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먹고 다니냐?
‘껀수’가 있을 때마다 아끼는 이들에게 ‘러브레터’를 날려보내자
어떤 여자가 자꾸만 사랑을 고백해서 귀찮아 죽겠다.
한 두 번이 아니다. 핸드폰이 울리고 낯선 번호가 뜬다. 잠시 망설이다 받는다. 정체불명의 아가씨가 다짜고짜 외친다.
“사랑합니다.” 남자로서가 아니다.
“사랑합니다. 고객님!” 나도 다짜고짜 끊는다. 통신회사들의 가입권유 음성메시지다.
추억은 구체적으로, 사랑은 최대한
핸드폰을 닫고 잠시 그 말을 입속에서 가만히 굴려본다. 사‥랑‥합‥니‥다.
음성메시지가 아닌 진짜 사람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일이 평소에 있는가? “밥은 먹고 다니냐?”라는 유명한 영화대사에 빗대자면 “사랑은 먹고 다니냐?” 아닌 듯하다^^. 그렇다면 “사랑은 주고 다니냐?” 자식 키우는 입장에선 좀 그렇다. 그 밖의 대상에겐 내 마음을 따뜻하게 표현한 적이 없다. 삭막한 삶이다. 잡지와 신문을 만들며 숱한 글을 썼지만,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하는 글을 쓴 일은 기억에 없다.
오늘의 주제는 ‘러브레터’다. 나는 못했지만, 아이들에겐 일종의 습관으로 만들어주고 싶다. 마침 할머니 생일이 다가왔다. 할머니에게 사랑과 존경을 듬뿍 담은 글을 쓰게 했다. 글쓰기의 기술을 말할 게재는 아니다. 두 가지만 지키라고 했다. 할머니와의 지난 추억을 구체적으로 기술할 것, 사랑을 최대한 표현할 것.
“할머니를 생각하고 어린 시절 앨범을 보니깐 자꾸만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져요. 지금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옛날에는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았잖아요.(중략) 생신 때까지 (은서와) 서로 싸우면 할머니의 기분과 생신을 맞은 기분이 안 좋으실 것 같아서, 그 자리에서만이라도 할머니께 싸우지 않는 모습을 보여드릴게요. 그럼 올해에도 건강하시고 내일 봬요. 사랑해요.! 2010년10월8일 시험이 끝난 준석이가 할머니께.”
“아, 할머니와의 추억이 생각나네요. 할머니와 함께 계곡에 간 적도 있고,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었죠. 아, 그리고 영화를 볼 때는 저희에게 양보를 해주셨잖아요. 할머니 수준 영화도 아닌데, 저희 때문에 억지로 그 영화를 보셨죠. (중략) 할머니, 1000살 넘게 오~래 오~래도록 사고없이 행복하게 사세요. 사랑해요~ 2010년10월10일 할머니의 사랑스러운 손녀인 은서 올림)
빛나는 알맹이는 없다. 맹탕이다. 하지만 할머니의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할머니로 하여금 답장까지 쓰게 했다. 이유가 필요 없다. ‘러브레터’는 받는 이를 무조건 기분 좋게 한다. 존재감도 확인시켜준다. 이럴 때 글은 꽃보다 아름답다.
‘아침에 찢던 편지’를 아십니까?
‘아침에 찢던 편지’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 밤새 누군가를 생각하며 힘겹게 만들던 문장들. 아침에 다시 보면 왜 그리 얼굴이 화끈거렸을까. 찢고 또 쓰고, 또 찢고 또또 쓰던 그 ‘러브레터’의 추억을 일상적으로 되살리자고 하면 비현실적 주장이리라. 최소한 ‘껀수’가 있을 때만이라도 실천해보자. 생일 또는 의미 있는 기타 기념일에 ‘무덤덤’과 ‘쑥스러움’을 타파하고 ‘애정표현문’을 전달하자. ‘러브레터’가 거창하다면 ‘러브쪽지’라도.
글은 비닐이나 플라스틱의 성질을 닮았다. 한번 마음에 꽂히면 오래도록 썩지 않는다는 긍정적인 의미에서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기록을 남기자.
***
떼메일, 떼문자는 보내지 맙시다
생일타령의 여왕이다.
은서가 그렇다. 소녀는 6개월 전부터 카운트다운에 돌입한다. 100일 이내로 들어오면 일주일에 한 번씩 자신의 생일이 다가오고 있음을 환기시킨다. 한 달 이내에 접근하면, 매일 다양한 메뉴로 한마디씩 쏟아낸다.
