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그룹에 하나도 있기 힘든 음악 브레인이 이 그룹에는 셋이나 있습니다. 바로, 한국 록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거장들, ‘사랑과 평화’(최이철), ‘신촌블루스’(엄인호), ‘들국화’(주찬권)가 ‘슈퍼 세션’이라는 이름으로 뭉쳤는데요, 이 록의 거장들의 음악은 어떨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그리고 오랜만에 보아도 신작을 발표했습니다. 이번에는 김동률, ‘넬’의 김종완과의 작업으로도 화제가 되었었죠. 마지막으로 ‘사운드가든’의 재결합 베스트음반도 소개합니다.
슈퍼 세션(Super Session) <Super Session> (2010)
이건 놀라운 앨범이다. 눈이 확 떠지는 이유는 말할 것도 없이 한국 록 역사에서 이름값이 크나큰 절대 거장 셋이 뭉쳤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국 록의 최고봉 ‘사랑과 평화’의 간판 최이철, ‘신촌블루스’의 수장 엄인호, ‘들국화’의 주찬권이 의기투합해 결과물을 내놓았다는 단순 사실 하나가 우리의 오랜 나른함을 때린다.
엄인호가 누군가, 최이철이 누군가, 주찬권이 누군가. 이들을 뒤로 하고 한국 록의 담론은 조금도 앞으로 나갈 수가 없다. 아주 쉽게 말하자면 세 사람은 지금도 전파를 타는 명곡 「골목길」(엄인호), 「한동안 뜸했었지」(최이철), 「또다시 크리스마스」(주찬권)를 주조해낸 그 인물들이다. 엄인호 52년생, 최이철 53년생, 주찬권 55년생이라는 물리적 나이가 아닌, 그 세월을 통해 쌓고 그려낸 나이테를 우리는 숭배해야 할 것이다. 이들은 록에 삶과 영혼을 던졌다.
올해 우리 음악계의 쾌척이라고 할 <Super Session>에 접근한 이 거장들의 자세 또한 전면적이다. 연주와 노래 조금 보태고 이름만 내거는 표면상의(혹은 상업적인) 공동앨범이 아니라 셋이 모두 작곡 작사, 연주, 노래를 주도한 명실상부한 슈퍼 앨범이다.
대부분의 곡에 젊은 연주자들과 함께 빠짐없이 이 트리오가 연주를 맡았다. 그러면 음악의 공통지반이 무엇일까 하는 궁금증은 이들을 관통하는 록 음악, 이 음악의 기원은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물음을 동반한다면 단박에 풀린다.
생물은 여물고 나이 들면 기원을 찾게 되고, 귀소를 구현한다. 록의 귀소 점은 주지하다시피 블루스(blues)다. 에릭 클랩튼도 “록은 충전되기 위해 항상 블루스로 돌아가야 하는 전지와 같다”고 했다. 최이철이 읊는 「강(River)」, 엄인호의 절규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Year past)」 그리고 주찬권의 호소 「상심의 바다(Sea of heartbreak)」는 블루스의 애끓는 호흡이 가득한 곡들이다.
이를 통해 세 사람은 지나간 삶에 대한 회한과 자기연민, 사랑과 나이 듦에 대한 관조 등을 솔직한 독백으로 풀어낸다. 이러한 지극히 인본적인 터치가 블루스와 재즈의 소박함과 더불어 앨범의 공기를 형성한다. 후크 송이라는 이름의, 과도한 감각과 치졸한 상업성에 감염된 음악계 주류의 공산품과는 엄격하게 분리선을 친다. 여기에는 디지털의 몰인격, 기계음의 현기증 나는 무한반복, 상투적 패턴이 없다. 그들 나이에서 느끼는 감정과 동정의 편린들만이 있다.
지금 우리가 어디서 포크 블루스 「니가 있으니(Because of you)」와 같은 감싸 안는 사랑을 들을 수 있겠는가. 「당신이 떠나고 난 뒤에(When you leave)」의 처절한 토로를 우리가 다운로딩 차트 순위권에서 어떻게 접할 수 있는가. 근래 분위기 같아선 천지개벽이 아닌 이상 우리가 「비 그대 그리고 블루스(Rain, you n blues)」의 우울한 웅크림과 비상하는 포효를 전파에서 구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앨범의 가치는 바로 이 다름, 자발적인 주류와의 격리, 아니 그들 입장에서는 자연스러운 발로에 있다. 이것을 트렌드와 상업성이라는 잣대로 외면하고 그래서 스스로 스타일을 볁히고 있는 게 바로 지금의 우리 음악계다. 물론 그렇다고 이들 셋이 그러한 왜곡 현실에 분노해 작태를 혼내고자 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들은 그렇고 우리는 그냥 이렇게 하고 싶다!’는 자기들의 표현과 드러냄에 충실할 뿐이다.
