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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딸을 내가 가지고 있다” - 첫 문장 쓰기 어렵지? 그냥 ‘툭’ 던져~

노트북을 켜고 혼자 중얼거린다. 화가가 되겠다고? 선생님이 되겠다고? 커서 뭐할 거냐고 묻지 않았다. 혼자 깜빡깜빡 조는 한글프로그램 화면속의 커서(cursor)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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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야 내가 누구~게
설렘을 안겨주고 상상력을 발동시켜주는 출발을 위하여


“커서 뭐하니?”
노트북을 켜고 혼자 중얼거린다. 화가가 되겠다고? 선생님이 되겠다고? 커서 뭐할 거냐고 묻지 않았다. 혼자 깜빡깜빡 조는 한글프로그램 화면속의 커서(cursor)에게 말을 걸었다. 커서는 외로워 보인다. 그걸 바라보는 나도 외롭다. 커서도 나를 가만히 응시한다. 안쓰러운 눈길로 이렇게 물어볼 것만 같다. “안 쓰고 뭐하니?”

커서 뭐하니? 안 쓰고 뭐하니?

커서에 불을 붙여야 한다. 아무 글자도 존재하지 않는 텅 빈 공간. 이 황량하고 적막한 광야를 가득 채워야 한다. 아이 참, 불이 붙으려다 자꾸만 꺼진다. 애가 탄다. 뭐라고 써야 활활 타오를까. 내딛는 첫발은, 힘겹다. ‘첫 문장’ 이야기다.

“난 고민 안 해.” 초딩 은서는 당당하게 말한다. 첫 문장의 의미를 묻자 “그게 먹는 거냐?”는 반응이다.
“내가 좋아하는 만화가와 만화는 많다.”(내가 좋아하는 만화가), “글을 잘 쓰려면 수준이 높은 책을 읽어야 한다.”(글을 잘 쓰려면), “우리 동네에는 재미있는 간판이 많다.”(간판에 대하여), “난센스 퀴즈는 그냥 퀴즈가 아니다.”(난센스퀴즈), “우리 학교는 7월21일이 방학이다.”(방학을 맞는 나의 자세)

백발백중(!)이다. 은서가 내뱉는 최초의 문장엔, 주제에 포함된 낱말이 100% 섞였다. 만화가에 관한 글에선 ‘만화가’가 반드시 나온다. 날라리에 관해 쓸 땐 ‘날라리’가, 난센스퀴즈를 말할 땐 ‘난센스퀴즈’가 어김없이 등장한다. 단순함의 극치!

준석도 50%는 그렇다. 다행스럽게도 절반은 의뭉스럽다. “문제를 내겠다. 장님이 아니고서는 보기 싫든 보고 싶든 볼 수밖에 없는 것은?”(간판에 대하여), “이 글을 보면 아마 여러분들이 돌을 던지게 될 것이다.”(난센스퀴즈), “내가 어른도 아닌데 이런 얘기를 할 자격이 있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돈 없으면 못 산다) 살짝 구미를 당기게 한다. 나쁘지 않다.

아이들이 수박을 좋아했으면 좋겠다. 녹색 줄무늬 껍질을 깨뜨리면 빨간 속살이 드러난다. 겉까지 빨갈 필요는 없다. 글을 쓰면서 껍질이 하얗거나 시커먼 수박 품종을 재배하면 안될까? ‘예측불허’한 폼으로 글의 대문을 열자는 말이다. 뻔하디 뻔한 첫마디와 친하게 지내지 않는 태도는 창의적인 글쓰기를 위해 중요한 사항이다. 가령 통일에 관한 글의 서두가 이렇다고 생각해보자.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금강산을 다녀온 소감문이 “금강산 찾아가자 일만이천봉~”으로 시작한다면 어떠한가. 독자들은 이들을 ‘그깟 첫 문장’이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상투적인 글은 이렇게 시작한다

이 글을 쓰다 잠시 딴 짓을 했다. 머리를 식히려 회사 음료자판기 앞으로 갔다. 동전을 넣으려는데 자판기 위의 그림이 갑자기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젊은 여인이 연인으로 보이는 남자의 두 눈을 손으로 가리며 함께 웃음을 터트리는 장면이다. 갑자기 어떤 음성이 환청처럼 귓가에 울릴 듯하다. ‘자기야, 내가 누구~게?’

