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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로티시즘과 호러가 뒤섞인 영화 <렛미인>

산문의 바다에서 시의 아름다움을 건져내다 원작과 두 편의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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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렛미인>은 유년기의 열병처럼 슬프고 충격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2010년 할리우드를 통해 <렛미인>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원작의 방대한 산문에서 아름다운 시(時)를 건져 올린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렛미인>에 이어 할리우드의 매트 리브스의 <렛미인>까지 세계는 설익은 소년, 소녀의 핏빛 사랑과 그 성장담을 담아낸 잔혹 동화 <렛미인>의 처연하도록 슬픈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소파 한 구석에 쪼그려 앉아 중얼거린다. 아…….정말 벗어나고 싶어. 그리고 손톱을 깨물어 본다. 짧은 몽상…….그리고 다시 현실. 설익은 반항과 호기심은 도망갈 곳을 모르고 오도카니 그렇게 추진력 없이 현실의 틈새를 부유하고 있었다. 그렇게 누군가에게 유년기는 밝고 경쾌한 느낌보다 폐쇄적 우울함으로 기억된다. 나는 도저히 자랄 것 같지 않고, 꽉 막힌 어른들은 도저히 자신들의 세계에 틈을 줄 것 같지 않다.

그 답답함을 기억하는 성인들에게 2008년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렛미인>은 유년기의 열병처럼 슬프고 충격적일 정도로 아름다운 작품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2010년 할리우드를 통해 <렛미인> 열풍이 다시 불고 있다. 원작의 방대한 산문에서 아름다운 시(時)를 건져 올린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렛미인>에 이어 할리우드의 매트 리브스의 <렛미인>까지 세계는 설익은 소년, 소녀의 핏빛 사랑과 그 성장담을 담아낸 잔혹 동화 <렛미인>의 처연하도록 슬픈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겨울의 끝에 만난 친구 : 원작 소설 『렛미인』과 두 편의 영화



스웨덴의 작가 욘 아이비데 린드크비스트의 처녀작『렛미인』은 영화가 소년 소녀의 로맨스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주변부로 밀어낸 인물들과의 관계망으로 뒤얽혀 있다. 자신이 살기 위해 타인을 죽여야만 하는 현실에 대한 실존적 고뇌를 뱀파이어 주인공을 통해 그려내는 소설 『렛미인』은 소위 복지국가라고 불리는 나라에서 근근이 살아가는 하층민들이 삶을 사실적으로 담아내면서도 끝까지 따뜻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섬세하고 치밀한 스토리텔링 속에 호러, 사회적 비판의식, 미스터리, 그리고 퀴어적 시선까지 여러 장르를 유연하게 녹여낸 이야기 솜씨는 이 작품이 그의 첫 번째 작품이란 사실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유려하다.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익숙한 줄거리대로 원작의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된다. 스웨덴 스톡홀름의 교외 블라케베리. 어느 날 숲속에서 온몸의 피가 사라진 남자아이의 시체가 발견된다. 살인에 열광하는 왕따 소년 오스카르는 자신이 초능력으로 그 사건을 일으켰다고 생각한다. 텅 빈 밤의 놀이터에서 복수의 환상에 빠져 있던 오스카르는 이웃집 소녀 이엘리를 만나게 된다.

어두운 밤에만 만나는 외로운 소년과 소녀는 우정을 쌓아간다. 결손 가정에서 외톨이로 지내는 열두 살 소년의 성장기 앞에 영원히 열두 살로 살아야만 하는 200살의 뱀파이어가 찾아온다. 왕따이기도 한 소년은 소녀를 통해 늘 부정하던 자신의 모습을 긍정한다. 타인을 통해 성장하는 소년의 성장소설인『렛미인』은 살기 위해 살인을 해야 하는 절박한 뱀파이어의 생존 조건과 살아가야만 하는 그 눅진거리는 피곤함을 잘 그려내고 있다.