잔치에 어떤 친구를 초청할 지, 음식은 무엇으로 정할 지, 케이크를 어떤 종류로 할 지, 폭죽은 터뜨릴지 말지, 엄마·아빠·오빠·친구들이 선물은 무얼 해주면 좋을지 등등. 혼자 조잘거리고 키득대며 상상의 나래를 공개적으로 펼친다. 몇 살까지 생일 이벤트에 목을 맬까 궁금하다.
20대 이후 생일에 별 감흥이 없었던 것 같다. 집에서 미역국 먹는 정도 이상의 기대를 하지 않았다. 30, 40대엔 더 시큰둥해졌다. 생일케이크를 잘라도 느낌이 오지 않는다.(케이크를 먹는다는 이유로 아이들이 오히려 더 신난다) 아, 이거 옳지 않다.
얼마 전 이야기를 나눈 여성 지인은
“40이 넘은 걸 기념해 앞으로는 생일타령을 적극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30대에 생일을 무심하게 넘겨온 걸 후회한다고 했다. 1년에 딱 한번인데, 성의를 다해 자신을 격려하고 축하하고 위로하는 이벤트를 주저할 이유가 뭐냐는 거였다. 가족과 친구를 동원하여 자신의 탄생을 화려하게 기념하는 날로 기획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단다. 자기존재감을 회복하기 위해 생일타령의 여왕이 되겠다는 말로 들렸다.
그래, 자신의 생일에 집착하는 이들을 유치하다고 몰 필요는 없다. 그런 욕망은 건강하다. 나이가 들어가는 이들에겐 항우울제의 기능과 역할을 한다고 해도 좋겠다. 은서야, 늙어서도 생일타령의 여왕이 되렴^^.
생일 이벤트에 가족과 친구를 제대로 동원하려면,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내 생일이 화려하려면, 남의 생일도 화려해야 한다. 가족과 친구의 생일을 적극적으로 신경 쓰고 챙겨줘야, 나한테도 똑같이 돌아온다. 물질적 선물도 중요하겠지만, 앞에서 쓴 대로 마음이 담긴 ‘러브레터’를 적어보자. 마음에 걸어주는 꽃다발을 짠다는 마음으로.
다음은 준석과 은서가 할머니에게 보낸 꽃다발이다. 편지 전문을 소개한다.
‘비폭력 남매’를 선물로 드릴게요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 할머니 손자 준석이에요.
물론 추석 때 만나뵈어서 굳이 인사드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편지 형식에 따라 인사를 하게 되네요.
무엇보다, 이 편지를 쓴 목적과 같이 먼저 드리고 싶은 말은, 생신을 축하드린다는 말이에요. 보통 추석 때나 설 때는 다 만났지만, 할머니의 생신에 참가한다는 게 흔히 있는 일은 아니어서 가는 게 더욱 기대돼요.
물론 사촌이 참가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요.
할머니를 생각하고 어린 시절 앨범을 보니까는 자꾸만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져요. 지금은 할머니와 함께 하는 시간이 많지 않지만, 옛날에는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잖아요. 어려서는 사촌이든 할머니든 간에 추억이 가장 많았을 때였으니까요.
그리고 당연 할머니께 드릴 선물도 준비해 놓았지만, 이번 진짜 할머니께 드리고 싶은 선물은 ‘동생과 싸우지 않고 말로 풀어가기’예요. 할머니께서는 저희를 예뻐해주고 선하게
대하셨지만 단 한 가지는 늘 지적하셨어요. ‘동생과 싸우지 마라’ 하지만 그게 쉽사리 고쳐지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동생도 시비를 걸고, 나도 시비를 걸기 때문에, 어느 한명이 잘못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지금은 되도록 폭력을 (쓰려는 포즈는 하지만)거의 쓰지 않고 있는 상태에요. (물론 사실 내가 때리는 수준이 ‘폭력’이라고 하기도 그렇다)그래서 계속 말로 풀어 가고 있는 상태이지만, 싸움이 아무래도 계속되는 것 같아요. 둘다 잘못이 있다고 저는 생각해요. 저는 대부분 시비를 걸고, 은서는 남의 기분을 나쁘게 하거나 말문을 막히게 하니까요. 그런데 할머니께서 생신 때까지 이렇게 서로 싸우면 할머니의 기분과 생신을 맞은 기분이 안 좋으실 것 같아서, 그 자리에서만이라도, 할머니께 싸우지 않는 모습을 보여 드릴 게요.
그럼 올해에도 건강하시고 내일 봬요, 사랑해요!
2010년 10월 8일 시험이 끝난 준석이가 할머니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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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오~래도록 사고없이 행복하게
할머니, 안녕하세요? 저 은서에요.
할머니의 73번째 생신을 진심으로 축하드려요.
제 선물은 양말이에요.
세련되어 보이는 양말?, 젊어보이게 만들어주는 양말이에요.
