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월요일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한 가지 밖에 없다’고 말했다. 월요병을 견디게 할 만큼 드라마가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사람들은 드라마에 웃고 드라마에 운다. 타이틀이 뜨고 주제가가 흘러나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시선고정 모드에 돌입한다. 아직 화면에 등장하지도 않은 주인공의 눈빛이, 가슴을 파고들던 대사가 떠오른다. 드라마는 사람을 움직이게 만든다. 부지런한 이는 출연 배우의 홈페이지를 들락날락하거나 주인공이 잠시 들렀던 카페를 검색하거나 그 혹은 그녀의 손에 들린 가방이 얼마쯤 되는지 찾아보겠지만 보편적으로 가장 먼저 하게 되는 것은 OST를 다운받아 MP3플레이어에 넣는 일이다. 드라마 시청률은 OST 다운로드 순위만 봐도 파악이 될 정도다. 드라마와 생과 사를 함께 해온 주제곡. 지금까지 어떤 노래들이 사랑받아 왔을까.
「질투」 - 유승범 (<질투> 1992년)
최진실, 최수종 주연의 청춘 드라마로 대박을 터뜨렸다. ‘트렌디 드라마’의 초석으로 꼽히는 작품. 남녀주인공을 둘러싼 사건이 벌어지는 장면, 한 회의 끝을 넌지시 알리는 장면에 주제가를 삽입해 OST 활용 공식을 만들어냈다. 드라마와 같은 제목으로 곡명을 붙이는 것도 홍보를 위해 즐겨 쓰던 방법이었다. 무명가수 유승범이라는 무리수를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드라마의 파워를 업어 주제곡의 인기는 높아져만 갔다. 드라마 OST도 순위 프로그램(가요 Top 10)에서 1위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첫 번째 사례. 1위곡으로 씩씩한 행진을 이어가던 즈음 표절시비가 붙어 멜로디를 변경해 재녹음하는 해프닝이 벌어졌지만 당시 표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부족했던 탓에 재빨리 가려졌다.
조아름(curtzzo@naver.com)
「기도」 - 정일영 (<가을동화> 2000년)
한류열풍의 주역으로 꼽히는 드라마. (이 작품을 맡았던 윤석호 감독은 <가을동화>를 시작으로 <겨울연가> <여름향기> <봄의 왈츠>에 이르는 계절 시리즈를 발표해 사랑받았다) 출생의 비밀, 불치병과 죽음이라는 진부한 소재로 채워졌지만 송승헌, 송혜교, 원빈이라는 신인 연기자들로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 송승헌과 송혜교의 단독 씬과 두 사람이 만났을 때 흐르던 발라드 「기도」는 비극적인 결말에 힘입어 크게 사랑받았다. 정일영의 맑고 가느다란 목소리가 가녀린 여주인공 은서의 심정을 대변하는 듯 흘러 많은 사람들을 울게 했다는 후문도. 앞선 여러 드라마와 마찬가지로 정일영이라는 가수를 주목받게 만들었지만 드라마 효과가 끝난 뒤로 다시 시들해지고 말았다.
조아름(curtzzo@naver.com)
「인연」 - 이승철 (<불새> 2004년)
OST의 황제로 불리는 이승철의 드라마 읽기 출발점. 2000년 개봉된 영화 <비천무>의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말리꽃」 이후 잠잠했던 그가 오랜만에 대중적 관심을 이끌어낸 곡이다. 시간 속에 엇갈린 남녀의 슬픈 사랑이라는 줄거리를 듣고 자청해서 주제가를 불렀다고 한다. ‘눈을 떠 바라보아요 / 그댄 정말 가셨나요 / 단 한번 보내준 / 그대 눈빛은 날 사랑했나요’ 애절한 노랫말은 이승철의 완벽한 감정이입으로 빛난다. 이듬해 세상을 떠난 배우 故이은주를 향한 송가로 들려 슬픔이 배가되기는 하지만.