첫 문장이 ‘내가 누구~게’정신으로 무장해야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쓰는 사람에게도, 읽는 사람에게도 ‘설렘’을 안겨주는 출발. 눈이 감기고 상상력이 발동하도록 말이다.

다시 초딩 은서의 글로 돌아가 보자. 장난전화에 관해 쓴 최신 글이다. “따르릉- 따르릉-.”
오우! ‘장난전화’라는 낱말이 처음부터 안 들어갔네. 칭찬을 해줘야 할까? 구박을 하고 말았다. “자전거벨 소리냐? 요즘 ‘따르릉’거리는 전화기가 어딨어?” “있어, 있다니까~.” “됐고. 다시 써!” “히잉~.”

***

‘쿵쾅쿵쾅’ 시작하지 말자구


“숨은 거 다 알거든~.”
집에 돌아올 때, 나의 첫 문장이다. 퇴근 뒤 집에 돌아가면 으레 이 말이 튀어나온다. 아빠가 오는 기척만 보이면 은서는 숨는다. 안방 침대 뒤 아니면 소파 뒤, 아니면 베란다 또는 옷장 속이다. 아무튼 아빠가 초인종을 누르면 은서는 무조건 숨는다. 왜? 재밌으니까. 무한발동되는 장난기를 누를 ? 없으니까. 아직 애는 애다. 초등학교 고학년에 올라가면 이런 장난도 사라지리라. 어느 날 퇴근하여 돌아왔는데, 갑자기 은서가 태연하게 점잖은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으면 섭섭할 것만 같다.

은서의 또 다른 장난은 전화질이다. 자기 방에서 괜히 거실에 있는 집 전화를 울리게 한다. 받을라치면 바로 끊어버리거나 거짓 목소리를 낸다. 학교에 있을 때도 목소리를 꾸며 집으로 전화를 걸 때가 많?. 며칠 전엔 납치범 흉내를 냈다. “당신 딸은 내가 가지고 있다.”
맙소사. 어설픈 아동화법이라니. “데리고 있다”도 아니고, “가지고 있다”가 뭐냐. 스스로를 물건 취급했다. 여기에 영감을 받아 은서에게는 ‘장난전화’를 주제로 글을 쓰게 했다.

따르릉- 따르릉-
탁- “여보세요?”
뚜-뚜-뚜-뚜-
이런 장난전화나,
따르릉-
“여보세요?
거기 중국집이죠?
○○마을 ○○○동 ○○○호에
제일로 비싼 음식 좀 갖다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딩동- 딩동-
“누구세요?”
“중국집입니다.”
“아…네… 무슨일로?”
“제일 비싼 음식 시키셨잖아요.”

은서가 쓴 글의 앞부분이다. 남의 장난전화 이야기만 잔뜩 늘어놨다. “따르릉”이라는 구식 전화기만 문제가 아니다. 은서야, 네 이야기도 쓰면 좋지 않겠니? 물론 첫 문장도 다시 생각하면서. 첫 문장에 관해서는 까다롭게 굴지 않았다. 아이가 감당할 만한 수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아래의 도입부도 아빠가 아이디어를 줬다. “네가 했던 그 장난을 첫머리에 올리면 재밌지 않을까?” 은서는 그대로 했다.

당신의 딸을 내가 가지고 있다


선글라스를 끼고 스파이 흉내를 내는 은서. 숨기와 장난전화질을 좋아한다.