7800원짜리 양말이니깐 부담가지시진 마세요.
그렇다고 오빠가 드린 우산과 비교는 말아주세요.
전 할머니가 참 좋아요 ㅎㅎ
저한테 양보도 많이 해주시고, 많은 배려를 주시잖아요?
아, 할머니와의 추억이 생각나네요.
할머니와 함께 계곡에 간 적도 있구, 그리고 영화를 보러 간 적도 있었죠.
아, 그리고 영화를 볼 때도 저희에게 양보를 해 주셨잖아요.
이 영화는 할머니 수준 영화도 아닌데, 저희 때문에 억지로 그 영화를 보셨죠.
그리고 전 할머니 집에서 런닝 머신이 사라진 게 슬퍼요.
있을 때는 운동도, 봉에 매달려서 몽키 놀이 할 수 있었잖아요.
그런데 할머니가 파셨죠…
없어졌을 때는 적응이 안 됐지만, 요즘에는 그냥 그렇네요. ← (적응이 된다는 소리)
할머니, 1000살 넘게 오~래 오~래도록 사고없이 행복하게 사세요.
사랑해요~
2010.10.10.일
할머니의 사랑스러운 손녀인 은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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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쓰고 난 뒤 은서가 만들어준 ‘인생운세 부적’. 처음엔 복채 1000원을 달라고 하더니 거절하자, 500원, 100원으로 가격을 깎거니 급기야 공짜로 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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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타령의 여왕이 되어도 좋아
준석과 은서는 할머니 초상화까지 그려 선물했다. 내년에도, 내후년에도 할 계획이다. 얼마 전 인터뷰 때문에 만난 고은 시인의 집에서 본 그림이 떠오른다. 이 집 부부는 생일을 맞으면 서로 그림을 그려주는 내력이 있다고 한다. 그의 안성 자택에 걸려있는 그림 속에선, 한 사람이 나무 아래서 두 손을 다소곳이 가슴 쪽으로 모은 채 서 있었다. 올해 고은 시인의 생일에 부인 이상화씨가 그려준 남편의 모습이다. 옆에는 이런 글귀가 있었다.
“소년 銀兒의 77세. 2010.7. 상화.” 멋지지 않은가. 가족이나 친구, 동료끼리 생일날 작은 쪽지와 그림을 주고받는 풍경은, 생각만 해도 훈훈하다.
그렇다고 편지는 생일날만 쓰는 게 아니다. 초딩 은서는 반 친구들과 함께 편지를 주고받았다. 4월3일 친구의 날을 맞아 선생님이 시켰다고 한다. 은서가 쓴 편지는 이미 친구에게 전달이 됐으므로 ‘입수’에 실패했다. 3명의 친구가 은서에게 쓴 편지를 익명으로 공개한다.
우리 스마일~단짝이 되자꾸나
은서야, 안녕?
나 OO야. 요즘 잘 지내고 있지? 난 잘 지내고 있어.
1학년 때 기억나니? 난 그때 너와 같은 반이었지만 그리 친한 친구도 아니었고 뭐, 좀 서로서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아. 그런데 올해 4학년 우리 반 신문부가 되면서 너랑 친해지게 되었어. 또 같이 신문 만드느라 열심히 노력하고 신문도 다같이 꾸미는 그런 과정을 통해서 너의 좋은 점이 많이 보이더라구.
넌 항상 잘 웃고 또 가끔씩 재미있는 말도 하고 나에게 언제나 친절하게 대해주는 솔직한 친구 같아. 보통 땐 너의 장점이 많이 보였는데 막상 편지로 쓰려니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그래도 왠지 넌 참 친절한 아이라는 느낌이 들어. 그래서 너와 더욱 더 친한 친구가 되고 싶어.