알려진 대로 너무 기괴하다는 이유로 8 곳의 출판사에서 퇴짜 맞은 작품 『렛미인』은 오드프론트 출판사에서 2004년 출판되어 23개국에 번역이 되었을 정도로 큰 인기를 얻었다. 동시에 고국인 스웨덴을 비롯하여 독일, 미국 등 20여 개국에서 영화화 제의가 들어왔다. 고심 끝에 원작자는 고국의 촉망받는 영화감독인 토마스 알프레드손과 손을 잡고 직접 소설 『렛미인』의 시나리오 작업에도 직접 참여하며, 영화와 원작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었다.



두 편의 훌륭한 전작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이미 선보였기 때문에 2010년 개봉된 할리우드 버전의 <렛미인>은 어쩔 수 없이 원작소설은 물론 이미 만들어진 스웨덴 영화 <렛미인>과도 비교당하는 숙명을 타고 났다. 영화 <클로버필드>로 인지도를 얻은 매트 리브스 감독은 2010년도 <렛미인>은 2008년 스웨덴의 <렛미인>의 리메이크가 아니라 원작 소설을 새롭게 영화로 만들어낸 것이라고 주장하며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렛미인>과의 비교를 꺼리는 눈치다. 하지만, 다행히도 원작을 훼손하지 않고, 한 발 더 나아가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얻으며 2010년 할리우드 버전의 <렛미인>도 세계적인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중이다.



알프레드슨 감독의 <렛미인>은 ‘매혹’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영화였다. 액션과 호러의 장르 영화였던 뱀파이어 영화를 소년의 성장기와 가슴 뭉클한 로맨스로 녹여낸 이 영화는 한 마디로 사람들을 홀리는 영화였다. 한 해 평균 20여 편의 영화가 제작된다는 스웨덴은 영화에 있어서 그다지 주목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 나라에서 불쑥 등장한 <렛미인>은 세계를 매혹시켰다.

본질적 외로움과 그 사이, 관계 속의 공명이 투명하게 드러난 이 영화는 나비의 날갯짓처럼 잔잔한 반향으로 시작해 큰 변화를 불러 일으켰다. 사람의 피로 연명해야 하는 소녀의 숙명과 외톨이 소년의 절망은 서로를 첫눈에 알아보게 만든다. 피가 튀기는 잔혹한 장면도 있지만, 영화의 우아함은 단 한 번도 흐트러지는 법이 없다.

살아남기 위해 마녀를 화덕에 밀어 넣어야 하는 <헨젤과 그레텔> 동화 속 주인공들처럼 뱀파이어 소녀는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타인의 목숨을 필요로 한다. 소년 소녀의 로맨스 영화와 어울리지 않는 이 잔혹성은 오히려 이 영화에서 거침이 없다. 디즈니 식의 해피엔딩에 익숙해진 기성 동화의 장벽이 무너진다.

솔직히 뱀파이어 소녀 이엘리라는 존재를 우리 안에 받아들이기에 그녀는 여전히 거슬리는 존재이다. 알프레드슨 감독의 <렛미인>은 절대 이러한 존재론적 고민을 미화하지 않는다. 80년대 초반 노동자 계급 소년의 퍽퍽한 삶 속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뱀파이어라는 환상의 존재조차 이러한 계급적 현실 속에 그대로 녹여둔다. <렛미인>이 판타지이면서 동시에 리얼리즘 영화의 요소를 유지하는 이유는 그러한 사실성에 있다. 이 영화 속에서 뱀파이어는 이질적인 존재가 아니라, 엄연히 현실에 존재하고 부유하는 마이너리티로 묘사된다.