조아름(curtzzo@naver.com)
「눈의 꽃」 - 박효신 (<미안하다 사랑한다> 2004년)
일본의 유명가수 나카시마 미카의 곡을 리메이크 했다. 여자가수의 곡을 남자가수가, 그것도 낮고 짙은 허스키 보이즈의 알앤비 가수가 이렇게 잘 소화해 내리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드라마의 인기는 ‘미사 폐인’이라는 신드롬을 양산해 냈고 사람들은 앞 다투어 휴대전화 벨소리와 홈페이지 배경음악을 「눈의 꽃」으로 변경했다. 그 후 몇 년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도 사시사철 울려 퍼지며 박효신의 새로운 대표곡으로 자리 잡게 된다. 간혹 듣다 지친 사람들이 원곡으로 관심을 돌리게 되어 나카시마 미카의 팬이 되고 말았다는 재미있는 사례도 속출되고 있는 노래.
조아름(curtzzo@naver.com)
「가슴아파도」 - 플라이 투 더 스카이 (<패션 70s> 2005년)드라마는 끝나도 노래는 남는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의 「가슴 아파도」는 드라마 <패션 70s>과 더불어 사랑받았지만 드라마에 관한 한 점의 정보 없이 이 곡을 접한 이도 많다. 곡 자체가 지닌 완성도와 깊이가 드라마라는 도구 없이도 충분히 발휘되었기 때문. 두 멤버가 주고받으며 부르는 버전, 환희의 솔로 버전 모두 히트했다. 플라이 투 더 스카이가 고수해온 R&B 스타일의 발라드라 첫 OST 참여임에도 이질감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던 트랙.
조아름(curtzzo@naver.com)
「타타타」 - 김국환 (<사랑이 뭐길래> 1991년)
김수현 각본의 주말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에서 김혜자의 애창곡으로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무명이었던 김국환은 단번에 스타가 되었다. ‘네가 나를 모르는데 / 난들 너를 알겠느냐 / … / 알몸으로 태어나서 / 옷 한 벌은 건졌잖소’ 공수래공수거 메시지가 담긴 시와도 같은 가사는 가부장적인 가족과 보수적인 남편에 억눌려 사는 여인 김혜자의 한숨을 타고 흘러나왔고 전 국민적 공감을 불러 일으켰다.
조아름(curtzzo@naver.com)
「립스틱 짙게 바르고」 - 임주리 (<엄마의 바다> 1993년)
남편과 아이들 밖에 모르던 부잣집 마나님이 졸지에 몰락한 집안의 가장이 된다. 나약하지만 가족을 위해 세상에 맞서 싸우며 넓고 단단해지는 어머니 역할을 맡은 김혜자는 극중에서 또다시 노래를 부른다. 여성이 겪는 사랑의 아픔을 ‘립스틱’에 착안해 표현한 가사는 주부들에게 특히 인기를 끌었다. 덕분에 발표 6년 만에 빛을 보게 되었고 미국에서 지내던 임주리는 다시 무대에 올랐다.
조아름(curtzzo@naver.com)
「혼자만의 사랑」 - 김태영 (<종합병원> 1994년)
메디컬 드라마의 효시가 된 작품 <종합병원>. 이재룡, 전광렬, 신은경, 홍리나를 앞세운 화려한 캐스팅, 개성만점 감초 캐릭터, 현장감 넘치는 대본은 빈틈없이 맞아떨어졌다. 스토리는 매회 일분일초를 다투며 긴박감이 넘치지만 주제곡은 정반대다. 굵고 차분한 목소리, 느리게 감정을 고조시삳는 「혼자만의 사랑」은 흰 가운에 감춰진 의사들의 눈물을 대신한다. 오페라 각색자 겸 소설가인 한경혜씨가 펑크 난 작품을 대신 받아 40분 만에 작사한 걸로도 알려져 있다.
조아름(curtzzo@naver.com)
「비창」 - 이상우 (<결혼> 1993년)
사실 드라마의 내용은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워낙 오래전 드라마기도 하고 결혼이라는 복잡미묘한 주제를 이해 하기는 나이도 참 어렸다. 주인공마저 가물가물한데 이상하게도 비통에 젖은 「비창」의 멜로디는 선명하게 남아있다. 제목이 바이올린에 그대로 스며들어 애끓는 듯한 선율 속에 이상우의 목소리가 끊어질 듯 위태롭게 이어진다. 17년이 지났는데도 세련됨과 아름다움을 잃지 않았다. 이상우 하면 「그녀를 만나는 곳 100M 」만 떠올리기 쉬운데 「바람에 옷깃이 날리듯」 「이젠」 「나만의 그대」같은 발라드를 잘 부르는 가수기도 했다. 「비창」은 드라마 뿐 아니라 발라드 가수로서 이상우에 대한 재발견이기도 하다. 김반야(10ban@hanmail.net)
「보고싶다」 - 김범수 (<천국의 계단> 2002년)
2002년 12월에 나왔지만, 이목은 1년 후 <천국의 계단>(2003)의 테마송으로 삽입되면서 받게 되었다. 송주(권상우)가 정서(최지우)를 그리워할 때마다 깔린 음악은 김범수의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죽을 만큼 보고 싶다”를 외치며 그 애틋함을 절정으로 치닫게 해주었다. 동시에 얼굴 없는 가수를 보고 싶었던 대중의 궁금증이 풀리기도 한 곡이다.