우리 둘 앞으로 단짝이 되도록 노력하고 신문부 일도 더더욱 열심히 하고 신문 이름처럼 언제나 스마일~ 하는 단짝이 되자구~ 그럼 안녕! 주말 잘 보내!2010년 4월3일 토요일
단짝이 되고 싶은 마음을 담아 은서에게 OO가
은서에게
안뇽?~ 은서야!? 나 누군지 알것징~?! 나 OO야 ~ OㅂO
나는 널 3학년 때 만났잖아~! 그런데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넹~-_-::
어쨌든 3학년 때 너는 항상 밝고, 또 항상 웃음이 넘치고, 넌 그림에도 소질이 있는 아이였잖아~ 지금 4학년 때도 3학년처럼 항상 밝고, 그림도 잘 그리길 바래~ ^-^ ^-^^-^
또 너의 꿈 만화가 꼭! 그림 잘 그려서 만화가 돼야 해~! 그리고, 내가 너 집에 놀러갔을 때 너의 엄마 참 친절하시더라~(나도 그런 엄마 있으면~) 어쨌든 은서야~ 우리 우정 언제나 변치말자~ +_+ 바이바이
LOVE OO가- 4월3일
은서야 안녕? 나 OO야. 은서야 너랑 나랑 4탇년 때 처음으로 같은 반이 되었는데 우리가 친해지는 건 엄청 빨랐지? 근데 우리는 친해지고 싸우고 그랬지만 지금은 친해진 게 다행이라고 생각해~
4/2이 친구의 날인데 그래서 지금 편지를 쓰고 있지만 은서야 우리 다신 싸우지 말자. 그때동안 내가 너에게 화내고 싸운 건 미안해 은서야. 잘 생각해 보니까 내가 너에게 너무 많이 화내고 그런 것 같해‥은서야 정말 쏘리‥
OO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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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친구들과의 편지를 보관해봐
슬며시 웃음이 난다. 귀여운 조무래기들. 세 친구간의 글쓰기 실력 편차도 숨길 수 없다. 어떤 글은 맞춤법도 딱딱 맞고 내용도 야무지다. 어떤 글은 맥락이 없다. 그렇다고 은서 친구들의 글에까지 꼬치꼬치 코멘트를 하는 태도는 적절치 않다. 노코멘트!
7개월 만에 친구들의 편지를 읽은 은서는 신기해했다. 낄낄낄 웃었다. 어렸을 적 친구들과 편지를 많이 주고받고, 꼭 보관하기를 권한다. 먼 훗날 다시 읽어보면 추억의 샘물이 콸콸콸 쏟아지리라.
음, 이왕이면 오는 12월에 친구들한테 크리스마스 카드를 보내면 어떨까? 이 이야기를 꺼내자 은서가 고개를 인상을 찌푸린다. 요즘 초딩들에겐 손수 만든 크리스마스 카드를 주고받는 문화가 생경한가 보다. 트렌드가 아니다. 여기까지 강요하기는 좀 무리다. 됐고!
이참에 ‘받고 나서 별로 안 반가운’ 크리스마스 카드에 관해서나 이야길 해봐야겠다.
연말이 되면 업무 관계로 만난 이들에게서 크리스마스 카드나 연하장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나를 잊지 말아요”라는 측면에서는 반가울 수 있다. 다만 그 분들이 나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조금이라도 구체적으로 써서 보내주면 진심으로 고마울지 모르겠다.
아쉽게도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대부분 ‘떼카드’다. 즉 다수의 대상을 향해 한꺼번에 보낸 카드나 연하장의 일부다. 당연히 “하시는 일 잘 이루시고 새해엔 더욱 건강하세요. OOOO 대표 OOOO”라는 투의 인사가 똑같은 디자인으로 인쇄돼 있다. 받는 이의 이름은 봉투 겉면에만 적힐 가능성이 높다.
뜯자마자 즉시 쓰레기통으로 향한다. 주로 ‘장’자가 붙은 높으신 분들이다. 물론 그것조차 부하직원들이 대신 써 줄 지도 모른다. 마음이 담길 확률이 적다. 자신이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을 과시하거나 확인시켜줄 뿐이다. 이건 ‘러브레터’가 아니다. 억지로 말을 지어보자면 ‘터부레터’다. 인간관계에서 터부시해야 할 편지라는 뜻이다.
‘터부레터’는 또 있다. ‘떼메일’과 ‘떼문자’다. 업무로 맺은 관계도 아닌 옛 친구들이 그 주인공이 될 땐 두 배로 황당하다. 친숙한 관계라 생각했던 이들에게서 “새해 건강하라” 어쩌구 하는 틀에 박힌 내용을 떼메일과 떼문자로 받으면 씁쓸하기 그지없다.
보내는 사람 입장에선 편리한 관심의 표현일지 모르겠다. 받는 사람 입장에선 ‘익명의 섬’으로 취급되는 느낌이다. 인간에 대한 관심과 애정은 본디 개별적이다.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는 이런 구절이 있지 않은가.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상대의 이름의 담기지 않은 편지에선 꽃향기가 나지 않는다. “장르로 치면 형식주의”라는 농담을 날려본다. 형식적이다. 러브레터는 ‘1대1 마크’여야 유효하다.
오늘의 결론으로 직행한다. ‘러브레터’를 쓰자는 이야기를 길게 했다. 여기엔 단서가 있다. ‘터부레터’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이렇게 쓰자.
상대의 이름을 담아, 당신의 마음을 담아
*** 떼편지, 떼메일, 떼문자에 대한 아이디어는 회사 선배인 <한겨레> 김선주 전 논설주간과 나눈 이야기에서 얻었음을 밝힙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