알프레드슨 감독의 <렛미인>과 보다 대중적 취향을 고려한 리브스 감독의 <렛미인>은 MTV 뮤직 비디오처럼 강렬한 음악과 특수효과, 화려한 액션으로 장식된 근래의 변형 뱀파이어 영화와 할리퀸 로맨스의 정백당에 푹 빠진 새로운 하이틴 영화로 부상한 <트와일라잇>와 그 궤를 달리하면서, 유혈이 낭자한 가운데 아이러니하게 세상 가장 아름다운 동화를 말하고자 한다. 당연하게도 매트 리브스 감독은 보다 유연하게 장르적 재미를 더했다. 살인사건의 배후를 쫓는 경찰을 통해 미스터리의 요소를 더하고, 소녀가 벌이는 살육의 장면은 보다 잔인한 시각적 충격을 준다. 따라서 리브스 감독의 <렛미인>에서는 조금 더 호러 영화가 주는 시각적 쾌감과 공포가 느껴진다. 유럽 영화 특유의 여백의 미는 보다 직설적이고 구체적인 설명으로 풀어간다. 하지만, 역시 이것은 두 편의 영화에 대한 단순 비교에 불과하다. 매트 리브스 감독의 말처럼 2010년 <렛미인>은 타자와의 비교와 상관없이 그 자체로 빛나는 영화이다. 영화를 볼 관객을 위해 미리 밝힐 수는 없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식의 해피 엔딩에 익숙한 할리우드의 장르 영화의 특징에서 살펴보자면 영화 <렛미인>의 결말은 두고두고 서늘하게 곱씹어봐야 할 독설이 담겨있는 듯하다.

뱀파이어 영화 연대 속 <렛미인>



뱀파이어 영화는 대부분 벨라 루고시에서 크리스토퍼 리로 이어지는 전통적 드라큐라의 이미지로 기억되어 왔다. 그들은 세련된 외모에 검은 연미복을 입고 여자들의 희고 긴 목에 이빨을 꽂고 피를 빤다. 서양에서 제작된 대부분의 뱀파이어 영화는 그런 이미지를 계속 재생산해 왔다. 이미지의 복제는 장르의 쇠퇴로 이어졌고, 1990년대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가 브람 스토커의 원작에 충실한 <드라큘라>를 만들겠다고 했을 때, 관객들은 시대착오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 그는 스테레오 타입에 갇힌 드라큘라를 애절한 사랑의 주인공으로 만들어냈고, 이를 통해 뱀파이어 영화의 장르는 새로운 시야를 얻었다.



하지만, B급 영화의 세계에서 뱀파이어 영화는 다양한 변주를 통해 클리세를 뛰어넘는 비주류의 장르영화로 이어져왔다. 여성 뱀파이어를 내세운 B급 뱀파이어 영화들은 타인의 피를 빨기 위해 목에 키스를 하게 되는 그 에로틱한 순간을 잡아내면서 에로틱 뱀파이어 영화의 한 장르를 만들어 낸다. 뱀파이어를 변주한 하이틴 영화 <로스트 보이즈>는 새로운 장르 영화의 틀을 만들어냈고, 변화의 기류는 메이저로 이어진다. 에이즈 시대의 불안함을 퀴어 코드로 풀어낸 <뱀파이어와의 인터뷰>는 메이저 영화사를 통해 만들어져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이후 뱀파이어 영화는 <블레이드> 등의 상업영화를 통해 새로운 유행의 코드가 되었다. 이런 상업영화와 함께 가장 큰 인기를 얻어낸 작품은 TV 시리즈 <버피 더 뱀파이어 슬레이어>였다. 이 시리즈는 무겁고 칙칙한 뱀파이어 영화의 영역에서 벗어나 하이틴 물의 영역으로 그 폭을 넓힌 작품이었으며, 뱀파이어 영화를 통해 기대하는 모든 클리세를 총동원하면서도 새로운 시간을 그 속에 투영했다.