빠른 템포가 없는 것도 아니다. 엄인호의 「밤마다(Every night」는 유쾌한 코러스를 입혀 흥겨움을 획득했고, 최이철 회심의 「바람 불어(Windy)」는 마치 해외 거장들이 벌이는 잼처럼 세련된 신명이 있으며 주찬권이 주도한 합창 곡 「아주 특별한 날(Special day)」는 그 편안함으로 이 앨범을 듣는 순간을 스페셜 데이로 만든다. 또 하나 얘기하고 싶은 것은 기초적인 청취의지만 가동시킨다면 세 아티스트가 주는 중량과는 달리 의외로 곡들이 쉽게 들린다는 사실이다. 첫 곡 「다시 시작해(Again)」부터 멜로디와 전개가 스르륵 귀에 감긴다.
우리도 들어야겠지만 이 앨범이 적극 해외에 소개되었으면 한다. 한류는 오로지 틴 댄스뮤직밖에 없는가 하는 불평이 솟아오르고 있는 와중에 이 <슈퍼 세션>은 한국에도 이런 음악이 오래전부터 존재해왔다는 사실을 웅변해줄 것이다. 우리도 놀랄 앨범이지만 한류 대상국 음악소비자들도 놀랄 앨범이다.
글 / 임진모(jjinmoo@izm.co.kr)
보아(BoA) <Hurricane Venus/Copy & Paste> (2010)
<Hurricane Venus> 혹은
<Copy & Paste>라고 명명된 보아의 여섯 번째 앨범은 예상대로 강하고 또 사납다. 5년이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만회하기 위함이니 확실한 결과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훌쩍 자란 그녀 자신 뿐 아니라 대중에게도 확실히 달라진 모습을 선보일 필요가 있었다. 소녀티를 벗고 당당한 여성으로 변모했다는 것을 알리는 데 일렉트로닉 댄스만큼 임팩트가 강한 것도 없다.
투박하고 무거운 비트와 신서사이저의 쓰임이 주를 이룬 타이틀 트랙은 확실히 단단한 인상을 심어주기에 적격이다. 드센 사운드 속에서 나름 진면목을 보여주는 그녀의 보컬도 좋다. 다소 묻히는 감도 있지만 이는 이펙트의 집중 포화 속에서 이뤄낸 결과물이라 좌절할 정도는 아니다. ‘보아’니까 이정도로 뽑아낸 것으로 보는 것이 맞다. 이런 성격은 비슷한 스타일인 「Dangerous」나 「Adrenaline」도 마찬가지다. 그만큼 사운드나 이펙트 면에서 과도한 감도 있다.
업 템포 트랙들이 보아의 존재감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다면 앨범에 수록된 몇 곡의 발라드 넘버들은 그녀의 성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앨범 발매 전 공개되어 주목받은 김동률 작곡의 「옆 사람(Stand by)」과 넬(Nell)의 김종완이 펜을 든 「한별 (Implode)」이 그 중심 곡. 보아와 쉽게 연관지을 수 없는 두 뮤지션의 곡은 의외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비슷한 점이 있으나 그 접근법은 차이가 있다.
「옆 사람(Stand by)」은 오케스트라 도입부만 들어도 단번에 작곡자를 알아챌 만큼 정형화된 김동률표 발라드다. 보아에 맞게 곡을 작곡한 것이라기보다는 김동률의 스타일을 따온 것이 맞다. 곡의 중심을 잡는 현악 사운드와 잔잔하게 깔리는 건반, 곡이 진행되면서 점점 다채로워지는 사운드와 점차 고조되는 보컬로 풍성하게 차려진 곡은 보아의 예전 발라드들과 다른 노선을 탄다.
가성과 진성을 번갈아 오가는 보아의 목소리에서 어색한 감이 있다. 더군다나 곡을 듣는 내내 가슴 뻥 뚫리는 보컬을 기대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는 그동안 우리가 오랫동안 김동률의 목소리에 익숙함을 느껴왔기 때문이 아닐까. 여성 싱어가 부르는 그의 노래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보아의 보컬도 수긍이 간다. 보아의 목소리가 남긴 애잔함의 잔향은 의외로 진득한 면이 있다.