“당신의 딸을 내가 가지고 있다!”
“…은서야, 빨리 집에 들어와~”
뚜뚜뚜뚜-
아, 역시 엄마는 눈치가 빠르다.
이런 장난전화, 흔하다. 아이가 엄마에게서 돈 받으려고, “내가 당신 딸을 데리고 있다. 당신 딸을 되돌려 받으려면 지금 당신 아파트 근처인 ○○아파트로 와라.”
하지만 사람 목소리 흉내내기 참~ 힘듭니다요. 속는 부모님도 있지만, 대부분 안 속는 부모님이 많다.
아, 그리고 이런 장난전화도 있다.
“여보세요? 여기는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 중국집입니다. 뭐 음식 시키실거 있나요? 가장 싸면 맛있는 음식은…” “아, 됐고요, 제일 비싼 음식이 뭐에요?” “아, 그건 ○○짬뽕입니다. 제일 맵고 큰 홍합이 많이 들어간게 특징이죠.” “아, 그럼 ○○ ○동 ○○마을 ○○○동 ○○○호로 좀 갖다주세요.” “네~ 감사합니다, 다음에도 많이 많이 들려 주세요~” 뚜뚜뚜뚜- 라리라리라리라라라~(아파트 초인종 소리-아빠 주) “누구세요?” “아, 여기는 ○○ 중국집입니다. 제일 비싼 음식 시키셨죠?” “어머, 저희는 그런 중국집 몰라요, 저희는 중국 음식은 안 먹어요!” “네? 그럴 리가…” 이렇게 장난 전화로 골려주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이 세상 사람들이 제일 많이 하는 장난전화는!
“B.O.A D.N.A 이유는 자부심…”(보아의 노래로 전화벨소리-아빠 주) “여보세요? 누구세요?”
뚜-뚜-뚜-뚜- 탁- “여보세요?” 뚜-뚜-뚜-뚜- 이런 장난전화나,
따르릉- “여보세요?” “야, 이 xx야! 니가 내 마음을 알아?! 알기나 해?!” “아뇨.” “……”
뚜-뚜-뚜-뚜- 이런 전화가 있다.
근데 두 번 째 전화는 경찰서에 많이 오는데 밤에 수백 번씩 온다고 한다.
참~ 신기하다. 그러다가 전화세 엄청 많이 나올 텐데… 두렵지도 않나?
예전에 오빠가 내 폰으로 장난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자기 핸드폰 돈 안 낼려고… 빠직! 그 때는 정말 너무 화가 났었다.
어른이라고 장난전화를 안 거는 법은 없다! 예전에 엄마도 내 목소리로 아빠에게 장난전화를 걸었다. 그런데 아빠는 그걸 또 속았다. 진짜… 어떻게 그거에 속나?

주제에 없는 다른 낱말을 상상해봐

전화벨 소리, 초인종 소리도 가지가지다. ‘라리라리라리라라라’에서 보아의 노래까지 픽 웃음이 터지는 아동스러운 묘사?. 장난전화의 여러 가지 유형도 소개했다. 엄마도 가끔 범인이다. 코맹맹이 소리로 변조해 속이려 든다. 은서가 잘 넘어가지는 않지만.

첫 문장에 관해선 은서에게 딱 한 가지의 주문만을 ‘간곡하게’ 하고자 한다. “제발 주제에 있는 낱말만 갖고 쓰지 말거라.” 덤으로, 단순하고 1차원적인 첫 문장을 피하기를 바란다. ‘따르릉’이란 벨소리가 그렇다. 만날 하던 대로 말고, 낯선 방식으로 해보자는 말이다. 차라리 “아빠는 바보 같았다”로 시작하면 어땠을까. 어설픈 엄마의 장난전화에 속았으니 말이다. 또는 “엄마는 안 속는다”로 시동을 걸었으면 어땠을까. 곧이곧대로 첫 문장을 떠올리지 말자. 은서에겐, 딱 여기까지만! 대신 준석에겐 독하게 대했다. 첫 문장을 10번이나 다시 쓰게 했다. 준석이 쓴 글의 주제는 ‘엄마의 키를 추월하며’였다. 최근 준석의 키를 재다가 깜짝 놀랐다. 글쓰기를 시작하던 5월엔 분명히 준석이 엄마보다 작았다. 드디어 역전했다.

엄마의 키를 추월하며

2010년 5월과 10월의 변화상. 그 사이에 준석이 엄마의 키를 훌쩍 넘어버렸다.

애매하게 추월했다. 난 이게 무슨 추월이냐고, 이 정도로 163밖에 안되는 키를 갖고 어떻게 이런 글을 쓸 수 있겠냐고 아빠한테 토를 달았다. 하지만 아빠는 단호하게 거부했다. ‘추월은 추월이다.’ ‘키가 몇이든 엄마를 추월했으니 쓰라는 글 아니냐!’ 라는 식으로.

우리는 가끔씩 재미로 키를 잰다. ‘누가 더 키가 큰가?’ 하면서 말이다. 가족 역시 그렇다. 서로 키를 재본다. 우리 가족은 몇 주 전 키를 재었다. 그런데, 내가 엄마보다 더 큰 것이 아닌가! 물론 나는 깜짝 놀라거나 기쁘지는 않았다. 엄마의 키가 180을 넘는 것도 아니었고, 160대였기 때문에, 내 또래 아이들은 웬만하면 우리 엄마의 키를 추월할 수 있을 거다. 어찌 보면 나에게도 놀라운 일이기도 하다. 나는 100도에서 물이 끓어야 하는데 99도여서 끓지 못하듯이, ‘160까지만 가면 되는데!’ 항상 158이라든가 159를 웃돌고 있었다. 그런데 드디어 163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우유를 하도 퍼마셔서 그런지, 효과가 있긴 있었나 보다. 그래도, 아직은 보통 키인데, 엄마 아빠는 왜 이게 놀랍다는 것일까?

