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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의 품질을 높이기 위한 세 가지 장치

한 명이 주방기기 코너의 반짝반짝한 그릇들을 바라보며 "난 이런걸 보면 결혼하고 싶어져."라고 말한다. 또 다른 한명은 1층 명품 쥬얼리 매장을 바라보며 "난 다이아 정도는 봐야 결혼하고 싶던데."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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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헌의 백가기행 百家紀行
조용헌 저 | 디자인하우스
‘집 안에서 구원을 얻으라’는 말인 ‘가내구원(家內救援)’을 집의 가치로 꼽으며 축령산 자락에 자리한 한 칸 오두막집에서부터 차는 풍류가 아니라 혁명이라 말하는 부산 달맞이고개의 다실 이기정까지, 동양학자이자 칼럼니스트인 조용헌의 눈으로 바라본 '집'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 시대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간다.
나이만 먹었지 철없기는 여덟 아홉살짜리 어린 아이들에 불과한 27살 처녀 3명이 백화점에서 쇼핑을 즐긴다. 한 명이 주방기기 코너의 반짝반짝한 그릇들을 바라보며 “난 이런걸 보면 결혼하고 싶어져.”라고 말한다. 또 다른 한명은 1층 명품 쥬얼리 매장을 바라보며 “난 다이아 정도는 봐야 결혼하고 싶던데.”라고 한다. 그 옆의 한 명, 잠잠하다. 친구들이 묻는다. 넌 뭘봐야 결혼하고 싶냐고. 그녀, 대답한다. “여기없어, 38평대 이상 아파트 모델하우스는 봐야 결혼하고 싶지. 그래야 나름 성공한 결혼같잖아”

그렇다. 그렇게 아파트 운운하는 그녀가 바로 나다. 집, 그래 나에겐 그런 것이다. 부의 상징, 남들에게 보여지는 행복의 척도, 성공의 비유물...... 뭐 이런 것들. 이런 나에게 감히 ‘속물’이라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이가 과연 현재 이 나라에 있을까? 이 책 『조용헌의 백가기행 百家紀行』저자가 말하듯이 지금의 집은 그 사람의 신분이 되었다. 주(住)야말로 의(衣)와 식(食)을 능가하는 위치로 등극했다. 이 말에 ‘난 아니오.’라고 자신있게 말할 이 있는가?

집을 꿈꾸며 집을 얻었지만 돈과 행복을 잃은 사람들. 속칭 ‘하우스 푸어’가 시사의 쟁점이 되는 시대, 현대인들은 집의 노예가 되었고 집이 주는 행복을 잃었다. 동양학자 조용헌이 집을 사유의 소재로 생각하게 된 것은 어쩌면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그는 스물 한 채의 집을 방문하며 그 안에서 배우고, 둘러보고, 토론한다. ‘대체 집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얻기 위해.

‘돈으로서의 집, 신분으로서의 집’이라는 고정관념을 깨준 장성 축령산 자락의 도공 김형규씨가 20일 동안 혼자힘으로 지은 집부터 그야말로 한국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명가名家 경주 최 부잣집, 현대의 가장 보편적 건축양식인 아파트에서 자신만의 가치있는 공간을 꾸미고 살고 있는 부산 조효선씨의 아파트 다실까지 저마다의 의미를 지닌 조용헌이 찾은 집들. 그 안에서 저자는 가내구원家內救援이란 답을 찾는다.

가내구원家內救援. 이는 결국 구원의 길이 바로 ‘집안’이 있었다는 깨달음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집에서 집의 진정한 존재 이유라는 가내구원家內救援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조용헌의 백가기행 百家紀行』은 이에 대해 이런 답안을 남긴다. “바쁘면 깊이 있는 삶을 살 수 없다. 삶이 얕아지는 것이다. 얕아진다는 것은 결국 품질이 떨어지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다면 품질을 높이기 위해서 필요한 장치가 있는가? 나는 세 가지를 꼽는다. 집 안에 세 가지를 갖추고 싶다. 첫째는 다실(茶室)이고, 둘째는 중정(中庭)이요, 셋째는 구들장이다.”

고명 선생은 “차를 마시면 의식주가 바뀌고, 의식주가 바뀌면 생각이 바뀌니, 차는 풍류가 아닌 혁명”이라 말했다. 정사각형의 마당은 곧 중정이다. 집 안의 정원 중정. 책에 등장하는 조병수씨의 땅집은 평지 밑이라 방이 어둡다. 한 사람 겨우 누울 정도로 좁다. 대신 마당이 넓고 환하다. 어두운 곳에서 보는 빛! 이 또한 가내구원이다. “휴휴산방의 명품은 구들장”이라 말하는 저자의 집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아궁이에 불을 피워 뜨거워지려면 10시간이나 기다려야 하는데, 여기에 등짝을 지지면 세상사 부러운 게 없어진다고 한다. “공간이 사람을 치유한다”는 이 새삼스런 사실은 분명 가내구원의 또다른 모습일 것이다.

앞의 일화에서도 말했듯이 나에게, 혹은 우리들이 집을 갖고자 하는 이유가 왜곡되었던건 “나는 누구인가?”라는 영영 풀리지 않을 근원적인 질문에 억지맞춤으로 답을 구하기 위해 넓고 비싼 집이란 엄한 곳에서 사회적 권력을 증명하고자 했던 어리석음에서 기인했던 것이리라. 내 집의 다실(茶室)과 중정(中庭), 그리고 구들장에서 얻어야 했던 위로와 휴식을 무지의 소산으로 말미암아 바깥에서 얻으려 하며 집을 허울뿐인 허수아비로 남겨두었으니 날이갈수록 마음은 헛헛해지고 행복은 자꾸만 멀어져만 갔던 것은 아닐까? 어둑한 저녁 10시. 지금 30cm쯤 빼꼼히 열린 내 방문 밖 거실에서 부모님의 웃음 소리가 들린다.

조용헌
조용헌은 원광대 불교대학원 교수이자 사주명리학 연구가이다. 사주를 미신으로만 생각하던 통념에서 교수가 사주명리학을 연구한다는 것만으로도 혁신이었다. 대학시절 신문방송학을 전공한 그는 취미로 산 타는 것을 즐기다가 절을 다니게 되었고, 스님들과 가까워지며, 한의학, 풍수, 사주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주를 맞추는 스님들에게서 신기함을 느꼈고, 그 호기심이 그를 사주명리학으로 이끌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사주명리학은 도교의 방사(方士=도사)들이 오래 살기 위해 자연의 흐름에 인간을 순응시키는 방법을 찾자는 수련체계였다. 밤과 낮이 음양으로, 사계절이 오행으로, 여름과 가을 사이 정 가운데에 자연의 중심이 되는 흙(토)을 넣어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에서 사주 풍수 한의학 전문가를 찾아서 잡과라는 과거를 둘 정도로 어려운 학문이었으나 점차 대중화되면서 조선 후기에는 민간에 자리잡았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그는 자신의 연구에 큰 자부심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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