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세는 다시 리메이크? -윈터플레이, 젠틀레인, 노 리플라이
지난주 앨범리뷰에서는 리메이크 앨범을 발표한 브라이언 윌슨(Brian Wilson), 국내의 장혜진의 앨범을 소개했었죠? 리메이크 바람은 이번 주에도 여전합니다. 아무래도 뛰어난 선율과 감성은 세월을 넘나드는 힘이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나라에선 광고음악으로 유명세를 탄 「Happy Bubble」의 ‘윈터플레이’가 최호섭, 노라 존스(Norah Jones) 등의 노래를 리메이크 했고, 국내 재즈 트리오 ‘젠틀 레인’의 신작에서도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을 듣기 편한 재즈로 편곡했네요. 원곡과 비교해보면서 들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단 2장의 앨범으로 굵직한 싱어 송 라이터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노 리플라이’의 신작도 소개합니다.
윈터플레이(Winterplay) (2010)
트럼페터 이주환이 윈터플레이를 결성한 목표는 분명했다. 팝과 재즈의 섞임을 통해 대중들 앞에 재즈를 편하게 내놓는 것이다. 그들의 만찬은 상큼한 「Happy bubble」과 고혹적인 「집시 걸」로 이미 성공을 거뒀다.
이번에 발표한 2집 역시 그 방향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보편적 감수성을 더욱 보강했다. 우리가 익히 마음속에 품고 있던 추억의 멜로디를 대거 소환했다. 최호섭의 「세월이 가면」, 카펜터스의 「I need to be in love」, 스팅의 「Moon over bourbon street」, 노라 존스의 「Don't know why」 등이 새롭게 요리됐다.
고독을 씹던 「Moon over bourbon street」는 리드미컬한 진행으로 바뀌었고, 호소력 짙은 「세월이 가면」은 혜원의 무심한 듯한 보컬과 낭만적인 트럼펫의 조화가 돋보인다. 「Don't know why」는 원곡의 느낌을 그대로 살렸고, 사랑스러운 「I need to be in love」는 성숙해졌다.
리메이크 곡만큼이나 창작곡 역시 귀를 잡아끌기에 충분하다. 전체적으로 데뷔 음반에 비해 팝적인 성향이 강해졌다. 타이틀 곡 「투셰모나모」는 신명의 난장을 연다. 감칠맛 나게 라틴 기타를 튕기는 최우준과 묵직하게 콘트라베이스를 짚어나가는 소은규의 협연은 「Uh, Oh」를 반복하는 혜원의 추임새가 더해지면서 절로 몸을 들썩이게 한다. 보사노바 스타일의 「Your eyes」, 사랑을 갈망하는 발라드 「June ballad」, 통통 튀는 리듬과 혜원의 관능적인 보컬 하모니가 빛을 발하는 「Those darn feelings」도 마찬가지다.
편곡도 어렵거나 복잡하지 않다. 악기들도 서로 튀지 않고, 연합한다.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맡은 마 임무를 다한다. 이주환의 능력이다. 아스라한 겨울의 풍경을 그린 「눈 내리던 어느 날」, 혜원과 최우준이 함께 부르는 「Blue without you」 등이 잘 말해준다.
국내에서의 안정된 기반을 발판삼아 윈터플레이는 일본과 유럽 무대로 진출했다. 팝 재즈라는 그들의 확고한 음악적 표지가 과연 통할지 두고 볼 일이다. 이번 음반이 그 출발점이다.
글 / 안재필(rocksacrifice@gmail.com)
젠틀 레인(Gentle Rain) (2010)
재즈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익숙한 재즈 트리오 젠틀 레인(Gentle Rain)의 세 번째 앨범이다. 재즈에 대해서 막연히 어려운 음악이라고 생각해 온 이들이 젠틀 레인의 뷀악을 듣는다면 그 판단이 많이 누그러질 듯하다. 장르상의 특징인 즉흥 연주라든가 연주자의 화려한 기교보다는 서정적이고 편안한 선율을 중심에 두기 때문이다. 그들의 설명처럼 '수필 같은 재즈 화법'으로 성향을 정의할 수 있을 만큼 담백함과 수수함이 수록곡 전반에 묻어난다. 팝 히트곡과 과거의 가요 인기곡을 재해석해 보였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이번 앨범에서도 빛과 소금의 「샴푸의 요정」과 영화 <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의 테마곡을 리메이크해서 듣는 이들이 친숙하게 받아들일 요소를 마련했다. 시종 안락함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글 / 한동윤(bionicsoul@naver.com)
노 리플라이(No Reply) (2010)
신인 가수는 늘 '제2의 누구'라는 편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이 당장의 이미지 결정과 때론 효과적인 마케팅까지 담당할 수 있다 하더라도 막상 열어본 실망스런 결과물에 흐지부지된 많은 경우를 팬들은 이미 목도했을 터. 괜찮은 싱어 송 라이터의 등장에 늘 따라다니던 '김동률', '유희열' (아마 1990년대, 싱어 송 라이터의 붐을 견인한 이들을 빼놓을 수는 없기 때문이겠지만) 등의 수식어를 '노 리플라이'도 피해 갈 순 없었다. 팀 내에서 이뤄지는 작사, 작곡, 스트링이 주도하는 깔끔한 발라드, 무엇보다 절정으로 치달을 줄 아는 멜로디는 1990년대의 발라드 황금시대, 그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하기에 충분했다.