아빠는 이것이 ‘역사적 사건’ 이라고 진술한다. 0.1센티미터든, 10센티미터든, 3센티미터든, 무엇보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키워드는 ‘추월’ 이라고 말하신다. ‘엄마의 키를 추월’ 했다는 것은, 그만큼 내가 신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성장했다’ 라는 것이 아빠가, ‘추월’ 에 대해 큰 의미를 부여한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무슨 ‘의식’ 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의미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리 큰 의미가 되지 않는다. 어쩌면 정신적으로는 성숙했을 수도 있지만, 안타깝게도 신체적으로는 의미가 별 상관이 없는 듯 하다. 위 글을 보면 알겠지만, 이제 막 160센티미터의 키에 도달한 나는, 보통 아이들의 키 수준에 미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마지막으로 정리를 하자면, 이것은 ‘우리 가문’ 에서는 중요하지만, 집 밖에서는 우스갯소리밖에 되지 않는다. 예를 들어 140센티미터 아이가 있는데 ‘나 우리 집에서 엄마보다 키 크다!’ 하면, 모두들 웃는다. 나까지 웃겠다. 하지만, 그건 집에서슴 꽤 가치 있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마찬가지다. 중 1로서 160센티미터를 고작 넘었다는 것에 대해서는 사람들은 ‘우와~’ 이럴 리 없다. 오히려 나보다 키 큰 170대들에게는 우스갯소리이다. 하지만 부모님, 그리고 우리 가문은 내 키가 엄마보다 크다는 ‘추월’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일이라고, 말한 것이다.

준석이 고생한 10가지 작품들

엄마의 키를 추월한 것이 ‘가문’(거창하게시리)으로서는 역사적으로 기념할 만한 일이지만, 가문 밖에서는 우스개 밖에 안 된다는 결론이다. 내용은 됐고! 첫 문장을 10번 다시 쓰도록 했다. 위의 첫 문장이 나쁘지는 않았으나, 연습 한 번 해보자. 준석은 질리는 표정이었다. “다른 걸 고민해봐”라고 말하면 “고민 할 만큼 했다”며 신경질을 냈다. 이런 고행의 터널을 한 번 빠져나오고 나면, 다음부터 첫 문장을 대하는 느낌이 달라질지도 모른다.

1.‘엄마의 키를 추월하다’, 무슨 의미일까? 단순히 키만 큰 것? 엄마를 추월한 것? 물론, 그런 의미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또 다른, 색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이 글을 통해 만나보자.”
☞ 평범하기 짝이 없는 첫 문장이다. 너무 직접적이라 호기심이 작동하지 않는다. 또한 첫 문장을 던져놓고 왜 이리 쓸데없는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늘어놓는가.

2. “드디어 엄마를 ‘추월’ 했다! 단순히 키만 큰 것? 엄마를 추월한 것? 물론, 그런 의미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또 다른, 색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이 글을 통해 만나보자.”
☞ 첫 문장에 ‘키’라는 낱말이 빠진 건 잘했다. ‘추월’도 이제 좀 그만 넣지 그래?

3. “어느 날 훌쩍(??) 커 버린 나의 키, 드디어 160을 넘은 내 키! 단순히 키만 큰 것? 물론, 그런 의미도 빼놓을 수 없겠지만, 또 다른, 색다른 의미가 있을 수 있겠다. 이 글을 통해 만나보자.”
☞ ‘훌쩍’이란 말을 써놓고 물음표는 왜 두개씩이나 찍었을까. 첫 문장이 쓸데없이 길다.

4. “기념할 만한 일이 생겼으니, 드디어 160을 넘은 나의 키! 그렇다면 이 키가 우리 가족에게 준 영향은 무엇이고, 나에게 특별했던 영향은 무엇이며, 우리 가문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 역시 이유없이 길다. ‘키’라는 말 정말 질린다. 그만 하면 안 되겠니?

