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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뒤에 숨은 사랑
‘흩어진 사람들’
디아스포라.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던 말이었다.
모어와 모국어가 일치하는 경우는 국가 내부의 언어 다수자들뿐이며 실제로 어느 나라에든지 모어와 모국어를 달리하는 언어 소수자가 존재한다. 그 존재를 무시하거나 망각하고, 아무런 의심 없이 모어와 모국어를 동일시하는 것도 단일민족국가 환상의 소행이라고 하겠다. 일반적으로 언어 소수자란 하나의 국가 내부에서, 그 나라의 다수자와는 다른 모어를 가진 사람들을 가리킨다. 예를 들어 영국의 웨일스인, 스페인의 바스크인, 중국의 위구르인 등이 그들이다. - 서경식 『디아스포라 기행』 중
디아스포라.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을 가진 이 말은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이르던 말이었다. 그러나 이제 ‘디아스포라’는 고국을 떠나는 사람들을 의미하게 되었다. 내가 처음 디아스포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누군가의 책을 읽고 감동을 받았거나, 텔레비전 시사프로그램에 나오는 농촌의 다문화 가정의 확산과 관련된 뉴스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살던 동네에서 본 어떤 사소한 풍경 때문이었다.
- 줌파 라히리 『이름 뒤에 숨은 사랑』
줌파 라히리와 이창래의 소설을 읽던 밤, 나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내가 아직 뱃속의 씨앗처럼 작은 태아였을 때 불렸던 이름, 아직 말을 배우기 전인 두 살 때까지 불렸던 그 이름이 서서히 떠올랐던 것이다. 그 이름 속에는 두 달이 넘는 시간을 채우지 못하고 태어난 병약한 팔삭동이 딸이 오래오래 무병장수하며 살길 기원하는 부모님의 간절한 바람이 있었다. 인큐베이터 안에서 어린 딸이 죽음이 아닌 삶 쪽으로 다가가기 위해 사투를 벌이던 그때, 나의 부모님은 밤새 울음을 삼키며 기도했다.
고백하면 나는 내 이름을 무척이나 싫어했었다. 1900년대 소설에나 나올법한 고전적인 내 이름이 창피했었다. 그래서 소설가가 되던 해, 나의 첫 번째 단편에 나는 ‘백모’라는 이름을 조심스레 적어 넣었었다. 필명을 가지는 것이 지금까지와는 없던 두 번째 정체성을 가지게 되는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밤, 필명에 대한 이런 저런 얘기를 듣고 온 술 취한 밤, 내가 끝내 내 필명을 버렸던 건 새벽녘 아빠와의 긴 통화 때문이었다.
“첫 번째 딸을 영영 놓치는 줄 알았지. 널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한 걸 네 엄마는 못 견뎌했어. 네 엄마는 그때 겨우 스물두살이었어. 우린 네 이름을 오랫동안 짓지 못했지. 이름을 짓기 위해서 우리는 먼 길을 돌아왔어. 난 신앙이 있지 않았지만 그때만큼은 네 엄마와 함께 교회에서 꼼짝없이 기도를 했었어. 그래서 우리가 얻게 된 이름이야. 영화로울 영, 구슬 옥, 그렇게 영화롭게 빛나라는 의미에서, 네가 아프지 않고 건강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말이지. 난 네 이름이 촌스럽다고 생각해본 적이 단 한 순간도 없었어. 네가 만약 사람들로부터 다른 이름으로 불려 진다면 네 엄마와 나는 무척 슬플 것 같아.”
아시마는 요즘 들어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평생 임신한 것과 다름없다는 생각을 했다. 기다림은 끝도 없고, 언제나 버겁고, 끊임없이 남과 다르다고 느끼는 것이다. 한때는 평범했었던 삶에 이제는 불룩하게 괄호가 하나 삽입되었고, 이 괄호 속에는 끝나지 않은 책임이 들어 있었다. 이를 통해 이전의 삶은 사라지고 말았다는 것, 그 삶은 오히려 더 복잡하고 힘든 무엇인가로 대체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외국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임신했을 때처럼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호기심과, 그리고 동정심과 이해심이 묘하게 뒤섞인 감정을 자아내는 어떤 것이라고, 아시마는 생각하였다.
그날, 버스에서 아이의 손을 잡고 있던 필리핀 보모 ‘마리아’의 이름은 그녀의 부모가 부르던 이름이 아니었다. 그녀의 타갈로그어 이름, 그녀의 진짜 이름은 ‘anak’ (아낙)이었다. 그 이름은 아이를 뜻하기도 아들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했다. 그것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많은 딸들이 연달아 태어났다. 아들이 태어나길 바랐던 부모의 마음이 그 이름 속에 숨어 있었다.
‘마리아’는 아니, ‘아낙’은 자신의 이름이 한국어 발음인 ‘아낙’과 비슷하다며 웃었다. 필리핀어와 한국어 사이. 아낙과 아낙 사이. ‘마리아’와 ‘아낙’ 사이에는 수많은 경계들이 있을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김윤아의 ‘going home’을 들었다. 그리고 이 눈물 나게 아름다운 노래가 마리아가 일하는 집 담까지, 그녀가 감자를 깎고 있을 부엌으로까지 사뿐히 스며들기를 바랐다. 그녀가 이 노래를 벗 삼아 편안히 잠들기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지는 햇살에 마음을 맡기고
나는 너의 일을 떠올리며
수많은 생각에 슬퍼진다.
우리는 단지 내일의 일도
지금은 알 수가 없으니까.
그저 너의 등을 감싸 안으며
다 잘 될 거라고 말할 수밖에.
더해줄 수 있는 일이
있을 것만 같아 초조해져.
무거운 너의 어깨와 기나긴 하루하루가 안타까워.
내일은 정말 좋은 일이
너에게 생기면 좋겠어.
너에겐 자격이 있으니까.
이제 짐을 벗고 행복해지길.
나는 간절하게 소원해본다.
이 세상은 너와 나에게도
잔인하고 두려운 곳이니까
언제라도 여기로 돌아와
집이 있잖아 내가 있잖아
뮳일은 정말 좋은 일이
우리를 기다려주기를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기를
가장 간절히 바라던 일이
이뤄지기를 난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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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스타일』로 제4회 세계문학상 수상.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 YES블로그에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 연재, 일간지 연재칼럼을 모아 낸 에세이집 『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 단편집 『아주 보통의 연애』를 썼다.
<서경식> 저/<김혜신> 역10,800원(10% + 5%)
디아스포라라는 말은 '이산(離散)'을 의미하는 그리스어로, 자기가 속해 있던 땅을 떠나도록 강요당한 이들을 가리킨다. '재일조선인'인 저자는 이러한 ‘디아스포라’의 시선으로 바라본 정치와 사회, 예술에 대한 단상을 책으로 엮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