라디오를 주 무대로 활동하던 뮤지션에 대한 그리움, 그러나 그들과는 분명 다른 2010년 식 사운드를 간절히 바라던 이 라디오 키드들에겐 '노 리플라이'가 해답이었다. '제17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출신이라는 커리어가 증명하듯, 그들에겐 분명히 실력 있는 뮤지션의 계보를 잇는 발라드의 미학이 있다. 기승전결의 형식을 구성할 줄 알았고, 특히 선율의 포인트가 명확했다. 하지만 기존의 뮤지션과 분리선을 치는 그들의 승부수는 다른 데 있었다. 바로 로킹한 사운드를 구현해낼 수 있었던 것. 이건 좀 더 재즈와 클래식한 감성에 올 인한 '전람회', 소박하고 간결한 구조가 이끄는 '토이'의 음악과는 다른 매력의 무엇이었다.
전작의 「끝나지 않은 노래」의 건반과 「Violet suit」의 기타 리듬 플레이는 그들의 지향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한다. 특히 「끝나지 않은 노래」의 건반과 점층적으로 쌓여가는 일렉기타의 구성, 여기에서 이끌어내는 멜로디의 조화는 양양한 신인 밴드의 노래로 넘기기엔 그 질감이 뛰어난 수작이었다. 음악적으로 정의하자면 건반과 기타의 리듬 위에서 풀어놓는 유려한 멜로디로 팬들의 귀를 사로잡은 '러브홀릭'의 음악 작가 '강현민', '이재학'에서 그 뿌리를 찾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기존의 뮤지션들과의 연결고리는 여기까지. 정규 2집이 되는 < Dream >에서 그들만의 움직임은 명확하다. 좀 더 정확히 말해 기존의 패턴은 유지하되 보컬의 가능성과 좀 더 진한 록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둔다는 것이다. 전체적으로 믹싱의 밸런스를 잘 둔 「No dreamer」, 「위악」은 이전보다 더 뛰어난 모던 록의 질감을 담고 있고, 1집에서 「낡은 배낭을 메고」가 그렇듯 분위기에서 크게 이탈되지 않는 한계 내에선 자유로운 변주를 가한다. 3박자 리듬의 「Goodbye」는 그에 대한 명징한 증거.
무슨 노래를 하든, 이들은 좋은 멜로디의 끈을 절대 놓지 않는다. 서정적인 분위기에만 편중되어 자칫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고루함을 타파하는 건 역시 편곡의 다양성이다. 타이틀 곡 「내가 되었으면」은 코러스에 접어들면서 나오는 절묘한 혼 섹션이 분위기를 한껏 이끈다. 이런 나름의 정중동의 변화가 재밌는 것이다.
다만, 건반의 반복적인 테마가 골격을 잡고 이후엔 담백한 권순관의 보컬이 나오다 코러스에서 터지는 일렉기타의 사운드와 리듬 기타의 플레이. 매번 같은 이러한 진행은 이들의 개성 있는 스타일이 되기도 하지만 자칫 자기 스타일에 함몰될 위험도 있다. 자신의 음악 방법론에 때론 적절한 변화를 가하는 것, 즉, 음악적 발현과 대중적 시선사이의 적절한 줄다리기가 관건이며, 이는 진정한 뮤지션이 되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고통이기도 하다.
결국,
< Dream >은 노리플라이 음악의 확장이자 유지인 것이다. 기타로 록의 질감을 살리면서 '말랑말랑'이라고 해도 좋을 달콤한 멜로디는 팬들의 감수성에 깊게 밀착한다. 정규 앨범 단 2장 만에 얻은 '1990년대 웰 메이드의 재현'이라는 타이틀, 그리고 그들이 그토록 닮고 싶어 한 뮤지션들의 찬사는 음악적인 설득력을 동반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글 / 조이슬(esbow@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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