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코, 펑키(funky)를 자기만의 그루브로 맘껏 즐기던 자미로 콰이가 돌아왔습니다. 5년만의 신보인데요, 여전히 멋진 디스코 사운드의 첫 싱글 「White knuckle ride」가 매력적이네요. 2006년 날스 바클리(Gnarls Barkley)의 「Crazy」목소리로 인상적인 목소리를 들려준 ‘씨 로 그린’이 새 앨범을 발표했습니다. 마지막으로 1990년대의 싱어 송 라이터 뮤지션들의 계보를 잇는 그룹, ‘페일 그레이’의 신작입니다.
자미로콰이(Jamiroquai) <Rock Dust Light Star> (2010)
가수에게 있어 소속사와의 분쟁은 치명적이다. 홍보 혹은 음악에 대한 지나친 간섭으로 야기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아티스트에게 큰 상처로 남는다. 잘 마무리되어도 전과 같은 지원을 받을 리 만무하고, 적(籍)을 옮긴다 하면 이미 한 물간 가수로 인식되기 쉬운 것이 현실. 분쟁으로 인한 창작욕 감퇴와 노래를 업으로 삼은 것에 대한 회한이 밀려와 끝 모를 구렁텅이에 빠지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자미로콰이의 프론트맨 제이 케이도 이런 이중고에 시달렸다. 지원이 섭섭한 에픽 레코드를 떠나 의욕적으로 자신의 레이블(Jamiroquai Limited)을 세웠지만, 원인 모를 창작에 대한 무기력증은 그를 5년간이나 음악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들었다.
<Rock Dust Light Star>는 무수한 음악적 고민 끝에 내놓은 신작임과 동시에 다행히 그의 감각이 적어도 예전 수준으로 복귀했음을 증명한다.
어깨를 자동 들썩 모드로 인도하는 구성진 그루브가 여전하다. 활기찬 브라스와 펑키(Funky), 소울 사운드, 멜로디를 황금비율로 섞어 내놓은 신작은 한동안 그들을 잊고 지냈던 이들에게 자미로콰이의 건재함을 알린다. 탄력적인 베이스라인과 현대적인 팝 센스에 더해진 제이케이의 스모키한 소울 보이스도 변함없다.
몽환적 기타가 전면에 등장한 타이틀 트랙과 「Canned heat」를 연상시키는 디스코 펑크 풍의 첫 싱글 「White knuckle ride」, 낮고 묵직한 베이스 라인이 분위기를 이끄는 「All good in the hood」까지 뛰어난 업 템포 트랙들로 앨범의 전반부를 채웠다. 전형적인 그들만의 작법이다. 전체적으로 70년대 디스코 펑크 사운드와 혼 섹션의 조화가 두드러진 가운데 중반부에 수록된 「Blue skies」는 확실한 휴식을 제공한다. 쉼 없이 달려온 전반부의 흥분을 잠시 가라앉히는 역할을 맡은 곡은 스트링과 풍성한 코러스가 더해져 흐름이 매끄럽다.
혼 사운드와 스트링의 매혹적 결합이 인상적인 「Lifeline」과 「Two completely different things」도 인상적인 트랙. 모든 템포를 아우르는 앨범 수록곡들은 「Hey floyd」로 끝을 맺기 전까지 유연한 완급조절을 선보이며 듣는 맛을 최고조로 끌어올렸다. 오랜 경험과 애시드 재즈의 장점을 최대한 이용한 재치가 엿보인다.
5년간의 기다림에 비해 신선한 스타일을 감지할 수 없는 점이나 전과 다를 것 없는 작법에 약간 김이 새는 것도 사실이다. 오랜 슬럼프를 극복하고 발표한 작품이기에 의미가 있지만 너무 틀 안에 안주했다고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할 수 있는 것을 다 했다고 마냥 칭찬만 할 수는 없다. 그들에겐 애시드 재즈/팝계의 최강자로서 장르를 더 깊이 탐구하고 발전시킬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글 / 성원호 (dereksungh@gmail.com)
씨 로 그린(Cee Lo Green) <The Lady Killer> (2010)
2006년 빈티지 소울 팬들을 경악시켰던 날스 바클리(Gnarls Barkley)의 「Crazy」를 기억하는가. 둔탁한 드럼 비트와 베이스 라인도 귀를 끌게 한 매력이었지만, 이 곡의 정수는 씨 로 그린(Cee Lo Green)의 싸이키델릭한 괴성의 울림이었다. 사실 ?소리에 한 번 놀라고, 그의 몽타주에 두 번 놀랐다. 1m 70cm가 안 되는 땅딸막한 키에 소울의 풍성함을 온몸으로 집약한 넉넉한 체구는 단연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더군다나 팀의 반쪽인 데인저 마우스(Danger Mouse)의 날씬한 체형과 대비되다보니 ‘뚱뚱이와 홀쭉이’ 이미지가 강렬했음은 두말할 것도 없다.
외모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루저 중의 루저다 보니, 가수보다는 코미디언의 길이 더욱 현실성 있어 보일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앨범은 틀에 박힌 선입견에 시원한 카운터펀치를 작렬한다. 통쾌함과 유쾌함이 이번 앨범을 즐기지 않고는 못 배기도록 만드는 유인책임을 인지해야 한다.