2008년 토마스 알프레드슨 감독의 <렛미인>은 폼 잡은 연미복으로 상징되는 드라큘라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다양하게 변주해 온 이런 선배 작들의 실험이 있었기에 빛날 수 있었다. 뱀파이어 장르 영화의 범주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읽어낼 줄 아는 힘이 <렛미인>이 그토록 아름다울 수 있었던 이유였다. 사실 ‘뱀파이어에 매료된 왕따’라는 설정만으로 보자면 <렛미인>이 그토록 획기적인 것은 아니었다. 욘 린퀴비스트의 원작 소설을 각색한 토마스 알프레드슨의 <렛미인>을 볼 때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이 작품이 검은 연미복의 드라큘라가 폼 잡고 있었던 지난 몇 십년간 꾸준히 이어져온 서브 장르의 탐구 결과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렛미인>은 최근 쿨하면서 동시에 핫한 뱀파이어 시리즈의 주인공 대신 정체성을 고민하는 소년과 소녀에게 천착한다. 그 시선이 신선하고 낯설어 기대 이상의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즉, <렛미인>의 성공요인은 장르 영화의 전통을 고전적인 방법대로 답습하면서, 그 안에 심각한 고민과 재료들의 발전 가능성을 실험했다는 것에 있다. 장르를 거부하고 변형하지 않고 노골적인 외적 조건들을 이야기에 묻어 둔 것이다.



스웨덴의 <렛미인>이 예술?화관에서 조용한 반향을 일으켰던 것에 비하면 할리우드의 <렛미인>은 멀티플렉스로 좀 더 뻗어나가 있다. 이는 앞서 개봉된 <렛미인>의 입소문이 할리우드판 <렛미인>에 대한 기대로 확장되었기에 가능한 일이다. 할리우드판 <렛미인>은 전작의 배경인 스웨덴을 미국의 뉴멕시코 주로 바꾸었다. 80년대 스웨덴이 냉전시대 속 중립국가로서의 정체성의 혼돈에 빠져있었다면, 80년대 미국은 레이건 대통령을 중심으로 소비에트 연방을 ‘악의 존재’로 규정하던 시기였다. 당연하게도 그런 정치, 경제적 상황은 두 영화의 분위기 전체를 장악한다. 할리우드 판이 보다 대중적인 것은 80년대 유행했던 컬쳐 클럽과 데이빗 보위의 노래를 삽입하여, 복고적 감성까지 담아냈다는데 있다. 스웨덴 <렛미인>의 주인공 카레 헤더브란트, 리나 레안데르손이 평범한 이웃집 소년 소녀의 사랑스러움을 가지고 있다면 할리우드 <렛미인>의 클로이 모리츠와 코디 스밋은 보다 대중적인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콜로이 모리츠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의 잇걸로 주목받고 있으며,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섹시함까지 갖추고 있어 세계적인 스타로 발돋움할 것이란 평가를 얻고 있다. 할리우드 영화라서 당연히 전작에 비해 노골적인 흥행 코드를 담고 있으리란 선입견을 버릴 필요는 있다. 할리우드판 <렛미인>은 규모가 커진 만큼 마케팅의 범위도 확장되었지만,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성장기 소년 소녀의 시리도록 아름다운 현실을 담아낸다.



원작소설, 2008년 스웨덴 <렛미인>, 2010년 할리우드 <렛미인>은 우월함을 비교할 수 없는 독자적인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어느 것을 먼저 시작해도 좋다. 가능하다면 모두 보는 것을 추천하고 싶지만, 하나만 선택해서 보아도 아프고 아름다운 이야기 앞에 아주 오랫동안 가슴이 먹먹해지는 그 느낌, 그 아련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아주 가까운 시기에 같은 원작으로 만들어진 색다른 영화를 비교해 볼 수 있다는 것도 영화팬으로서 아주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이 색다르고 비범한 잔혹 동화의 송곳니는 당신의 목덜미 깊숙이 파고들어 아주 오랫동안 아리고 슬픈 통증을 남겨줄 것이다. 최근 영화의 속도감과 흥미 위주의 전개방식에 익숙한 관객이라면 아직도 영화를 통해 그런 감성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이 오히려 진기하다고 느낄지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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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최재훈

늘 여행이 끝난 후 길이 시작되는 것 같다. 새롭게 시작된 길에서 또 다른 가능성을 보느라, 아주 멀리 돌아왔고 그 여행의 끝에선 또 다른 길을 발견한다. 그래서 영화, 음악, 공연, 문화예술계를 얼쩡거리는 자칭 culture bohemian.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졸업 후 씨네서울 기자, 국립오페라단 공연기획팀장을 거쳐 현재는 서울문화재단에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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