니. 되돌아본 2010년은 다른 어떤 해보다 변화와 사건들이 많았던 것 같고, 그만큼 투덜거릴 수밖에 없었던 일이 꽤나 됐었다고, 생각은 습관처럼 꼬리의 꼬리를 물고 이유를 찾는다. 고작 삼재라는 소리에 이렇게 결론지어버리다니, 어쩔 수 없이 나약한 인간이라서 쓴 웃음이 나온다. 그래도 이 책이 힘없이 내려앉은 어깨를 토닥인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위로는 우리가 불평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게 아니라면, 이보다 더 나은 방법을 아는 사람이 있는가?’라고.
그리고 서문에서 한 문장을 읽은 후부터 본격적인 스위치가 걸렸다.
인간의 운명이 행복이 아니라는 생각에 익숙해진 이후에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 삶에 주어지는 1,001개의 고통들에 대해 제왕처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어느 현명한 친구는 ‘네게 나쁜 일이 생긴다면, 나중에 거기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얼마나 즐거울지 생각해봐.’라고 내게 말했다.작가는 나를 향해 말한다. 불평이 있다면 토해내라고. 대신 무자비하고 교묘하게, 가차 없고 통쾌하게 할 것을 주문한다. 이 정도의 노력으로 일상의 고통을 걷어찰 수 있다면 못할 것도 없지. 하지만 곧 알게 된다. 불평과 불만만을 늘어놓는 자신은 정화되기 전의 오물에 지나지 않다는 것을. 역시 세상에 쉬운 일은 없고, 이렇게 책을 향해 불평은 시작되었다.
여자, 남자, 컴퓨터, 축구, 히틀러, 포르노, 통밀빵, 댄 브라운……. 공통점이 전혀 없는 세상의 광범위한 사물과 인물 그리고 주제에 대해서 작가는 분석이라고 불러줘야 할 것 같은 불평을 늘어놓고, 목차를 통해 본 광범위한 꼭지만큼이나 다양한 감흥을 준다. 위트라고 하기엔 좀 더 강렬하고, 칼날 같은 분석이라고 하기에는 약간 무디다. 간단하고 쉽게 말하자면 풍자? 아무래도 쓴웃음을 날리게 하지만 속은 시원하게 해주니까. 어쨌든 통쾌하고, 시원하고, 무엇보다 소리 내며 웃을 만큼 재미있다는 점이다. 읽는 내내 내 어깨는 참을 수 없는 웃음으로 계속 들썩였으니까.
사실 어떤 작가가 체 게바라는 재무장관으로서 쿠바 경제를 구제불능에 이를 만큼 망가뜨리고, 귄터 그라스가 히틀러 유겐트 세대에 속하는 도덕적 파탄자라고 감히 이야기할 수 있을까. 물론 독일 작가라는 범위가 주는 이질감은 있지만, 사람 사는 곳은 어디나 똑같다는 세상 이치를 따라 본문의 대부분을 동조할 수밖에 없다.
책을 다 읽어냈을 무렵에는 '복수에 대한 습작' 편을 통해 일종의 정화 작업인 '글쓰기'라는 방법을 접수했다. 마침 일기장을 다시 펼치기 시작했고, 역시나 한 5년 뒤에 읽으면 콧방귀가 나올 일상의 고통과 불만들을 쏟아내고 있었으니까.
유감스럽게도 일상에서 복수의 욕구는 억눌러지지 않는다. 기껏해야 승화될 뿐이다. 다른 응집 상태로 전이되는 것, 다시 말해 높은 심리적 에너지를 활용해 고귀해지는 것이다. 그리고 과거의 굴욕과 악행에 대한 복수의 가장 승화된 형식 중 하나는 글쓰기이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하다. (p.128)매일의 욕지기나는 상황과 충분히 자주 직면했을 독자들에게 한네스 슈타인은 그 원인을 명쾌하게 파헤쳐 보여주는 한편 효과 좋은 냉소와 욕설로 응수하기 때문이다. 덤으로 덜떨어진 지성, 매너리즘에 포획당한 판단력, 얼치기 문화권력자들의 뒤통수를 겨냥하는 해박한 논리 속에서 '내 안의' 한계와 위선까지 성찰할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 편집자의 말이 이 책을 정확하게 짚어냈다. 고백하면 난 세상을 향해 삐딱했고 책을 통해 많은 공감을 던지며 스스로를 정화하기 시작했으니까. 그리고 그 삐딱한 각도가 벌써 한 1도 정도는 수평을 향해 돌아왔다고 생각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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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네스 슈타인 1965년 독일 뮌헨 출생으로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성장하고 공부했다. 대학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전공했으며 졸업 후에는 언론계에서 활동했다. 처음에는 일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 그 후에는 시사주간지 〈슈피겔〉과 일간지 〈베를리너 차이퉁〉에서 일했다. 잠시 스코틀랜드에서 그리고 오랫동안 이스라엘에서 살았다. 2001년부터는 베를린의 〈벨트〉에서 문학 별지(‘문학 세계’) 편집자로 일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하나도 모르면서 지나치게 똑똑하신 이른바 사상가 분들’을 많이 보아오고 있다. 저서로는 『모세와 민주주의의 계시』(1998년), 『말세의 예언자들, 혹은 반서방주의자들의 공세』(1995년, 공저)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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