김종완의 음악 스타일이 고스란히 묻어난 「한별 (Implode)」은 보아의 목소리와도 어색함 없이 잘 조화되었다. 보아의 나아진 점을 발견하는 측면에선 이 곡이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이는 김종완이 평소에 구사하던 음악적 스타일이 김동률의 것보다 좀 더 유연했기 때문이다. 이는 단지 우직한 남성적 스타일과 초식남적인 스타일의 차이다. 결과적으로 각기 다른 스타일의 두 곡은 보아에게 긍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보아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보아도 할 수 있는 음악을 한 것은 아쉽다. 외국 작곡가에게 타이틀곡을 도입하는 SM의 전형적인 방식은 보아에게도 예외로 적용되지 않았다. 그 만큼 SM 내에서나 한국 가요계에서는
<Hurricane Venus>의 스타일이 독창적이거나 새롭?는 않다는 것이다. 반면 목소리의 다양함은 나름 보아의 위치에 걸맞게 나왔다. 그 또래의 가수 사이에선 발견하기 쉽지 않은 보컬 장악력이 명성에 누가되지 않는 수준이다.
어차피 선구자 격인 아티스트가 아니고서야 단 몇 장의 앨범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정립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아이돌 가수 이미지를 벗고 본격적인 성인으로 변모했다면 가사에서나 음악적인 부분에서 ‘보아’만의 독창적인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언급일수도 있지만 분명 보컬 적으로나 음악적으로 능력이 있기에 기대할 수 있는 모습일 것이다. 강함을 내세운 일렉트로닉 댄스가 외적인 면에서는 우월하겠지만, 이제는 내적인 강함을 보일 필요가 있다.
글 / 성원호 (dereksungh@gmail.com)
사운드가든(Soundgarden) <Telephantasm>(2010)
사운드가든(Soundgarden)의 재결성에는 현재 음악 판도에 대한 보이지 않는 불만과 위기감이 존재한다. 1990년대 초, 그런지 광풍은 록의 마지막 불꽃이며 산화한 백인의 자긍심이었다. 어느덧 20년이 되어가는 얼터너티브의 향수는 흑인음악에 자리를 내준 백인 록 진영의 분발을 촉구하는 촉매제로 작용하며 앨리스 인 체인스(Alice In Chains)와 사운드가든을 다시 불러냈다.
성대 문제로 2007년에 오디오슬레이브(Audioslave)와 결별한 보컬리스트 크리스 코넬(Chris Cornell)은 두 장의 솔로 앨범 <Carry On>과
<Scream>이 기대에 못 미치자 2010년 1월 1일, 자신의 트위터로 팀의 재결성을 오픈하며 사운드가든의 음악 방향으로 파열음을 냈지만 전성기를 일궜던 킴 테일(Kim Thayil), 매트 카메론(Matt Cameron), 벤 셰퍼드(Ben Shepherd)를 호출했다.
흑인 보컬리스트 윌리암 듀발(Williams DuVal)을 영입해
<Black Gives Way To Blue>로 현역에 복귀한 앨리스 인 체인스와 꾸준하게 평균 이상의 활동력을 보여주는 펄 잼(Pearl Jam) 그리고 아메리칸 아이돌 출신으로 포스트 그런지 음악을 구사하는 도트리(Daughtry)와 데이비드 쿡(David Cook)도 자극제였다.
<Telephantasm> 은 재결합 베스트 음반이지만 팬들의 반응을 미리 점치는 신곡이 없다. 대신 1987년과 1990년에 녹음했지만 성은을 입지 못해 미발표 곡으로 남아있던 「Hunted down」과 「Black rain」을 처음과 마지막으로 안치해 익숙한 새로움을 전달한다.
2집
<Louder Than Love>에서 ‘Hands all over’를, 이들의 존재감을 알린 3집
<Badmotorfinger>에서는 「Outshined」와 「Rusty cage」, 사운드가든을 전 세계에 각인시킨 네 번째 앨범
<Superunknown>에서는 대표곡 「Black hole sun(메인스트림 록 차트 1위)」과 관록이 느껴지는 「Fell on black days(메인스트림 록 차트 4위)」, 「Spoonman(메인스트림 록 차트 3위)」, 「My wave」 그리고 이들의 마지막 공식 앨범
<Down On The Upside>에서는 「Burden in my hand(메인스트림 록 차트 1위)」와 「Blow up the outside world(메인스트림 록 차트 1위)」가 채쏅됐다. 카메론 크로우 감독이 1992년에 메가폰을 잡은 영화 <Singles> 사운드트랙에 수록된 「Birth ritual」도 반갑지만 「Superunknown」, 「Pretty noose」, 「Ty Cobb」의 탈락은 아쉽다.
불꽃 튀던 활력을 잃어버린 현재의 록 필드에서
<Telephantasm> 은 사운드가든의 확실한 과거와 불확실한 미래를 동시에 품고 있다.
글 / 소승근(gicsucks@hanmail.net)
제공: IZ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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