이종민(1stplanet@gmail.com)
「사랑인가요」 - 하울 (With J.ae) (<궁> 2006년)<궁>(2006)은 주지훈, 윤은혜, 김정훈 같은 새내기 연기자들을 알리기도 했지만, 하울(HowL)이라는 갓 데뷔한 신인을 소개해주는데도 큰 역할을 했다. 제이(J.ae)와 입을 맞춘 노래는 대한민국이 입헌군주제라는 독특한 상상과 젊은 배우들의 풋풋함을 세련된 팝으로 해석하며 아름다운 화합을 펼쳐냈다.
이종민(1stplanet@gmail.com)
「하나의 사랑」 - 박상민 (<사랑> 1999년)
<사랑>(1999)은 출연자 장동건, 김미숙, 구본승보다 삽입곡으로 참여한 박상민의 이름이 더 잊히지 않는 드라마였다. “가슴 속에 차오르는 그대”라는 시작 음성은 그만의 전매특허로 남게 되었으며, 대표곡으로도 자리매김했다. 이후, 진득한 남성 매력이 풍기는 음색은 수많은 남자 팬들의 마음속에 남게 되었고, 지금은 격투기선수 추성훈의 애창곡으로도 인기를 지속하고 있다.
이종민(1stplanet@gmail.com)
「들리나요」 - 태연 (<베토벤 바이러스> 2008년)‘강마에’ 신드롬을 일으키며 배우 ‘김명민’을 다시 한 번 재조명? . 음악과 의리, 애틋한 사랑을 주된 소재로, 이 사이를 오갈 때 들리는 메인 테마 「들리나요」는 클래시컬한 극의 분위기와 맞물려 서정성을 극대화했다. 안정적이고 감성적인 보컬로 곡의 중심을 잡는 태연은 감정의 고저를 그려내며 잘 짜인 내러티브를 정점으로 이끈다.
조이슬(esbow@hanmail.net)
「걸어서 하늘까지」 - 장현철 (<걸어서 하늘까지> 1992년)
1992년 12월부터 1993년 3월까지 방송된 <걸어서 하늘까지>는 1970년대에 스포츠 신문에 연재된 문순태의 소설을 브라운관으로 옮긴 드라마다. 같은 해인 1992년 봄에 먼저 영화로 제작된 몇 개월 후에 텔레비전에서 방송됐지만 영화보다 큰 인기를 얻으며 최민수를 터프가이 이미지로 성립시켰다.
1980년대의 팝 메탈과 아레나 록의 분위기를 담은 질주 감 넘치는 주제가 「걸어서 하늘까지」는 주인공의 브레이크 없는 인생을 잘 표현했다. 기타를 연주한 시나위의 신대철은 주다스 프리스트(Judas Priest)의 「Electric eye」를 떠올리는 리프와 자연스런 기타 솔로로 곡의 기운을 한층 고조시켰고 덕분에 당시 노래방에서 분위기를 띄우는 골든 레퍼토리로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소승근 (gicsucks@hanmail.net)
「아껴둔 사랑을 위해」 - 이주원 (<우리들의 천국> 1992년)
1992년에 방송된 <우리들의 천국>을 남자인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故 최진영과 김찬우 그리고 장동건이 나왔으니까. 처음에는 김찬우가 드라마의 중심이었지만 그 무게가 절대미남 장동건에게 조금씩 넘어가면서 내용이 방향을 잃고 우왕좌왕했다고 한다. 인기가 급부상한 장동건은 급기야 사운드트랙에서 「너에게로 가는 길」이라는 곡을 취입하는 만행(?)까지 저지른다.