첫 싱글부터 단순명료하면서 통쾌하게 「Fuck you」를 날린다. 남부 힙합 팀 구디 몹(Goodie Mob)에 속해 있었던 전력을 떠올리며 하드코어 스타일을 예측했다면 헛다리를 짚은 셈이 된다. 애인과의 이별에 분노하며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면서도 그 원인을 자신의 무능 탓으로 돌리며 자책하는 귀여운 찌질남을 그 말고 누구에게 대입할 수 있겠는가. 남자라면 누구나 절감하는 이야기에다, 쾌활한 피아노 라인이 더해져 흥겨움까지 주니 올해 발표된 싱글 중에서 단연 수작으로 뽑을 만하다.
유쾌함은 사운드가 지원해 준 결과다. 앨범 전체적으로 명랑한 브라스 음색이 환한 조명을 비춘다. 서두부터 우렁찬 팡파르와 활기찬 여성 백 코러스가 속도감을 유지하는 「Satisfied」가 대표적인 사례다. 「Cry baby」나 「It's OK」 등 즐겁거나 슬프거나, 웃음을 머금은 긍정적인 따스함이 느껴지는 이유는 브라스 특유의 유쾌함을 적극 활용했기 때문이다.
시도 자체에 의의를 가지는데 그치지 않고 완성도를 획득한 트랙들도 눈에 띤다. 전형적인 007 테마를 재현한 「Love gun」이나, 제목답게 모타운 사운드를 모셔온 「Old fashioned」 등의 탁월한 사례들은 영리한 프로듀서들과 모든 스타일을 오류 없이 호환 가능한 씨 로 그린의 보컬적 역량이 합작하여 시너지 효과를 일으켰기에 가능했다. 컨트리 성향의 밴드 오브 호시즈(Band Of Horses)가 오리지널 연주자인 「No one's gonna love you」도 원곡의 고요함에 강렬한 보컬이 덧입혀져 존재감을 한층 더 상승시켰다.
나보다 못났기 때문에 그를 좋아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음반뿐만 아니라 라이브 무대 영상을 보더라도 그의 얼굴에는 항상 미소가 가득하다. 불리한 비주얼적인 요소를 차치하고 오직 음악으로써 긍정의 힘을 전도하는 능력에 존경을 마지않는다.
글 / 홍혁의 (hyukeui1@nate.com)
페일 그레이(Pale Gray) <우리의 지금은> (2010)
음악에서 정의하는 다양성이 오직 장르에만 대입되는 건 아니다. 전문가가 세워놓은, 넥타이처럼 조여진 규칙에 도입되는 표현법들 역시 매번 고민해야 할 요소다. 기존의 문법에서 청정해역 같은 아이디어가 필요한 것이다.
산업 구조에 길든 프로들보다, 머릿속에 별도의 울타리가 처지지 않은 아마추어에게서 이런 신선함은 더 자주 발견된다. 서른이 넘어서도 작곡 공부를 하던 두 명의 남자가 온라인에서 마음 맞아 결성한 페일 그레이(Pale Grey)도 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이번 앨범은 개인적인 사정으로 강정훈 혼자 작업하게 됐지만, 완성도는 더 높아졌다. 흔히 아마추어의 음악이라면 그저 아마추어리즘에서 끝날 수 있겠지만, 아마와 프로의 경계선을 모호하게 할 만큼의 멜로디도 갖춰 놨다.
음악의 영향은 전적으로 1990년대 FM 라디오를 주름잡았던 뮤지션들에게서 받았다. 이 분야에선 이미 노 리플라이(No Reply), 에피톤 프로젝트(Epitone Project)가 홍대 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덜 익은 소리가 두 팀과는 또 다른 부분이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윤상의 건반 코드 워크와 매우 흡사한 「돌아오는 길」은 윤상 워너비의 재해석이다. 후반에 접어들며 가파르게 달리는 음표가 극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그의 지금은」은 과거의 발라드 향수를 끄집어내는 곡. 규칙성 있게 연결되는 선율과 편곡이 정통적인 방향을 따른다. 그럼에도 산뜻하게 들리는 건 작업 환경에 따른 악기의 쓰임이다. 빈약한 조건에서 절정을 그리기 위해 도입한 드럼과 기타의 움직임이 생기 있다. 근래에 접할 수 있는 세련됨은 없지만, 이런 결합들이 과거의 향수를 더 불러일으킨다.
작곡가 팀답게 보컬은 철저히 외주다. 여기서 아쉬움이 가득하다. 김태헌, 이인호 같은 남성 가수들은 본인들의 역할을 완벽히 소화하며 곡의 맛을 살렸지만, 그에 반해 여성 가수들은 매우 실망스럽다. 특히 피경진의 능력은 많이 부족하다. 「무너지다」에선 후렴 음역대가 제대로 구분되지도 않으며, 「그녀의 지금은」에서의 창법은 김태헌과 비교될 정도로 상당히 건조하다. 제 몫을 해낸 건 「기억 한 조각」뿐일 정도. 「돌아오는 길」에서 고음을 말끔하게 처리 못 한 박미란 등 여자 보컬 선정은 미스 캐스팅이다.
음반에서 시도하는 것들이 참신하다고 말할 순 없다. 전체적으로 완벽을 위해 다듬어가지는 과정에서 나왔단 느낌이 더 든다. 그럼에도 다르게 들리는 건 그 손질 단계에서 등장했기 때문일 거다. FM계 추종자들 모두가 빈틈없는 가공의 생김새를 갖추지 않았나.
프로의 정의를 단적으로 내린다면, 기술을 생업으로 이어나가는 사람일 것이다. 페일 그레이가 이 점에서 자격은 갖추고 있진 않지만, 매서운 가락과 기본기가 결코 부족한 수준은 아니다. 완성을 위해 노력했던 습작이 어느새 특색으로 자리 잡았다.
글 / 이종민(1stplanet@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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