5. “우유 덕이다. 대충 알 거다. 키가 큰 거다. 하지만 단순히 큰 게 아니다. ‘엄마를 추월’ 한 키다. 그렇다면 이 키가 우리 가족에게 준 영향은 무엇이고, 나에게 특별했던 영향은 무엇이며, 우리 가문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 이번엔 가장 짧다. 한데 ‘우유’가 첫 문장에 들어갈 만한 자격이 있는지 의문이다. ‘우유’가 이 글에서 차지하는 의미가 얼마나 있을까? 아무 거나 생각한 게 틀림없다.

6. “나의 키가 변화하였다. 청소년기에 돌입했으니, 이러한 변화가 청소년기의 기초이자 정석이었다. 대충 알 거다. 키가 큰 거다. 하지만 단순히 큰 게 아니다. ‘엄마를 추월’ 한 키다. 그렇다면 이 키가 우리 가족에게 준 영향은 무엇이고, 나에게 특별했던 영향은 무엇이며, 우리 가문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 ‘키’ 얘기 쓰지 말라니깐. 그리고 ‘변화하였다’는 추상적인 단어는 재미없다.

7. “나는 청소년이다, 청소년기에는 이것이 큰다, 따라서 나도 이것이 큰다.”
☞ 억지로 다시 쓴 기색이 보인다. 고육지책이다. “이것이 큰다”라고 호기심이라도 주려고?

8. “항상 2등이 1등 하던 기분이다.”
☞ 뭔가 새로운 느낌이 든다. 개중 낫다.

9. “부모님 사이에서 경사가 났다.”
☞ 경사? 이런 과장법을 쓰다니. ‘경사’라는 낱말은 적절하지 않다. ‘작은 의미’가 있을 뿐이지.

10. “드디어 ‘중학생’의 키에 돌입했다.”
☞ 오히려 후퇴한 첫 문장이다. 10번째 다시 쓴 글이 처진다. 너의 짜증이 엿보인다.

네가 ‘훅’을 안다고?

준석에게 첫 문장의 기능과 역할을 물었다. 뜻밖에도 어른스러운 대답을 내놓는다. “훅(hook)이라고 있잖아요. 영화 시작하면서 관객들을 끌어당기듯이, 호기심을 끌게 해야죠.” 너의 첫 문장이 훅의 역할에 충실했다고 생각하니? 훅이란 잡아당기는 고리다. 일종의 ‘미끼’이기도 하다. 중딩이 벌써 그런 고도의 글쓰기 전술을 구사할 필요는 없다. 자칫하면 ‘얍삽한 글쓰기’ 기술만 익히게 될 지도 모른다.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앞에서는 ‘예측불허’하게 시작하라고 권했다. 은서에게 코치했듯, 고지식한 출발을 하지 말라는 말과 통한다. 누군가의 집 대문이나 빌딩의 현관이 평범하지 않은 디자인으로 멋지게 설계됐다고 상상해보라. 특별한 인상을 받게 마련이다. 첫 문장도 그렇다. 글을 다 읽기도 전에 독자들이 반할 수 있다.

아빠는 이왕이면 짧은 문장으로 시작하자고 권한다. 길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박해할 생각은 없다. 글 쓰는 이의 취향에 따라 형식은 천차만별일 수 있다. 아빠의 스타일이 짧을 뿐이다. 처음부터 이야기보따리를 잔뜩 풀겠다는 욕심은 읽는 이들을 지루하게 할 지도 모른다고 본다. 양파처럼 하나씩 하나씩 이야기의 껍질므 벗기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다 필요 없다. 한 마디, 아니 한 글자로 말해보자. 첫 문장을 쓰는 태도는 이거다.



‘쾅’이 아니다. ‘쿵쾅쿵쾅’은 더욱 아니다. 시끄럽거나 무거운 포스로 글의 대문을 열어젖히지 말자. 그냥 ‘툭’ 던지는 거다. 가볍지만 마음을 두드리거나, 알쏭달쏭하게! 권투경기 1회전 종이 울리면 툭 잽을 날리듯, 축구경기 전반전 휘슬이 울리면 툭 짧은 패스를 건네듯. 1980년대 한국사회에는 “탁 치니 억 했다”는 경찰 코미디(1987년 박종철 고문사건)가 있었다. ‘툭’ 쳤는데 읽는 이들이 ‘억’하면 금상첨화겠다.

준석은 ‘훅’을 말했고, 아빠는



을 오늘의 결론으로 말한다.

여기서 끝내련다. 툭~.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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