손무현이 작곡한 주제곡 「아껴둔 사랑을 위해」는 무명 이주원을 스타덤에 올려놓았지만 후속곡이 없어 ‘원 히트 원더’ 가수가 되었다. 당시 노래방에 가면 친구 녀석이 이 노래만 불러대는 바람에 드라마를 보지 않은 나조차도 이 곡을 암기할 수밖에 없었다.
소승근 (gicsucks@hanmail.net)
「마지막 승부」 - 김민교 (<마지막 승부> 1994년)
1994년, 대한민국 젊은 남성들 10명 중 서너 명은 허리에 농구공을 끼고 다녔다. 모두가 동민(손지창 분), 철준(장동건 분)이었다. 명성대와 한영대를 대표하는 간판선수였던 동민과 철준은 농구는 물론이고, ‘내조의 여왕’ 다슬(심은하 분)을 놓고도 마지막 승부를 펼쳤다. ‘내 전부를 거는 거야 / 모든 순간을 위해’라며 청춘의 특권을 외치는 노랫말은 호쾌한 록 사운드와 찰떡궁합을 이뤘다. 청춘은 매일 매일이 마지막 승부가 아니던가.
안재필(rocksacrifice@gmail.com)
「사랑해도 될까요」 - 유리상자 (<파리의 연인> 2004년)
여성의 보편적 심리를 이만큼이나 효과적으로 이용한 드라마도 없을 것이다. 여성들의 신데렐라 판타지를 자극하며 성인 동화로 자리매김한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한기주(박신양 분)가 강태영(김정은 분)을 위로하기 위해 직접 피아노를 연주하며 이 노래를 불?다. 마초적이기만 한 줄 알았던 재벌 2세의 로맨틱한 모습에 여성 시청자들은 모두 녹아버렸고, 남자들은 일제히 눈을 흘기며 말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이라고.
여인협(lunarianih@naver.com)
「She is」 - 클래지콰이 (<내 이름은 김삼순> 2005년)
이 노래가 흐르는 순간만큼은 나도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 두근두근 대는 마음을 겨우 진정시켜야만 했다. 이처럼 강한 코믹터치에 묻힐 수도 있었던 로맨스를 극의 중심으로 굳건히 받쳐주었던 트랙. 일반적인 러브 송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또한 재벌 2세와 일반인의 사랑이라는 소재가 줄 수 있는 진부함을 벗어나는 데 일조했다. 돼지인형, 모모와 함께 삼순이가 배출시킨 최고의 히트상품! 황선업(sakura0219@naver.com)
「파일럿」 - 정연준 (<파일럿> 1993년)
사실상 지상파에서 처음으로 파일럿을 다룬다는 점과, 최수종, 채시라, 김혜수, 이재룡 등 당대 최고의 배우들이 출연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이목을 끌었던 청춘 드라마다. 활주로를 이륙하는 듯, 경쾌한 신시사이저 사운드가 오프닝을 채웠던 주제가는 스물다섯 살 윤상의 작품. 재미있는 것은 <파일럿>에서 이제는 베테랑이 된 두 신인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업타운(Uptown)을 거쳐 지금은 국내 알앤비의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정연준의 기름기 빠진 음색을 들을 수 있다는 사실과, 순박한 얼굴의 한석규를 놓치지 말 것.
홍혁의 (hyukeui1@nate.com)
「아무리 생각해도 난 너를」 - 스윗 소로우 (<연애시대> 2006년)
허울 좋은 로맨스를 걷어치우고, 현실의 영역에서 연애를 논했던 까닭인지 '연시'마니아들을 양산하며 잔잔한 인기몰이에 성공했다. 그러한 공감대를 완성한 것은 소담한 멜로디에, 가사를 통해 점층적으로 간절함을 전달한 주제곡이었다. <무한도전>에서 하하와 정형돈의 어색한 관계를 규정지은 곡으로 쓰일 정도로 일상적인 대화체의 가사가 안겨주는 편안함이 최고의 매력이었다. 이 곡을 통해 스윗소로우는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했고, 후에 신인육성 프로그램 <쇼바이벌>을 통해 잠재력을 폭발시켰다.
홍혁의 (hyukeui1@nate.com)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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